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91)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91화 [S공금]
하늘섬에 오기 전, 나르모르는 이사벨에게 당부했었다.
“제가 황녀님께 동의를 구하면서 무언가를 말하면 꼭 동의해 주셔야 합니다.”
“뭘 말할 건데?”
“상황 봐가면서 말할 예정입니다. 황녀님께서는 그냥 동의만 해주세요.”
“으음…….”
다른 사람이 저렇게 말을 하면 조금 더 의심하고 고려해 볼 법도 했지만 상대는 나르모르.
어차피 같은 배를 탔고 나르모르 호는 성공을 향해 착실히 항해할 것이 분명했다.
“알겠어.”
그리고 현재 토론장.
나르모르가 말했다.
“황녀님은 굶어 죽어가는 가난한 백성들을 외면하지 못했기 때문에 직접 라면 개발을 지시하신 겁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직접 나와 고초를 치르고 계신 거고요. 그렇지 않습니까?”
“…….”
이사벨은 순간 대답하지 못했다.
저런 마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사실 처음에는 그냥 라면이 너무 먹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떡볶이에 라면을 넣어 먹으면 라볶이가 되고, 이사벨은 라볶이가 너무너무 먹어보고 싶었으니까.
사실 이게 제일 큰 이유였다.
전생에서 먹어보지 못했던 것들을 다 먹어주겠어! ……와 같은 이유.
“황녀님께서는 평소 자신의 선행을 홍보하거나 애쓰려 하지 않습니다. 선행은 황족의 당연한 의무일 뿐, 그것을 미덕이라 생각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것이 황녀님의 모토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말을 아끼시고 있는 것입니다.”
내, 내가요?
그 말을 하지 못한 채, 이사벨은 침을 꼴깍 삼켰다.
“그렇기에 그 유명한 귓속말의 수석기자가 자기가 가진 걸 모두 내팽개치고 아레나 궁에 입성하기까지 했습니다. 제가 율리 기자님의 깊은 속마음까지 알 수는 없지만 아마 저와 같은 마음이겠지요. 참고로 율리 기자님은 황궁으로부터 기본적인 숙식 외에 아무것도 제공받지 않고 있습니다. 그녀가 순수한 호의로 황녀님 곁에 머물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건 저도 비슷합니다. 저는 머릿속부터 발끝까지 귀찮음으로 가득 차 있는 인간입니다.”
실제로 그는 빈민촌에서 뒹굴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사벨과 만난 것이고.
“사실 지금도 아주 귀찮습니다. 전 원래 욕심 같은 게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목표도 없고, 그냥 빈둥거리는 걸 최고의 가치로 치는 사람이거든요.”
이사벨은 외칠 뻔했다.
거짓말!
소설 속에서도 대륙 최고의 부호로 거듭나는 나르모르 로켓이 욕심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고?
설정에 버젓이 수전노라고 쓰여 있는데!
그렇지만 나르모르는 뻔뻔하게 말을 이어갔다.
“이런 저를 변화시킨 것이 황녀님의 고귀한 사상이었죠. 황녀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여전히 빈민가의 골목에서 빈둥거리며 세월을 보내고 있었을 겁니다. 이미 쉬고 있지만 더욱 격정적으로 쉬고 싶다고 생각하면서요.”
마레센츠는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대체 하고 싶은 말의 요지가 뭔가?”
“이사벨 황녀님이 뭐가 아쉬워서 이런 음식, 그러니까 저기 높으신 협회 관계자분들께서는 음식으로 취급조차 하지 않는 라면을 만드셨겠습니까? 무슨 이득이 있다고 이런 짓을 하셨겠습니까? 어차피 잘 돼봐야 남는 것도 하나 없고, 이렇게 구설수에만 휘말리게 되는데요. 오늘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예상 못 하셨겠습니까? 이미 테이사벨 이동 관문으로 수많은 견제를 겪어보신 분인데 말입니다.”
