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87)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87화
어릴 적부터 나는 식탐이 꽤 강한 편이었다.
병실 안에만 있으며 철저한 식단 관리를 받았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라는 것이 내 주장이지만, 사실 애초에 나라는 사람이 맛있는 것에 환장한 사람인 것 같기도 한 기분이 드는 건 비밀이다.
아무튼 나는 음식에 진심인 편이었고, 내가 아주 어릴 적 먹어보았던 떡볶이의 맛을 아직도 잊지 못했다.
‘먹을 수 없는 떡볶이, 외워나 보자, 라는 심정으로 레시피를 달달 외웠던 게 이렇게 포텐이 터질 줄이야!’
행복해진 나는 양 볼을 두 손으로 감싸고 희망찬 언어를 내뱉었다.
“오늘은 날씨가 제법 쌀쌀하니까 국물이 있으면 좋겠거든?”
나 혼자라면 힘들 것이었다.
최근 깨달은 것이 있는데, 나는 요리에 그다지 소질이 없는 편이었다.
요리하는 것보다 차라리 수학 공식 외우고 증명하는 게 훨씬 쉽고 재미있을 정도니 말 다 했지, 뭐.
아무리 뛰어난 레시피가 있으면 뭐 해. 내가 만들면 똥이 되는데.
‘유리 언니가 옆에 있어서 진짜 너무나 다행이야.’
유리 언니는 수학영재임과 동시에-요즘에 수학은 손 놓은 듯하다-요리 천재였다.
아레나 궁에서는 유리 언니를 타고난 요리연구가라고 부를 정도였다.
어엿한 요리연구가로 통하는 유리 언니는 내가 1을 요청하면 10을 만들어 오는 천재 중의 천재, 아주 바람직하기 짝이 없는 우량 천재였다.
내가 말했다.
“멸치랑 다시마로 육수를 내고.”
그리고 유리 언니는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을 아는 천재였다.
“음, 그러면 멸치 머리랑 똥은 제거하고 살살 볶은 다음 곱게 빻거나 갈아서 준비하는 게 좋겠네요.”
“그, 그래?”
그런 디테일은 잘 몰랐다. 난 그냥 레시피만 안다.
“제가 전에 만들어놓은 육수 팩이 따로 있는데, 그걸 사용해도 좋을 것 같아요.”
“좋은 생각이야!”
하, 진짜 사랑해, 언니.
꼴깍.
“대파를 넣어야 하는데…….”
“일부는 잘게 썰고, 일부는 길게 썰어서 넣으면 모양도 예쁘고 좋을 것 같네요.”
“그리고 떡이라는 걸 만들어야 하는데…….”
사실 나도 정확히 어떻게 만드는지는 몰랐다.
그렇지만 대략적인 개념을 설명해 주자 유리 언니는 실제로 떡을 만들어 왔다.
“언니는 역시 하늘이 내린 천재가 틀림없어.”
“그냥 제가 기뻐서 하는 일인 걸요.”
유리 언니는 나를 보며 웃었다.
그 꾸밈없이 맑은 미소에 나는 괜스레 조금 부끄러워지고 말았다.
내가 이렇게 사랑받아도 되는 걸까? 라는 생각이 아주 잠깐 스쳐 지나갔지만, 그 생각은 곧 탄생할 떡볶이 앞에서 무력하게 무너졌다.
“떡 넣고, 물 붓고, 다시마도 넣고, 흐흐흐.”
어릴 때 딱 한 번 먹어봤다.
드라마에서 내 또래 애들이 떡볶이 먹는 걸 보면서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나는 맨날 싱겁고 맛없는 병원 밥밖에 못 먹었으니까.
어쨌든 유리 언니는 결국 떡볶이를 완성해 냈다.
“이게 맞나요? 너무 생소한걸요?”
“이, 이거야.”
내가 기억하는 냄새와 비주얼.
완벽한 떡볶이였다.
“으으음!”
맛은 환상이었다.
이 세상을 뒤집어 놓으셨다.
“매, 매워.”
맵지만, 행복했다.
