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92)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92화
그날 밤.
이사벨의 품에 꼭 안겨 있던 김벌꿀이 븅븅- 소리를 냈다.
그 븅븅 소리가 평소와는 조금 다른 느낌에, 잠을 자던 이사벨이 눈을 번쩍 떴다.
“벌꿀아?”
김벌꿀의 몸이 빨갛게 변해 있었다.
마치 벌꿀이를 빨간색 물감통에 풍덩 집어넣었다가 뺀 것만 같았다.
“왜, 왜 그래?”
[별일 아님.] [이사벨은 코야 해.]“별일 아닌 게 아닌데?”
븅븅-
소리가 왠지 모르게 괴롭게 들렸다.
자세히 보니 김벌꿀의 표정이 약간 괴로운 것 같았다.
“왜, 왜 그러는 거야?”
[아무것도 아님.]김벌꿀은 여러 차례 아무것도 아니다, 김벌꿀은 강하다, 라며 자신의 상태를 부정했으나 그것도 한계에 이르렀다.
“너 혹시 배 아파?”
[아님.]“배탈 난 거지?”
[아님.]“배탈 났잖아.”
낮에 라면을 그렇게 먹더니.
벌꿀오소리에게는 지나치게 매운 음식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김벌꿀! 너 매운 거 참고 먹은 거야?”
[김벌꿀에게 통각은 없음!]그렇게 말은 했으나 김벌꿀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서 침대를 데굴데굴 굴렀다.
븅븅-
평소와는 다르게 다급하고도 애처로운 븅븅- 소리를 냈다.
그 와중에도 허세를 버리지는 못했다.
[김벌꿀은] [맵찔이가 아님.]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워왔어? 라고 묻기에도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이사벨은 황급히 문 쪽으로 뛰어갔다. 신관을 불러오거나 치료 포션 같은 것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김벌꿀이 재빠르게 움직여서 문 앞을 막았다.
[안 됨.] [가지 마.]“김벌꿀. 지금 앙탈 부릴 때 아니야. 배탈이 심하게 났잖아. 너 몸이 엄청 빨개. 그러게 왜 그렇게 무리해서 먹었어!”
[못 감.] [절대 못 감.]김벌꿀이 워낙 완강하게 문을 막고 서 있어서 이사벨은 차마 김벌꿀을 밀쳐내지 못했다.
“좋은 말로 할 때 비켜. 나 진짜 화낼 거야. 매운 걸 좀 못 먹을 수도 있지, 그건 부끄러운 게 아니란 말이야.”
이사벨이 좋게 타일렀으나 김벌꿀은 이사벨의 말을 들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김벌꿀은 짧은 팔을 옆으로 쫙 벌리며 고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김벌꿀!”
이사벨이 크게 화내기 직전,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황녀님. 비아톤입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이사벨은 한줄기 구원의 빛을 마주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재빨리 말했다.
“어서 들어오세요.”
방 안으로 들어온 비아톤이 문을 조심스레 닫았다.
“흐음, 배탈이 크게 난 모양이군요.”
김벌꿀은 배를 살살 문지르며 비아톤의 눈치를 살폈다.
하필이면 지금 등장한 사람이 비아톤인 것이 영 마음에 안 드는 모양새였다.
“비아톤 선생님. 벌꿀이가 많이 아픈 것 같아요. 치료 포션 같은 걸 구할 수 없을까요?”
“구할 수 있겠습니다만 구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요? 벌꿀이랑 안 친해서 그래요?”
이사벨은 괜스레 다급해졌다.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친구인 김벌꿀이 아프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지금 그녀는 평소의 이성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7살의 본능이 이성을 집어삼킨 상태.
이사벨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벌꿀이가 조금 사납고 비아톤 경하고 친하지 않은 건 잘 알아요. 그렇지만 내 친구잖아요. 내 친구는 비아톤 선생님의 친구이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왜 포션을 구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거예요?”
“그건 아마도 벌꿀이와 제가 같은 생각이겠지요.”
김벌꿀이 문을 막아선 이유.
단순히 자신이 매운 걸 못 먹는다는 걸 들킬까 봐 그런 게 아니었다.
“여전히 수많은 사람의 이목이 김벌꿀에게 쏠려 있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제가 포션을 구해서 황녀님의 방에 들어가면 수상하지 않을까요?”
“…….”
“단순한 배탈을 대장암으로 둔갑시킬걸요?”
이사벨이 김벌꿀 쪽을 힐끗 바라보았다.
김벌꿀은 이사벨과 친하게 지내는 비아톤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으나, 어쨌든 비아톤의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니까 뭐 저 정도 배탈 정도는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벌꿀오소리는 벌꿀오소리니까요. 아주 강력하거든요. 그렇지 않습니까, 김벌꿀 씨?”
[물론.] [동의.] [김벌꿀은 강…… 븅븅.]김벌꿀은 더 이상 말하지 못하고 븅븅 소리를 내며 몸을 뒤틀었다.
“정말 신기하단 말입니다. 매운 걸 먹고 몸이 빨개지는 벌꿀오소리라니. 저건 생리적 현상이 아니라 마법적 현상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마법적 현상이요?”
“예. 김벌꿀이 평범한 벌꿀오소리가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마법적인 생명체인 것 같은 느낌이 많이 드는군요. 매운 것 또한 하나의 기운이고, 그 기운을 마력의 한 종류로 인식하여 몸이 변화된 것 같습니다.”
“선생님, 기분이 조금 좋아 보이는데…… 제 기분 탓인가요?”
“그야 고소한…… 이 아니라, 아무튼 새로운 현상을 봐서 아주 신기하고 신묘하다고 느끼는 중입니다.”
거짓말! 지금 고소하죠?
