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8)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8화
비아톤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3살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지. 아기에게도 더 아기 시절은 있는 거야.
그 모습이 마치, 지금은 많이 큰 줄 아는 아기를 보는 것 같았다.
그 아이의 볼은 복숭앗빛이었다.
사랑이 무럭무럭 샘솟았다.
“너무 귀여워서…….”
깨물어 버릴 뻔했네요.
그 말을 할 뻔했다.
실제로 저 오동통 소시지 같은 팔을 앙! 하고 깨물 뻔했다.
그러나 단련된 검술가로서 절제력이 일반인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비아톤은 그 맹렬한 충동을 억누를 수 있었다.
‘후우, 진짜 위험했어.’
아무리 귀여워도, 그는 선을 지킬 줄 안다고 자부했다.
황녀의 팔을 깨무는 건 선을 넘는 일이었다.
그는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하아, 나중에 남친 생기면 어떡하지.”
전직 검귀.
스스로 선을 잘 안다 자부하는 그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죽이면 되지 뭐.”
그의 혼잣말은 무척 작았고, 이사벨은 제대로 듣지 못했다.
* * *
비아톤은 이사벨이 그린 그림을 들고 황제의 집무실로 향했다.
“폐하를 그린 추상화입니다.”
론은 그림을 받아 들었다.
“내게 쓰레기를 버리러 온 것이냐?”
“또 후회 적립하신다.”
“뭐?”
“지금 쓰레기라고 분명 말씀하셨습니다. 이 훌륭한 그림을요!”
“스스로 예술가라 주장하는 머저리들이 은화 몇 닢에 성의 없이 그려준 그림 같군.”
비아톤을 저격한 말이었다.
이전에도 론은 비아톤을 형상화한 추상화랍시고 몇 번이나 그림을 그려서 가져온 적이 있었으니까.
물론 비아톤은 예술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었고 실력이 뛰어난 편이었다.
그러나 론에게 있어서, 그런 사실 같은 건 알 바 아니었다.
“이번에는 제가 그린 거 아닙니다.”
“그러면?”
“세 살짜리 어린아이가 그린 그림입니다. 그런데 이 그림에 아주 특이한 점들이 있어요.”
“…….”
“보세요. 여기 눈매가 더 날카롭게 다듬어져 있고, 입술도 매끄럽죠? 코도 실제보다 좀 더 오뚝한 거 같고.”
“…….”
“게다가 피부 결도 엄청 곱고 잘생김의 아우라를 한껏 품은…….”
잠자코 듣던 론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추상화라고 하지 않았나?”
설명이 너무 디테일했다.
눈매가 다듬어져 있다느니 입술이 매끄럽다느니 코가 오뚝하다느니.
그럴 리 없었다.
이건 추상화였으니까.
아무래도 비아톤의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눈빛이 너무 맑아요. 제가 아는 폐하는 살벌하고 삭막한 눈빛을…… 아악!”
서걱-
론의 예리한 검날이 비아톤의 제복 앞섶을 잘랐다.
“월급 모아서 산 겁니다! 비싼 거라고요!”
“하문한 자가 있던가?”
“‘안 물어봤는데 메롱’을 그렇게 품격 있게 말하기도 쉽지 않을 겁니다!”
론은 검술 제국의 황제다웠다.
그의 발검은 유려하고 깔끔했다. 절제된 몸동작으로 검을 갈무리한 그는, 우아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빨리 할 말 하고 썩 꺼져.”
“그 세 살짜리 아이가 황녀님입니다.”
“뭐?”
론의 시선이 다시 그림을 향했다.
비아톤의 연녹색 눈동자에 진중함이 깃들었다.
“제가 무엇보다 놀란 것은 황녀님의 관찰력입니다. 폐하를 만난 횟수나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은데…….”
“…….”
“이러한 깊은 관찰은 진심 어린 애정으로부터 기인한 것이 분명합니다. 폐하를 향한 따뜻한 마음과 사랑이 깊이 묻어납니다. 이것은 배움이 아니라 천부적인 영역입니다.”
그러니까, 이 추상화를 보고 그런 걸 읽었단 말이지…….
추상화는 추상화였다.
세 살짜리가 그린 것치고는 잘 그렸지만, 저런 평가가 나오는 건 사실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네 눈에는 보이는가 보군.’
네게 초능력이라도 있더냐?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어쨌든 좋은 말들이라 구태여 따지지는 않았다.
“폐하는 퍽 좋으시겠습니다.”
“무엇이 말이냐?”
“따로 노력 안 해도 황녀님이 폐하를 이렇게 좋아해 주니까요. 저번에는 사랑한다고 해주셨다지요?”
론은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그렇게 부러우냐?”
“안 부러우면 그게 풍뎅이지, 사람인가요?”
“뜬금없이 풍뎅이?”
“아니, 너무 불공평하잖아요.”
“그러니까 뭐가?”
론은 비아톤의 시비에 꽤 착실하고 성실히 대답해 주었다.
그것은 론의 기분이 상당히 좋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림에 진심 어린 애정이 묻어납니다’라고 말한 이후부터, 론은 기분이 꽤 좋았다.
론 스스로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저는 월급을 탈탈 털고 특급 쉐프를 협박…… 아니, 부탁해서 보물 젤리를 만들어다 줘도 사랑한단 말을 못 들어봤습니다. 심지어 그냥 삥만 뜯긴다고요.”
