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64)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64화
아이고, 두야.
관자놀이가 지끈지끈 아파오는 것을 간신히 참아내며 나는 눈앞의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저 둘은 벌써 30분째 열띤 토론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제 디저트는 오로지 황녀님을 위한 것이어야만 하고, 그래야만 가치가 있다니까요?”
“황녀님이 얼마나 아름다운 시야로 세상을 보는지 이해를 못 하는 거야? 그렇게 맛있는 건 최대한 많이 만들어서 많은 이가 맛보게 해야지.”
“그런 건 다 핑계잖아요!”
“뭐가 핑계냐!”
“황녀님의 향한 내 정성을 오빠의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는 거면서!”
“그게 나쁘냐!”
“그게 나쁘지!”
오랜 공방 끝에도 유리와 나르모르의 의견 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둘 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유리 언니는 나를 위해서만 특별히 디저트를 만들고 싶은 거고, 나르모르 오빠는 대량생산 체제를 갖춰서 디저트 사업을 하자는 거고.’
무슨 말인지는 다 알겠는데…… 왜 내 방에서 저렇게 싸우고 있느냐고.
“둘 다 그만!”
“…….”
“…….”
유리와 나르모르는 입을 다물었다.
둘이 동시에 나를 바라보았는데, 저 두 쌍의 눈동자에는 ‘내 편 들어줘!’라는 욕망이 강하게 담겨 있었다.
“굳이 내 앞에서 싸우는 이유는 판결을 내려달라, 뭐 그런 거야?”
유리 언니가 부담스러운 표정으로 날 봤다.
‘아시죠? 황녀님을 향한 제 진심이요.’
말을 한 게 아닌데 환청이 들릴 정도였다.
그 눈빛이 지나치게 부담스러워 나는 슬그머니 눈초리를 피했다.
‘나르모르는 왜 날 저렇게 보는데?’
훗날 대륙 최고의 부자가 될 나르모르는 돈독이 잔뜩 오른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제가 돈을 엄청나게 벌어다 드리겠습니다!’라고 외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둘의 의견은 너무나 달랐지만 같은 것이 하나 있었다.
한 명의 편을 들어주면, 한 명은 삐질 것 같았다.
‘나는 솔로몬이 아닌데.’
아, 머리 아파. 차라리 선형대수와 대수학을 공부하고 말지.
이렇게 지독히 인문학적인(?) 상황은 역시 내 취향이 아니었다.
태생이 이과인 나는 그냥 지나가고 싶었다.
“나는 두 사람을 다 좋아해. 두 사람의 의견이 어떤 건지도 알겠어.”
두 사람이 침을 꼴깍 삼켰다.
미안하지만, 나는 누구의 편도 들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내가 누구인지 잊은 모양이야.”
“…….”
“…….”
누구 편을 들어주기 곤란할 때는 누구의 편도 들어주지 않는다! 내가 난처한 상황이면, 상대를 더 난처하게 만든다!
이게 내가 떠올린 최선의 방식이었다.
“나는 분명 유리 언니와 나르모르 오빠를 좋아하지만, 내 앞에서 언성을 높이고 싸우는 건 예의에 어긋나잖아.”
유리와 나르모르가 자세를 바로 했다. 내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나를 편하게 생각해 주는 건 좋아. 그렇지만 나를 너무 곤란하게 만들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 * *
밖에서 대화 내용을 모두 듣고 있던 시종장 데일사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사실 그녀는 시종장으로서 유리를 야단치려 했었다.
‘황녀님은 정말 신기한 분이라니까.’
더없이 친구 같고, 더없이 착하고, 더없이 약해 보이는데, 또 잘 보면 그렇지 않았다.
착한데 약하지 않은 것.
정말 어려운 건데 이사벨은 그 어려운 걸 아무렇지도 않게 해냈다.
데일사가 똑똑 노크했다.
“데일사 시종장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네. 들어오세요.”
대륙 제일의 감정사 마르코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시종장이 시종장했다.
오늘도 시종장은 현명한 답을 내려주었다.
“그대가 황녀님을 위해서만 디저트를 만들려고 하는 건, 최고의 퀄리티를 지향하기 때문인 거겠지?”
“……맞아요.”
한 명만을 위한 디저트. 그리고 수많은 사람을 위해 만드는 디저트.
그 질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유리의 지론이었다.
“나르모르. 그대는 유리의 이 훌륭한 사업 아이템을 그냥 놀리는 것이 아까운 거고?”
“……맞습니다.”
“그렇다면 절충안이 필요하겠군.”
데일사가 제안한 것은 ‘한정판 프리미엄 디저트 가게’였다.
매일 최소한의 인원만을 예약받아서 디저트를 만드는 것이었다.
대신 가격을 말도 안 되게 높여서 받는 차별화 전략을 쓰기로 했다.
“알겠어요.”
“알겠습니다.”
유리와 나르모르도 모두 동의했다.
“자, 그럼 둘이 화해하고.”
나르모르는 멋쩍은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유리 언니도 얼른 악수해.”
“…….”
