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81)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81화
수많은 인파 속.
두꺼운 로브로 몸과 얼굴을 가린 한 쌍의 남녀가 있었다.
두 사람은 라헬라와 이사벨을 잠자코 지켜보았다.
자세히 살펴보면 그 둘은 이곳에 모여 있는 군중들보다 훨씬 더 많은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으나, 아무도 그들의 존재감을 눈치채지 못했다.
주파수가 너무 높으면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처럼.
그들의 존재감은 평범한 사람들이 느끼기에는 지나치게 거대하고 위대했다.
여자의 이름은 로베나. 북부 대공인 그녀가 입을 열었다.
“폐하, 이런 거 싫어한다면서요? 언론전 같은 건 비열하고 저열한 짓이라면서요?”
“…….”
로베나도 론을 만난 것은 10년 만이다.
10년 만에 만난 론은 너무나 많이 변해 있었다.
“검술가들은 그저 검술에만 매진하면 된다면서요?”
“…….”
“강함으로 증명하면 그뿐이라면서요?”
“…….”
“쇼는 그저 나약한 애송이들이나 하는 거라면서요?”
“…….”
론은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비아톤이 깐족거림을 누구에게 배웠나 했는데, 이제는 좀 알겠군.”
로베나의 눈이 호선을 그렸다.
그녀는 이 상황이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그 검술밖에 모르는 천재 검술가 론이, 이제 이런 쇼를 직접 벌이고 있었다.
이 쇼는 론이 직접 라헬라를 움직여서 주최한 것이었다.
‘하나뿐인 딸을 위해서?’
물론 어느 정도 납득이 되는 부분이 있기는 했다.
‘귀여움’을 경계하고 있는 그녀조차도 이사벨의 사랑스러움에 스며들 뻔했으니까.
“근데 폐하.”
“왜 그러지?”
“안 바쁘세요?”
“…….”
“왜 여기 계속 죽치고 있어요?”
로베나가 아는 론은 무척이나 바쁜 사내였다.
이 세상에서 바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황제가 여기서 몇 날 며칠을 보내고 있는 것이 좀 우스웠다.
“대공의 헛수작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
“제가 진짜로 황녀의 5년을 빼앗을까 봐 어쩔 수 없이 여기 있는 거라고요?”
“그렇다.”
“그렇다고 보기에는 제가 나타나기 전까지 계속 황녀 곁을 맴돌던데요.”
“…….”
론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쓸데없이 예리한 로베나였다.
“그리고 좀 안 어울리는 결벽증 같은 거 있었잖아요? 깨끗한 데서 자고, 깨끗한 것을 먹고, 전장에서도 그래 가지고 비아톤이 엄청 뒷담화 깠는데.”
“뒷담화를 했다고?”
웃는 얼굴로 다 일러바친 로베나는 할 일을 다 한 듯 후련한 마음으로 계속 말을 이었다.
“어쨌든 그 결벽증은 고쳐졌어요?”
“아니. 여전히 그렇다.”
“정체 안 들키겠다고 굴다리 밑에서 거지들이랑 같이 생활하던데요?”
“…….”
로베나는 피식 웃었다.
“세상에, 황후마마 아니면 피도 눈물도 없을 것만 같던 사람이 이렇게 변할 줄이야. 은은한 배신감마저 느껴지네요. 어때요? 자식을 사랑하는 기분이?”
론의 몸이 움찔했다.
구체적으로 이사벨을 사랑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여태까지 론에게 있어서 자식이란 빌로티안의 황위를 이을 후계자였을 뿐이었다.
로브에 가려진 그의 얼굴이 아주 조금 붉어졌다.
“난 그런 사사로운 감정놀음을 하지 않아.”
“진짜요?”
“물가에 아이를 내놓은 것처럼 걱정이 되고, 식사는 잘했는지, 오늘의 컨디션은 괜찮은지, 누가 괴롭히지는 않는지, 어디가 아픈 건 아닌지, 지나치게 어른스럽게 구는 것은 아닌지, 행복을 위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아이가 정말로 행복한지, 혹은 무엇인가가 부족한지, 부족하다면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아주 약간, 아주 조금 미세하게 신경이 쓰일 뿐이다.”