“흥, 나르모르 코퍼레이션이 곧 황녀의 것이라는 사실을 감추려는 건 아니겠지? 대륙을 상대로 돈벌이를 하겠다는 불순한 의도를 누가 모른단 말인가?”
나르모르가 씨익 웃었다.
라면 공장을 세울 때부터 당연히 저런 말이 나올 줄 알고 있었다.
그의 입에서 충격적인 말이 튀어나왔다.
“나르모르 코퍼레이션은 라면으로 단 한 푼의 이득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라면의 가격을 거의 원가에 가깝게 팔았다. 팔아 봐야 한 푼도 남지 않는 수준이었다.
원래 이건 나르모르의 계책이었다.
지금은 사업 초기였고 공격적인 투자를 진행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했다.
사람이 모여야 돈이 된다.
지금 당장의 돈보다는 사람을 끌어모으고 평판을 올리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했다.
어차피 알페아 왕국의 적극적인 지원도 있으니 당장의 손해는 감당 가능할 것이었으니까.
“회계장부도 모두 공개할 수 있습니다. 나르모르 코퍼레이션이 조금의 이득도 없이 라면을 판매하고 유통하고 있는 것을!”
‘그래야 더 큰 돈을 버니까!’
나르모르는 시기적절하게 분노한 모습을 보이며 탁자를 탁! 내려쳤다.
“황녀님의 아름답고 숭고한 뜻을 오해하지 않기를 바라서입니다. 대륙을 상대로 돈벌이를 했다고요? 무엇을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 그건……!”
평민 출신이 보이기에는 다소 무례한 태도였으나 3만여 명의 관중 중 그의 태도를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는 요리협회의 높으신 분들께서는 뭘 하고 계십니까? 먹는 음식을 주사로 투여해 놓고서는 위험하다, 비타민으로 먹여도 치사량에 가까운 양을 먹여 놓고서는 위험하다. 이 정도면 억지로 꼬투리를 잡으려는 것이 분명한 것 같은데요. 너무 이상한 거 아닙니까?”
“그, 그렇지 않…….”
“왜요? 그 잘난 요리에 비하면 너무 보잘것없어서요? 어느 배고픈 아이의 한 끼를 간단히 해결해 줄 수 있는 라면은 쓰레기고, 명망 높은 쉐프가 정성 담아 조리한 음식만 음식입니까? 배고픈 아이를 외면하지 못한 마음이 그토록 더럽고 추악한 것입니까? 고작 7살에 불과한 황녀님의 아름답고 숭고한 마음을 왜 이리 왜곡하려 드는 것인지 그 저의가 상당히 의심스럽습니다. 사실 높으신 분들은 가난한 이들이 굶어 죽는 현실보다 ‘음식다움’이! 정갈함이! 격식이! 더 중요한 모양이지요? 높으신 분들이 먹는 것만 음식이고, 가난한 이들이 먹는 건 쓰레기입니까?”
나르모르 코퍼레이션의 수장 나르모르가 3만여 명의 관중 앞에 눈도장을 찍는 순간이었다.
* * *
하늘섬의 주인, 북부 대공 로베나는 VIP 석에 다리를 꼰 채 앉아 있었다.
‘저 녀석, 제법이네.’
나르모르 코페레이션의 대표 나르모르.
그는 이사벨을 높이는 한편 스스로 똥물에 몸을 담갔다.
‘편을 나누고 갈등을 조장하는 거야말로 선동의 제1 전략이지.’
로베나가 보는 나르모르는 계략가였고 선동가였다. 아마 이사벨을 위해 저러한 포지션을 자처했으리라 판단했다.
‘가난한 이들과 높으신 분들. 두 부류로 갈라 버리면서 분위기를 과열시켰어.’
막연히 라면이 위험하다고 생각했던 많은 사람이 생각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요리협회의 요리사들이 자신들의 영역이 침범당하는 게 싫어서 거짓 소문을 날조했다는 인식이 강해지겠지.’
