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94)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94화
마르코가 말했다.
“‘천명의 눈동자’가 있으면 ‘열명의 눈동자’도 만들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효과가 떨어지는 복사본을 여러 개 제작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요?”
“예. 시간만 주시면 충분히 가능할 것입니다.”
마르코는 제법 감동한 눈치였다.
명인으로서의 도전 의식과 열정이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다.
나르모르는 미래의 대부호다운 직관으로 이 상황을 꿰뚫어 봤다.
‘이건 내게 기회다.’
모든 사람에겐 수많은 기회가 스쳐 지나간다. 대부분은 그 기회가 기회인 줄 모르고 흘려보내 버린다.
그러나 나르모르는 본능적으로 기회임을 포착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요.”
그러나 나르모르의 본능은 단순히 기회를 포착하는 것에만 있지는 않았다.
눈앞의 욕심과 흥분에 사로잡혀 큰 것을 놓치는 실수 따위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저도 최소한의 상의를 해야 해서요. 내일 정오에 다시 찾아뵈어도 되겠습니까?”
나르모르가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자 안달 난 쪽은 마르코였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저 ‘천명의 눈동자’를 연구하고 싶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계신 것은 틀림없으시겠죠?”
“당연합니다.”
“그럼 저한테 맡겨놓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건 안 되겠는데요.”
나르모르는 헤헤- 웃으면서도 할 말은 다 했다.
그는 소설 속에서 ‘수완가’로 설정된 인물이기에, 평생 장인으로 살아왔던 유르코보다 훨씬 더 노련했다.
* * *
나르모르는 황궁으로 돌아가 곧바로 데일사 시종장을 찾았다.
“시종장님. 저 좀 도와주세요.”
“내가 네 시종이라도 되는 줄 아느냐?”
“황녀님을 위한 거예요.”
“…….”
데일사 시종장은 잠자코 나르모르의 말을 들었다.
내일 마르코와의 협상 자리에 데일사도 동행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왜 굳이 내게 그런 부탁을 하지?”
“가위바위보 아시죠?”
바위는 가위를 이긴다.
가위는 보를 이긴다.
그런데 보는 바위를 이긴다.
“사람에게는 상성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나르모르가 씨익 웃었다.
그는 그 스스로도 뛰어난 수완가였으나, 적재적소에 사람을 쓸 줄 알았다.
“시종장이 시종장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최대한 황녀님께 유리하게.”
다음 날.
데일사와 동행한 마르코의 눈 밑이 시꺼멓게 물들었다.
“……예, 그러죠. ‘열명의 눈동자’ 제작만 허락해 주신다면 모든 조건을 수용하겠습니다.”
유르미엘 가문 밖으로 나온 나르모르가 킬킬대며 웃었다.
“그렇다고 3억 루덴이나 일시불로 받아오실 줄은 몰랐는데요. 파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조건도 그렇고, 열명의 눈동자에 대한 완전 소유권도 그렇고, 이 정도면 너무 일방적인 거 아닌가요?”
“그자는 장인으로서의 성취감을 얻을 수 있었으니 서로가 만족하는 거래였다.”
“그렇다고 하기엔 마르코 장인의 다크써클이 엄청 심해졌던데요?”
“수면이 부족했나 보지.”
“뻔뻔하셔라.”
“사담은 이쯤하고, 그대는 그대의 최선을 다하여 황녀님께 도움이 되도록 하여라.”
“근데요, 시종장님. 유르미엘 가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는 게 좋겠어요.”
“어째서지?”
“뭔가를 놓친 것 같아요. 아주 중요한 뭔가를.”
나르모르와 데일사가 다시 돌아오자 마르코는 기함을 토하며 깜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무언가를 떨어뜨렸다.
“뭘 떨어뜨리신 거죠?”
“그, 그것이…….”
나르모르는 돈 냄새를 맡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건 분명히 돈 냄새였다.
강렬한 직감이 나르모르의 뇌리를 관통했다.
“혹시 다이아몬드인가요?”
“…….”
이상하게도, 마르코는 데일사의 눈치를 살폈다.
온갖 일에 닳고 닳은 데일사는 마르코가 수상하다고 느꼈다.
‘저자의 행동거지가 수상하다.’
왜지?
데일사는 날카로운 눈썰미로 마르코를 살폈다. 그러자 마르코가 갑자기 달려와 엎드리고 무릎을 꿇었다.
“시종장님. 제가 일부러 숨기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연히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마르코는 ‘청혼석’이 부서졌다는 것을 이실직고했다.
데일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때, 나르모르가 나섰다.
“청혼석이 갈라지고, 그곳에 특별한 마법진이 생긴 뒤, 그곳에서 다이아몬드가 샘솟는다고요?”
“그, 그렇습니다.”
