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82)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82화
라헬라가 말을 이었다.
“나는 황녀가 가진 지식과 기술들이 훗날 인류를 도약시킬 어떤 계기가 될 것 같다는 판단을 했어. 그래서 말인데, 우리 알페아 왕국에서 네가 제안한 ‘테이사벨 이동 관문’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사용해 보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지금 같은 분위기에서라면 국민들의 반발도 크지 않을 것 같아.”
“정말요?”
이사벨이 눈을 깜빡거렸다.
“그래. 지금 같아서는 네가 똥을 싸도 박수를 쳐줄 분위기니까, 이때가 적기라고 판단했어.”
“정치적으로 꽤 위험한 결단이잖아요.”
빌로티안 제국은 외교와 정치에 소극적이다.
지혜로운 황후 세르나가 등장하기 전까지 빌로티안은, 그저 검술만을 추앙하며 무력만으로 쌓아 올린 제국이었다.
따라서 정치적 입지는 마법 연방 쪽이 우위에 있었고. 하지만 지금 라헬라는 마법 연방이 아니라 빌로티안 쪽에 서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보이지 않는 불이익을 감당해야만 할 가능성이 높았다.
“사람은 누구나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거든.”
라헬라는 왕합회의를 아직 잊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빨리 끝난 왕합회의 첫째 날 자정을.
‘곧 있을 자정은 폐하께서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거든요.’
‘그리고 제일 피곤해지고 싶어 하는 날이죠.’
‘폐하께서 부끄러워서 그래요. 곧 있을 0시는 황녀의 생일이랍니다.’
그 모든 것은 황후가 내리는 시험 같은 것이 분명했다.
왕합회의 첫째 날.
황녀의 생일이 황제에게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날 일곱 명의 왕은 황실의 진의가 무엇인지 파악하고자 애썼으나 딱히 소득은 없었었다.
‘일곱 명의 왕 또한 황녀의 가치를 알아보라는 무언의 주문이었겠지. 그것은 황녀를 지지하라는 무언의 암시였다. 확실해.’
그게 황실의 ‘진의’였을 것이다.
……라고 판단했다.
물론 황후의 진의 같은 건 없었고, 황제는 진짜 피곤해지고 싶고 부끄러워했을 뿐이었지만 말이다.
이사벨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점차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 * *
라헬라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이만 자리를 비켜주지.”
이사벨의 5년을 받아 가기 위하여 북부 대공 로베나가 찾아왔다.
이 자리에 남은 사람은 로베나와 이사벨뿐.
“약속을 지켜야지, 황녀.”
“좋아요.”
로베나는 이사벨을 힐끗 쳐다보았다.
이사벨의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최대한 티 내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는 것이 훤히 보였다.
‘혼자서 외눈박이 거인을 상대하려 한 걸 보면 심지가 무척 곧고 단단한 아이인데, 또 어찌 보면 영락없는 어린애고.’
지금도 보면 눈빛은 단단한데 몸은 호달달 떨리고 있다.
‘뭐랄까, 몸과 정신이 좀 따로 논다고나 할까?’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굳이 따지자면 아이의 몸에 어른의 영혼이 들어가서 묘하게 싱크가 안 맞는 그런 느낌이네.’
이사벨이 로베나 바로 앞에 섰다.
이사벨의 몸은 여전히 호달호달 떨리는 중.
“가요.”
“그러지.”
이사벨은 최대한 씩씩하게 걸었다.
로베나가 물었다.
“5년이 사라지는데, 두렵지 않나?”
“두려워요. 엄청 엄청 무서워요.”
“그런데 왜 굳이 이런 선택을 하지?”
“벌꿀이는 제 소중한 친구니까요.”
앞장서서 걷는 로베나의 입가에 미소가 서렸다.
‘정말 좋은 친구를 만났구나, 아론.’
로베나와 이사벨은 알페아 왕궁에서 가장 가까운 신전을 찾았다.
신전 주변에는 사람이 무척 붐비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이상하게도 오늘은 사람이 없었다.
커다란 대문 앞에 문지기 한 명만이 있을 뿐이었다.
“응?”
이사벨은 그 문지기에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문지기를 보자마자 묘하게 떨림이 멈췄다.
“왜 그러느냐?”
“문지기분과 인사해도 될까요?”
“마음대로.”
로베나는 상관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토다다다.
‘귀엽게도 뛰는군.’
로베나가 보기에 이사벨은 아직 짧았다.
아주 짧은 다리로 열심히도 달렸다. 저 발걸음에는 묘하게 반가움과 기쁨이 담겨 있었다.
“안녕하세요.”
“…….”
문지기의 몸이 움찔했다.
이미 로베나 대공과 이사벨 황녀가 방문할 것이라는 공문이 전달된 상태였고 문지기는 이사벨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지기는 대답하지 않았다.
로베나가 다가왔다.
“문지기. 그대는 어찌하여 예를 갖추지 않느냐?”
“…….”
로베나는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그녀의 눈이 반달처럼 휘어졌다.
사실 그녀는 무척이나 즐거웠다.
[로베나. 입 다물어.] [근데 신기하네요?] [뭐가 말이냐?] [체형과 얼굴을 모두 바꾸었는데, 신기하게도 이사벨이 자기 아버지를 알아보는 것 같아서요. 응? 왜 묘하게 자랑스러워하시는 거 같지?] [전혀.] [아, 전혀 자랑스러우시구나.]이사벨이 다시 말했다.