지혜의 용 라비나이자 로베나 대공인 그녀가 마침표를 찍었다.
“완전 사랑하시네요.”
“전혀.”
“전혀 사랑하시는구나.”
“…….”
대화하는 모든 순간에, 론의 시선은 이사벨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 * *
소식지에 이사벨과 관련한 소식이 도배되었다.
[황녀, 올림피아드를 넘어 알페아까지.] [빌로티안 황가의 저력을 보여주다.]대부분의 소식지가 마법 연방, 마탑과 관련된 내용을 싣기는 했지만 이사벨에게 호의적인 내용이 가득 담길 수밖에 없었다.
교묘하게 조작된 거짓으로 선동하기에는 보는 눈과 귀가 너무 많았다.
린타 지방 사람들을 필두로 하여 알페아 왕국 국민들. 그리고 수많은 자원봉사자가 이사벨에 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성왕, 황녀를 직접 환송하다.]존경의 이명.
‘성왕’이라 칭송받는 라헬라마저 개선문에서 이사벨을 맞이하여 그 공로를 직접 치하하지 않았던가.
귓속말의 르살린마저도 이사벨에 관해 호의적인 기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이사벨에 관한 대중의 우호도가 너무 높아서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을뿐더러, 비아톤의 경고가 지나치게 무서웠다.
르살린은 윗선으로부터 크게 질책받았다.
‘두고 보자.’
비아톤의 행동은 지나치게 선을 넘은 행동이었다.
지금은 그냥 넘어가지만, 그녀는 언론에 몸담은 기자로서, 쉬이 넘어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 반짝인기는 금방 사그라져.’
하루에도 몇 명의 스타가 탄생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다.
황녀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대중들의 관심이 멀어졌을 때, 수많은 것들을 엮어서 터뜨려주마. 감히 자유언론 귓속말의 수석기자를 이렇게 모욕해?’
* * *
한편, 알페아의 국왕 라헬라는 이사벨과 마지막 만찬을 가졌다.
“입에 좀 맞니?”
“오와아아.”
이사벨은 옥수수로 만든 수프를 떠먹었다.
이사벨의 입맛에 딱이었다.
“최고로 맛있는 옥수수 수프예요!”
뒤쪽에 시립한 주방장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이사벨의 입가에 옥수수 수프가 살짝 묻어 있었는데, 저 모습이 천박하지 않고 굉장히 사랑스러웠다.
“그래, 주방장이 오늘 좀 열성을 다한 것 같구나.”
이사벨이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셰프님. 사랑해요.”
이사벨의 몸은 현재 7살이었다.
어떠한 기분이 최고조에 달하면 이성의 끈이 끊어지고, 솔직한 본심이 그대로 튀어나왔다.
달콤한 옥수수 수프.
식전 빵인 달콤하고 짭조름한 마늘 바게트.
이사벨이 병실에서 꿈꾸고 또 꿈꾸었던 천국이 이곳에 있었다.
“여기는 천국인가 봐요.”
“황녀는 황족답지 않게 표정이 정말 풍부하구나.”
이사벨은 순간 아차, 싶었다.
황족은 어느 순간에도 평정심을 지키며 감정을 내비치지 않아야 한다는 덕목이 있었다.
그래야 제국민들에게 안정된 신뢰감을 줄 수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이건 어쩔 수 없었다.
“바게트 빵이 너무너무 맛있는걸요.”
연유를 콕 찍어 먹었다.
우물우물.
겉바속촉의 바게트가 연유와 함께 입 안에서 녹아내렸다.
달짝지근하면서 느끼하지 않은 마늘 향과 연유와 버터가 어우러진 고소하고 달콤한 풍미가 입 안을 풍성하게 채워주었다.
발가락 끝까지 달달함이 퍼져나갔다.
