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83)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83화
나는 ‘첨예한 북풍과 차가운 혈류의 대현자, 카델리논’이라는 말을 들음과 동시에 이율배반적이고도 복잡미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너무 이상해!’
그리고…….
‘멋있어!’
내 이성은 이상하다 못해 부끄럽다를 외치고 있었고, 내 감성은 멋있다고 외치고 있었다.
7살 육체의 부작용은 심각했다.
저런 게 멋있을 리 없는데 심장이 콩닥거려서 자존심이 상하고 말았다.
“왜 그러시지요?”
“너무 멋있는 이명이에요.”
“……예?”
첨예한 북풍과 차가운 혈류의 대현자 ‘카델리논’ 님마저도 내 반응이 의외인 듯했다.
틀림없어, 저 사람도 자기 이명이 지나치게 길고 중2병 냄새가 가득하다는 걸 알고 있는 거야.
“진심이십니까?”
“진심이에요!”
“진짜요?”
“네, 진짜로요. 다시 한 번 말해주세요.”
“무엇을요?”
“그 멋있는 이명 말이에요.”
“처, 첨예한 북풍과 차가운 혈류의 대현자입니다.”
왜인지 노신관님은 조금 기뻐 보였다.
그는 애정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방긋방긋 웃는 모습이 무척 귀여우시군요.”
“정말요?”
나는 가져본 적도 없는 할아버지의 따뜻한 시선을 느낀 것 같았다.
“대현자님도 멋있어요.”
대현자님은 나를 한참이나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대현자님을 바라보았다.
‘나를 불쌍히 여기시는 건가?’
내 5년을 빼앗아갈 장본인이라서 그런가? 그래서 이렇게 나를 빤히 보는 건가?
‘눈썹에 가려져서 표정이 잘 안 보여.’
꽤 오랜 시간 정적이 흘렀다.
아마도 대현자님은 나를 어여삐 여기는 것이 틀림없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대현자님이 물었다.
“……진짜 진심이네?”
“네?”
“진심으로 멋있다고 해준 사람은 황녀님이 처음이라서요. 세상에, 이렇게 안목이 뛰어날 줄이야.”
잘은 모르겠지만 대현자님은 꽤 감동한 것 같았다.
나이를 많이 먹으면 오히려 어려진다더니, 그런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 사소한 말 한마디와 칭찬이 할아버지를 기쁘게 만들 수 있다는 건 썩 괜찮은 경험이었다.
‘어차피 거짓말도 아니니까?’
7살의 육체는 진심으로 저 중2병 이명이 멋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성만 적절히 통제하고 있을 뿐, 나는 거짓말하는 게 아니었다.
“진심으로 멋있으니까요!”
“언젠가 황녀님 같은 분이 나타나 주실 줄 알았습니다. 제 진가를 알아봐 주시는군요. 후후후.”
그때, 로베나 대공이 말했다.
로베나 대공은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있었는데 평소와는 묘하게 분위기가 달랐다.
“후딱후딱 해치웁시다, 좀.”
“지금 중요한 대화 중이지 않습니까?”
“아이 씨, 그러니까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로베나 대공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래도 두 사람은 무척 친한 관계인 것 같았다.
“어허, 로베나 대공, 제 연배가 훨씬 높은데 그렇게 반말하시면서 언성을 높이면 쓰겠습니까?”
“……죽여 버린다.”
그랬더니 대현자님은 팔뚝을 걷어 올렸다.
앙상한 팔뚝을 들어 올리며 자신만만하게 말씀하셨다.
“맞짱 신청은 환영합니다.”
“…….”
나는 나도 모르게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대현자의 입에서 ‘맞짱’이라는 단어가 나오니까 뭔가 인간미 넘치고 좋은 것 같다.
그래도 경고는 해줬다.
“대현자님! 로베나 대공님은 엄청 강하다구요.”
왜인지 대현자님은 로베나 대공님을 애송이 바라보듯 바라보고 있었다.
* * *
약속은 약속이니까. 내가 이렇게 해야 벌꿀이가 살 수 있으니까.
벌꿀이는 내 소중한 친구인걸.
자꾸 그렇게 되뇌면서 제단에 누웠다.
‘무서워.’
내게 주어진 이 삶이 소중한 만큼, 내가 빼앗길 5년이 너무 두려웠다.
대현자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대현자님의 손이 하얗게 물들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어떤 따뜻한 기운이 나를 덮었다.
약간 졸려왔다.
그런데 그때, 븅븅! 소리가 들려왔다.
[반대.] [절대 반대!]“캬악! 캬아악!”
날카로운 쇳소리도 들려왔다.
나는 번쩍 눈을 뜨고서 내 배를 바라보았다.
내 배 위에 벌꿀이가 올라와 있었다.
‘김벌꿀?’
말을 하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김벌꿀의 몸에서 오색찬란한 마나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사벨 지켜.] [절대 지켜!]벌꿀이는 내 배 위에 앉아 내게 다가오려는 대신관님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말도 안 나오고 몸이 안 움직여. 벌꿀이를 말려야 하는데.’
