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93)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93화
석 달 전.
김벌꿀이 ‘한 그릇 더!’를 외치는 모습을 몰래 지켜보던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대륙에 흔치 않은 검은색 머리카락과 검은색 눈동자를 가진 여인이었다.
용모가 무척 빼어나서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봤다.
사람들이 그녀를 쳐다보든 말든 그녀의 눈동자는 오로지 벌꿀오소리에게로만 향해 있었다.
“저, 저러면 안 되는데. 저러다 배앓이 한다고.”
그녀는 입술을 살짝 깨물고 안절부절못하며 다리를 동동 굴렀다.
그녀는 한때 세상을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갔다 알려진 어쩌고 흑염룡이었으나 지금은 아들 바보 엄마였다.
그녀의 귓가에 목소리가 전달되었다.
-여기는 내 레어나 다름없는 하늘섬이야. 난동 피우지 않기로 약속했어. 알지?
용력(龍力)이 가득 담긴 목소리였다.
이것은 로베나 대공이자 지혜의 용 라비나가 보내는 음성이었다.
-언니, 아룬 좀 말려줘. 쟤 배탈 나!
-아룬이 어디 있는데? 정신 차려, 아룬이 아니라 김벌꿀이야. 너 자꾸 이렇게 경계를 흐릴래?
용들 사이에는 불문율이 있다.
용이 변화하여 다른 생명체가 되면, 그 생명체로서 존중한다는 불문율.
그러니까 지혜의 용 라비나는 라비나가 아니라 로베나고, 아룬은 아기용이 아니라 벌꿀오소리 김벌꿀이다.
그렇게 취급하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언니, 쟤 배탈 난다니까?
-안 죽어 걱정하지 마.
-조카 일에 어떻게 그렇게 무신경할 수가 있어?
-용한테 조카가 어딨냐! 자꾸 인간들의 시선으로 나를 대하지 말라고.
-지금은 인간이잖아.
-그러면 더더욱 벌꿀오소리가 내 조카일 수는 없지.
로베나의 머릿속이 천둥이 쳤다.
-말로 싸움 안 해!
그 말이 마치 ‘난 이제 시시하게 말싸움 안 해. 그냥 세계 멸망이나 시킬래’ 하고 시위하는 것 같아서 로베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로베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배탈 안 나게 도와줄게. 그러니까 제발 얌전히 있어.
-진짜? 그래 줄 거야?
-목소리가 사뭇 달라졌네?
-그야 나는 언니를 사랑하니까.
-두 번 사랑했다가는 세상이 남아나질 않겠어.
하늘섬이 두 동강 나는 끔찍한 상상을 하고 말았다.
로베나는 다시 한번 에휴- 한숨을 내쉬었다.
-철 좀 들어라, 제발.
어쨌든 로베나는 여동생의 간곡한 부탁(?)으로 인해 비아톤을 만나려 했다.
그런데 비아톤이 먼저 로베나를 찾아왔다.
“스승님. 제가 이런 말 할 때는 많지 않은데 말인데요.”
“갑자기 왜 그래?”
“고맙다고 말씀드리려고 왔거든요.”
로베나의 몸이 움찔 떨렸다.
“너한테 고맙다는 말을 들어본 지 천만 년은 된 것 같은데.”
“인간이 어떻게 천만 년을 삽니까? 용도 그 정도는 못 살 텐데요.”
“마음만 먹으면 천만 년도 살지. 그렇게 안 할 뿐.”
“스승님이 그걸 어떻게 알아요?”
“……이라고 책에 쓰여 있던데.”
“무슨 책에요? 제가 스승님보다 독서 많이 했을 텐데, 전 못 봤는데요.”
비아톤의 눈이 가늘어져 있었다.
그 눈은 마치 ‘저는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어요, 스승님’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로베나는 괜스레 기분이 나빠졌다.
“고맙다고 말하려고 왔으면 그냥 고맙다고만 해라. 말꼬리 잡지 말고.”
“특별히 그래 드릴게요.”
