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68)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68화
일차적으로 내가 배치된 곳은 자원봉사자들을 위하여 간단한 식사를 준비하는 곳이었다.
주방이라고 보기에는 좀 애매했고, 뭐랄까, 커다란 막사 같은 그런 곳이었다.
그곳엔 꽤 많은 사람이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커다란 솥에 무언가를 넣고 팔팔 끓이고 있었는데 열기가 대단했다.
다들 너무 바빠서 나를 신경 써주지 못했다.
‘음…… 나는 꿔보 같은 느낌이네.’
나는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많이 더우시죠?”
나는 시베룬 마석을 꺼냈다.
“저는 여러분을 시원하게 해드릴 수 있어요.”
여기서 내가 일손을 하나 더 돕는다고 해서 아주 유의미한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대신 다른 사람들의 능률을 많이 높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찬 바람이 송송 나와요.”
시베룬 마석은 뜨거운 기운을 흡수해서 차가운 성질로 변환시켜 내놓는다.
벌꿀이가 무척 좋아하는 것이었고, 인버터 시스템을 적용하여 마력 소모가 무척 적었다.
‘이 정도 규모면 내가 감당할 수 있어.’
내가 가지고 있는 마나의 양이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막사를 시원하게 만드는 것 정도는 유지할 수 있었다.
사실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여유가 많았다.
밥 잘 먹고, 잠만 잘 재워주면 평생 안 쉬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작업반장 헥토르 아저씨가 내게 다가왔다.
“설마 진짜 마법사였습니까?”
“그럼요. 저는 마법을 익혔어요. 그리 대단하지는 않지만요.”
“대단하지 않다고요?”
“네. 별로 대단한 건 아니에요.”
나는 진심으로 내가 별로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가지고 있는 수학적 지식들은 현대사회에서 온 것이고, 그것들은 수많은 천재가 만들어 준 것이었으니까.
나는 그냥 그걸 배웠을 뿐이었다.
“이게 대단하지 않은 거군요.”
“네에. 선생님들은 저보다 훨씬 대단해요.”
수학적 지식은 현대에서 빌려왔을 뿐이고, 마법의 이해도나 활용 같은 건 비아톤 경이나 카린이 훨씬 더 뛰어났다.
두 사람에 비하면 내 마법 컨트롤 능력은 조악한 수준이었다.
나는 내 분수를 잘 아는 편이었다.
“제가 보기에는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대단해 보입니다만…….”
그건 이 세상에 에어컨이 없어서 그렇죠. 사실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에요.
“아무튼, 흠흠, 제가 몰라뵈었군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다른 곳을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나는 문득 기분이 좋아졌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단 말이야? 거기가 어디죠?
제가 무엇을 하면 되죠?
제가 많이 필요한가 보죠?
나는 주책을 부리고 싶은 마음을 고이 숨겨두고서 최대한 침착하게 물었다.
“다른 곳이오오옹?”
“네, 그렇습니다.”
후, 제가 필요하단 말이지요.
나는 기쁜 마음을 억누르며 기품있게 말했다.
“제가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요.”
“안내하겠습니다.”
“아, 근데 잠시만요.”
내가 없으면 이 시베룬 마석들의 냉풍이 꺼질 거다.
이렇게 더운 곳에서 고생하는 자원봉사자분들을 위해 작은 선물을 주기로 했다.
아공간을 열어 내 얼굴만 한 마정석 하나를 꺼냈다.
“……뭘 하고 계시는지요?”
“아, 이건 마력 저장석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배터리였다.
나는 배터리에 대한 공학적 지식은 별로 없었지만 이 세계에는 ‘마력’을 보관하는 마정석이 이미 개발되어 상용화되어 있었다.
현대사회의 배터리보다 훨씬 효용성이 뛰어났다.
“여기에 제 마력을 충전해서.”
나는 눈을 감았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마력을 끌어내어 마력 저장석에 저장했다.
이 배터리의 아주 큰 장점은 충전이 매우 빠르다는 것이었다.
내가 마력을 뿜어내는 족족 그 마력을 흡수해 완전히 충전하는 데 10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됐다. 이거면 오늘 하루 정도는 충분히 가동이 될 거예요. 자원봉사자 여러분, 더운 날씨에 고생 너무너무 많으시네요. 모두 힘내세요!”
* * *
편의상 ‘주방’이라 부르는 막사에서 일하던 자원봉사자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진짜 마법사라고?”
“마법사가 자원봉사를 왔단 말이야?”
마법사들은 특권층이다.
그들은 이런 허드렛일을 하지 않을뿐더러,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마법을 남발하지는 않는다.
“저런 귀한 것들을 그냥 두고 갔다고? 우리를 위해서?”
마법사들은 비밀스러운 존재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마법적 지식과 산물이 외부에 퍼지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누군가 그들의 산물을 훔치거나 베낄 수 있으니 조심하는 것이 맞다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다.
왜냐하면 이 시대의 마법은 곧 전쟁수단이었고, 그 전쟁수단은 비밀리에 감춰져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법 연방에서 파견 나온 마법사인가?”
“아냐, 마탑일 거야.”
사람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했다.
“그런데 나이가 무척 어려 보이던데…….”
“마법으로 나이를 속였을 거야. 마법은 익히기가 무척 까다로운 학문이고, 이런 마법을 자연스레 구사하려면 40살 이상은 되어야 할걸?”
그런데 커다란 주걱을 젓던 누군가가 말했다.
