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7)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7화
죽일까?
루루카는 환청을 들었다.
비아톤쯤 되는 검술가의 기운은 일반인들로 하여금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심하면 혼절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비아톤의 눈에 희번득한 광기가 깃들었다.
“비아톤 경은 엄텅 나뿌다.”
광기가 사라졌다.
“비아톤 경은 비겁해여.”
그 말에 비아톤은 찔끔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이사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야야깡 시르다.”
“강약약강이요?”
발음이 영 별로였지만 비아톤은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심지어 ‘강약약강’은 이 세계에 존재하지도 않는 말이었다.
“황녀님, 오해입니다, 저는 강한 자에게 강하고, 약한 자에게 약하답니다.”
“그럼 나한테 무러바야지. 왜 유모한테 화내지?”
비아톤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잘못했습니다, 황녀님.”
“나한테눈 잘못 안 해써여.”
그 말에 비아톤은 루루카에게 다가가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아무리 편견 없는 사람이라지만, 황제의 부관쯤 되는 사람에게는 사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미안합니다. 결례를 저질렀군요.”
“그, 그, 그게……!”
유모는 크게 당황했다.
이사벨은 당황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잘못한 사람이 사과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그게 당연하니까.
“이제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시뎌.”
“왜, 왜 용서 안 해주십니까?”
“비아톤 경이 사과하면 나눈 용서해야 해여?”
그 말에 비아톤 경은 큰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과장하여 연기하는 감이 없잖아 있기는 했지만, 충격을 받았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정곡을 찌르시는구나.’
저 말이 맞다.
그가 사과했다고 해서, 황녀인 이사벨이 곧바로 그를 용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 이사벨은 황녀로서의, 제국에서 가장 높은 혈통의 격을 분명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진심으로 생각했다.
‘저 찬란한 귀여움에 눈이 멀어 잠시 잊고 있었다. 이분도 빌로티안 황가의 피를 이으셨지.’
얼른 웃었다.
“사죄의 선물로 복숭아 맛 젤리를 드릴까 하는데요.”
“…….”
“저에게는 5개나 있답니다. 용서해 주시면 다 드릴게요.”
비아톤은 젤리의 포장지를 뜯었다.
향긋한 복숭아향이 느껴졌다.
이사벨의 콧구멍이 절로 벌렁거렸다.
“황녀님께서 화를 풀어주신다면 이 복숭아 맛 젤리를 선물하겠어요.”
이사벨은 못 이기는 척, 짧은 손을 뻗었다.
손바닥 위에 두 개가 놓였다.
냠냠.
이사벨은 홀린 듯 젤리를 먹어 치웠다.
“이제 용서해 주시는 겁니까?”
“특별히 용서하는 거예여.”
“감사합니다.”
“담부턴 그러지 마여.”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사태를 제대로 수습하기로 했다.
“나 다 들어써여. 나루비다레 낙인이 있다고여.”
“누가 말해주었을까요?”
이사벨은 사실 살기가 뭔지 몰랐다.
그렇지만 비아톤 경의 눈에 살기가 가득하다는 것쯤은 느낄 수 있었다.
범인을 찾는다면, 나는 널 반드시 죽이겠다, 누가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위험한 냄새가 풀풀 났다.
이사벨은 솔직히 말했다.
“산파 할모니.”
비아톤은 고개를 갸웃했다.
“설마 태어나셨을 때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웅.”
“그때를 기억하시나요?”
“웅. 엄마마마는 울었고여, 황녀가 태어나따고 다들 막 그래써여. 아빠눈 나한테 쓸모 업눈 거시 태어나따고 그래써여.”
태어났을 때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건 사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편견이 없는 편인 비아톤은 쉽게 납득했다.
“저런, 정말 슬프셨겠어요.”
“으음…….”
사실 빙의 직후라서 별로 안 슬펐다. 오히려 빙의한 것에 기뻐하던 중이었다.
아빠의 말도 그냥 너무 클리셰스러워서 그런가 보다 했었고.
그래서 그냥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갠찬았어여.”
사실 그리 상처 받지 않았던 이사벨이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비아톤이 보기에는 손을 잡아달라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는 아기사슴 같았다.
곧바로 그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
따뜻한 체온이라도 전해 주고 싶어서.
“머해여?”
“예?”
이사벨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젤리를 다섯 개 가지고 있다고 했다.
두 개는 이사벨이 먹었고, 하나는 유모에게 있다.
그럼 아직도 두 개 남은 셈이었다.
분명 다 준다고 했는데, 두 개 남은 젤리 대신 손을 얹는 것으로 때우려는 건 괘씸했다.
“가만 안도!”
딴 건 몰라도 먹을 걸로 장난치는 건 용서할 수 없지.
* * *
‘어디 보자, 이 시간이면 폐하께서 검술을 수련하고 계실 때겠지.’
비아톤은 대연무장을 찾았다.
“폐하. 황녀는 이미 죽음을 이해하고 있더군요.”
“세 살짜리가 죽음을 이해하고 있다고?”
“네. 분명히요.”
“그런 것치고는 너무 태평하던데.”
“담담한 거죠.”
“…….”
론은 이사벨의 모습들을 떠올려 보았다.
이사벨은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보였다.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뿐만 아니라 태어나서 들은 모든 말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그러게요. 가능한 일이네요.”
비아톤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때 쓸모없는 것이 태어났다고 하셨어요?”