비아톤의 뻔뻔하기 짝이 없는 태도에 로베나는 결국 웃고 말았다.
‘아무튼 저 녀석이랑 있으면 재미있단 말이야.’
재미있고,
‘조금은 귀엽기도 하고.’
어쩌고 흑염룡 카델리나의 영향을 많이 받은 탓에 자꾸 몇몇 인간이 귀엽게 느껴진다.
로베나는 마음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는 카델리나와 달라.’
이미 용으로서의 자아가 완전하게 확립되었다.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은 그저 유희일 뿐이었다.
재미로 하는 유희에 지나치게 몰입할 필요는 없었다.
“이걸 벌꿀오소리에게 갖다줘.”
“이게 뭡니까?”
“뭐…… 위와 장을 보호해 주는 약 같은 거야. 배탈 났을 때 먹는 거.”
“아무리 봐도 보석인데요?”
“생긴 것만 그래.”
“원리가 뭔데요?”
“그냥 좀, 스승님이 갖다주라면 갖다주고 그래라.”
“아니, 인간 세상에선 처음 보는 거라서 신기해서 그렇죠.”
마치 로베나를 일컬어 ‘당신은 인간이 아니잖아’라고 말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뭐? 하고 묻기도 전에 비아톤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아무튼 벌꿀오소리한테 갖다주면 된다는 거죠?”
“그래.”
비아톤은 잽싸게 보석을 낚아챈 뒤 기품있게 허리를 숙였다.
“스승님의 말씀을 받잡겠습니다. 김벌꿀 씨에게 배송하지요.”
* * *
이사벨은 하늘섬에서 가장 좋은 숙소 꼭대기 층에 머물고 있었다.
비아톤은 이사벨의 방에 들르기 전에 나르모르를 먼저 만났다.
“이거 잠깐 연구해 봐.”
김벌꿀이 배탈에 괴로워하기는 하겠지만 말이야.
그래도 조금 참아야지.
“이게 뭡니까?”
“아주 귀한 보석인 것 같아. 나는 처음 보는 건데 어떤 특별한 존재가 김벌꿀과 황녀님을 위해 줬단 말이지?”
단순히 김벌꿀의 배탈을 낫게 하기 위해 이런 보석을 줬다?
그건 아닐 거라 생각했다.
배탈을 낫게 하려면 그냥 신전의 상급 포션을 구해 주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완전히 로베나의 영역이었고, 극비리에 포션 하나 구해 주는 것쯤은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스승님의 진의가 뭘까?’
벌꿀오소리의 배탈을 낫게 해주는 마법 같은 보석은 맞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 무언가가 숨겨져 있다.
눈치 빠른 비아톤은 그것을 놓치지 않고서 나르모르와 함께 보석을 열심히 살펴보았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나르모르가 넋 놓고 중얼거렸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제가 찾던 물질 중 하나인 것 같은데요?”
“그래?”
“네. 이게 있으면 테이사벨 이동 관문을 보다 완벽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단 말이지.”
비아톤은 보석을 가지고 이사벨의 방을 찾았다. 일단 이 보석의 주인은 김벌꿀이었으니까.
이걸 가져오려면 김벌꿀의 허락이 있어야 했다.
‘배탈이 심하게 났으려나.’
아니나 다를까, 김벌꿀은 지금 온몸이 붉어져서 괴로워하고 있었다.
이사벨은 진심으로 김벌꿀을 걱정하고 있었다.
온 세상 아픔을 혼자 다 짊어진 것 같은 표정으로 슬퍼하며 말했다.
“비아톤 선생님. 벌꿀이가 많이 아픈 것 같아요. 치료 포션 같은 걸 구할 수 없을까요?”
“구할 수 있겠습니다만 구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요? 벌꿀이랑 안 친해서 그래요?”
비아톤은 이사벨과 대화하는 척하면서 김벌꿀에게 비밀스레 음성을 전달했다.
-김벌꿀 씨, 잘 들어.
