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70)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70화
‘벌꿀 냄새?’
푹신푹신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븅븅- 하고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벌꿀이?”
븅븅-
‘벌꿀이’보다는 ‘김벌꿀’을 선호하는 벌꿀이였지만 오늘은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그저 븅븅- 소리를 내며 나를 안아주었다.
신기한 감각이었다.
아주 커다랗고 무섭고 검은 손이 다가오는 것만 같았었는데, 벌꿀이가 그 손을 쫓아내 준 것 같았다.
‘포근해.’
나는 벌꿀이를 와락 끌어안았다.
벌꿀이의 털은 늘 그렇듯 보드랍고 폭신폭신했다.
븅븅-
벌꿀이는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라는 듯 앞발을 들어 내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주었다.
신기하게도 두려운 마음이 많이 없어졌다.
나는 한참 동안이나 벌꿀이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숨을 쉬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풍성한 안정감이 나를 평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신기하다.’
너무너무 신기했다.
몸살 기운은 여전한데도, 이상하게도 아까만큼 무섭지 않았다.
이제는 혼자가 아니었다.
“이제 안 무서워졌어. 고마워, 김벌꿀.”
벌꿀이의 머리 위에 마법 글자가 떠올랐다.
[김벌꿀=용기의 아이콘.] [용기 나눠줌.] [이사벨은 이제 용감해.]나는 가볍게 웃고 말았다.
‘근데 벌꿀이가 이렇게 컸었나?’
아까까지는 못 느꼈는데 나보다 훨씬 큰 것 같았다. 아주아주 커다란 몸처럼 느껴졌었다.
‘아니네?’
정신을 차려보니 그렇지 않았다.
벌꿀이는 원래 모습 그대로의 벌꿀이였다.
몸길이 약 70㎝.
“있잖아, 벌꿀아. 나는 방금 네가 70㎝보다 훨씬 훨씬 더 크게 느껴졌다?”
[김벌꿀 존재감은 거대하지.]벌꿀이가 사람처럼 헤헤 웃었다.
참 신기했다.
“벌꿀이는 보통 벌꿀오소리가 아닌 것이 틀림없어.”
아무리 내가 해석 마법을 걸었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자기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벌꿀오소리는 없을 것이다.
벌꿀오소리 중에서도 천재 벌꿀오소리인 것이 분명했다.
[암! 김벌꿀은 강력해.]“맞아. 김벌꿀은 강력한 벌꿀오소리야.”
나는 벌꿀이를 또 와락 끌어안았다.
아까처럼 커다랗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벌꿀이의 체온은 나를 진정시켜 주었다.
빌로티안의 육체 덕분인지, 벌써 몸살 기운이 많이 사라져 있었다.
“강력한 벌꿀오소리야.”
븅븅?
나는 문득 오늘 벌꿀이가 여기 없었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어쩌면 나는 실체 없는 공포에 사로잡혀 오늘 밤 내내 두려움에 떨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벌꿀이에게 속마음을 속삭였다.
“나는 벌꿀오소리가 너무너무 소중해.”
븅븅!
벌꿀이는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았다.
[동감.] [이사벨 소중.]나는 벌꿀이를 좋아하고, 벌꿀이도 나를 좋아하고.
우리가 어떻게 만나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벌꿀이가 있어서 좋았다.
“벌꿀이는 강력한 벌꿀오소리니까 나랑 약속하나 해줘야 해.”
븅븅?
“이기적이고 못된 부탁인데 들어줄 수 있어?”
븅븅!
아무리 나쁜 부탁이어도 상관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내가 벌꿀이보다 빨리 죽을 거야.”
야생 벌꿀오소리의 평균 수명은 8년이다. 그렇지만 사육되는 벌꿀오소리의 평균 수명은 24년 정도 된다.
내가 이름을 주었으니 벌꿀이는 황가 차원에서 관리받을 수 있을 거고, 그러면 24년을 살 수도 있다는 뜻이다.
‘나는 이제 14년 남았으니까.’
그러니까 벌꿀이가 나보다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오늘처럼 혼자 남겨지는 건 너무 무서웠다.
“벌꿀이가 나보다 오래 살았으면 좋겠어.”
븅븅.
벌꿀이의 털이 축 가라앉았다.
“약속한 거다?”
븅븅.
오늘따라 벌꿀이는 마법 글자를 좀 아꼈다.
“약속해 줘서 고마워. 그동안 내 옆에 꼭 있어 줘야 해. 알겠지?”
븅븅!
나는 벌꿀이를 또 끌어안았다.
발끝까지 따뜻해져서 기분이 참 좋았다.
‘아무리 천재 벌꿀오소리여도, 진짜로 죽음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
벌꿀이는 내 기분에 무척 예민하니까, 그래서 지금 약간 풀이 죽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도 마음은 너무 편하다.’
조금은 이기적인 약속일지라도.
벌꿀이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약속일지라도.
그래도 알 수 없는 포근함이 밀려들었다.
“이제 잘 수 있을 것 같아. 고마워, 와줘서.”
사실 나는 이때 ‘당연한 의구심’을 품었어야 했다.
벌꿀오소리가 어떻게 왕궁에 위치한 내 숙소까지 올 수 있었는지.
그것도 나를 정확하게 찾아서 올 수 있었는지.
그리고 분명 크기가 자그마한 벌꿀이인데, 왜 이불 끝까지 따뜻해져 있었는지 의심했어야 했다.
나는 이때 의식하지 못했지만 침대 끝까지 따뜻해져 있었다.