그렇게 따지고 싶었지만 김벌꿀이 또 아프다는 듯 븅븅- 소리를 내서 그러지 못했다.
김벌꿀은 이사벨에게 다가와 이사벨의 손을 코로 톡톡 건드렸다.
“왜 그래?”
[이사벨 손은 약손.]“응?”
이사벨의 손을 다시 한번 톡톡 건드렸다.
그제야 김벌꿀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알겠어. 쓰담쓰담해 줄게.”
[만족.]문질문질.
이사벨이 김벌꿀의 배를 쓰다듬어주었다.
비아톤은 그 옆에 서서 안경을 고쳐 썼다.
“호오, 아주 신기한 현상이군요. 발끝부터 조금씩 검붉어지고 있어요.”
지금 김벌꿀은 빨간색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사벨이 김벌꿀의 배를 쓰다듬기 시작하면서 발끝부터 조금씩 검붉은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마치 탁한 기운이 서리는 것 같은데요.”
발.
무릎.
골반.
가슴.
목.
김벌꿀이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창문 쪽으로 뛰어갔다.
그 모습이 마치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려는 것처럼 보였다.
“김벌꿀! 괜찮은 거야?”
이사벨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또다시 라면에 대한 유언비어가 퍼지더라도 상관없었다. 지금은 벌꿀이를 낫게 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비아톤 경. 황녀로서 명령이에요. 어서 포션을 구해 오세요.”
“황녀님께서 명령하신다면 받들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비아톤의 움직임이 빠르지는 않았다.
“어서요.”
“알겠습니다.”
비아톤이 몸을 돌려 문손잡이를 잡았다.
몸을 돌린 비아톤의 표정은 굉장히 여유로웠다.
몇 초 지나지 않아, 뽕- 소리가 났다.
‘응?’
이사벨이 주변을 둘러봤다.
뽕-
뽕-
그 소리가 들려오는 곳은 김벌꿀 쪽이었다.
폴짝!
폴짝!
김벌꿀은 창문 손잡이 쪽을 향해 폴짝폴짝 뛰었다.
마치 창문을 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마음이 너무 조급해서 창문을 제대로 열지 못했다.
뽕- 뽕- 뽕-
뽕- 뽕- 뽕-
비아톤이 은근히 웃었다.
“황녀님 앞에서 방귀를 뀌는 것이 부끄러운 모양입니다.”
수십 번의 방귀를 뀐 김벌꿀의 몸은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김벌꿀은 결국 필사의 각오로 창문을 연 뒤, 이불 속으로 숨어버렸다.
[환기는 성공.] [죽고 싶다.]김벌꿀은 매우 큰 수치를 느꼈다.
* * *
석 달이 흘렀다.
‘하늘섬’도 적극적으로 라면을 받아들였다.
여전히 요리협회 관계자들은 음모론을 제기했으나 라면의 선풍적인 인기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나르모르 코퍼레이션의 명성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라면을 세계 각지로 유통하기 위한 유통망인 ‘테이사벨 이동 관문’이 여기저기 설치되었다.
라헬라가 말했다.
“이렇게 사업을 확장하면 결국 이동 관문에서 사고가 터질 것이다, 나르모르.”
“알고 있습니다.”
알페아 왕국 내에서는 철저한 관리, 감독을 통해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고 있다.
덕분에 3개월 동안 단 한 건의 사고도 발생하지 않았다.
“마법 연방 측에서도 기를 쓰고 사고를 낼 거야.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폐하.”
“그 여유가 어디서 나오는지 심히 궁금하군. 정확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예. 그사이, 테이사벨 이동 관문은 진화했습니다.”
“진화했다고?”
“블록체인 기술이라는 것이 녹아들었거든요.”
“그게 무엇이냐?”
“말씀드리기는 좀 어렵습니다. 아무튼 사람이 관리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안정적이고 투명한 관리가 가능할 것입니다. 외부 조작은 더더욱 불가능하고요.”
그리고 나르모르는 같은 내용의 보고를 이사벨에게도 올렸다.
“황녀님. 황녀님께서 적극적으로 믿고 맡겨주신 덕분에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냈거든요. 사실 기존에 로스일드 공작가에 제안했다가 차인 기술을 접목시켜 만든 것이기는 하지만요.”
“정말?”
“예. 자세히 설명을 드려 볼까요?”
라헬라 성왕을 상대할 때에는 지극히 사무적이었던 사업가 나르모르는, 사랑하는 동생을 만난 것처럼 자애롭게 웃고 있었다.
이사벨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좋아! 뭔데?”
나르모르가 개발한 거라면 엄청 재미있는 거겠지? 이왕이면 마도 공학적인 뭔가면 좋겠다!
“기술의 이름은 블록체인 기술이라는 것입니다.”
엥?
이사벨은 귀를 의심했다.
‘이게 왜 벌써 나와?’
저건 [시한부 악녀가 죽고 나면>의 중반부가 넘어가서야 나온다.
나르모르를 대부호로 만들어 주는 초석.
그런데 아직 악녀인 이사벨이 죽지도 않았는데, 심지어 죽으려면 14년이나 남았는데 저 기술이 벌써 모습을 드러냈다.
이사벨의 흥미진진한 얼굴을 보면서, 나르모르는 또 웃고 말았다.
‘아무튼 사랑스러우시다니까. 이런 얘기가 저렇게 즐거우실까?’
수학 얘기와 공학 얘기, 그리고 화학 얘기까지.
이 세 가지를 가장 좋아하고.
‘그렇지만 제일 좋아하는 건 역시 맛있는 거 얘기지?’
이러나저러나 나르모르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아 참. 이 기술은 수컷 김벌꿀과도 관련이 있거든요? 들어보시겠어요?”
석 달 전 김벌꿀의 배탈 사건. 그것이 블록체인 기술의 발단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