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75)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75화
비아톤이 말했다.
“조금 사소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소하지 않다는 거 알아요.”
이사벨이 비아톤을 바라보자 비아톤은 멈칫했다.
이내 짧은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예. 사소하지는 않은 것 같군요.”
“무슨 일인가요?”
“강력한 마물이 나타났습니다.”
“마물이요? 갑자기요? 이곳은…….”
“예. 왕성 근처죠.”
왕성 근처는 이미 개척이 완료된 곳이고, 결계를 통해 마력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조절하고 있는 곳이다.
따라서 강력한 마물이 나타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로베나 대공과 폐하께서 맞부딪치면서…….”
“폐, 폐하라면 아, 아바마마요?”
이사벨은 깜짝 놀랐다.
갑자기 여기서 아버지가 왜 나온단 말인가.
비아톤은 일단 자세한 설명은 생략했다.
“아주 우연히, 진짜 엄청나게 우연히, 너무 우연이어서 이상하리만치 우연히 그렇게 됐습니다. 어쨌든 때문에 강력한 마력 파동이 일었고, 그것이 도화선이 된 것 같네요. 300년쯤 전, 이곳은 본래 외눈박이 거인들의 서식지였거든요.”
“외, 외눈박이 거인이라면…… 1급 마물 아닌가요?”
1급 마물.
최소 왕실 기사단급 이상의 전력이 아니면 상대조차 불가능한 마물을 뜻한다.
“아무래도 이 땅이 가진 본질적인 속성을 건드린 모양입니다. 무려 네 마리가 튀어나왔어요.”
쿵!
갑자기 벽과 천장이 흔들렸다.
“아마 전투가 시작된 것 같네요.”
“이, 이게…….”
외눈박이 거인이 성벽을 칠 때마다 가벼운 지진이 일었다.
이곳은 왕궁 안이고, 외성까지 상당한 거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진동이 여기까지 전달되었다.
“1급 마물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왕실 기사단급의 전력이 파견되어야 하잖아요.”
“예. 그래서 왕실기사단이 급파되었죠.”
“네 마리라면서요!”
동, 서, 남, 북.
네 방향에서 한 마리씩 모습을 드러냈다고 했다.
“동문 쪽은 전혀 걱정이 없습니다. 마침 그쪽에 폐하께서 계시거든요.”
“아바마마요? 설마 혼자 계신 거예요?”
“혼자 계시지만 거기가 제일 안전할 겁니다.”
순간, 이사벨은 여지껏 느껴보지 못한 기이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걱정돼.’
아빠를 잃어버릴 것만 같은 상실감. 아빠가 영영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두려움.
그녀는 처음으로, 가족에 대한 걱정과 염려를 배웠다.
‘무서워 죽겠어.’
이사벨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론은 현재 시점에 세계관 최강자이며, 1급 마물 정도는 혼자서도 뚝딱 요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렇지만 그걸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으로 느끼는 건 달랐다.
쿵! 쿵!
시시각각 전달되는 충격음.
우우웅-!
뼛속까지 울리는 진동.
이것들과 론의 얼굴이 오버랩되었고, 그것은 큰 공포로 다가왔다.
독자였을 때와는 마음이 너무 달랐다.
텍스트로 이 상황을 마주했다면, ‘세계관 최강자한테는 껌이지’라고 생각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지만 독자가 아닌 딸이 되니 마음이 정말 많이 달라졌다.
‘그렇지만 아빠를 믿어야 해.’
이사벨은 마음을 단단히 부여잡고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서쪽은요?”
“왕실기사단이 출정했습니다.”
“남쪽은요?”
“외성 수비대가 집결하여 막아내는 중입니다.”
동, 서, 남, 북의 모든 수비대가 남쪽에 집결하여 외눈박이 거인을 막아내고 있다고 했다.
“외성 수비대의 힘으로는…….”
“네. 처치할 수 없죠. 그래서 시간을 끌고 있는 겁니다. 폐하 혹은 왕실기사단을 기다리면서요. 아마 폐하께서 먼저 가시겠죠.”
다시 말해 왕실기사단 전부를 합친 것보다 론 한 명이 더 강하다는 얘기였다.
비아톤의 말을 들으며 이사벨은 조금 더 안심했다.
론과 함께 전장을 누볐던 전직 검귀가 저렇게 말을 하고 있으니, 아빠에 대한 걱정을 조금 놓아도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북쪽이 비잖아요.”
“예. 북쪽의 성벽이 가장 단단하거든요.”
성벽을 믿고서 일단 급한 대로 나머지 세 군데를 막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다 성벽이 무너지면요?”
“그럼…… 많은 피해가 발생하겠지요. 대피 작업이 이뤄지는 중입니다. 성벽이 버텨주길 바라야 합니다.”
그리 말하는 비아톤의 표정은 제법 담담해 보였다.
이 정도 난리 통은 난리도 아니라는 것처럼.
이사벨은 오늘 또 새로운 것을 배웠다.
‘이곳은…… 한국처럼 안전한 곳이 아니야.’
사실상 황실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게 안전한 곳에 있으니, 이러한 위험을 피부로 느낄 때가 많지 않았다.
‘심지어 여기는 왕국의 수도가 있는 곳이잖아.’
이곳은 이 세계에서 매우 안전한 축에 드는 곳이었다.
그렇다면 외곽에 사는 사람들은? 결계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지역의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지구와는 너무나 다른 환경에서, 위험천만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게 너무 당연한 세상이었다.
“선생님은…….”
“네?”
“선생님은 외눈박이 거인과 싸울 수 있어요?”
“물론 싸울 수 있습니다.”
“이길 수 있어요?”