내 인생 두 번째 떡볶이는 너무나 강렬하고 아름다운 경험이었다.
“그렇지만 너무 맛있어.”
빌로티안의 육체는 아주 튼튼해서 매운 거쯤은 거뜬히 소화시킬 수 있었다.
위가 아프다거나 속이 쓰리다거나 배탈이 난다거나 하는 자질구레한 문제도 일으키지 않을 것이었다.
“유리 언니는 진짜 못 만드는 게 없네.”
“황녀님께서 훌륭한 레시피를 주셔서 가능했던 일인 걸요.”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원래 첫 시작이 어렵지, 일단 시작하고 나면 대부분이 술술 풀리는 법이었다.
떡볶이는 환상적일 정도로 맛있었지만 무언가 빠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 * *
어느 날 밤.
나는 그 무언가를 성찰하며 깨달을 수 있었다.
“라면 사리가 없었잖아!”
내 품에 안겨 잠들어 있던 벌꿀이가 화들짝 놀라서 나를 바라보았다.
[라면 사리?] [마물 이름? 처단해 줌?]아주 잠깐이지만 경계심을 폭발시켰던 벌꿀이는 3초 만에 다시 잠들고 말았다.
많이 졸린 모양이었다.
“그래. 라면 사리. 그게 필요해.”
물론 나는 라면 사리를 어떻게 만드는지는 모른다. 대충 면을 튀겨서 어떻게 어떻게 하겠지.
……라고 말했더니,
“그래. 이거! 내가 원했던 게 이거야!”
짠! 하고 라면 사리가 나타났다.
그리하여 라볶이가 탄생하였는데 이 또한 기적이었다.
빙의한 판타지 세계에서 K-라볶이를 먹을 수 있을 줄이야.
‘이왕 라면 사리가 생겼으면?’
나는 떡볶이만큼이나 라면을 좋아했다.
의사 선생님 몰래 라면을 먹어본 적도 있었다.
그때 크게 배탈이 나고 탈수증상이 와서 엄청 고생했었지만, 아무튼 라면을 먹는 동안은 행복했었다.
‘그렇지만 그런 마법의 가루가 정말 만들어질까?’
이 세계에는 라면이라는 개념이 없었고 당연히 라면 스프도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라면 스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도 전혀 몰랐다.
“황녀님께서 말씀하신 컨셉대로 한 번 만들어 봤는데, 입맛에 맞을지는 모르겠어요.”
나는 국물을 한 모금 먹어보았다. 그리고 나는 신세계를 보았다.
“헐?”
“왜 그러세요? 맛이 없나요? 다시 만들어 올까요?”
사실 라면에 대한 식욕 같은 건 내 결핍의 산물이라고 생각했다.
먹어본 적이 거의 없으니까. 남들 먹는 걸 부러워만 했었으니까.
그래서 엄청난 추억보정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추억보정이 아니었어!’
그런 게 아니었다.
단언컨대, 유리 언니 표 라면은 내가 먹어본 음식 중 최고로 맛있었다.
“진짜 대박이야. 어떻게 이렇게 맛있는 걸 만들 수가 있어?”
호로록-
나는 TV에서만 보았던 면 치기를 실제로 해보았다.
물론 처음이라 잘 안 됐다.
“처, 천천히 드세요. 뜨거워요. 입 안 다 데겠어요.”
나는 아직 끊어지지 않은 면을 문 채 나를 걱정하는 유리 언니를 바라보았다.
히히- 나는 웃었다.
문득, 새삼스레, 또 기분이 엄청 좋아졌다.
‘입천장이 하나도 안 데었잖아?’
꽤 뜨거웠는데도 말이다.
예전의 내 몸은 무척이나 예민하고 연약해서, 이런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아마 예전의 몸으로 이런 짓을 했다가는 응급 수술대에 올라갔겠지.
‘건강하고 튼튼하다는 건 정말 행복한 거야.’
나는 행복함을 만끽했고, 유리 언니는 꽤 보람차했다.
유리 언니는 맛있게 먹는 나를 보며 뿌듯해하면서도 좀 궁금한 듯 물었다.
