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74)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74화
로베나의 눈에 보인 것은 분명 두려움이었다.
그 크기는 좁쌀만큼 작았다.
그것은 아마도 론이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숨기고, 또 숨기고 있기 때문일 것이었다.
‘그러나 저 작은 점의 깊이가…….’
그렇게 감추고자 하는 마음이었으나 그 깊이는 감히 측량할 수 없을 만큼 깊었다.
인간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저 두려움은, 일반적인 사람의 정신을 붕괴시키고도 남을 수 있을 정도의 감정이었다.
‘론이 두려움을 배웠다?’
로베나는 결국 피식 웃고 말았다.
두려움을 전혀 모를 것 같은 사내에게서 두려움이 느껴지고 있다.
로베나에게는 무척 신기하고 즐거운 일이었다.
“이제야 좀 인간답네요.”
“무슨 뜻이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로베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아무튼 폐하, 저는 지금 기분이 엄청 좋아졌거든요. 그러니까 그 살벌한 검은 좀 내려주시겠어요?”
“…….”
“알았어요. 황녀의 5년을 가져가는 건 취소할게요.”
그제야 론이 기세를 풀고 검을 갈무리했다.
“아니, 진짜 궁금해서 그런데…… 만약 내가 취하하지 않았으면 진짜로 사생결단이라도 내려고 했어요?”
“…….”
침묵은 곧 긍정이었다.
로베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네? 진짜로 그럴 생각이었네요? 흐, 흐하하하핫!”
“왜 웃지?”
“가끔 생각했어요. 폐하가 혹시 용, 혹은 기계인 건 아닐까? 근데 오늘 보니 아니네요.”
론이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크게 흥미로웠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저 두려움의 근원이 사랑이라는 감정에 기인한다는 것이었다.
이사벨을 너무 사랑하니까, 그래서 저렇게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저렇게까지 이사벨을 사랑하면서, 이사벨 앞에서는 별로 티도 못 내고.’
모든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황제 론은 모든 면에 있어서 완벽했고 완숙한 경지를 보여주었으나, 아버지 론은 조금 서툰 것 같았다.
그러니 저 두꺼운 로브를 뒤집어쓰고서 이사벨 주위를 맴돌고 있었겠지.
이사벨 앞에 당당히 나서지도 못하고 그저 이렇게 뒤에서 수작질(?)을 부리고 있는 거겠지.
온통 어설픈 것투성이였다.
또 문득 웃고 말았다.
‘저 대단한 인간조차, 아버지는 처음이라는 건가.’
인간의 경지를 초월한 절대자. 그런 자조차도 아버지는 처음이었고, 아버지로서는 완벽하지 못했다.
“폐하도 못 하는 게 있었네요.”
로베나는 한참 동안 웃다가 이내 말을 이었다.
“그 아이에게서 5년을 빼앗지는 않을게요. 그렇지만 진심은 확인해야겠어요. 폐하도 그 정도는 양보해 줘야 해요.”
로베나와 론은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 * *
이사벨은 벨로티 자작가 출신 마법사로 알려져 있던 상태였다.
그런데 그녀가 사실은 몰락 귀족이 아니라 황녀라는 사실이 대대적으로 알려지고 말았다.
“그럼 정체를 숨긴 마법사가 아니었단 말이야? 나는 마법으로 어린애처럼 변신한 건 줄 알았더니만.”
“그러니까, 진짜로 7살짜리 어린 아이였단 말이지?”
“그래. 빌로티안의 육체를 가지고 있어서 10살 언저리로 보였다나 봐.”
이사벨에 관한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그게 가능하단 말이야?”
“불가능한 일이지.”
일반인들에게 있어서 마법사는 굉장히 신비로운 존재였다.
그들은 번개를 일으키고 성을 부수는 초월적인 존재들.
일반인들의 시선에서 마법사는 그랬다.
그리고 보통 그런 마법사들은 노인이었다.
마법은 굉장히 어려운 학문이고, 그 학문을 익히는 데에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니까.
백성들이 충격에 빠진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렇게 사랑스러운 분이 어떻게 마법사일 수가 있겠어?”
이사벨처럼 사랑스러운 마법사는 동화책의 소재로도 쓰이지 않았다.
마법사는 보통 전략무기로 취급되니까.
이사벨처럼 깜찍한 마법사가 있다는 동화책이 발표되면, 지나치게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손가락질받을 것이 분명했다.
“나도 그게 무척 놀랐지만, 사실인 걸 어쩌겠냐?”
거짓이라고 말하기에는 이사벨의 마법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그 도르래는 진짜로 신기했다고.”
“뿐만이 아냐. 음식을 담당하는 자원봉사자들 사이에서도 황녀님에 대한 칭송이 자자해. 그게 뭐라더라, 에어컨이라고 하던가?”
그리고 많은 사람이 이사벨이 정체를 숨긴 이유에 대해 궁금해했다.
“왜 황녀의 신분을 숨기셨을까?”
그에 관한 수많은 의견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작업반장 헥토르의 의견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자원봉사자들 가운데서 특히 빛나는 것을 바라지 않으셨을 겁니다. 그분의 성격상, 자원봉사자들 모두가 소중하고 귀한 존재라고 생각했을 테니까요. 모두 빛나야 할 장소에서, 자기만 빛나는 것을 원치 않으신 겁니다.”
