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71)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71화
지혜의 용 라비나.
그녀는 거대한 마나가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용들은 서로의 사적인 영역을 존중하기에 이토록 연락도 없이 무턱대고 이동해 오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다른 용이었으면 브레스를 쐈을 거야.”
카델리나가 워프한 곳은 바로 라비나의 둥지였다.
“쏴. 그 정도는 맞아줄게.”
“…….”
“약골의 브레스 맞아봤자 간지럽지.”
“……언제 철들래?”
라비나는 티 테이블에 앉아 손가락을 움직였다.
주전자가 차를 절로 끓였다.
주전자는 마치 날개라도 달린 것처럼 둥실둥실 떠올라 날아와서, 라비나와 카델리나의 찻잔에 차를 따라주었다.
“동생을 좀 반갑게 맞이해 주라, 언니.”
라비나는 에휴- 하고 또 한숨을 쉬었다.
‘어쩌고 흑염룡’ 카델리나와 ‘지혜의 용’ 라비나는 상극이었다.
“또 무슨 대륙 말살 정책 같은 헛소리를 할 거면 내 레어에서 당장 꺼져.”
“그런 거 아냐, 언니.”
“그놈의 언니 소리도 좀 집어치우고!”
“언니 맞잖아. 언니를 언니라고 부르지, 뭐라고 불러?”
“하아…….”
용들은 인간들과 달리 혈연에 연연하지 않는다.
성체가 되면 완전히 독립적인 개체가 되며, 부모라든가, 형제라든가, 자매라든가, 그런 것들은 일절 신경 쓰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러나 카델리나는 조금 달라서 라비나를 꽤 귀찮게 했다.
“그래. 마음대로 해.”
“그러려고 했어.”
“도대체 왜 찾아온 거야?”
“아룬에 대해 상의할 게 좀 있어서.”
‘아룬’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라비나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아룬은 현재 몇 없는 아룡(兒龍)이었고, 아룡은 모든 용이 아끼고 사랑하는 존재니까.
‘하아. 나도 모르게 조카라고 생각하고 말았어.’
본래 용들에게는 조카의 개념도 없다. 원래는 그래야 했다.
이건 다 카델리나 때문이었다.
‘카델리나한테 물들지 말자. 정신 차려.’
라비나는 크흠, 헛기침을 하고서 물었다.
“왜? 사춘기야?”
“용한테도 사춘기가 있어?”
“인간으로서의 경험을 많이 한 용들은 사춘기도 겪지.”
라비나의 눈이 가늘어졌다.
카델리나와 비슷한 용모를 지녔지만, 카델리나보다는 훨씬 온화하고 따스한 인상의 그녀는 한참 동안 카델리나를 바라보았다.
“왜 그런 눈으로 바라보는데?”
“내가 아는 용 중에, 한 200년쯤 사춘기를 겪은 애가 있거든. 인간들은 그걸 ‘15세 병’이라고 하는데, 그 용은 200년 동안 15세 병에 걸려 있더라. 뒤치다꺼리하느라 죽는 줄 알았지 뭐야? 팔자에도 없는 인간 대공으로도 활동해야 했고. 아니, 지금도 활동하고 있지.”
카델리나는 크흠 헛기침을 했다.
“옛날얘기를 왜 아직도 하고 그래? 그리고 말이야 말이지, 언니 그 대공 노릇 꽤 재미있어했잖아? 뭐였지? 북부 대공 로베나였나?”
“너 솔직히 최후 어쩌고 흑염룡이란 이름 아직도 마음에 들지?”
“…….”
“창피한지 모르지?”
“……그게 왜 창피한 건데?”
남들이 다 창피한 거라고 하니까 그런갑다, 생각 중이기는 한데, 사실 마음속으로는 아직 이해가 안 됐다.
그녀는 여전히 최후 종식과 파괴와 투명의 흑염룡이라는 이명이 꽤 마음에 들었다.
“아직도 네가 세상에서 제일 센 줄 알지?”
“……그건 사실인걸?”
“…….”
“나를 막겠다고 고룡 세 분이 나섰는데 오히려 나한테 엄청 얻어 맞았…… 읍!”
