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79)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79화
비아톤이 가볍게 웃었다.
“간만에 화가 나네.”
그의 발밑에는 거대한 덩치를 가진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르살린은 꺅! 비명을 질렀다.
‘모, 목소리가 안 나와?’
어떤 마법에 걸린 것 같았다.
르살린의 몸 전체에 솜털이 일었다.
그녀 또한 험한 곳을 많이 다녀봤고 전쟁터도 경험해 봤지만, 이런 살기는 처음이었다.
‘저, 저 사람은…… 빌로티안 수석 보좌관 비아톤?’
분명히 비아톤이었다.
그녀의 표정을 본 비아톤이 히죽 웃었다.
“나를 알아?”
“읍…… 읍……!”
무어라 말을 하고 싶었지만, 마법 때문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르살린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목을 여러 차례 가리켰다.
말을 좀 할 테니 마법을 풀어달라는 얘기였다.
그렇지만 비아톤은 별로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왜? 내 얼굴을 보니 조금 안심이 돼? 내가 뭐 황제 폐하의 부관이니까, 험한 짓은 못 할 것 같나 봐?”
“읍…… 읍……!”
“근데 이걸 어쩌나, 나는 지금 휴가 중인데.”
비아톤의 손에는 종이 뭉치가 들려 있었다.
아직 귓속말 본사로 보내지 않은 소식지 초고였다.
이사벨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당연하게도 이사벨에게 불리하게 작성된 초고였다.
“아무리 큰 사고를 쳐도 개인적인 일탈이다, 새끼들아.”
화르륵!
비아톤의 손에 들려 있던 초고가 불타 사라졌다.
“그래서 나는 지금 얼마나 큰 사고를 칠지 고민 중이야.”
그사이, 뒤쪽에 쓰러져 있던 마이클이 정신을 차렸다.
그는 벌떡 일어나 주변에 있던 의자를 들어 올렸다.
그의 눈에 비아톤의 뒤통수가 보였다. 비아톤은 르살린과 대화하느라 마이클이 깨어난 것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이 미친놈!’
마이클이 의자를 세차게 휘둘렀다.
비아톤은 피하지 않았다.
퍽!
의자가 비아톤의 머리를 세차게 강타했다.
‘됐다!’
이제 이 괴물 같은 놈은 쓰러질 것이었다.
‘……응?’
그래야 했는데…… 비아톤은 멀쩡히 서 있었다.
“너 이거, 일반 사람이었으면 뇌진탕으로 죽었을지도 몰라.”
비아톤이 뒤를 힐끗 쳐다봤다.
그의 머리에서 한 줄기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가 피를 손가락으로 만져 확인했다.
“피 난다.”
비아톤이 히죽 웃었다.
방어할 수 있었지만 일부러 방어하지 않았다.
“이제 정당방위네.”
갑자기 습격한 것도 당신이고 원고를 불태우는 것도 당신인데 이게 왜 정당방위요?!
따지고 싶었으나 따질 수 없었다.
그날, 마이클은 지옥을 경험했다.
덩치가 무척이나 크고 완력이 강했던 마이클로서는 처음 겪는 일이었다.
‘차, 차라리 죽여줘!’
마이클이 지옥을 경험하는 동안, 르살린은 극도의 공포를 느꼈다.
맞는 사람도 무섭지만, 그 맞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또한 고역이었다.
비아톤이 쓰러진 마이클의 얼굴을 향해 의자를 내려쳤다.
“으, 으아악!”
쾅!
큰 소리와 함께 의자가 박살 났다.
마이클 얼굴 옆쪽 바닥과 부딪쳐서 산산조각이 났다.
파편이 이리저리 튀었으나 신기하게도 다친 사람은 없었다.
“왜 쫄고 그래?”
비아톤이 뒤를 힐끗 바라보았다.
르살린이 발발 떨고 있었다.
“가끔은 법보다 주먹이 가까워. 그렇지, 우리 친구들?”
비아톤이 손가락을 튕겼다.
르살린은 목이 뻥- 뚫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이건 언론 탄압입니다.”
“너부터 탄압해 줄까?”
“…….”
“내가 얼굴과 신분을 다 까 보이고서 너희를 찾아온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마이클은 비아톤의 기세에 잠식당해 또 기절해 버렸다.
비아톤은 르살린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오, 오, 오지 마.”
르살린의 몸이 벽에 닿았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었다.
“증거를 남기지 않고 너희를 모조리 죽…….”
아, 그런데 이렇게 험한 말 하면 황녀님이 안 좋아하시지.
비아톤은 이사벨을 떠올리며 언어를 순화했다.
“저 머나먼 곳으로 보내줄 수 있기 때문이야.”
“…….”
“편히 쉬고 싶다면 언제든 얘기하고.”
“…….”
“행방불명이 내 주특기라.”
르살린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처음 느껴보는 공포에 흐느끼기 시작했다.
“자, 잘못했어요.”
“초고. 그리고 복사본도 내놔.”
“그, 그건…….”
비아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여태까지는 장난이었는데.”
비아톤이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르살린과 눈을 마주쳤다.
이사벨에게는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표정으로 르살린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편히 쉬게 해줄 수 있어.”
“드, 드릴게요.”
비아톤은 결국 초고의 복사본마저 파기했다.
