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97)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97화
이사벨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어느덧 12월. 일곱 살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그동안 이사벨은 꽤 바쁜 나날을 보냈다.
“황녀님. 오늘 인터뷰 내용은…….”
전속 기자 율리와 다양한 곳에서 여러 인터뷰를 진행했고.
“황녀님께서 방문하여 주시니 영광입니다.”
“모르닌 갤러리는 황녀님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비아톤과 함께 각종 사회활동을 수행했다.
이사벨은 전생에서는 해보지 못한 각종 육체 활동(?) 및 대외활동이 무척 즐거워서 진심으로 임했다.
그 모습을 보며 비아톤은 꽤 흡족해했다.
“황녀님. 즐거워 보이시네요.”
“네. 재미있어요. 저번에 갔던 박물관도 재미있었고요. 오늘 방문한 갤러리에도 신기한 작품이 많았어요.”
“뭐가 제일 신기했나요?”
비아톤의 눈에는 흡족함과 더불어 약간의 기대가 묻어났다.
이사벨이 과연 오늘 무엇을 보았을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예술가들의 작품 속에서 무엇을 읽어내고 영감을 얻었을까.
이사벨의 영혼에 어떤 아름다운 영향을 끼쳤을까.
비아톤은 한껏 기대하며 이사벨의 대답을 기다렸다.
“붓으로 점 하나 찍어 놓은 게 30억 루덴이라는 사실이요.”
“……네?”
사, 상당히 세속적인 신비함이군요.
비아톤은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물었다.
“또 인상 깊었던 건 뭐가 있었을까요?”
“그린 지 100년이나 지났는데 도화지 상태가 깔끔하게 보존된 거요. 습도 관리를 어떻게 했을까요? 갤러리 내에는 습도 조절 장치가 따로 설치되어 있지 않다고 했거든요. 그렇다면 작품 내에 자체적인 습도 조절 마법 같은 것이 걸려 있다는 얘기잖아요. 그럼 그걸 구동하는 마력 에너지를 자가 발전하여 수분함량을 조절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컨트롤…….”
“……그렇군요.”
비아톤은 빙그레 웃었다.
예술적인 영감 같은 걸 얻은 것 같지는 않았지만, 비아톤에겐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는 이사벨이 즐거워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선생님, 여전히 방법은 못 찾았죠?”
“네. 안타깝게도.”
요즘 이사벨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으나 그녀를 괴롭히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바로 카린이 마력을 모두 잃어버렸다는 것.
“미로텔 마법 연방에서 작정하고 손을 썼습니다. 마력을 모두 흩어버렸고 마력 회로를 모조리 박살 내놔서 어떻게 손쓸 방법이 없네요.”
“……알겠어요.”
“그래도 제 나름대로 열심히 알아보고는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저도 연구해 볼게요.”
그러나 그에 관한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12월도 다 지나갔다.
* * *
새해 아침이 밝았다.
새로운 해 1월 1일.
아침에 눈을 뜬 이사벨은 창문을 열어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셨다.
‘이제 나도 여덟 살이네.’
21살, 12월 31일이 그녀의 마지막 날이다. 마지막 날까지 이제 13년 남았다.
루루카는 이사벨의 이부자리를 정돈해 준 뒤, 입을 열었다.
“황녀님. 좋은 아침입니다. 기분 좋아 보이시네요.”
“응. 좋아.”
이렇게 차가운 공기를 맘껏 들이마셔도 폐가 하나도 안 아픈걸.
이사벨은 활짝 웃으며 기분 좋은 아침햇살을 만끽했다.
창문 아래로 보이는 널따란 정원도 오늘따라 더 예뻐 보였다.
‘응?’
갑자기 사람 얼굴이 튀어 올랐다.
“악! 깜짝이야!”
“안녕, 이사벨?”
4황자 미하엘이었다.
미하엘은 새해 아침 7시부터 얼굴이 시꺼멓게 변해 있었다.
새벽 댓바람부터 하얀 눈을 가지고 놀고 온 모양인데, 얼굴에 저런 검정 때가 묻는다는 건 아무래도 기이한 일이었다.
“아, 안녕할 수 있겠어요? 여긴 7층이라고요!”
이곳은 7층이다.
미하엘은 공중에 떠 있었다.
참고로 미하엘은 순수 검술가며 공중부양마법 같은 것은 익힌 적이 없다.
“아, 맞다.”
“만유인력의 법칙에 의하면 9.8㎨만큼의 힘이 계속해서 작용해요. 떨어져야 정상이란 말이에요!”
“그럼 나 떨어질게!”
미하엘은 일단 땅으로 떨어졌다.
저게 또 됐다.
‘음, 그런데 9.8이란 숫자는 지구의 질량을 기준으로 해서 나온 값이잖아.’
