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78)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78화
로베나 대공은 가슴속에 뭉클뭉클 피어오르는 감정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설마…… 나 지금 쟤 귀엽냐?’
저 조그마한 인간 어린애가 실체는 용인 벌꿀오소리를 지키겠다고 저렇게 용을 쓰고 있다니.
‘아니지, 정신 차려!’
일부러 인상을 썼다.
‘카델리나의 꼴을 봤잖아? 귀여움을 느끼는 순간 망하는 거야.’
어쩌고 흑염룡 카델리나는 인간들이 앓는 ‘15세 병’을 아직도 앓고 있다.
그건 500년 전, 그녀가 한 인간에게 ‘귀여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늘 귀여운 게 제일 무서운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고, 지혜의 용 라비나도 그에 동의하는 바였다.
‘조심하자. 귀여우면 안 돼.’
그렇지만 저 아이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엄청 무서우면서 씩씩하게 서 있는 저 노란 머리 여자애는, 그녀가 봐왔던 그 어떤 생명체보다 더 사랑스러웠다.
‘화제를 돌려야겠다.’
그녀는 굳이 인간세계에 크게 간섭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위험했다.
저 귀여움에 잠식당하면 어쩌고 흑염룡 꼴이 나고 만다.
상황인 만큼, 다른 걸 얘기하기로 했다.
“비아톤. 너도 느꼈지?”
“저놈이 일반적인 외눈박이 거인이 아니라는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나랑 좀 살펴보자.”
“갑자기 의욕적이시네요? 수상하게시리.”
“빨리 따라와. 내가 딴짓하면 빈틈이 생길 거고, 그러면 너도 황녀를 더 보호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지 않겠어?”
“빨리 안 오시고 뭐 합니까?”
비아톤이 먼저 쓰러진 외눈박이 거인 앞에 섰다.
로베나는 비아톤과 함께 쓰러진 외눈박이 거인을 살펴보았다.
‘아, 답답하네. 용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금방 알아낼 수 있을 텐데.’
그렇지만 지금 그녀는 지혜의 용 라비나가 아니라 북부 대공 로베나였다.
용으로서의 힘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면 로베나 대공으로서의 신분은 포기해야 한다.
그게 용들의 불문율이었다.
“뭘 좀 알겠어?”
“확실하지는 않지만 짚이는 구석은 있네요.”
비아톤은 음성에 마나를 담아서 로베나의 귀에 전달했다.
이사벨에게 이 내용을 말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가 최근에 어떤 한 인간을 추적했었는데요.] [그런데?] [그놈의 이름이 빌헬름이거든요. 아시죠? 미로텔 마법 연방 창성 마법사 빌헬름.] [이름 정도는 알지.] [저 외눈박이 거인의 몸에서 묘하게 빌헬름의 냄새가 나요.] [그러냐?] [그리고 저놈 어깨 쪽을 보세요. 해골 모양을 닮은 기묘한 문양이 있어요. 평범한 외눈박이 거인들에게서는 발견되지 않는 문양입니다.] [그렇구나.]로베나는 딱히 관심 없다는 듯 시선을 거두었다.
실제로 별로 관심이 없기도 했다.
그녀에게 중요했던 건 이사벨에게서 느껴지는 귀여움을 외면하는 것뿐이었다.
적당히 시선을 돌렸으니 이제 이사벨을 쳐다보지 않기로 했다.
“뭐, 나는 별로 상관없으니까 네가 알아서 해. 내게 중요한 건 황녀가 나와의 약속을 지키는 거야. 5일 남았어. 5일 후에 다시 올 거야. 그동안 황녀를 잘 지키도록 해.”
로베나는 최후통첩을 보낸 뒤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사벨이 깜짝 놀랐다.
“사, 사라졌어요, 선생님.”
“그러게요. 뭔가 엄청 급했나 봐요.”
“네?”
“원래 남들 앞에서 마법 안 쓰시거든요. 대외적으로는 검술가여서요.”
이사벨은 고개를 갸웃했다.
“대외적으로 검술가라는 게 무슨 뜻이에요?”
“사실 검술가보단 마법사에 가까워요. 뭐, 검술도 저보다 강하긴 하지만.”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저는 로베나 대공이 아바마마와도 견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검술가라고 알고 있는걸요.”
“뭐, 그렇게 알려져 있긴 하죠.”
비아톤이 피식 웃었다.
“그래서 제 앞에서도 마법을 안 썼는데, 오늘은 마법을 썼어요. 그것도 이동 마법처럼 대단히 어려운 고난도의 마법을요. 영창도 없이 그냥 써버렸네요? 아이, 참 이상해라.”
비아톤은 로베나에 대해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만 같은 눈치였다.
* * *
‘귓속말’의 수석기자 율리는 놀라운 광경을 봤다.
왕궁에 숨어 있어도 괜찮은 7살짜리 황녀가 북문으로 직접 떠나서 외눈박이 거인을 막아냈다.
율리는 그 자리에서 소식지 기사의 초고를 작성했다.
[황녀는 그녀의 선생님인 비아톤 경과 함께 힘을 합쳐 로베나 대공이 도착할 때까지 충분한 시간을 끌었고…….]율리는 이사벨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빌로티안에는 저런 황녀가 있구나…….’
빌로티안 제국민들은 좋겠다.
율리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황녀에게 감탄하며 초고를 작성하고 있는데, 별로 반갑지 않은 얼굴을 발견했다.
‘쟤는 또 여길 왜 왔어?’
귓속말은 대륙 최대의 소식지였고 도합 12명의 수석기자가 있었다.
율리가 11번째 수석기자였고, 그 바로 밑에 후배가 하나 있었다.