라비나는 카델리나의 입을 막아버렸다.
“그거 자랑 아니야, 제발! 어떻게 200년도 아니고 500년 동안 그 병을 앓고 있는지 원. 어디 가서 내 동생이라 하지 마, 부끄러우니까.”
지혜의 용 라비나는 자신의 동생에 대한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카델리나가 여전히 ‘15세 병’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것까지도.
어린 시절 인간으로서의 경험이 너무 진한 탓에, 용으로서의 자아가 약간 흔들린 채 성장했다는 사실도.
‘그래도 약간 철은 들었네.’
사실 이쯤 되면 카델리나가 길길이 화를 내며 불을 뿜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카델리나는 여전히 침착했다.
라비나가 한숨을 내쉬고 물었다.
“그래서? 아룬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어?”
“아룬이 벌꿀오소리의 삶을 기억하고 있어. 그것도 아주 많이. 나는 그 기억을 내버려 뒀고.”
“뭐? 미쳤어?”
라비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서로 상극인 두 용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룬을 그냥 내버려 뒀다고?”
그러다가 용의 정체성이 흔들리면 책임질 거야? 너처럼 되도록 내버려 두겠다고?
그렇게 말하려다가 잠시 참았다.
지혜의 용 라비나는 눈을 감고 오랫동안 생각했다.
“나는 언니가 하라는 대로 할게.”
카델리나는 흉포하지만 순수한 구석이 있는 동생(?)이었다. 그리고 라비나는 카델리나의 그 순수함이 싫지 않았다.
정말 싫었다면 카델리나와 만남을 이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아룬은 어머니인 너를 속이고 싶어 할 정도로 목적의식이 확고해. 일반적인 용들과는 달라.”
대다수의 용은 삶의 목적을 갖지 않는다. 그냥 흘러가면 흘러가는 대로 살아간다.
그들은 그런 존재였다.
“그런 용들은 보통 자아가 무척 단단하거든. 지가 인간인 줄 알고 날뛰던 그 미친 애도 결국 용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는 않았단 말이지.”
“……그럼 그냥 내버려 둬도 된다는 거야?”
“일단은. 그렇지만 내가 좀 살펴봐야겠어.”
“어떻게?”
“직접 만나 봐야지, 김벌꿀과 이사벨을.”
“정말? 언니가 그래 줄래?”
라비나는 후우- 하고 또 한숨을 쉬었다.
“애초에 그걸 부탁하려고 나한테 온 것 같은데.”
“헤헤, 티 났어?”
세상을 공포로 밀어 넣은 어쩌고 흑염룡은 언니 앞에서는 늘 동생이었다.
50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다.
“부탁할게, 언니. 사랑해.”
카델리나는 라비나의 뒤로 돌아가 라비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라비나의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제발! 저리 꺼져!”
“벗어나 보시지.”
라비나는 발버둥 쳤지만, 완력으로 카델리나를 이길 수 없었다.
* * *
지진 피해복구가 한창인 현장.
“저분을 볼 때마다 기분이 참 좋아진단 말이야.”
그곳에는 인간 비타민이라 불리는 한 소녀가 있었다.
10대 초반의 영애였는데, 그 영애는 늘 최선을 다했고 항상 활짝 웃었다.
매일같이 구슬땀을 흘리면서 즐거워하는데, 그것은 작업 현장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몰락 귀족이라지?”
“사정이 딱한데도 어떻게 저렇게 밝을 수가 있담?”
며칠 사이에 이사벨은 꽤 유명인사가 되었다.
정작 이사벨은 그 사실을 잘 몰랐다. 그저 하루하루가 너무 감사하고 즐거웠다.
“오늘도 힘들었다.”
온몸이 쑤셨다.
빌로티안의 육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쓰러져도 몇 번은 쓰러졌을 정도의 작업량이었다.
“헤헤, 근육통이다.”
오늘은 허리랑 팔을 너무 많이 썼다.
이사벨은 기이한 콧노래를 중얼거렸다.
“허리가 욱신욱신, 팔이 잘 안 올라간다네.”
전생에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들이 그녀를 가득 채웠다.