유리는 우물쭈물 망설이다가 이내 나르모르의 손을 붙잡았다.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이 순간이 바로 대륙 최고의 제과 기업, 유리모르 코퍼레이션이 탄생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 * *
그날 밤, 내게 이불을 덮어준 유리 언니는 내 옆에서 어물쩍거렸다.
“왜 그래?”
“죄송해요. 황녀님이 저를 친구처럼 생각해 주시는 것에 취해서 너무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아요.”
“…….”
풀이 죽어 있는 유리 언니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진짜 친구처럼 대해도 상관없기는 한데.’
원래 어릴 때 만들어진 것이 평생 간다고 했고, 내 자아정체성은 한국에서 다 만들어졌다.
따라서 나를 편하게 대하고 내 앞에서 투덕거리는 것 정도는 사실 아무렇지도 않았다.
유리 언니는 내게 최고의 디저트를 만들어주고 싶어서 그랬던 거고, 나르모르 오빠는 내게 물질적인 도움이 되면 좋겠어서 그랬던 거고.
나는 둘의 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크게 화가 난 건 아니었다.
두 사람을 그만 싸우게 하려고 한 것뿐이었는데 효과가 지나치게 굉장했다.
‘그냥 나도 난처해서 그런 건데…… 하지만 내가 아무렇지도 않다, 괜찮다고 말하면 유리 언니가 오히려 더 불안하겠지?’
이제 나도 이 세상에 많이 익숙해졌다.
이곳은 한국이 아니고, 그에 따라 문화가 다르고 사람들의 생각하는 방식이 달랐다.
여기서는 그냥 황녀답게 행동하는 것이 오히려 유리 언니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었다.
“그럼 최선을 다해서 보여줘. 사실 나도 사람들이 언니의 디저트를 맛보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나는 가볍게 웃었다.
“언니는 내가 아는 최고의 파티시에니까.”
유리 언니는 내 말에 얼굴을 붉히며 은은하게 웃었다.
“나는 다 용서했으니까 활짝 웃어도 돼.”
그리고 몇 분 뒤, 나르모르 오빠도 내 방을 찾아왔다.
유리 언니가 약간은 불편한 기색으로 말했다.
“지금이 몇 신데 황녀님 방을 찾아왔죠?”
“11시 2분.”
“몰라서 물어본 게 아니잖아요.”
“그러는 너는?”
“저는 시녀잖아요.”
“그럼 나도 시녀 할래.”
“……편견이 없는 거예요, 억지를 부리는 거예요?”
유리 언니는 언성을 높이지 않고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
여전히 낮의 일을 신경 쓰고 있는 모양이었다.
“도대체 꼴은 왜 그래요?”
나도 몸을 일으켜서 나르모르 오빠를 바라보았다.
나르모르 오빠에게서 다른 사람이 겹쳐 보였다.
늘 꾀죄죄한 얼굴로 돌아다니는 우리 넷째 오빠 미하엘의 모습이 보였다.
“나르모르 오빠. 행색이 왜 그래?”
“그게…….”
나르모르는 내게 쭈뼛쭈뼛 다가왔다.
손을 뒤로해서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는데, 한참 동안이나 어물쩍거렸다.
“그게…… 그러니까…….”
나르모르가 내게 뭔가를 내밀었다.
그건 엉성하게 만든 화관이었다.
“저번에 보니까 화관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 선물로 가져왔습니다.”
나는 벌꿀이와 함께 꽃밭에 가서 화관을 만드는 걸 좋아했다.
벌꿀이 머리 위에 화관을 씌워주면 그게 그렇게 귀여울 수 없었다.
벌꿀이가 화관을 만드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것도 내 취미 중 하나였다.
그걸 언젠가 한 번 본 모양이었다.
“제가 욕심이 너무 앞서다 보니 그만…….”
화관은 무척 엉성하고 조잡했지만 그래도 저 마음은 알 것 같았다.
“귀차니즘쟁이가 귀차니즘을 이겨내는 성장통 정도로 생각할게.”
“…….”
“그러니까 두 사람 다 마음 편히 먹고 잘 자요. 나는 두 사람을 다 용서했는걸.”
“그럼 저 안 미워하는 겁니까?”
“오빠의 마음을 다 아는데, 어떻게 미워할 수 있겠어?”
슬쩍 보니 유리도 놀란 듯, 몸을 움찔한다.
유리도 내게 미움받을 것이 두려웠던 모양이었다.
“오빠도, 언니도, 하나도 안 미워. 두 사람은 내 소중한 친구들이야.”
나는 오늘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황녀가 내뱉는 말 한마디, 한 마디의 힘이 어떤지를.
‘내 말 하나하나가 진짜 무거운 무게를 지녔구나.’
그러니까 말을 할 때 조금 더 조심하고 조금 더 생각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하는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을 테니까.
이윽고 나르모르가 자기 방으로 돌아갔고, 유리가 문을 닫으면서 작게 말했다.
“미워하지 않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 말이 뭔가 가슴 아팠다.
미워하지 않는 게 고맙다니.
‘겨우 저런 걸로 고마워하지 않게 해야겠어.’
미워하지 않아서 고마운 게 아니라, 좋아해 줘서 고맙다는 마음이 들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부터는 조금 더 잘해 줘야지.’
그리고 두 달이 흘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