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80)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80화
짝! 짝! 짝!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비아톤 선생님!”
이사벨이 활짝 웃었다.
아침의 붓기 같은 건 비아톤과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오늘도 잘생겼다.’
그 어느 순간에도 오점 없는 비아톤의 미모는 오늘도 화사하게 빛이 났다.
비아톤이 말했다.
“제가 적극적으로 밀어드리죠.”
“진심인가요?”
“그럼요. 안 그래도 율리 수석 기자님 같은 분을 어찌 섭외해야 하나 고민 중이었거든요.”
율리와 비아톤은 꽤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눴다.
둘이 목표하는 바는 같았고, 분위기는 굉장히 화기애애했다.
“의외네요. 사실 검술 제국은 이런 것에 신경 쓰지 않잖아요.”
“원래는 그랬죠.”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신경 쓰려는 거죠?”
“신경 써야 할 이유가 생겨서?”
비아톤의 눈이 이사벨에게 향했다.
이사벨은 시녀의 도움 없이도 혼자서 씩씩하게 세수도 했고 자원봉사 하기 편한 복장으로 환복한 상태였다.
이 시대의 평범한 귀족 영애들과는 꽤 다른 모습이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시녀나 시동들의 도움 없이 혼자서 씻지 못하는 귀족도 상당수 있었으니까.
아니, 혼자 씻거나 먹거나 입는 것은 품격이 떨어지는 행동이라고 여기는 자도 많았다.
그러나 이사벨은 달랐다.
“저는 씩씩한 모습을 지켜줘야 하거든요.”
“그렇군요.”
율리는 쉽게 납득했다.
이사벨을 옆에서 지켜봐 왔기에, 별다른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럼 세부적인 얘기를 좀 해보죠. 황녀님께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급여를 받을 생각이 없어요. 대신 숙식만 해결해 주세요.”
“저로서는 손해 볼 게 없는 조건이네요. 좋아요.”
비아톤은 기분이 좋아졌다.
이렇게 되면 비아톤이 개인적으로 고용한 기자가 되는 것이다.
물론 황실의 결재를 받아 공식적으로 기자단을 운용하게 되는 것도 좋기는 하겠지만, 그러기엔 리스크가 있었다.
율리의 글 자체가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었으니까.
‘내가 개인 고용한 것으로 하는 것이 여러모로 편해. 숙식 제공 정도면 내 월급으로도 감당 가능하겠어, 후후.’
율리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취재에 필요한 장비들을 좀 구입해야 할 것 같은데요.”
“음? 장비는 이미 갖추고 계시지 않나요?”
“귓속말 차원에서 무상 대여해 준 것이었어요. 사표를 쓰고 나왔으니 장비들은 모두 반납해야 해요.”
비아톤은 조금 불안해졌다.
“……장비는 많이 비쌉니까?”
“맞추기에 따라 천차만별이죠.”
“원래 쓰던 건 어떤 건데요?”
“최상품들이에요. 수석기자들은 제일 좋은 것들을 사용했거든요.”
“흠. 황녀님 전속 취재기자니까, 최소한 그에 준하는 장비들을 사용해야…… 겠죠?”
“저도 그게 편하긴 해요. 제 손에 익은 것들이니까요.”
비아톤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는 제국의 이인자나 다름없는 수석 보좌관이지만, 사실상 론과의 노예계약에 가까운 계약으로 돈은 별로 못 버는 공무원이었으니까.
돈 욕심도 딱히 없어서 몰래 모아둔 비상금도 없었다.
“그래요. 최상급 제품들로 구성해서 리스트를 작성해 보세요.”
“이미 작성해 왔어요.”
역시 제국의 수석 보좌관 정도 되니 말이 잘 통하는구나. 통이 엄청 큰 것 같아.
율리는 그렇게 생각하고서 가벼운 마음으로 종이를 건넸다.
비아톤의 눈이 커졌다.
“9, 9억 루덴이요?”
이 정도면 수도의 집 한 채 값이었다.
참고로 비아톤은 무주택자였다.
