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84)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84화
이사벨은 로베나 대공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지금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소리도 내지 않고 울기만 했다.
여전히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으나 손만 간신히 움직여 김벌꿀이 엉덩이 쪽에 손을 댔다.
손가락 끝을 통해 김벌꿀의 온기가 느껴졌다.
그게 지금 이사벨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김벌꿀의 10년이 사라졌다는 무서운 생각에, 이사벨은 계속 울었다.
로베나는 계속해서 용안으로 이사벨을 지켜보았다.
이사벨이 느끼는 슬픔과 고통이 로베나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그 깊이가,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깊었다.
‘무슨 꼬마애가 이렇게 짙은 절망을 느껴?’
단단한 정신을 가진 지혜의 용 라비나의 마음마저 저릿해질 정도였다.
‘겨우 7살짜리 정신세계로 이 정도의 어둠을 느끼기는 쉽지 않을 텐데.’
정말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견디며 오랜 시간 인내해 온 사람쯤 되어야 이 정도의 깊은 감정을 느낄 수 있을 텐데.
‘자기 목숨도 아니고, 벌꿀오소리의 10년이 이런 슬픔을 만들어낸다고?’
지혜의 용 라비나는 이 상황을 이성적으로 이해하려 애썼다.
용은 본래 수명에 연연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심심하고 무료해서 자살하는 용이 있을 정도였다.
‘이 아이에게 10년이라는 건 도대체 어떤 거지?’
로베나는 에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왜 소리는 안 내고 우는데?’
누구보다 슬프게 울고 있는 저 꼬마 아이가, 누구보다 조용히 울고 있었다.
감정의 동요가 많지 않은 지혜의 용이건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찌릿찌릿해서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도저히 가만히 두고 보기가 어려웠다.
‘이런 돌발행동은 카델리나한테나 어울리는 건데. 아니. 괜찮아. 나는 지금 용 라비나가 아니라 북부 대공 로베나니까. 인간이니까. 인간은 원래 변덕스러우니까.’
그렇게 합리화했다.
로베나의 예정에 없던 행동을, 자기도 모르게 해버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터덜터덜 걸어가 이사벨을 꼭 안아주었다.
“병 주고 약 줄게.”
아니, 근데 이사벨아. 쟤는 용이야.
10년 가져가 봐야 인간들 기준으로는 1초도 안 돼.
아니, 그리고 너 똑똑하잖아.
쟤한테는 나르비달의 낙인도 없는데 우리가 무슨 수로 생명을 뽑아오겠니?
그게 말이 되니?
‘그 정도의 판단이 서지 않을 정도로 이성이 크게 흔들린 거겠지?’
용인 라비나는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그렇지만 그 감정의 실체는 분명히 존재했다.
“나도 네 친구가 되어줄게. 뚝. 그만 울고. 앞으로 언니라고 불러.”
북부 대공 역할에서 은퇴했던 라비나는 다시 북부 대공으로 복귀하기로 작정했다.
이사벨과 아룬을 가까이서 지켜보기 위하여.
그러나 이사벨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언니라고 부르라니까? 이건 엄청 영광되고 존귀한 일이…….”
이사벨이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후에에에엥!”
“……아이. 진짜, 거짓말이야. 쟤 생명 안 갖고 왔어!”
“흐에에에에에엥!”
“생각이란 걸 좀 해봐라. 쟤한테 나르비달의 낙인이 있니?”
어느덧 이사벨은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라비나가 이사벨을 구속하고 있던 마력을 풀어주었기 때문이다.
“흐에에에에엥!”
“나르비달의 낙인이 없는데 어떻게 10년을 뽑아오겠냐고!”
“야야, 그만 울어. 엄청 못난이 같아.”
한번 걷잡을 수 없이 감정의 폭풍이 몰아치자 이사벨은 이성으로 자신의 몸을 통제하기 어려웠다.
“미워요!”
“……뭐?”
“언니 밉다고요!”
그렇게 버럭! 소리를 질러놓고 나서야 겨우 정신이 돌아왔다.
* * *
‘망했다.’
매우, 몹시, 상당히 망해 버렸다.
그 무서운 북부 대공 로베나에게 밉다고 말해 버리다니.
히끅, 히끅.
아니, 도대체 언제까지 히끅거릴 거냐…… 이 몸아!