마치 벌꿀이가 거대해진 것처럼 말이다.
안정감에 심취한 나는 그 너무나 당연한 생각들을 하지 못한 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 *
아룬이 말했다.
“다녀왔습니다, 엄마.”
“많이 늦었구나.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걱정하셨어요?”
“그럼. 네가 하필이면 벌꿀오소리를 택했잖니?”
용들은 다른 생물들의 삶의 경험들을 무의식에 저장한다.
벌꿀오소리로 변하면, 진짜 벌꿀오소리로 살아야 한다.
벌꿀오소리는 겁이 없고 무척 용감해서 위험에 처하는 경우가 많았다.
벌꿀오소리의 모습으로 죽임을 당하면 실제 아룬도 죽는다.
용들은 어지간해서는 죽지 않는데, 개중 가장 높은 확률로 용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바로 ‘벌꿀오소리’로의 변신이었다.
“저는 벌꿀오소리여서 좋은걸요.”
“좋은 기억들이 가득한 것 같구나. 뭐가 그렇게 좋니?”
아룬은 순간, 카델리나의 눈이 스치는 이채를 놓치지 않았다.
‘여기서 티를 내면 엄마는 내 기억을 다 지워버릴 거야.’
벌꿀오소리일 때의 기억이 드문드문 남아 있었다.
사실 이 기억은 없어야 했다. 용으로서의 자아정체성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혹여 기억이 남는다면 보호자가 그 기억을 지워주는 것이 관례였다.
‘약속해 줘서 고마워. 내 옆에 꼭 있어 줘야 해. 알겠지?’
다는 아니지만 조금씩 기억이 났다.
벌꿀오소리 김벌꿀에게는 무척 소중한 사람이 있었다.
내가 없으면 너무 무서워서 이불 속에 숨는 사람. 내가 옆에 꼭 있어 줘야 하는 사람.
그래서 아룬은 기억을 잃고 싶지 않았다.
‘미안해요, 어머니.’
거짓말을 했다.
“기억은 없어요. 그냥 통쾌하고 시원한 기분이 마음속에 가득해요.”
“그래?”
카델리나는 안심한 듯 가볍게 웃었다. 아룬이 잘 성장하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기억의 힘보다 감정의 힘이 더 강해서 그렇단다.”
아룬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요? 기억의 힘보다 감정의 힘이 더 센가요?”
“응. 네가 겪는 모든 것이 감정의 형태로 네 무의식에 저장이 돼. 네가 바른 용으로 클 수 있는 원천이 되어준단다. 아룬은 아주 좋은 경험들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어쩌고 흑염룡 카델리나는 온화하게 웃었다. 그리고 은근슬쩍 말을 이었다.
“그러면 우리 아들이 어떤 것들을 경험했는지 엄마가 좀 볼까?”
“좋아요!”
아룬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머리를 내밀었다.
하지만 아룬은 이미 알고 있었다. 엄마가 여전히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약간의 이상함이라도 눈치채면 곧바로 기억을 건드리리라는 것을.
카델리나의 손이 아룬의 머리 위에 닿았다.
‘아직 어머니의 마법력을 이겨낼 수는 없지만.’
정면으로 싸워서 어머니를 이길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몰래 숨길 수는 있었다.
‘엄마는 나를 적대하지 않으니까.’
카델리나가 진심을 다해 아룬의 기억을 끝까지 해부하려 든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렇지만 카델리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아룬의 경험을 읽어 보려는 것뿐이었다.
아룬은 자신의 기억 중 일부에 용력(龍力)을 덧씌워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두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카델리나가 말했다.
“용으로서는 할 수 없는 다채로운 경험들을 하고 있구나.”
아무 문제가 없는 듯했다.
약간 마음 졸였던 아룬은 활짝 웃었다.
“네. 저도 꼭 커서 어머니처럼 훌륭한 용이 될게요.”
카델리나의 시험(?)을 무사히 통과한 아룬은 자신의 침대에 누웠다.
‘나는 김벌꿀을 기억해야 해. 이사벨을 위해서.’
이사벨 옆에는 김벌꿀이 있어 줘야 했다. 아룬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용으로서의 자아가 흔들리지 않도록 하겠어.’
아룬은 마음을 다잡았다.
김벌꿀로 살아가되, 용으로서의 자아도 확실히 해야 했다.
벌꿀오소리로는 이사벨을 돕는 데 한계가 있었다. 용이어야만 이사벨을 크게 도와줄 수 있을 것이었다.
‘나는 김벌꿀이자 아룬으로, 이사벨의 곁을 지켜줄 거야.’
아룬이 잠에 빠져들었을 무렵, 카델리나는 스르르- 몸을 일으켰다.
“우리 아들이 이제 엄마한테 계략을 쓰잖아?”
아룬 딴에 제법 머리를 굴리고 있는 모양이지만, 사실 이 모든 것은 카델리나 본인도 다 경험했던 것이었다.
카델리나는 아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다.
“피는 못 속이네.”
그녀 또한 어린 시절 딱 저랬으니까.
그녀는 인간으로서의 경험에 너무 심취했었던 용이었고, 그것이 바로 ‘어쩌고 흑염룡’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었다.
그녀의 눈에는 아룬의 행동이 훤히 다 보였다.
“이해는 하는데, 유쾌하지는 않아.”
어쩌고 흑염룡의 눈동자가 파충류의 그것처럼 가늘어져 있었다.
조금 알아봐야 할 것이 있었다.
“이동.”
카델리나가 어딘가로 워프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