“아뇨. 저분은 제국 출신 마법사입니다. 아주 아름답고 훌륭한 인성을 가진 분이죠.”
연녹색 눈동자를 가진 한 미남자였다.
자원봉사자들은 화들짝 놀랐다.
“어,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요?”
“네? 저 여기서 계속 국자 젓고 있었는데요.”
“그, 그래요? 처, 처음 보는 얼굴이라.”
“제가 존재감이 좀 없어요.”
자원봉사자들 몇몇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와 얼굴을 훔쳐봤다.
“누군가와 닮았는데…….”
분명 누군가와 닮아 있었다.
“아, 저 비아톤 경 닮았다는 말 많이 들어요.”
“아! 그래! 비아톤 경! 비아톤 경과 무척 닮았잖아? 어떻게 이렇게 닮았어요?”
“저한테는 영광이죠. 하하!”
너스레를 떠는 그 미남자의 이름은 비아톤. 사실 비아톤 본인이었다.
비아톤의 뺨에는 원래 없던 점이 나 있었다.
마법으로 만든 점이었다.
“근데 그거 아세요? 저기에 테이사벨 이동 관문의 원리가 적용되어 있어요.”
“테이사벨 이동 관문이요?”
“저도 정확히는 모르는데 인버터 시스템이라는 게 들어가 있어요.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시원하게 일을 할 수 있고요. 그리고 인버터 시스템은 이사벨 황녀님께서 만드신 아주 훌륭하고도 뛰어나고도 아름답고도 사랑스러운 기술이랍니다.”
“……예?”
뭔가 ‘기술’을 설명하는 수식어들치고는 지나치게 거창했다.
“응?”
“엥? 뭐야? 어디 갔어?”
그 말을 끝으로 방금까지 국자를 젓던 미남자는 사라져 있었다.
* * *
나는 약간의 문화충격을 받아야만 했다.
‘진짜 문명의 빈부격차가 장난 아니구나.’
지진피해 복구를 위해 많은 사람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는데,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커다란 도르래였다.
중세시대에서나 쓸 법한 그런 거였다.
‘기중기도 없이 사람 손으로 도르래를 당기네. 이 시대의 기술이라면 크레인 같은 것들도 충분히 만들 수 있는데 말이야.’
“영차! 영차!”
커다란 돌을 끌어 올리는 것이 보였다.
십여 명의 사람이 줄을 열심히 당기고 있었다.
작업반장 헥토르 아저씨는 내게 조심스레 말했다.
“아무래도 저걸 당기는 게 무척 힘이 드는 일입니다.”
“그래 보여요.”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나는 잠시 고민했다.
“저게 가볍게 돌아가도록 손봐주면 될 것 같아요.”
“오오, 그게 가능합니까?”
“그럼요.”
이 시대의 마법이 얼마나 발전했는데요. 아니,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이상하네…….
‘전쟁은 최신식 전투기로 치르면서, 밭일은 아직도 달랑 호미 하나 들고 하는 꼴이잖아?’
나는 커다란 도르래 앞에 섰다.
‘음.’
늘 그렇듯, 마법은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구현하는 것이 중요했다.
나는 아주 손쉽게 이미지를 떠올렸다.
‘전기 자전거 생각하면 쉽지 뭐.’
모터가 도와준다고 생각하면 편했다.
헥토르 아저씨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혹시 여쭈어도 될까요?”
“네?”
아저씨는 혼자서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니, 제가 뭐 다른 의도가 있는 건 아닙니다. 기술을 빼돌리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그저 저는 마도 공학에 관심이 굉장히 많아서, 그냥 그래서 순수하게…….”
아저씨는 괜스레 엄청 미안해했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나 이런 거 말하는 거 좋아해.
“그럼요. 다 말씀드릴게요.”
후후, 제가 또 도움이 되겠죠? 제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처럼 보이나 보죠?
“제국의 이사벨 황녀님과 테이슬론 경께서 테이사벨 이동 관문을 만들면서 그와 관련한 원리들을 다 발표하셨잖아요. 혹시 아세요?”
“예, 저도 다 읽어보았습니다. 흥미롭더군요.”
“우와, 평소에 마도 공학적 지식에 관심이 많으신가요?”
“예. 관심이 무척 많습니다.”
헥토르 아저씨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저걸 보니 괜스레 내 마음이 콩닥콩닥 뛰었다.
여기서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만나다니!
행운이었다.
“마력이 흐르는 마력 도체 주변에는 마력 자기장이 유도되는 건 알고 계시죠?”
“……예.”
“그래서 외부 마력 자기장을 가하면, 그 힘과 유도된 마력 자기장이 상호작용을 일으켜 힘이 발생해요.”
“……예. 테이사벨 이동 관문에 원리가 언급되어 있는 걸 본 것 같군요.”
“그 원리를 이용해서 마력을 회전운동으로 변환시킬 거예요.”
헥토르 아저씨는 아저씨 말대로 마도 공학에 큰 관심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내 말을 굉장히 경청해 주었고, 나는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내 말을 다 듣고 난 아저씨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론으로는 대충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정말 된단 말입니까? 공학적 지식과 마법의 실제 구현은 분명 다른 영역입니다만…….”
무척 즐거워진 나는 방긋 웃었다.
“직접 보여드릴게요! 근데 저도 직접 하는 거는 처음이라서 실수할 수도 있어요. 비웃으시면 안 돼요.”
목소리를 조금 낮추고 속삭였다.
“혹시 실패하면 비밀로 해주는 거예요. 알겠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