“네. 생각보다 적지요?”
“…….”
“일단 처음이니까 최소한으로 꾸려보았어요.”
비아톤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 * *
로베나 대공과 약속했던 5일이 지났다.
린타 지방의 피해복구도 거의 마무리가 되었다.
무너졌던 건물들은 제모습을 찾았고 황폐해졌던 땅이 이제는 어엿한 도시의 모습을 갖추었다.
‘엄청 뿌듯하다.’
피난시설로 몸을 피했던 재해민들이 한 명, 두 명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깔끔하게 복구된 보금자리를 보며 엉엉 울기도 했고, 자원봉사자들에게 절을 하기도 했다.
나는 막사 안쪽에 숨어서 사람들이 기뻐하는 모습들을 훔쳐봤다.
‘생각보다 기분이 훨씬 좋네.’
이 맛에 봉사하는 건가 보다. 전생에 나를 도와줬던 사람들도 이런 마음으로 나를 도와줬겠지?
그 사람들의 마음을 배우게 돼서 정말 좋은 것 같다.
몰래 숨어서 뿌듯해하고 있는데, 작업반장 헥토르 아저씨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황녀님. 안 나가보셔도 되겠습니까?”
“제가 나가면 소란스러워질 거예요.”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나는 이 재해 현장의 그…… 뭐랄까, 음, 맞는 표현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아이돌 같은 존재였다.
그건 아마 내가 어린 황녀고 마법사여서 그런 것 같았다.
사람들 눈에는 엄청 신기하고 대단해 보이겠지.
“그래도 수많은 사람이 황녀님을 만나 뵙길 고대하고 있습니다. 나가서 손이라도 한 번 흔들어 주시면 크게 기뻐할 텐데요.”
“먼발치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뿌듯해요.”
내가 나가면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내게 집중될 것이 뻔했다.
이곳에는 수많은 자원봉사자가 있었고, 그들 모두가 주인공이어야 했다.
나는 이미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락내리락하는 중이었고, 이 정도면 충분했다.
……라고 생각했는데, 세상만사가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 * *
‘이, 이게 뭐야?’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
린타 지역을 가로지르는 중앙대로.
이곳은 마차가 무려 6대나 교차 통행할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도로였다.
그 도로 양쪽에 수많은 사람이 서 있었다.
이길 너머에는 거대한 ‘개선문’이 있었는데, 나는 저길 통과해서 지나가야만 했다.
‘나 어떻게 지나가라고!’
이건 라헬라 성왕님께서 만들어 주신 일종의 행사였다.
내가 주인공인 자리.
내가 황녀인 것이 밝혀지지 않았다면 또 모를까, 이미 밝혀진 상황에서 나를 환송하는 행사를 기획한 것이었다.
헥토르 아저씨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 이제 나가실까요?”
“차, 창피한데.”
나는 막사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어 바깥 상황을 살펴봤다.
빌로티안 제국을 상징하는 흑색기.
두 개의 검이 그려진 흑기를 든 사람들이 나를 연호하고 있었다.
“그래도 가야 합니다. 개선문 아래, 성왕님께서 기다리십니다.”
라헬라 언니가 직접 나와 있다고 했다.
서열상 나보다 높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데 더 이상 지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가, 가요.”
븅븅-
그나마 다행인 건 내 심리 안정제인 벌꿀이가 내 어깨 위에 앉았다는 것이었다.
‘좀 작아진 거 같은데?’
요즘 느끼고 있다.
벌꿀이의 크기가 상황에 따라 조금 커지기도 했다가 작아지기도 하는 것 같다.
물론 기분 탓이기는 하겠지만 아무튼 기묘한 느낌이기는 했다.
막사 안으로 비아톤 선생님이 들어왔다.
“황녀님. 에스코트하겠습니다.”
하얀 장갑을 낀 비아톤 경이 한쪽 무릎을 꿇고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와 손을 잡은 비아톤 경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새삼스레…… 비아톤 경이 되게 크네.’
비아톤 경은 키가 무척 컸다.