몸을 많이 움직여서 허리가 아프다니. 무거운 걸 많이 들어서 팔이 안 움직인다니.
이렇게 행복한 고통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내 마법도 꽤 도움이 되고!’
기분이 좋아져서 이불 속에 쏙 숨었다.
눈만 살짝 내밀어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그래도 자랑을 해보았다.
“나는 꽤 쓸 만한 사람이래요. 여기저기 도움도 되고 있답니다.”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는 게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일 줄이야.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자리에서 일어서서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오후 9시, 김벌꿀이 창문에 나타날 시간이었다.
‘응?’
9시 1분이 되었는데도 김벌꿀이 나타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나?’
저번에 몸살이 났을 때 이후로 김벌꿀은 매일같이 이사벨의 방을 찾아왔다.
이사벨은 김벌꿀을 꼭 끌어안고 자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김벌꿀이 없으면 굉장히 허전했다.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
9시 30분.
10시 00분.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김벌꿀은 나타나지 않았다.
‘아냐.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벌꿀이는 용감하고 강하니까. 내 옆에 늘 있어 주겠다고 약속도 했는걸. 벌꿀이는 약속을 잘 지켜.’
그러고 보니, 9시에 꼭 오겠다는 약속을 한 적도 없었다. 그러니까 오늘 늦는 것은 잘못이 아니었다.
자정이 되고 새벽을 지나 동이 텄다.
아침 7시가 되자 비아톤이 이사벨의 방문을 두드렸다.
비아톤은 이사벨의 얼굴을 보자마자 이사벨의 상태를 눈치챘다.
“잠을 잘 못 주무셨어요?”
“……네.”
이사벨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 비아톤은 다 알고 있었다.
“김벌꿀이 옆에 없었나 보군요.”
“……네.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겠죠? 저 너무너무 걱정돼요.”
비아톤이 빙그레 웃었다.
“저는 김벌꿀처럼 용맹한 벌꿀오소리를 본 적이 없답니다.”
비아톤은 이사벨이 큰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이사벨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크고 따뜻한 손이 이사벨의 머리를 덮었고, 그의 손에서 새어 나온 따뜻한 마나가 이사벨의 몸을 따뜻하게 덥혀주었다.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만약 오늘 밤에도 찾아오지 않는다면 제가 찾아볼게요.”
“선생님이요?”
“저 지금 휴가 중이라서 놀고 있거든요.”
“네? 선생님 휴가 중이었어요?”
이사벨도 처음 듣는 사실이었다.
이사벨 자신을 보필해 주는 역할로 파견된 건 줄로만 알았다.
“휴가 중인데 왜 여기 계세요?”
“휴가 중이니까 여기 있지요?”
다른 사람에게 이사벨을 맡길 수 없었던 비아톤은 휴가이지만 이사벨을 따라왔다.
“휴양지 같은 곳에 가서 편히 쉬셔야 하잖아요.”
“황녀님이 있는 곳이 휴양지인걸요.”
“마, 말씀은 너무 감사하지만…….”
휴가 중인 비아톤에게 벌꿀오소리를 찾아 달라 부탁하는 건 무척 염치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이사벨을 보며 비아톤은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아이답지 않다니까.’
이사벨은 또 어른들의 사정을 헤아리고 있었다.
비아톤은 이사벨이 너무 빨리 커버린 것 같아 조금 속상했다.
인생을 달리는 속도가 다른 사람보다 훨씬 빠른 것 같은 느낌이어서.
그는 짐짓 쾌활하게 말했다.
“우와, 벌꿀오소리 찾기 놀이 엄청 재미있겠다. 꼭 찾아내야지. 후후.”
그런데 비아톤은 김벌꿀을 찾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누군가가 기절한 김벌꿀의 목덜미를 잡아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창 작업이 한창인 작업 현장.
비아톤은 손에 검을 든 채 한 여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비아톤의 표정은 무척 진지했다.
“그 벌꿀오소리를 내려놓는 것이 좋을 겁니다, 대공.”
북부 대공 로베나.
황제 론과 검으로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마검사이자 비아톤의 스승인 그녀가 10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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