로베나가 김벌꿀에게 주라고 했다. 이것을 지키지 않는다면 로베나는 화를 낼 것이었다.
로베나의 말을 어기지 않으면서 이 보석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합법적인 방법이 필요했다.
-이 보석은 네 배탈을 낫게 해줄 수 있어.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사벨 황녀님에게 무척이나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보석이야. 네가 먹어 치우면 배탈은 낫겠지만 황녀님에게 있을 좋은 기회가 펑 날아가 버려. 아주아주 슬픈 일이지.
그사이, 이사벨은 간절한 얼굴로 말을 잇고 있었다.
“벌꿀이가 조금 사납고 비아톤 경하고 친하지 않은 건 잘 알아요. 그렇지만 내 친구잖아요. 내 친구는 비아톤 선생님의 친구이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왜 포션을 구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거예요?”
너무 간절한 눈망울을 보니 비아톤은 저도 모르게 보석을 내밀 뻔했다.
도움이고 뭐고 일단 김벌꿀부터 낫게 해주고 보자, 싶을 정도였다.
‘아, 위험했어.’
그냥 외면하기에 이사벨은 지나치게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귀여운 게 제일 무서운 거라더니…… 심장이 굉장히 아팠다.
-네가 배탈을 좀만 참아준다면 황녀님에게 엄청 큰 도움이 될 거야. 네가 동의해야 이 보석의 소유권을 황녀님께 넘길 수 있어. 네가 배가 좀 꾸룩꾸룩한 대신 황녀님은 행운을 거머쥐게 되겠지.
비아톤이 말했다.
“그니까 뭐 저 정도 배탈 정도는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벌꿀오소리는 벌꿀오소리니까요. 아주 강력하거든요. 그렇지 않습니까, 김벌꿀 씨?”
이사벨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말에 김벌꿀은 결정을 내렸다.
[물론.] [동의.]비아톤이 빙그레 웃었다.
결국 보석의 소유권을 합법적으로 받아왔다.
-건투를 빕니다, 김벌꿀 씨.
그리하여 나르모르는 비아톤으로부터 정체 모를 보석을 받게 되었다.
비아톤의 말대로 이 세상에는 없는 종류의 보석이었다.
나르모르는 보석을 연구했다.
그 연구는 제국 제일의 감정사 마르코 유르미엘과 함께였다.
“세상에, 저희 가문 비서에만 기록되어 있는 ‘천명의 눈동자’라는 보석입니다. 저희 가문의 초대 가주셨던 세바스찬 명인조차도 언급만 하셨던 귀한 것인데…… 이게 실존하는 것이었군요.”
마르코는 계속해서 감탄하며 보석을 살피다가 물었다.
“황궁 비고에서 감정을 의뢰하시는 겁니까?”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누가 줬다는데요.
그 말은 하지 못하고서 물었다.
“천명의 눈동자가 대체 뭐길래 이렇게 놀라십니까?”
“기록에 따르면, 조건이 맞는 어떤 특정한 기운을 순식간에 복사하여 주변에 흩뿌리는 역할을 하는 보석이라 합니다.”
“이걸로 배탈도 막을 수 있습니까?”
“이론상 배탈을 낫게 하는 어떤 기운을 순식간에 증폭해서 몸 전체로 뿌려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 같기는 하네요.”
“이론상 가능하다면 말이죠, 실제로 이걸 소화제나 배탈약으로 먹는 경우도 있을까요?”
마르코는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절대요! 이 진귀한 보물을 누가 그딴 식으로 사용한단 말입니까? 그것은 유르미엘가를 모욕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정말 아무도 없을까요?”
“있다면 전설 속에나 등장하는 미친 광룡 카델리나 정도겠죠.”
“흠,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대륙을 멸망의 도가니로 밀어 넣었던 어쩌고 흑염룡. 광룡 카델리나를 언급할 정도면 사실상 없다고 말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그때, 마르코가 주변을 훑어보고서 목소리를 낮추었다.
“은밀히 제안할 것이 있습니다.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