앞선 이사벨의 논리적인 이야기들은 그에 대한 근거가 되어줄 것이고.
로베나는 씨익 웃었다.
‘참 좋은 사람들을 곁에 뒀구나.’
이사벨 옆에 좋은 사람들이 모이는 이유도 잘 알고 있었다.
로베나의 마음속에도 이사벨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리고 있었으니까.
이사벨에게는 그런 힘이 있었다.
“중재를 하나 제안할까 하는데, 어떻습니까?”
로베나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토론자들과 3만여 명의 관중에게 똑똑히 전달되었다.
일반적인 마법사라면 꿈도 꿀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하고 정교한 마력 컨트롤이었다.
순간, 장내가 조용해졌다.
“이사벨에게는 자신의 목숨보다 더 아끼는 친구가 하나 있습니다. 그 친구를 위해서 14년의 생명 중 5년을 포기할 정도로.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가 그 일의 당사자이니, 그 일의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남은 14년 중 무려 5년을 포기할 수 있는 친구.
그 정도라면 진정한 친구라고 할 만했다.
다들 그것에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이사벨, 네가 말하는 라면과 MSG가 정말 안전한 것이라면, 그 친구한테도 라면을 먹일 수 있겠지?”
참고로 그 친구의 이름은 김벌꿀이었고 현재 로베나 대공의 무릎 위에 앉아 있었다.
비록 처음 만남은 과격했지만 김벌꿀은 로베나에게 마음을 연 상태.
[얼마든지 먹어주지.]김벌꿀은 자신의 뛰어난 육체적 능력을 자신했다.
VIP 석은 경기장 내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김벌꿀은 호다닥 뛰어 하늘을 향해 도약했다.
[나는 난다! 하늘을!]하늘다람쥐처럼 팔다리를 쫙 벌렸다.
저 하늘 높이 뛰어오르는 듯했으나 벌꿀오소리는 하늘다람쥐가 아니라 벌꿀오소리였다.
아무리 점프에 자신이 있어도 하늘을 나는 건 무리였다.
김벌꿀은 관중석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로베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주 마이웨이구만.”
여기서 뛰면 저 토론장까지 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저 지대한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로베나는 탁! 손가락을 튕겼다.
김벌꿀은 더 이상 추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이한 추진력을 얻어 날아갔다.
김벌꿀은 그게 자기 힘인 줄 알았다.
[봤음?] [콜미. 비행 김벌꿀.]김벌꿀이 토론장에 착지했다.
욕구를 참을 수 없었던 김벌꿀은 그대로 이사벨에게 달려가 안겨 몸을 비볐다.
사회자가 VIP 석 쪽을 바라보았다.
“친구라고 말씀하심은…….”
“그래요. 그 벌꿀오소리. 이사벨이 자기 목숨을 바쳐서 구한 아이죠.”
김벌꿀은 자신만만했다.
[김벌꿀은 잡식성.] [라면. 백 그릇 먹어줌.]마레센츠는 분위기를 살폈다.
‘분위기가 너무 저쪽에 쏠렸어. 이대로면 완패다.’
어린애들이라 쉽게 봤다가 난관에 봉착했다.
지금 그들에게는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무려 북부 대공이 나서서 중재했으니, 마레센츠 측에서도 더 이상 반론을 펼치기 어려웠다.
‘먹다가 토하거나…… 배탈이라도 나는 것을 기대해 볼 수밖에.’
* * *
결국 김벌꿀이 라면을 먹게 되었다.
[후루룩.]이사벨의 가장 소중한 친구가 라면을 먹었다.
[한 그릇 더!] [한 그릇 더!]김벌꿀은 무려 다섯 그릇의 라면을 먹어 치웠다.
이번 토론회는 이사벨의 압승이었다.
그러나 이사벨과 나르모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그날 밤에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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