“황녀의 교육 교사라는 자의 언행이 아주 상스럽기 그지없구나.”
“또 말투로 꼬투리 잡으신다.”
“황궁 안이다. 품격을 지켜라.”
꺼지라고 말하던 게 누구시더라, 비아톤은 따지고 싶었지만 따지지는 않았다.
론은 한참 비아톤을 바라보다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서?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
“부러워 죽겠다고요.”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그래도 론은 목소리를 낮췄다.
비아톤은 론을 잘 아는 것만큼, 론도 비아톤을 너무 잘 알았다.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
“죽여 버리기 전에.”
“폐하께서 그리 간절히 말씀하시니 어쩔 수가 없군요.”
비아톤은 크흠, 헛기침을 하고서 말했다.
“아무래도 황녀님은 마도 공학에 엄청난 소질과 재능을 지니고 계신 것 같습니다. 태생영창에 이어 이토록 정교한 관찰력과 손재주를 가지고 계시니까요.”
마도 공학은 마법을 활용하여 공학적으로 풀어내는 학문이다.
현시대 문물의 근간이기도 했다.
“폐하께서도 아시다시피 마도 공학에 대한 재능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마법적 이해 능력과 마나에 대한 친밀도. 이건 태생영창과 마나 공명으로 증명해 버리셨죠.”
“…….”
“예리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한 마법진과 마도 공학 설계도 작성 능력. 그것에는 기본적인 손재주가 필수거든요. 그것도 이 그림으로 증명하셨죠.”
그리고 마지막 하나.
“수학적 재능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를테면?”
“겨우 세 살에 젤리 숫자의 개념을 이해하고 덧셈과 뺄셈을 암산으로 할 수 있을 정도의 재능 말입니다.”
누가 가르쳐 준 적도 없건만 황녀는 수에 대한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젤리 개수를 정확히 계산해서 삥을 뜯으, 아니, 요구하시더라구요.”
“…….”
“여러 상황을 종합해서 봤을 때, 황녀님은 천부적인 마법 재능을 부여받은 것 같습니다.”
원작에서 이사벨은 마법을 익혀본 적이 없었다.
21세에 죽는다는 사실에 비관하여 악행을 일삼았을 뿐이었다.
“폐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유능한 마법 선생을 찾아보겠습니다.”
* * *
3개월 후, 이사벨에게는 새로운 선생님이 생겼다.
“황녀님을 만나 뵙네요. 미로텔 마법 연방 소속 1급 마법사, 카린이라 합니다.”
이사벨은 딸꾹질을 시작했다.
그녀는 소리치고 싶었다.
‘최종 빌런이 왜 여기서 나오냐고요!’
원작에는 없던 내용이었다.
미로텔 마법 연방 1급 마법사 카린.
원작 속에서 그녀는 큰 야망을 가진 마법사였다.
‘사이코패스 흑마법사!’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자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아주 똑똑하고 교활한 여자.’
그녀는 스승을 배신하고 마법 연방의 지도자인 ‘창성 마법사’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데, 그 스승조차 감쪽같이 속일 정도로 치밀하고 계획적인 여자였다.
미로텔 마법 연방을 손에 넣은 그녀는, 전 대륙을 지배하는 거대 제국을 탄생시키고 싶어 했다.
그 과정에서 검술 제국의 황제가 된 남주인공 아룬과 대적하게 된다.
‘하지만 아룬은 남주고…….’
아무리 강력한 흑막 빌런이라 하더라도 결국 주인공에게 이길 수는 없었다.
그녀는 아룬에게 여러 번 패배하면서, 치사하게도 여주에게 ‘나르비달의 저주’를 내린다.
시름시름 앓던 여주는 아룬에게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는다.
하필이면 거기서 한 편이 끝났다.
‘그때는 다 여주가 죽는 줄 알고 용두사망이라 욕했는데.’
그러나 여기서 또 반전이 등장했으니.
‘용두사망은커녕 여주가 용일 줄 누가 알았겠어?’
참고로 이 세계에서 용은 마법의 종주이자 모든 마법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는 존재였다.
나르비달의 낙인과 나르비달의 저주를 무효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존재.
한낱 인간 마법사의 저주 따위가 통할 리 없었다.
스스로 기억을 봉인했던 여주가 죽음의 위기를 바탕으로 용으로서의 자아를 자각한다.
이후 아룬과 여주는 각종 주접을 보여주며 잘 먹고 잘살게 되었다는 스토리기는 한데…….
‘다른 말로 하면…… 최강자 남주에, 더 최강자 여주 용한테도 비빌 수 있는 흑막이라는 얘기이기도 하잖아.’
아직 프롤로그 시작도 안 한 상태다.
이 작품이 제대로 시작되려면 18년은 더 있어야 한다.
[시한부 악녀가 죽고 나면>의 시한부가 이제 겨우 3살인데, 왜 벌써 나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덜덜 떨려왔다.
이 정도 단서만으로도, 최종 빌런은 내게서 이상함을 눈치챌 거다.
“황녀님, 어디 편찮으신지요?”
“구, 구게여…….”
진정하고 싶었는데 진정이 되질 않았다.
어린애의 몸이라는 게 이럴 때는 너무 불편했다.
‘어떡하지?’
세 살 인생 최대의 시련이 다가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