12번째 수석기자의 이름은 르살린.
율리의 동료이자 경쟁자였고, 율리와는 사이가 썩 좋지 않았다.
“도무지 선배가 하는 짓이 못 미더워서 말이에요.”
“무슨 뜻이야?”
“저번에 보내신 원고는 윗선에서 파기됐어요.”
“뭐?”
율리는 린타 지방에서 있었던 일들을 기록하여 소식지에 담았다.
단연 기사의 주인공은 이사벨이었다.
테이사벨 이동 관문에 대해서도 상당히 우호적이었고, 린타 지방에서 이사벨의 활약상도 많이 담겼다.
“선배가 무슨 황녀 추종자라도 돼요?”
“…….”
“우리 직업이 뭔지 잊었어요? 우린 기자라고요.”
“그래. 우리는 진실을 알릴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지.”
르살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요즘 동화책 봐요? 아니면 갑자기 이상론자가 되기라도 했어요?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람. 기자는 진실을 알리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냥 소식지에 고용된 직원이지.”
“…….”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한테 월급 주는 사람들이 원하는 걸 해주고 돈을 받으면 되는 거예요. 누가 우리한테 돈 주는지 잊었어요?”
귓속말의 최대 후원자는 미로텔 마법 연방과 마탑이다.
“언니는 이제 손 떼요. 언니 원고는 전부 파기될 거고요. 앞으로 취재는 제가 할 겁니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여기요. 여기 명령서도 갖고 왔어요. 마이클. 명령서 줘.”
르살린 뒤에는 덩치가 아주 커다란 남자가 한 명 서 있었다.
그 남자의 이름이 마이클.
직책은 수습기자였고 르살린에게 일을 배우는 중이었다.
사실상 기자로서의 업무보다는 호위 업무를 주로 맡고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아이고, 어쩌나. 인사평가가 코앞인데, 우리 선배님이 내 밑에 있게 생겼네요, 호호호!”
* * *
하루가 흘렀다.
외눈박이 거인으로 인한 인명피해는 없었다.
‘휴우. 정말 다행이야.’
과연 알페아 왕국에서도 칭송이 자자한 ‘성왕’이 다스리는 곳다웠다.
성왕 라헬라가 아니었다면, 이곳에 큰 피해가 있었으리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그런데 이사벨의 활약상은 딱히 알려지지 않았다.
당연했다.
어쩐 일인지 수석기자 율리는 현장에서 사라져 있었고, 대신 이사벨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또 다른 기자만 파견되어 있었으니까.
‘질문하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내게서 흠을 잡고 싶은 모양인데.’
르살린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기자는 내게 몇 가지 질문을 해왔다.
‘어째서 왕궁을 벗어나 북문으로 향했나요?’
‘때문에 성왕의 행정력에 빈틈이 생겨 남문 쪽 피해가 조금 더 커졌다는데, 이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때마침 북부 대공께서 도달하셨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더 큰 피해가 발생하리라는 생각도 염두에 두셨나요?’
‘혹여 황녀님께서 그곳에서 큰일을 당했다면, 성왕께서 무척 불편하고 어려운 상황에 처했으리라는 것도 예상하셨나요?’
기타 등등.
나는 그러한 질문들에 딱히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어찌 보면 르살린 기자보다 미디어에 훨씬 익숙한 사람이라 할 수 있기에 르살린 기자의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이럴 때는 답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나았다.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닌데…….’
나는 왜 율리 기자님이 사라졌는지, 그 자리를 르살린 기자가 대신했는지, 머리로는 다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속상한 것도 사실이었다.
오늘도 이불을 덮어주러 온 비아톤 선생님이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황녀님, 표정이 어둡네요.”
조금 슬퍼서요.
그렇게 말할 뻔했지만 가까스로 참았다.
‘비아톤 선생님은 휴가 중인걸.’
이상하게도 내 옆에 찰싹 붙어 있기는 했지만, 아무튼 비아톤 선생님은 휴가 중이다.
편하게 쉬어야 할 사람에게 괜히 부담감을 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오늘 봉사할 때 무슨 일이 있었나요?”
“봉사는 즐거웠어요.”
“그럼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는 일부러 밝게 웃어 보였다.
비아톤 경은 저 잘난 얼굴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빤히 보면 부끄러워요.”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려 써서 숨었다.
부끄럽다는 것도 반쯤 사실이었고, 속상한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외눈박이 거인과 관련된 속보 중 내 얘기는 없어. 그렇다는 건 내 얘기가 다른 방식으로 가공되고 있다는 뜻이겠지?’
나에 관해 어떤 얘기가 실릴지 나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전생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을 여러 차례 경험했었다.
‘사실은 하나도 아프지 않은데 돈을 구걸하려고 쇼하는 거다’라는 찌라시가 제일 많았고, 그 외에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문도 많았다.
‘분명 그런 일이 또 벌어질 거야.’
카린이 말했던 ‘좁고 힘든 길’이 이런 거겠지.
많이 익숙한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일인데 벌써 이렇게 우울해하면 안 돼. 휴가 중인 비아톤 선생님한테도 민폐고.’
민폐 끼치는 아이가 되고 싶지 않아.
도움만 받고 민폐만 끼치던 건, 전생으로 족하니까.
‘응?’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아서 이불을 내려보았다.
방금까지 이곳에 있었던 비아톤 경이 사라져 있었다.
테이블에 작은 쪽지가 하나 있었다.
‘저게 뭐지?’
아무래도 비아톤 경이 남긴 쪽지 같았다.
[황녀님의 진짜 웃음을 찾아줄게요.]비아톤 경은 내가 가짜로 웃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