나는 팔을 높이 들어 올려야 했다.
그렇지만 팔이 아프지는 않았다.
빌로티안의 특별한 육체를 타고나서이기도 했지만, 비아톤 경이 마력을 사용해서 내 팔을 받쳐주기 때문이기도 했다.
비아톤 경은 내가 지나치게 긴장하지 않도록 말을 걸어주었다.
“이렇게나 많은 왕국민이 황녀님께 사랑을 보내고 있어요.”
“그, 그러게요. 정말 감사한 일이에요.”
너무 부끄럽고 창피했다.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과 직접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내게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너무 부끄러웠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는 이 상황이 싫지만은 않았다.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한 가득이야.’
사람들이 나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를 향해 흑색기를 흔들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대단한 걸 하지 않았는데, 저 사람들은 내게 아주 큰 사랑과 관심을 보내주고 있었다.
‘기분 좋다.’
나는 역시 관종이 틀림없었다.
약간은 여유를 되찾고서 사뿐사뿐 걸었다.
저만치 앞, 개선문이 보였다.
개선문 아래에는 하얀색 제복을 차려입은 라헬라 언니가 보였다.
오른손에는 의장용 검을 들고 있었는데 솔직히 반할 뻔했다.
‘아, 나 언니 좋아했네.’
라헬라 언니 옆으로는 두 명의 기수가 거대한 흑색기를 들어 올리고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나는 라헬라 언니 앞에 도착했다.
내가 도착하자 두 명의 기수가 똑같은 동작으로 흑색기를 휘둘렀다.
훙훙-
위풍당당한 흑색기가 절도있게 움직였다.
흑색기가 멈추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박수 소리가 멈췄다.
나는 황녀로서 성왕에게 예를 갖추었다.
“성왕께 인사드립니다. 제가 한 것은 별로 없는데, 이토록 환송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한 것이 별로 없다니요?”
라헬라 언니는 내게 존대했다.
사람들 앞에서 나를 높여주겠다는 의도가 엿보였다.
“린타 지방을 위해 그 한 몸을 아끼지 않고 봉사를 해준 것 또한 무척 고마운 일이었어요. 그렇지만 내가 그대를 위하여 이토록 예를 갖추고 있는 것은 다른 이유입니다.”
나는 그때, 약간의 이상함을 느꼈다.
라헬라 언니의 목소리가 음성 증폭기와 전달 장치를 통해 왕국 전체에 전달되고 있는 것이었다.
‘음?’
다시 말해 이건 일종의 연설이었다.
단순히 내 노고를 치하하고 나를 환영해 주는 행사가 아닌 것 같았다.
‘뭐지?’
라헬라 언니가 말을 이었다.
“그대는 수석 보좌관 비아톤 경과 함께 북문의 외눈박이 거인을 토벌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워 왕국의 안녕에 지대한 이바지를 하였지요.”
이건 소식지에 실리지 않은 내용이었다. 세상 밖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내용.
사실 왕국 입장에서도 드러내고 싶은 내용은 아닐 것이었다.
왕국의 힘이 모자라서, 겨우 7살짜리 황녀에게 도움을 얻었다는 뜻으로도 해석되니까.
7살짜리 어린 황녀도 도움을 줄 수 있을 만큼 하찮은(?) 상황이었는데 왕국이 손을 쓰지 못했다는 오명이 되고 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헬라 언니가 말을 이었다.
“그대는 그대의 목숨을 걸고 왕국을 위하여 솔선수범하는 희생정신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대는 비록 작으나, 마음의 크기는 작지 않았습니다. 그대는 비록 어리나, 누구보다 어른이었습니다. 그대는 그 작은 몸을 이끌고 내게 달려와 북문으로 보내어 달라 호소하고 간청하였습니다.”
그 목소리가 왕국 전체에 계속해서 전달되었다.
사람들이 숨죽여서 그 목소리를 들었다.
나를 향해 무수히 많은 눈빛이 쏟아졌다.
‘이, 이게 무슨 일이야?’
뭔가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