헥토르를 본 몇몇 사람이 중얼거렸다.
“저, 저 사람 눈이 뭔가 이상해.”
“그, 그러게.”
헥토르의 눈이 희번덕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사이비 종교에 빠진 광신도 같은 모양새였다.
“아마 로베나 대공님이 등장한 게 아니라면, 영영 그 정체를 숨기셨을 겁니다. 우리는 기억했겠죠. 어느 날, 어느 따뜻한 날에,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한 아름다운 마법사가 있었다. 그가 우리 모두를 빛나게 하였다.”
그가 일장 연설을 펼치자 사람들이 슬금슬금 그의 주변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헥토르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그는 이사벨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던 사람이고, 이사벨의 진심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자부했다.
“그분은 끝까지 자신을 숨기려 하였습니다. 스스로 빛나지 않기 위해. 모두를 빛내기 위해.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피해복구를 위해 최선을 다하며 구슬땀을 흘렸던 그분은, 제가 아는 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황족이셨습니다.”
특종 냄새를 맡은 수많은 기자도 몰려들었다.
대륙에서 가장 권위 있는 소식지인 ‘귓속말’의 수석기자 율리도 이곳에 도착했다.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보통 어떤 사람과 관련한 취재를 할 때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아홉 명이 칭찬을 하면, 한 명은 욕을 하게 마련인데…….’
욕까지는 아니어도 누군가 흠을 잡게 마련이다.
이런이런 것은 좋았지만, 그 부분은 별로였다.
그런데 이사벨 황녀와 관련된 얘기 중 부정적인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녀는 경험 많은 기자였고 한 가지를 확실히 포착했다.
‘이곳의 모두가 이사벨 황녀님을 좋아해.’
좋아하는 수준이 아니라 거의 사랑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분은 저희보다 늘 열심이었어요. 다들 기피하는 삽질도 자원해서 열심히 하셨어요. 저희가 10번 삽질하는 동안, 그분은 100번을 하셨고, 우리가 힘들어서 인상을 찌푸리고 있을 때, 그분만큼은 햇살처럼 활짝 웃었어요.”
“좀 웃긴 말인데, 그 밝은 미소가 저희에게 큰 힘이 되었어요.”
“세상에 그렇게 아름답게 웃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졌어요.”
자원봉사자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그렇게 말했다.
‘사진이 좀 필요한데.’
사진기는 무척 고가의 마도 공학 물품이었다.
굉장히 희귀해서 수석기자쯤 되어야만 지급되는 물품이었다.
일반적으로는 사진을 구하기가 굉장히 힘든 일이었는데, 다행히 그녀의 오랜 친구 중 한 명이 재해 현장을 기록하는 기록원이었다.
율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왜 다섯 장 중 한 장은 이사벨 황녀님이야?”
“그, 그게…….”
사진 속 이사벨은 그녀가 아는 이사벨과는 약간 다른 얼굴이었다.
정체를 감췄다더니, 얼굴도 조금 바꾼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바뀐 얼굴의 이사벨도 무척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이사벨 황녀님이 아무리 사랑스러워도 그렇지, 재해 현장을 기록하는 사람들이 왜 재해 현장은 기록 안 하고 이사벨 황녀님만 이렇게 기록한 거야? 이거 문책감이잖아.”
“문책감은 무슨.”
재해 현장 기록원으로 파견된 마이클은 피식 웃었다.
“장소들이 다 다르잖아. 요 사진은 안전모 쓰고 계시고, 저 사진은 도르래를 잡아당기고 계시고, 저 사진은 주방에 있고, 그리고 이 사진은…….”
“……응? 그렇네?”
사진들의 배경이 다 달랐다.
“내가 이사벨 황녀님을 쫓아다니면서 찍은 게 아니라, 황녀님이 어느 현장에나 다 계셨어. 마치 몸이 열 개라도 되는 것처럼. 아마 일반적인 사람이었다면 과로로 쓰러졌을걸?”
“…….”
“그 모든 현장에 계셨던 분이야. 그분이 있는 곳은 정말 반짝반짝 빛나고 생기가 흘러넘쳤어.”
그 어린 소녀도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저렇게 행복하게 봉사를 하는데, 어른인 우리는 더 열심히 해야지.
그런 바람을 불러일으켰다고 했다.
율리는 이사벨의 사진들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경험 많은 수석기자인 그녀는 사진 속 이사벨의 표정과 그녀의 진심을 충분히 읽어낼 수 있었다.
‘저 미소는 꾸며낸 미소가 아냐. 어떻게 저럴 수 있어?’
그녀에게는 14년이 남았다.
대공에게 5년을 주어야 하니, 이제 9년 남았다.
그런데도 이사벨은 햇살 같았다.
“……응? 율리, 너 왜 울어?”
“아냐, 아무것도.”
율리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녀는 곧바로 왕성으로 향했다.
이사벨과 친분이 있었던지라, 쉽게 허가받아 이사벨과 만날 수 있었다.
“율리 기자님. 오랜만이에요!”
“황녀님. 꼭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그런데 그때, 왕성 전체에 위급 경보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비아톤이 노크 없이 방문 안으로 들어왔다.
표정 자체는 여유로워 보였으나, 노크를 하지 않고 들어왔다는 건 지금 이 상황이 마냥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서, 선생님, 무슨 일이에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