겨우 이성을 되찾기는 했지만 호흡이 가빴고 약간 어지러웠다.
로베나 대공의 눈치를 살펴봤는데 표정을 읽기가 어려웠다.
“뭐라고 했니?”
“그게…….”
“방금 밉다고 한 것 같은데.”
“제, 제가요?”
잘 모르겠다. 일단은 잡아 떼보자.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했어. 최대한 화사하게 웃어보자!
“눈물, 콧물 범벅된 얼굴로 그렇게 웃어봐야 하나도 안 예쁘다.”
로베나 대공이 손가락을 튕기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허공에서 물보라가 일어나는가 싶더니 이내 반투명한 형상의 소년이 되었다.
‘정령? 와, 뭔데? 왜 잘생겼는데?’
이 세계는 하다못해 정령마저 잘생긴 곳이었다.
내 두 눈이 절로 깜빡였다.
‘나이대가 비슷해 보여서 그런가, 저 잘생김이 드라마틱하게 체감되네.’
그 잘생김에 감탄하면서 나는 나대로 현타를 느끼고 말았다.
‘이래서 우는 애들한테 사탕 주면 웃는 거구나.’
하나에 정신 팔리면 다른 건 완전히 잊어버리는 어린애가 된 것 같아 약간의 현타를 느끼고 말았다.
그러나 그 현타마저도 오래 느끼지 못했다.
정령이 방긋 웃더니 이사벨의 얼굴을 손으로 문질러주었기 때문이다.
“간지러워!”
꺄르르, 하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진짜 애가 따로 없었다.
내 손으로 얼굴을 뽀독뽀독 만져보았는데 피부가 엄청 뽀송뽀송했다.
로베나 대공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야 좀 깨끗해졌네.”
정신도 차렸겠다, 세수도 했겠다. 이제야 이성이 완벽히 돌아왔다.
‘상황을 수습해야 해.’
로베나는 겁만 준 상황이지? 수명을 가져가지도 않았지? 이 상황은 고마운 상황이 틀림없지?
그런데 밉다고 소리를 빼액 질렀지?
“이사벨은 배은망덕했어요. 미안해요. 이사벨이 나빴어요.”
로베나 대공은 나를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쿡쿡-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자기 이름 자기가 부르는 거 혐오하는 사람인데 말이야.”
“제, 제가 그랬어요?”
기억이 안 났다.
내가 의도한 건 아니었고 그냥 ‘나’를 말하려고 했는데 입이 저절로 그렇게 움직인 것 같았다.
“네 언니가 되어주겠다고 말한 건 거짓말이 아니야.”
그러자 대신관 할아버지가 ‘언니!’ 하고 외쳤다.
그 모습이 약간 기괴해서 나는 할아버지를 쳐다보고 말았다.
왠지 잘 모르겠지만 할아버지는 약간 화가 난 것……?
아니다.
약간 시샘하는 것 같…… 은데? 뭐…… 지?
내가 로베나 대공을 언니라고 부르는 게 약간 마음에 안 드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내 착각일까?
“……라고요? 이모가 맞지 않겠습니까?”
에이, 내 기분 탓이겠지.
“나이 차이가 무척이나 많이 나니까 말입니다.”
“……네?”
아, 맞다, 나이 차이 많이 났지.
그렇지만 별로 상관은 없었다.
“하나도 안 이상한걸요.”
언니라는 호칭이 너무 잘 어울렸다.
마력이 좋기는 좋은가 봐, 진짜 안 늙네.
로베나 대공이 몇 살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20대 초반에서 중반 정도로 보였다.
‘그 정도면 언니지!’
헤실헤실 웃음이 나왔다.
벌꿀이도 괜찮고 나도 괜찮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데다가 북부 대공이 자기를 언니라고 부르라고 하니, 이보다 상황이 좋을 수 없었다.
“나중에 달고나 드릴게요. 고맙습니다. 언니가 생겨서 기뻐요.”
허리를 푹 숙였다.
“두 개 드릴게요.”
* * *
마르코 유르미엘.
대륙 제일의 감정사는 화들짝 놀랐다.
“어, 어어?”
청혼석에서 오색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찬란하다 못해 상서로운 빛이었다.
그러나 그 상서로움은 이내 불길함을 몰고 왔다.
쩌저적-
청혼석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아, 아, 아, 안 돼!!!”
저게 망가지면 천문학적인 금액을 배상해야 했다.