그 행복감에 취한 일곱 살의 육체는 또 이성의 통제를 벗어나고 말았다.
“으으음, 존맛탱이에요.”
“존맛탱?”
“엄청 맛있다는 뜻이에요.”
라헬라는 풉, 하고 웃었다.
저런 특이하고 이상한 말은 어디서 들어서 사용하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사실 듣자마자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은 것이 참 신기했다.
“그래, 존맛탱이로구나.”
만찬이 끝났다.
이사벨은 밖으로 나가려는 쉐프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고마워요. 잘 먹었어요. 최고였어요.”
이사벨은 이 맛난 음식을 대접해 준 쉐프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어떻게 하면 일곱 살의 마음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조금 고민하다가 이내 활짝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촥! 치켜들었다.
“진짜 존맛탱이었어요!”
“황녀님의 한 끼를 대접하게 되어 진심으로 영광이었습니다.”
쉐프는 눈치를 살피고서는 함께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처음 해보는 말이라 어색하고 머쓱했지만, 황녀가 먼저 선창했으니 후창하는 것이 예의였다.
조금 민망하긴 했지만 각 잡힌 상태로 후창했다.
“조…… 존맛탱!”
* * *
흐흐, 흐흐흐흐.
웃음이 새어 나왔다.
[존맛탱.]이것은 이제 가문의 가훈이었다.
그간 매너리즘에 빠져가던 쉐프는 오늘 과거의 열정을 되찾았다.
오래간만에 엄청나게 행복해졌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 아내를 붙잡고 호들갑을 떨었다.
“정말 눈물 나게 아름다우신 분이었어. 그런 사람은 처음 봤다고!”
외모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다른 사람에게 기분 좋은 행복을 선물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그것이 정말 아름다웠다.
“황녀님의 시녀가 어떻게 그렇게 존맛탱 디저트를 개발할 수 있었던 건지 알 것 같아.”
“존맛탱이 뭐야?”
“그런 게 있어, 후후후.”
“당신, 원래 아이 싫어하잖아.”
“그놈은 죽었어.”
그는 아이를 갖지 않기로 아내와 합의한 상태였다.
아이 없이, 둘이서 세상을 즐기기로 했었다.
가끔 아내가 ‘그래도 아이 한 명쯤은 낳으면 좋지 않을까?’라는 제안을 항상 거부했었다.
“말 바꿔서 미안한데…… 우리 딸 한 명만 가지면 안 될까? 아무리 생각해도 딸이 답인 것 같아.”
등짝을 한 대 세차게 얻어맞기는 했지만 아무튼 그는 오늘 무척 즐거웠다.
이사벨은 한 가정의 인생 계획을 바꿔놓았다.
* * *
본인이 한 가정의 미래를 완전히 바꾸어놓았다는 것도 모른 채, 이사벨은 잠자코 라헬라의 말을 들었다.
“나는 사람을 안 믿어, 상황을 믿지.”
그건 라헬라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이었다.
그녀 또한 이사벨의 사랑스러움에 물들어가는 중이었지만, 그녀는 그것을 머리로 거부했다.
‘황제 폐하께서 이 모든 것을 지시하셨을 것이다.’
물론 황제인 론은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황녀의 모든 행동에 정치적인 계산이 들어갔다는 얘기지.’
그래서 라헬라는 황녀라는 ‘사람’의 사랑스러움을 믿지 않기로 했다.
대신, 황제가 황녀를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 ‘상황’을 믿었다.
그리고 이번에 이사벨이 자원봉사 현장에서 보여준 마법력의 힘을 믿었다.
“그리고 내가 보고 판단한 것만 믿어. 나는 황녀가 황녀의 마법력으로, 정확히는 테이사벨 이동 관문을 통해 어떤 음모를 꾸민다고 생각하지 않아. 거짓된 기술로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오히려 마법 연방 측에서 기를 쓰고 ‘테이사벨 이동 관문’을 비방하는 이유는 알 것 같았다.
“그런 의미에서 말이야…….”
라헬라가 무언가를 제안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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