“간당간당합니다. 저는 폐하와 같은 괴물은 아니라서요. 그래도 지지는 않을 겁니다.”
이사벨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럼…… 사람들을 도와주세요.”
“…….”
비아톤은 잠시 침묵하며 이사벨을 바라보았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비아톤이 입을 열었다.
“저는 황녀님이 이렇게 말할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말하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죠.”
비아톤은 황녀의 곁을 지키고 싶었다.
난리 통을 틈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난리가 심해지면 보통 폭동이 일어난다.
그러한 폭동 속에서 이사벨 같은 어린아이는 늘 피해를 입게 된다.
그게 비아톤이 무수한 재난 상황을 경험하면서 배운 사실이었다.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 황녀님께서 싫어하시겠죠?”
“저는 황족이에요. 커다란 권리를 가지고 있는 자이니, 무거운 책임도 지는 것이 맞잖아요.”
이사벨은 비아톤의 손을 잡았다.
“사실 저 너무 무서워요. 아바마마와 비아톤 경이 다칠까 봐 너무 두려워요.”
비아톤의 손은 따뜻하고 컸다.
이사벨은 그 손을 꽉꽉 붙잡았다.
“그렇지만 무섭고 두려워도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배웠어요.”
“…….”
“비아톤 경은 강하잖아요. 강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주세요.”
저는 저 스스로 지킬 수 있어요.
그 말은 하지 않았다.
비아톤은 무릎을 꿇어 이사벨과 눈을 마주쳤다.
자신의 손을 꼭 붙잡은, 고사리같이 작은 손에 가볍게 키스했다.
“명 받들겠습니다, 황녀님.”
* * *
비아톤은 북쪽이 아닌 남쪽으로 향했다.
외성 수비대와 힘을 합쳐 남쪽의 외눈박이 거인을 처리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비아톤이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이사벨은 황급히 뛰어 복도를 가로질렀다.
“제게 안내자를 붙여주세요.”
“황녀!”
라헬라는 이사벨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사벨이 자기를 북쪽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저도 어엿한 마법사니까요. 그리고, 황족이니까요. 커다란 권리를 가진 만큼, 무거운 책임을 가진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일부러 비아톤을 먼저 보냈다. 비아톤이 옆에 있었으면, 황족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럴 때 숨어서 보호받기만을 바란다면, 그건 너무너무 부끄러운 일이에요.”
“하아…….”
라헬라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사벨이 말하는 것이 모두 맞았으나, 선뜻 내키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허가한다.”
결국 라헬라는 안내자를 붙여주었다.
다행히 북쪽으로 향하는 테이사벨 이동 관문이 활성화되어 있어서 북쪽으로 금방 도달할 수 있었다.
쾅!
거대한 폭발음이 들렸다.
다행히도 거리에는 사람들이 한 명도 없었다.
모두 지하대피소에 대피한 상태.
“저, 저, 저는 이만 돌아가도 될까요?”
“네. 그렇게 하세요. 참, 성벽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어디인지만 알려주고요.”
“저, 저쪽입니다.”
안내해 준 소년은 두려움에 떨면서 다시금 이동 관문에 몸을 맡겼다.
이사벨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제, 나 혼자야.”
“아니죠, 혼자 아닙니다.”
“기, 기자님?”
‘귓속말’의 수석기자 율리가 뒤따라왔다.
“여, 여긴 위험한데 어쩐 일로 오셨어요?”
“제가 아는 누군가가 제가 잊고 있던 많은 것을 다시 깨닫게 해줬거든요. 그래서 저는 와야 했어요. 진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약간의 위험은 무릅써야죠.”
쿵! 쿵!
성난 외눈박이 거인이 성벽을 때리고 있었다. 소리만 들으면 당장에라도 성벽이 무너질 것 같았다.
이사벨은 성벽 쪽을 한 번 바라보고서 주먹을 꽉 쥐었다.
‘힘내자.’
율리는 이사벨의 모습을 영상 기록석에 모두 담았다.
씩씩하게 발걸음을 옮기려고 했는데, 븅븅- 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자 김벌꿀이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하고 있었다.
[이사벨 혼자 X] [절대 X] [늘 같이 있어.]김벌꿀이 이사벨을 따라왔다.
“김벌꿀! 너는 왜 여기 있는 거야?”
여기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데!
그렇게 말하려는데, 김벌꿀이 토다다다! 뛰어와서 이사벨의 종아리에 얼굴을 비볐다.
[용맹 김벌꿀, 출격!]이사벨은 김벌꿀을 혼내려다가 말았다.
‘이게 아마 비아톤 경의 마음이려나.’
비아톤을 반쯤 속이고 이곳으로 왔으니, 나중에 잔소리를 좀 들을 각오는 미리 하기로 했다.
김벌꿀이 김벌꿀 특유의 소리를 내며 이사벨 옆에 앉았다.
븅븅-!
김벌꿀과 함께 있으면 묘하게 안심이 되는 구석이 있어서 겁이 좀 덜 나는 느낌이었다.
“로베나 대공을 문 건 나중에 혼낼 거야. 알겠어?”
이사벨은 계단을 올라 성벽 위로 올라갔다.
‘계단이 무척 높네.’
북쪽의 성벽이 가장 단단하고 높다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등산하는 것 같았다.
쿵! 쿵!
그 와중에도 커다란 충격파와 진동이 전해져 몇 번이나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했다.
이 성벽 바로 건너에 외눈박이 거인이 있다고 생각하니 오금이 저릿했다.
‘너무 무서워.’
그래도 용기를 냈다.
곧 마지막 계단이었다.
마지막 계단을 올라 성벽 위에 올라섰을 때, 그녀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