“안녕하세요. 문지기님. 저 혹시 괜찮으시다면 손을 한 번만 잡아주실 수 있어요?”
“…….”
약간의 침묵이 흐른 뒤, 문지기로 변장한 론이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부탁이에요. 손을 잡아주세요.”
이사벨은 똘망똘망한 눈으로 문지기를 올려다보며 고사리 같은 손을 내밀었다.
대략 10살 언저리의 육체를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론의 눈으로 보는 이사벨의 손은 아주 자그마했다.
아빠의 눈으로 본 이사벨은 세 살일 때도 아기였고, 다섯 살일 때도 아기였고, 일곱 살이 된 지금도 아기였다.
“…….”
론이 손을 내밀자 이사벨은 깡총 뛰어 그 손을 탁! 낚아챘다. 그리고 두 손으로 꼭 잡았다.
“아바마마.”
“…….”
“손을 잡으면 알 수 있어요.”
론의 몸이 움찔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황녀님.”
“아바마마의 손을 잡으면 무척 안심이 돼요. 세상에서 쩨일쩨일 든든한 손이거든요.”
전생의 이사벨은 엄마 아빠의 손을 그리워했었다.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병원을 찾는 아이들이 그렇게 부러웠다.
저 손을 잡고 병원에 오면 하나도 안 무서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 환상과 갈망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건 정말이었다.
‘이제 안 무서워!’
5년이 사라진다는 사실은 너무 슬프기는 했지만 아까만큼 무서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
이사벨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이제 안 무서워요.”
어차피 죽었어야 할 인생이었다.
그 인생에 16년의 선물이 더해진 것뿐이었다.
그것도 평생 꿈꿔왔던 선물이.
로베나가 의외라는 듯 말했다.
“정말로 안 무서워하는구나.”
“네.”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아바마마의 손을 잡고 있잖아요.”
“그게 뭐?”
“너무너무 든든하고, 엄청 엄청 안심돼요.”
“…….”
“제 소망이었거든요.”
“겨우 그게?”
겨우 아빠의 손 한 번 잡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로베나의 용안에 잡힌 이사벨은 눈부셨다.
인간이 진심으로 풍성한 행복을 느낄 때에 저런 빛이 보인다.
‘근데…….’
그 밝은 빛을 뿜어내는 사람은 이사벨뿐만이 아니었다.
물론 인간의 경지를 아득히 뛰어넘은,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그걸 제어하고는 있기는 했으나 그래도 용안에는 잡혔다.
‘저 인간도 행복해하잖아?’
론의 몸에서 미세한 빛줄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로베나는 결국 푸하하!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폐하. 그냥 목걸이 벗어요. 그거 해봐야 어차피 다 들키네요.”
“…….”
이사벨과 로베나는 이 문지기가 론이라는 사실을 다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론은 본래의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로베나는 킥킥 웃으며 말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모두가 모르는 뭐 그런 건가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대공.”
“그래요, 뭐 그런 걸로 해요. 황녀의 손은 왜 그렇게 보물 쥐고 있듯 꼭 쥐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이사벨은 순간 허한 느낌을 받았다.
방금까지 눈앞에 있었고, 손을 잡아주었던 아빠의 모습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손을 덮어주던 따뜻한 느낌이 사라지자 조금 시무룩해졌다.
“힝.”
“실망할 필요 없어. 어차피 이 주변 어디에서 널 훔쳐보고 있을걸.”
“아바마마가요?”
“내가 진짜로 네 5년을 빼앗아가려 들면 내 목을 치겠지.”
“……네?”
“그게 걱정돼서 굳이 여기서 저러고 있는 거야. 아니, 그럴 거면 애초에 그냥 옆에 있으면 되지, 왜 마법 목걸이까지 목에 걸고 저러고 계신지는 잘 모르겠지만.”
로베나가 앞장서서 걸었고 이사벨이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신전 안에도 인기척을 찾아볼 수 없었다. 거대한 대리석 기둥들만 일렬로 쭉 늘어서 있었다.
“황녀.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얘기해 줄까?”
“뭔데요?”
“네 아버지 말인데, 나랑 아주 오랜 인연이 있다는 거 알지?”
“알고 있죠. 하늘섬의 주인 북부 대공과 빌로티안 황제 론의 일대기는 엄청 유명한걸요.”
“나랑 엄청나게 많은 전장을 함께 누볐던 것도 알지?”
“네. 알고 있어요.”
“네 아버지는 반지 하나 끼는 것도 아주 혐오하는 사람이야. 검을 쥐는 감각이 미세하게 달라진다나 뭐라나.”
“…….”
“근데 오늘은 아예 체형이 바뀌어 버리는 마법 아티팩트를 사용했네? 내가 제발 좀 아티팩트 좀 써달라고 해도 요지부동이었어. 그 똥고집 때문에 내가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로베나가 아는 론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일이었다.
“절대로 안 할 일을 했어, 자기 딸을 위해서.”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을 네가 변하게 만들었구나.
로베나는 빙그레 웃고서 말했다.
“너는 참 좋은 사람인가 봐.”
신전 중앙에 도착했다.
거기에는 나이가 무척 많은 노신관 한 명이 서 있었다.
“약속을 이행해 볼까?”
노신관이 입을 열었다.
“안녕하신지요, 저를 소개하겠습니다. 제 이름은 첨예한 북풍과 차가운 혈류의 대현자, 카델리논입니다.”
이상하게도 자기 스스로를 수식하는 말이 너무 길었다.
마치, 어쩌고 흑염룡 카델리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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