가문이 거덜 날 판이다.
“이, 이게 무슨……!”
결국 청혼석이 쪼개졌다.
“하아…….”
이를 데일사 시종장에게 어찌 말한단 말인가.
그는 깊은 좌절을 맛보았다.
퐁!
누군가 방귀를 뀌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아서 그는 신경질을 냈다.
“누가 방귀를 뀌어!”
그러나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퐁!
“응?”
청혼석이 쪼개진 자리에 작은 마법진이 하나 생성되어 있었다.
퐁!
그곳에서 뭔가가 솟아올랐다.
“반짝…… 여?”
반짝이는 보석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 굵기가 상당했다.
“저건 설마……?”
퐁! 퐁! 퐁!
보석이 계속 솟아났다.
퐁! 퐁! 퐁! 퐁! 퐁! 퐁!
다이아몬드 샘이 폭발했다.
“다, 다, 다이아몬드다!!!”
퐁! 퐁! 퐁!
다이아몬드가 계속 쌓여가고 있었다.
“지, 진짜 다이아몬드잖아?”
마르코는 잠시 혼절했다.
* * *
“알페아 왕궁까지는 제가 모셔다드리지요.”
나는 하마터면 문지기 아저씨에게 ‘아빠?’라고 부를 뻔했다.
느껴지는 기운은 분명히 아바마마인데 왠지 아바마마라고 부르면 안 되는 것 같았다.
딱 봐도 아빠인데 아닌 척을 하는 걸 보면, ‘모두가 아빠임을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하는 세계관’인 것 같았다.
나는 잘 모르겠지만 어른들의 어떤 중요한 이유가 있겠지!
나는 착한 어린이이므로 그 사정을 헤아리고 이해하기로 했다.
“정말요? 문지기님이 데려다주신다구요?”
“네. 마차를 대기시켜 놓았습니다.”
그때,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지기는 문지기의 역할을 해야지. 문지기는 문을 지키는 게 일이다, 문지기.”
“비아톤 선생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제가 모셔왔어야 했는데.”
비아톤 경은 다시 문지기 아저씨에게 시선을 돌렸다.
“문지기가 왜 배웅까지 하려 하지? 황녀님 수행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할 것이니 신경 끄도록, 문지기.”
비아톤 경이 무릎을 굽히고 앉아 내게 팔을 벌렸다.
그것은 마치 자석의 N극 같았다.
나는 S극이었다.
자연의 섭리여서 참을 수 없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끌려가서 와락 안겼다.
‘안심이야.’
나도 모르는 사이 크게 긴장했었던 것 같다.
비아톤 경의 품에 안기자 온몸의 긴장이 풀어지면서 깊은 안도감이 들었다.
문지기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녀님을 그렇게 함부로 안으시면 어떡합니까?”
아빠는 문지기 컨셉에 아주 충실한 것 같았고 비아톤 경도 분명 저 컨셉에 맞춰주고 있는 것 같았다.
역시 내가 모르는 어떤 사정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아빠의 기분을 좋게 하려면 나도 동참해야겠지?
“저는 좋아요. 비아톤 경은 저를 엄청 아껴주시는 선생님이시거든요.”
“황족의 몸에 손을 대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않습니까?”
“하지만 비아톤 경은 제국의 수석 보좌관이고, 제게는 제2의 아빠 같은 분인걸요?”
늘 따뜻하고 다정하고 의지가 되어주는 사람. 비아톤 경은 늘 고마운 사람이었다.
문지기 역할의 아빠가 또 말했다.
“황녀님은 안아주는 걸 그렇게 좋아합니까?”
“좋아해요!”
“어째서입니까? 비아톤 경이 그렇게 좋습니까?”
아빠는 비아톤 경을 아끼니까, 나도 비아톤 경을 좋아한다고 말해주면 아빠도 더 안심하고 좋아하겠지?
그 마음을 알아보려고 일부러 역할극을 하고 있는 건가?
음, 아마 그런 것 같았다.
나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네! 좋아해요! 엄청요.”
이렇게 말하면 아빠도 안심하고 좋아하겠지?
그런데 아빠는 지금 인상을 쓰고 있었다.
‘진짜 기분을 안 들키고 싶어서 일부러 인상을 쓰는 거구나!
진짜로 기분이 나쁠 리는 없었다.
마음이 무척 편안해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