“…….”
“진짜 그랬어요?”
“그렇다면?”
“왜 그러셨어요?”
“이사벨은 뭐라고 했지?”
“괜찮았다고 합니다.”
“괜찮았다? 모든 말을 이해했는데?”
“그 말을 전하는 그 모습이 지나치게 담담하여, 가슴이 미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론의 오른손에는 검이 한 자루 들려 있었다.
그 검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 아이는 빌로티안의 검술을 익힐 수 없다.”
“그렇다고 쓸모없는 건 아니죠. 도대체 왜 말을 그렇게 하셨담.”
“마치 나를 추궁하러 온 모양새로군.”
“추궁이 아니고요, 그냥 전해 드리려고 온 겁니다.”
론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검을 들어라. 간만에 대련이다.”
“며칠 전에도 야밤에 급습하셨잖아요!”
비아톤이 뒷걸음질 쳤다.
“검술가가 어찌하여 뒷걸음질을 치는 것인가?”
“검술가 아니고 선생인데요. 저 은퇴했는데요!”
“걸음을 멈추어라.”
“멈추면 찌를 거면서!”
비아톤은 아예 몸을 돌리고 도망쳤다.
론으로부터 쏘아진 맹렬한 검기가 허공을 갈랐다.
“으아악!”
비아톤은 사력을 다해 연무장에서 벗어났다.
도망치는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서려 있었다.
‘속상하시죠?’
비아톤이 본 론의 얼굴은 분명 후회하는 얼굴이었다.
론의 표정이 풍부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게 기쁜 한편, 약간은 속이 후련하기도 했다.
‘후회 많이 하십시오. 그게 벌입니다.’
어떻게 막 태어난 아기에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괜찮다고 덤덤하게 말하는 이사벨의 얼굴이 자꾸만 아른거렸다.
‘그게 어떻게 괜찮을 수 있겠어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정말로 가슴이 아렸다.
오늘은 잠을 못 잘 것 같았다.
* * *
이사벨의 스승이 된 비아톤은 매일 이사벨의 방을 찾았다.
“비아톤 경. 보여줄 게 이떠요.”
이사벨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았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하는 편이었다.
검술을 익힐 수 없어도 할 수 있는 것은 많았다.
책상 서랍에 숨겨두었던 것을 꺼냈다.
비아톤의 눈이 조금 커졌다.
“뛰어난 그림이군요.”
“구래여?”
“누가 선물해 주신 것입니까?”
이사벨이 방긋방긋 웃었다.
“마쳐 보세여.”
“으음.”
비아톤은 손가락으로 턱을 매만졌다.
“설마 황녀님이 그린 건 아닐 테고요.”
아기의 육체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잘난 척을 하고 말았다.
오른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내가 그려떠여.”
“세상에.”
“잘 그려떠여?”
“마치 세기의 예술가 미켈리안의 영혼이 황녀님의 몸에 갇힌 것만 같군요.”
사실 아주 뛰어난 그림이라 보기에는 애매했다.
론을 그렸다는 것은 알겠으나, 그 그림은 초상화보다는 추상화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영혼이 몸에 가쳐여?”
“농담입니다. 그런 해괴한 일이 벌어지면 신성기사단이 성검을 들고 토벌에 나서겠죠.”
“켁, 켁!”
이사벨은 기침을 하고 말았다.
“시, 신송기사당? 왜? 미켈리안이 잘못해떠여?”
“다른 육체를 차지한 영혼이라면, 반드시 악귀일 테니까요. 그런 걸 빙의라고 한답니다.”
“비, 빙이?”
“네. 신성기사단의 척살 대상이지요.”
“비, 빙이는 나뿌구나.”
이사벨은 필사적으로 웃었다.
빙의가 척살 대상이란다.
입가에 경련이 일었다.
“무, 무셔워.”
“걱정 마세요. 신성기사단의 기사님들이 있으니까요. 남의 몸을 차지한 못된 악귀가 나타나면 바로 처단해 버린답니다.”
“헤, 헤헤, 채, 채고! 머, 머시써!”
“제 친구 중에도 있는데. 나중에 소개시켜 드릴게요.”
“그, 그런 분은 바뿌대.”
“안 바쁘대요.”
“바뿌대, 엄텅. 바뿐 사람 개롭히면 앙 대.”
비아톤은 약간 감탄했다.
‘이걸 배려하신다고?’
세 살짜리 아이가 어찌 이런 배려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조숙한 구석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조숙했다.
“아뇨.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황녀님. 그 녀석은 제1 신성 기사의 단장이거든요. 직책이 엄청 높은 친구라 시간 내기 편할 거예요.”
이사벨은 약간 울고 싶어졌다.
빙의를 척살하는 신성기사단장이라니…….
꿈에서라도 만나고 싶지 않은 인물이었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그렇지만 너무 거부하면 영 이상할 것 같아서 입을 다물고 말았다.
비아톤은 한참이나 그림을 살펴보다가 물었다.
“언제부터 그림을 그리셨나요?”
“어릴 때 보터여.”
어린 시절, 이사벨에게는 화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병실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은 몇 없었고, 그림 그리기도 그중 하나였다.
“흐음. 어릴 때부터요?”
순간, 이사벨은 순간 움찔했고 비아톤의 눈이 가늘어졌다.
‘실수했어.’
어릴 때부터.
세 살짜리 아기가 할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비아톤의 반응이 무척 이상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