“네 윗선에다가 전해. 저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같은 짓을 반복해 보라고. 아주 편안한 여행이 될 거야. 영원히 잠들고 싶을 만큼.”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처럼 평화롭게 넘어가지는 않을 거야.”
이건 평화적인 방법(?)으로 보내는, 진짜 마지막 경고였다.
* * *
비아톤은 이사벨의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이사벨이 자는 모습을 정말 많이 지켜봤었고, 덕분에 숨소리만 들어도 이사벨의 상태를 대충은 파악할 수 있었다.
‘오늘 한참이나 뒤척이시다가 엄청 늦게 잠든 것 같…… 응?’
이사벨의 오른손에 쪽지가 쥐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꽉 쥐고 있어서 꼬깃꼬깃했다.
비아톤은 잠든 이사벨을 계속 지켜보았다.
김벌꿀과 함께 잠든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신기한 감정이야.’
사랑스러워서 눈물이 날 것 같다니…….
비아톤 평생에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안 되겠다. 전통이고 나발이고, 나는 황녀님을 지켜야겠어.’
딸도 아닌데 딸보다 더 귀하게 느껴졌다. 이사벨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쪽도 언론전 능력을 강화해야 해.’
마법 연방과 달리, 빌로티안 제국은 언론에 딱히 관여한 적이 없었다.
그건 500년간 이어진 암묵적인 전통이었다.
‘이놈의 검술쟁이들은 아무튼 답답스럽다니까.’
[언론을 통하여 대중을 현혹하지 않는다. 진실은 가만히 두어도 밝게 빛난다. 언론을 이용하여 호도하는 것은 검술가답지 않은 방법이다.]……라는 것이 검술 제국이 500년간 취했던 스탠스였다.
‘그래서 소식지들에 후원도 하지 않았었지.’
그렇지만 이제 달라져야 한다.
강대한 무력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시대는 지났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려나.’
* * *
아침 햇볕은 꽤 따뜻했고, 적당히 눈부셨다.
눈이 번쩍 떠졌고 몸을 벌떡 일으켰다.
‘상쾌해.’
참 신기한 일이었다.
어제 그렇게 잠을 설쳤는데도 일어나니 몸이 가뿐했다.
‘몸살도 하루 만에 낫고 진짜 엄청 튼튼한 몸이라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어보았다.
아침 공기가 선선해서 기분이 좋았다. 상쾌한 바람 내음이 느껴졌다.
오늘도 힘차게 자원봉사를 시작해야지.
이제 이틀밖에 남지 않아서 조금 아쉬운 기분이었지만, 어쨌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그런데 손님이 찾아왔다.
“율리 기자님?”
나는 활짝 웃으며 율리 기자님을 맞이해 주었다.
“갑자기 사라져서 걱정했어요.”
“심려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황녀님.”
간단한 안부 인사를 끝마치고서, 율리 기자님이 본론을 꺼냈다.
“한 가지만 여쭤봐도 될까요?”
“물론이죠.”
“황녀님은 어떻게 그렇게 행복할 수 있나요?”
“네?”
“자원봉사가 힘들지 않은가요? 어떻게 그렇게 진심으로 웃을 수 있죠?”
그건요. 제가 관종이라서요.
……라고 말을 할 수는 없겠지.
“다 감사한걸요. 제 몸이 이렇게 튼튼하고 건강해서 남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하고, 마법을 익힌 덕분에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잖아요.”
지나치게 남들 듣기 좋은 말이기는 했지만, 사실 거짓말도 아니었다.
‘내가 그토록 바랐던 건, 남들의 일상이었거든요.’
나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숨을 쉬고 싶었다. 산소호흡기 같은 거 빼고 말이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걷고 싶었다. 휠체어에 타지 않고서 말이다.
“제게 주어진 하루하루가 감사해요. 그래서 최선을 다해 행복해야 해요.”
제가 그토록 꿈꾸고 바라왔던 것들이 주어졌으니까요.
율리 기자님이 나를 바라보았다.
율리 기자님의 눈동자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율리 기자님은 무언가를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저를 황녀님의 직속 기자로 고용해 주실 수 있나요?”
“네?”
대륙 최대 소식지. 기자들이 선망하는 ‘귓속말’의 수석기자가 왜 이런 제안을 한단 말인가.
“저, 저는…….”
사실 돈도 별로 없고요. 아직 권한도 별로 없고 그런데…….
“급여는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숙식만 제공해 주시면 됩니다.”
“갑자기 왜 그러시는 거예요?”
“잊고 있던 것들을 되찾고 싶어서요.”
율리 기자님이 말을 이었다.
“너무 당연해져서 잊고 있는 많은 것. 저는 그것들을 되찾고 싶어졌어요.”
“…….”
“황녀님은 하루하루가 감사하다고 하셨죠. 아침을 깨워준 햇살이, 선선한 바람이, 오늘 하루가 또다시 주어졌음이, 그 모두가 감사하다고 하셨죠. 누군가에게는 너무 당연해서 아무 감흥이 없는 것들인데…… 황녀님은 그 당연함을 소중히 하고 계시잖아요.”
“그, 그건…….”
그건 제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냥 전생에서 너무 큰 결핍을 겪어서 그래요.
“황녀님 곁에 있으면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잊고 있던 것들을 되찾는 방법을요. 그러니까 황녀님 곁에서 일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세요. 저는 꼭 되찾고 싶어요. 제가 지금은 잊어버리고만, 제 젊은 날의 무언가를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