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66)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66화
비아톤 선생님은 따뜻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한쪽 무릎을 꿇고 나와 눈을 마주친 채 말했다.
“조금 옳지 않아도 괜찮아요. 황녀님은 이제 겨우 일곱 살인걸요.”
너무나 단단한 확신이 깃든 표정과 말투였다. 덕분에 나는 조금 안심하고 말았다.
비아톤 경은 늘 기묘한 안정감을 주는 사람이었다.
“아직 많은 걸 배워가는 나이니까 자책할 필요 없어요.”
“……정말요?”
“방금, 조금 옳지 못했던 건 사실이에요.”
비아톤 경은 조곤조곤, 내 ‘옳지 못함’을 지적해 주었다. 그렇지만 그 어디에도 나 자신을 탓하거나 질책하는 모양새는 찾아볼 수 없었다.
“죄송해요.”
“조금 옳지 못했어도, 방금 제 세상은 기적으로 가득 차 있었어요.”
“……네?”
억, 내 항마력.
비아톤 선생님의 말 덕분에 나는 오히려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었다.
“황녀님이 즐거워하는 것이, 제게는 기적이니까요.”
“……그,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현대를 살다 온 내게 있어서 저런 표현들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비아톤 경의 진심만큼은 온전히 전해졌다.
표현이 세련되지 못할 뿐, 그 마음까지 세련되지 못한 건 아니었다.
“자장가 불러드릴까요?”
“좋아요.”
비아톤 경은 이불을 덮어주고서, 청아하고 보드라운 목소리로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잠이 솔솔 왔다.
나는 거의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제가 일곱 살이라서 다행이에요.”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내가 방금 무슨 말을 한 것 같기는 한데, 꿈에서 중얼거린 거 같기도 하고.
잠결에, 비아톤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곱 살이…….”
응? 비아톤 경이 뭐라고 한 것 같은데…….
“……요.”
그렇지만 내 육체는 잠을 이기지 못했다.
방금, 분명 뭐라고 했는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눈을 떠보니 아침이었다.
* * *
비아톤은 이사벨의 이불을 덮어준 뒤 한참 동안이나 이사벨의 옆을 지켜주었다.
이사벨의 잠꼬대가 들려왔다.
“제가 일곱 살이라서 다행이에요.”
비아톤은 빙그레 웃었다.
“정말이지. 속이 깊어도 너무 깊으시다니까.”
혼잣말은 하고 싶고, 혼잣말 때문에 이사벨이 깨는 건 싫어서, 마력을 움직였다.
이사벨의 귀를 살짝 덮어서 자신의 혼잣말이 전해지지 않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렇게까지 미안함을 가지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에요.”
조금 기뻐할 수도 있지. 그 즐거움에 취해서 피해 입은 사람들을 잠깐 잊을 수도 있지.
황녀님은 이제 겨우 일곱 살인데, 그런 모든 것을 일일이 고려하여 감정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온전히 기쁨으로 가득 채워도 겨우 14년 남았으니까.
그런데 이사벨이 또 잠꼬대했다.
“……해으요.”
비아톤은 이사벨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적잖이 충격받고 말았다.
‘슬픈 꿈을 꾸시나?’
이사벨의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귀를 기울여보았다.
목소리가 너무 작고 발음이 부정확해서, 비아톤은 마법을 활용하여 목소리를 증폭시키고 발음을 교정해서 해석했다.
이사벨의 말이 들려왔다.
“미움받고 싶지 않아요.”
비아톤은 목석처럼 굳은 채 이사벨을 바라보았다.
이사벨은 분명 ‘미움받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다.
“저는 그냥 아픈 것뿐이에요.”
비아톤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렇다.
이사벨은 그저 조금 아파서 남들보다 빨리 죽을 뿐이다.
“잘못했어요.”
이사벨은 타고난 마나 감응 능력을 가진 천재였다.
이사벨의 감정에 동화된 마나가 널뛰었다.
비아톤은 뛰어난 마검사였고, 그 마나를 통해 지금 이사벨이 얼마나 큰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지 직시할 수 있었다.
“무엇이 그리 두려우십니까?”
저 일곱 살의 작은 몸으로. 도대체 무슨 경험을 했고, 무슨 상상을 하고 있기에.
어떻게 저렇게 깊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단 말인가…….
“뭐가, 황녀님을 그렇게 두렵게 합니까?”
이사벨의 무의식은 늘 전생을 떠올렸다.
전생에서 그녀는 많은 후원과 응원을 받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많은 미움과 욕을 감당해야 했었다.
-쟤는 그냥 감정팔이지.
-진짜 아픈 거 증명 해봐라 ㅋㅋㅋ 저거 다 개쑈임.
-그렇게 아픈데 공부는 어떻게 함? 결국 후원받으려고 쇼하는 거 아님? 더럽다, 우웩.
그녀의 기사에는 수많은 선플이 달렸고, 그에 따라 상당수의 악플도 따라왔다.
선플에 비하면 악플의 숫자는 꽤 적은 편이었건만, 그녀의 뇌리에 강하게 박힌 것은 대부분 악플이었다.
때문에 어린 시절 그녀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펑펑 울곤 했었다.
‘무서워요. 너무 무서워요, 선생님.’
극도의 공포감에 사로잡혔을 때에는 의사 선생님의 말도 들리지 않았다.
진정제를 투여받아야 겨우 잠들 수 있을 정도였다.
대중매체와 미디어는 곧 수많은 눈이었고, 그것은 어린 시절의 그녀가 감당하기에는 지나치게 버거운 감시였다.