“황녀님. 정말 이런 것들이 그렇게까지 행복하신가요?”
“응? 그렇게 티가 그렇게 많이 나?”
“네, 엄청요. 황녀님 옆에 있으면 행복에 물들어서 저까지 폭신폭신해지는 것 같아요.”
“응. 나한테는 이 모든 게 기적처럼 느껴져.”
이런 걸 아무 탈 없이 맘껏 먹을 수 있다는 건 기적이었다.
그런데 더 기적인 건, 이 어마어마한 육체는 살도 찌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워낙에 뛰어난 육체여서 칼로리 소비량 자체도 어마어마한 것 같았다.
떡이든, 밀가루든, 면이든, 튀김이든, 맘껏 먹어도 다이어트 걱정이 없다는 것은 진짜 기적이었다.
한편, 나르모르 오빠는 라면을 향해 야망을 불태웠다.
“냄새가 난다, 냄새가 나, 돈 냄새가!”
나르모르 오빠는 이걸 보자마자 대박 상품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곧바로 대량 생산을 하겠다고 밝혔다.
“보아하니 가격도 무척 저렴하게 뽑아낼 수 있을 것 같군요. 조리 시간도 빠르지, 물과 냄비만 있으면 이토록 균일한 맛을 낼 수 있지. 이건 정말로 대혁명입니다.”
음음, 맛있어, 진짜 맛있어.
나는 나르모르 오빠의 말에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경제와 관련된 지식이 그리 많지 않았고, 나르모르는 가만히 놔둬도 대부호가 될 사람이었다.
그냥 내버려 두고 응원해 주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괜히 내가 감 내놔라, 배 내놔라 하는 것보다는 그게 훨씬 효율적이고 좋은 방법일 테니까.
“응, 늘 말했듯이, 황실의 명예를 실추하거나 제국법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면, 나르모르 오빠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 * *
알페아 왕국에 본사를 둔 나르모르 코퍼레이션의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다.
나르모르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이미 저희는 제조 공장을 설립하고 확장해 본 경험이 있어서요.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 나는 뭘 도와주면 되지?”
알페아의 성왕 라헬라도 나르모르 코퍼레이션을 좋게 봤다.
나르모르 코퍼레이션의 본사와 공장이 알페아 왕국에 위치하고 있는 것 덕분에 상당한 고용 창출이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르모르 코퍼레이션은 직원 복지나 급여도 매우 준수한 편이었다.
황실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익률이 떨어지더라도 직원들의 복지와 처우에 크게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이 나르모르의 지론이었다.
“여태 그래왔듯 행정절차를 간소화하여 주시면 좋겠습니다.”
“어렵지 않은 일이군.”
다만 확인해야 할 것이 하나 있었다.
“황녀가 시킨 일인가?”
황녀는 황실의 정치적 무기로써 활용될 것이 분명했다.
말하자면 황실의 전략자산.
그러므로 나르모르 코퍼레이션의 약진이 황녀의 뜻인지 아닌지가 무척 중요했다.
“황녀님께서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거면 대답이 되었다.
이는 제국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초유의 프로젝트일 확률이 컸다.
그 파도에 잘 올라타야 했다.
실제로 첫 번째 파도에 잘 올라탔기에 지금 알페아 왕국이 부강해지는 중이었다.
두 번째 혁명의 파도가 들이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적극적으로 협력하지.”
나르모르는 협력사를 찾을 필요도 없었다. 협력사가 곧 알페아 왕가였으니까.
나르모르 코퍼레이션은 이미 공장 설립, 확장에 경험이 있었기에 일은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그리하여 혁명적인 먹거리 ‘라면’이 탄생하게 되었다.
나르모르가 후후후 웃었다.
“제조, 유통, 판매까지 전부 우리가 책임지고 있어. 그것도 왕국 단위로.”
수많은 사람의 입맛을 사로잡은 라면은 날개 돋친 듯 판매되었다.
나르모르 코퍼레이션은 돈방석에 앉는 듯했다.
그런데 세상 모든 일이 그렇게 쉽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