여기서 벌꿀이가 또 사고 치면 정말 곤란해진다.
5년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로베나 대공의 눈꼬리가 휘어지는 것이 보였다.
“엄마도 못 알ㅇ…….”
엄마?
방금 엄마 뭐라고 한 것 같은데, 더 이상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뭐랄까, 세상과 분리된 느낌이 들었다.
보이긴 보이는데 보이는 것 같지 않았고 들리긴 들리는데 들리는 것 같지 않았다.
동떨어진 세상에 풍덩! 잠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와중에 신비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황녀의 목숨값을 대신하겠다고?”
사람의 목소리인데 사람의 목소리 같지 않은 기묘하고 상서로운 느낌.
꿈속에서 들리는 것만 같았다.
‘안 돼!’
나는 손을 내저었다.
“그래. 그렇다면 네 5년, 아니, 네 10년을 대신 가져가마.”
아니야. 그거 아니야.
그러면 안 돼.
이상하게도,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10년. 인정. 10년 드림. 대신 이사벨, 절대 지켜.”
말투는 벌꿀이가 틀림없는데, 목소리는 사람의 소리였다.
앳된 소년이 분명 그렇게 대답했다.
‘나 지금…… 꿈을 꾸는 것 같…….’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잠에 빠져들었다.
* * *
북부 대공 로베나.
사실 지혜의 용인 라비나는 킥킥대고 웃었다.
“나는 그렇다 치고, 엄마도 못 알아보네!”
현재는 대신관이나, 본래는 어쩌고 흑염룡 카델리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게.”
자식새끼 키워봐야 남는 거 하나 없다더니.
에휴…….
에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도 인간들이나 쓰는 말인 거 알지? 용이 자식에게 무슨 그런 걸 기대해? 이래서 어릴 때 자아정체성이 흔들리지 않도록 딱 잡아놔야 하는 거야. 넌 용이니, 인간이니?”
“아, 몰라. 싸움만 잘하면 됐지.”
“……그래, 뭐 그런 걸로 해라.”
라비나와 카델리나는 이사벨의 배 위에서 잠든 아룬(김벌꿀)을 바라보았다.
“진짜 목숨을 내놓겠다네.”
“저 모습이 꼭, 어디 사는 누구 같지?”
“그게 누군데?”
“사춘기를 아주 심하게 겪었고, 힘이 무척 강한 용 말이야. 한 인간이 너무 귀여워서 미쳐 있었던 어쩌고 광룡.”
카델리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딴청을 피웠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라비나가 말했다.
“곧 둘 다 깨어날 거야. 어쨌든 확인은 했네. 이사벨은 정말 괜찮은 애라는 걸.”
“흥,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는 더 두고 봐야 알지.”
“또, 또, 인간들처럼 군다.”
지혜의 용 라비나는 인간세계의 단어를 떠올렸다.
“벌써 시어머니 노릇이라도 하려는 거야? 정신 차려, 쟤는 지금 그냥 벌꿀오소리야.”
“누, 누가 그런대?”
“게다가 까탈스러운 시어머니 컨셉은 인간세계에서도 500년 전 컨셉이야. 한물이 가다 못해 유물이 된 컨셉라고.”
뭐, 네가 왕성하게 활동하며 자아를 확립했던 게 500년 전이니까 그때의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는 게 이상하지 않긴 하지만.
“아무튼 언니라면 어떻게 하겠어?”
“나라면 이사벨과 벌꿀오소리가 오손도손 행복하게 살도록 내버려 두겠어. 공식적으로 10년을 빼앗았어. 벌꿀오소리는 이제 끽해야 5년 더 살까, 말까야.”
“5년이라…….”
“이사벨과 함께 많은 경험을 쌓는다면, 아룬도 충분히 괜찮은 용으로 성장할 수 있을 거야. 아룬의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도록 잘 잡아주고.”
그렇게 말은 했지만 라비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너는 아룬의 기억을 건드리지 않겠지?’
라비나가 아는 카델리나는 아주 특이한 용이었으니까.
‘앞으로 기대가 돼.’
이사벨과 아룬이 과연 어떤 미래를 그려갈지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기로 했다.
* * *
얼마 후, 이사벨이 깨어났고 로베나가 물었다.
“벌꿀오소리가 네 5년 대신, 자기 10년을 주겠다고 약속했어. 어떻게 생각해?”
“안 돼요.”
아직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눈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벌꿀이는 저랑 약속했어요.”
“뭘?”
“벌꿀이가 저보다 늦게 죽기로 약속했단 말이에요.”
이사벨은 한참이나 울었다.
카델리나와 라비나는 용안으로 이사벨의 진심을 읽어냈다.
둘 다 같은 결론을 내렸다.
‘이사벨은 아룬을 위해서 제 목숨을 확실히 바칠 수 있는 아이다’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로베나가 고개를 저었다.
“이미 김벌꿀의 10년을 가져왔어. 이미 벌어진 일이라 어쩔 수 없단다, 얘야.”
이사벨은 30분 내내 울었다.
로베나는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우는 이사벨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이제 와서 내가 이런 말을 하기는 좀 뭐한데 말이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