“그럼 다이아몬드는 황녀님 거겠네요?”
“……예?”
나르모르가 데일사에게 속삭였다.
“시종장님. 제가 연구하는 기술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게 두 가지 있다고 했잖아요. 그중 하나가 아주 많은 다이아몬드예요.”
데일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황녀님의 것이겠지. 다이아몬드를 모두 넘긴다면 죄를 묻지 않고, 황녀님께 잘 말씀드려 주겠다.”
* * *
아레나 궁으로 돌아온 데일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멀어졌다.
나르모르는 그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라헬라 성왕님이 잘못 알고 계신 게 틀림없어.”
라헬라가 알기로 데일사는 결코 친절하거나 따뜻한 사람이 아니었다.
“저렇게 상냥하신데 말이야. 내가 기어올라도 귀엽게 봐주시는 거 같고.”
어쨌든 아레나 궁으로 돌아온 나르모르는 비아톤, 테이슬론과 함께 연구를 거듭했다.
그가 연구한 것은 체계적이고 효과적으로 테이사벨 이동 관문을 관리하는 기술이었다.
“다이아몬드를 이렇게 수월하게 구할 수 있다니. 운이 좋았어.”
그때 왜 하필이면 돈 냄새가 났을까? 그때 굳이 유르미엘가로 돌아가지 않았다면 이런 행운은 없었겠지? 흐흐.
그는 행복해졌다.
“기술은 완성되었다.”
마법 연방이나 마탑 등에서 치졸한 짓을 벌일 수 없도록, 완벽하게 관리하는 기술.
그 핵심기술에 ‘천명의 눈동자’를 기반으로 한 ‘열명의 눈동자’. 그리고 3천 개의 다이아몬드가 들어갔다.
* * *
나르모르가 말했다.
“비아톤 경과 테이슬론 경이 무척 열심히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번 달에 마법 연방에서 복귀하신 카린 경이 연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결국 완성한 기술입니다. 가칭은 블록체인 기술, 정식 명칭은 ‘이사벨체인 기술’이라고 하려 합니다.”
이사벨은 세 가지 포인트에서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먼 미래에나 등장해야 할 블록체인 기술이 벌써 등장했다는 것에서 한 번 놀랐고.
소설 속에서도 ‘블록체인 기술’이라 명명되어야 할 기술의 이름을 ‘이사벨체인 기술’이라 부르겠다는 것에서 두 번 놀랐고.
“카, 카린 선생님이 복귀했었어요?”
최종 흑막 카린이 복귀했다는 사실에 세 번 놀랐다.
그것도 한 달 전에 복귀라니.
이사벨은 전혀 모르고 있던 사실이었다.
‘왜?’
다른 사람도 아니고 최종 흑막 카린이다.
왜 복귀를 숨겼으며, 비밀리에 이사벨체인 기술 개발에 함께했단 말인가.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야?’
이사벨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 * *
한 달 전.
마법 연방, 창성 마법사 회의.
미로텔 마법 연방에서 거의 신이라 추앙받는 창성 마법사 열두 명이 모이는 회의.
본래 창성 마법사 중 한 명이었던 빌헬름이 빠지면서 현재는 열한 명이 모여 있었다.
그곳에서는 회의가 아니라 취조가 벌어졌다.
“네가 정녕 미로텔을 배신하겠다는 것이냐?”
취조받는 사람은 카린이었다.
“배신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한 명의 마법 연구자로서, 테이슬론 이동 관문의 기술적 효용성과 가치를 세상에 널리 알리겠다는 것입니다.”
창성 마법사들은 카린의 말을 듣지 않았다.
“테이슬론 이동 관문은 빌로티안의 전략자산이다. 그것이 세계 곳곳에 깔려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된다면, 칼을 든 야만인들이 마법 연방 곳곳을 누비고 다니며 행패를 저지르겠지.”
“검과 마법은 수천 년간 균형을 이루며 발전해 왔다. 그런데 작금에 이르러 검이 마법의 영역을 넘보고 있다. 너는 정녕 빌로티안의 저열한 저의를 모른다는 것이냐?”
“네가 하는 짓은 매국이다. 연방을 팔아 네 일신의 욕심을 채우는 것이 부끄럽지도 않느냐?”
이 모든 반응을 예상한 카린은 그들의 분노를 묵묵히 받아냈다.
“정녕 네 뜻을 굽히지 않겠다고?”
“그러합니다.”
11인의 창성 마법사 중 한 명이 쯔쯧 혀를 찼다.
“불쌍한 고아를 데려다가 먹여주고 입혀준 은혜도 모르고.”
“빌헬름 경이 이 사실을 안다면 땅을 치고 후회하겠구나.”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네가 미로텔에서 얻은 모든 것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감수하겠습니다.”