“누가 절 쫓아오고 있어요. 무서운 괴물들이 절 다 지켜보고 있어요.”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러한 불안증세는 많이 호전되었지만, 그녀의 가슴 속 깊은 곳에 여전히 남아 그녀의 자아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비아톤은 포근한 성질의 마나를 끌어올려 이사벨의 방 전체를 덮어주었다.
그것은 현대의 진정제와 비슷한 효과를 일으켰다.
“황녀님. 괜찮아요. 아무도 안 쫓아와요.”
심히 날뛰는 마나를 통하여, 비아톤은 이사벨의 심리상태를 꿰뚫어 보았다.
이사벨의 마음은 요동치는 파도로 가득했다.
“무서운 괴물들도 없어요.”
비아톤은 커다란 손으로 이사벨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주었다.
그는 아빠가 될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든든한 아빠의 손길이 되어주고 싶었다.
“혹여 있더라도, 제가 무찔러줄게요.”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이사벨은 점차 평온을 되찾았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비아톤은 그날 새벽 내내 이사벨 옆을 지켰다.
비아톤의 눈빛은 그 어느 날보다 깊었다.
‘그저 햇살처럼 밝은 아이가 아니야.’
여지껏 이사벨을 오해했다.
그저 마음이 깊고, 지나치게 착한 황녀라고만 생각했다.
저 마음속 아주 깊은 곳에는, 상상할 수조차 없을 만큼 커다란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 그게 당연하지. 그게 너무 당연하지.’
어른인 자신도 죽음을 떠올리면 두렵다. 하물며 일곱 살의 이 어린아이는, 얼마나 두려울 것이란 말인가.
‘행복해요’, ‘선물이에요’, 그 모든 말은 사실, ‘무서워요’, ‘나 좀 지켜주세요’, 그 말의 다른 표현이었다. 그랬던 것이었다.
이사벨의 전생을 알 리 없는 비아톤은 그렇게 단정 지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방법을 찾아야 해.’
인류가 정복하지 못한 저주.
‘나르비달의 낙인’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 * *
7왕 중 한 명 라헬라는 인상을 찡그렸다.
“뭐? 황녀가?”
[시한부 악녀가 죽고 나면> 세계관 속에서 황제와 왕은 거의 동격에 가까웠다.전략적 제휴를 맺은 파트너에 가깝다는 설정이었다.
본래는 그랬는데, 현 황제인 론과 세르나가 이끄는 빌로티안이 너무나 강대하여 지금은 상‧하의 서열 관계가 굳어진 상태.
어쨌든 황제와 왕이 협력자 관계였고, 서열상 왕이 황녀보다 더 높았다.
“아니, 그 꼬맹이가 왜? 겨우 일곱 살짜리가 뭘 하겠다고?”
“그렇지만 빌로티안의 육체를 타고나서, 성인 장정 몇의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 지가 도대체 뭘 한대? 걔가 자원봉사 오면 걔 호위해야 하고, 편의 신경 써줘야 하고, 얼마나 많은 인원이 동원되어야 하는지 몰라서 그래?”
“그래서 신분을 감춘 채 자원봉사를 진행하고 싶다고 합니다. 일반적인 자원봉사자들과 똑같은 대우를 바란다고 합니다.”
“아이, 그게 말이 쉽지, 걔 엄마 아빠가 황후랑 황제잖아.”
그렇지만 황녀가 자원봉사 오겠다는 것을 굳이 막을 명분도 없었기에 결국 라헬라는 황녀의 자원봉사를 허락했다.
며칠 뒤, 황녀가 라헬라가 다스리는 ‘알페아’ 왕국의 왕궁에 도착했다.
“금방 왔구나.”
“네, 테이사벨 이동 관문을 사용했어요.”
라헬라는 이사벨과 약간의 대화를 나누었다.
몇 마디의 대화만으로 알 수 있었다.
‘구김살이 없고 밝고 따뜻한 아이다’ ……라고 모두가 생각할 것이 분명했다.
‘하나, 이 아이 역시 빌로티안 황가의 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지.’
아마도 저 모습은 철저히 연출된 모습일 확률이 높았다.
더군다나 저 아이는 최연소 올림피아드 수석을 차지한 영재였고, 테이사벨 이동 관문을 만들어 낸 천재였다.
‘그러므로 저 아이의 맑음은 가면일 거야.’
자원봉사에 참여하겠다는 것 역시 철저히 정치적인 계산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겨우 7살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해.’
성인을 대할 때와 똑같이 대해야 했다. 라헬라는 그렇게 판단했다.
저쪽에서 정치적인 전략을 다 짜서 여기로 왔으니, 이쪽도 그에 걸맞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얻어야 했다.
그녀가 넌지시 물었다.
“이사벨. 그런데 지난 왕합회의가 있었던 첫째 날을 기억하니?”
“네. 그럼요.”
“왕합회의가 평소와 달리 굉장히 빨리 끝났다는 것도 알고 있겠구나.”
그때, 황후 세르나가 왕들에게 화두를 던졌었다.
그때의 미스터리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상태.
“그날, 0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 수 있겠어?”
“……네?”
라헬라는 황녀를 통해 황제와 황후의 진의를 파악하고 싶었다.
‘곧 있을 자정은 폐하께서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거든요. 그리고 제일 피곤해하고 싶어 하는 날이죠.’
애초에 말도 안 되는 말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진의를 숨긴 암호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강철 같은 육체를 지닌 황제 폐하께서, 절대로 지칠 리 없는 육체를 지닌 분이, 제일 피곤해하고 싶어 하는 날이라는 게 무엇을 의미하지?”
이사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로 아바마마가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