카린은 그들에 의해 마력 회로가 모두 폐쇄되었다.
몸에 지니고 있던 마력도 모조리 파괴되어 더 이상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너는 영원히 미로텔에 발을 들일 수 없을 것이다.”
“제 죄목이 무엇입니까?”
“여전히 정신을 못 차렸구나.”
카린은 정확한 죄목을 들을 수 없었다.
카린은 창성 회의에서 쫓겨났고, 그 길로 곧바로 미로텔 마법 연방을 떠나야만 했다.
국경 근방.
카린은 커다란 키와 붉은 머리를 가진 여인과 만나게 되었다.
“비아톤 경이 마중 나가라 해서 왔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키르엔. 빌로티안 수도 외성을 지키는 수비대장이었다.
“아무래도 심한 고초를 겪은 모양이네요. 업히세요.”
“괜찮습니다.”
키르엔은 카린을 반강제로 업었다.
카린은 마력을 모두 잃어서 저항도 못 했다.
그리고 새벽 4시경.
키르엔은 카린을 커다란 바위 위에 앉혔다.
“암살자들이 붙을지도 모른다고 하더니…….”
꽤 숙련된 암살자들이 따라붙었다.
미로텔 마법 연방의 사주를 받은 자들인 것 같았다.
복면을 쓴 자들이었고 은신에 제법 능했다.
“정체와 소속은 묻지 않겠다. 나는 빌로티안 제국, 수도 외성을 지키는 수비대장 키르엔이다.”
키르엔이 내뿜는 기세에 찔끔 놀란 복면인들은 외성 수비대장이라는 말에 안심했다.
그들은 마력으로 은밀히 대화를 나누었다.
-내성도 아니고 외성 정도면 충분히 제압이 가능하겠군.
-더군다나 지금 제대로 된 무기도 갖추고 있지 않은 상태야.
실제로 키르엔은 검 대신 둔탁한 몽둥이만 하나 들고 있었다.
그들은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둘 다 죽이는 것으로 하지.
그게 그들의 가장 큰 실수였다.
키르엔은 비록 외성 수비대장이나, 본래는 황궁의 부기사단장이었다. 상관을 폭행한 죄로 좌천되었을 뿐.
검이 아니라 몽둥이를 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8명의 복면인을 모조리 때려눕혔다.
“무슨 외성 수비대장이…….”
“시끄러워.”
퍽!
몽둥이가 복면인의 머리를 때렸다.
8명이 모두 기절했다.
그리고 카린이 말했다.
“모두 죽여야 합니다.”
“그렇게 안 생기셔서 엄청 살벌하게 말씀하시네.”
“여기서 죽여야 꼬리를 안 밟혀요. 제국령까지 안전하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죽이는 것이 옳아요.”
“살고 싶다는 본능인가요?”
“살리고 싶다는 본능이죠.”
키르엔은 카린이 무슨 말을 하는지 즉시 알아차렸다.
살리고 싶다.
카린은 시한부인 이사벨을 살리고 싶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절박해 보이네.’
키르엔이 보는 카린은 살인에 어울리는 자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린은 품속에서 단도를 꺼냈다.
키르엔은 잠자코 카린을 지켜보기만 했다.
“제가 죽이는 것이 빌로티안 쪽에도 유리할 거예요. 키르엔 수비대장님의 흔적이 남지 않을 테니.”
키르엔이 굳이 검을 가지고 오지 않은 것도 그 이유였다.
키르엔이 검술을 사용하면 제국 특유의 검흔이 남는다. 그래서 일부러 몽둥이만 가져온 것이었다.
결국 키르엔이 몇 마디를 건넸다.
“살인은 쉽지 않아요. 그리고 한 번 건너면 되돌아올 수 없어요. 잘 생각해요.”
“…….”
결국 카린은 넘을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녀는 근처 계곡을 찾아 3시간 동안 몸을 씻었다.
제국령으로 돌아온 카린은 이사벨에게 돌아가지 못했다.
‘내 몸에 묻은 피 냄새가 황녀님께 전해질 거야.’
그녀는 환상에 시달렸다.
아무리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핏물이 몸에 배어 있는 것 같은 환상.
그래서 이사벨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살인자다. 내 더러움이 황녀님께 옮으면 안 돼.’
그래서 그녀는 황녀에게 자신이 복귀한 것을 비밀로 했다.
대신 비밀리에 나르모르, 테이슬론과 만나 이사벨체인 기술을 완성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녀는 나르모르가 살고 있던 빈민가에 터를 잡고 생활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느 날 이른 아침, 잠을 자던 카린에게 그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카린 선생님. 일어나 보세요. 아침이에요.”
그날 아침 따라, 너무 눈이 부셨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