이사벨은 꽤 행복한 상상 속에 빠져들어서, 미하엘을 완전히 잊고 말았다.
새로이 떠올린 신비하고 재미있는 사실에 온통 정신을 빼앗겼다.
‘아마도 여기는 지구보다 큰 거 같은데. 그러면 중력가속도 값도 달라지지 않겠어?’
이걸 내가 구해 볼 수 있을까?
즐거운 상상에 빠져들었다.
* * *
빌로티안 황궁에 손님이 찾아왔다.
“인사드립니다, 황후마마. 황제 폐하를 뵙지 못해 아쉽군요.”
“라헬라! 오랜만이에요, 반가워요. 먼 길 오느라 고생했어요.”
황제 론은 대마물 퇴치를 위하여 기사들을 이끌고 출정한 상태. 때문에 성왕 라헬라를 맞이해 준 사람은 황후 세르나였다.
간단한 안부 인사를 나눈 뒤 라헬라가 본론을 꺼내 들었다.
“제국 차원에서 강하게 지원하고 있는 테이사벨 이동 관문 사업 말인데요.”
라헬라는 이 테이사벨 이동 관문 사업이 사실은 제국의 정치적인 전략이라 생각했다.
세계에 대한 영향력을 확충하고, 군사‧외교적으로 우위에 서기 위한 주요 전략 말이다.
라헬라와 알페아 왕국은 그 행보에 함께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네?”
물론 세르나 입장에서는 금시초문이었다.
그녀는 지혜로운 황후였고, 이 테이사벨 이동 관문 확장이 어떻게 해석될지에 대해서는 예상하고 있었으나 사실 이를 토대로 세계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할 의도는 없었다.
“성왕이 약간 오해하고 있는 것 같네요.”
“오해요?”
“테이사벨 이동 관문의 확장은 이사벨이 주도하고 있어요. 저는 딸이 펼치고 싶은 것을 뒤에서 돕고 있을 뿐이랍니다.”
“그렇군요.”
라헬라는 이로써 제국의 스탠스를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한 발 빠져 있는 스탠스라 이거군.’
이해할 수 있었다.
‘하긴, 제국이 지나치게 앞장서서 영향력을 확대하면 마법 연방과 마탑과 더욱 격렬하게 부딪칠 수밖에 없겠지. 하다못해 제국과 굉장히 우호적인 우리 7왕들마저도 우려를 하고 있으니 말이야.’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어머니의 마음으로 딸을 돕고 있을 뿐이라는 거군요.”
“맞아요. 성왕은 제 마음을 정말 잘 이해해 주시는 군요.”
세르나는 라헬라가 자신의 의도를 순수하게 해석해 주는 것이 고마웠다.
“그에 관하여 지르델에서도 크게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르델.
발키오 지르델이 통치하는 왕국이었다.
7개의 왕국 중 가장 약한 군사력을 가졌으나 지리적으로 7개의 왕국 가운데에 위치한 무역의 요충지였다.
“알고 계시겠지만 현 국왕 발키오 지르델이 저와 친분이 두터운 편이거든요. 저와 얘기를 나눠본 끝에 지르델 왕국에도 테이사벨 이동 관문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지르델에서 정식 사절단을 보내기 전에 제가 먼저 찾아와 황후마마의 의견을 여쭙는 것입니다.”
라헬라는 속으로 확신했다.
‘당연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제국은 테이사벨 이동 관문에 사활을 걸었으니까. 이것을 바탕으로 세를 뻗어 나가겠지!’
세르나는 흐음, 하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아시다시피 테이사벨 이동 관문은 제 기술이 아니에요. 어디까지나 테이슬론 경과 이사벨의 합작품이지요.”
세르나의 스탠스는 한결같았다.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철두철미하군.’
과연 온화의 군주 세르나였다.
저 따뜻한 표정과 단정한 품위 속에, 차갑고 날카로운 전략이 담겨 있었다.
“황후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이사벨과 얘기를 나눠봐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세요.”
* * *
이사벨은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언니!”
라헬라를 발견한 이사벨은 총총걸음으로 뛰어왔다.
“언니 아니고 이모.”
“언니가 더 정감 있고 좋잖아요.”
“너랑 내 나이 차이를 좀 생각해 보렴.”
대답하는 데에는 0.5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스물일곱 살 차이요.”
“계, 계산 빠르네.”
“언니라고 하면 안 돼요?”
라헬라는 이사벨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할 수 없어서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크흠, 어쨌든 우리 잠시 얘기를 좀 나눌 수 있을까?”
“좋아요.”
라헬라는 이사벨의 방으로 들어왔다.
‘꽤 평범한 소녀의 방이네.’
황실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밀고 있는, 기존 정치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 황실에서 적극적으로 육성 중인 턴키 플레이어의 방치고는 제법 소소하고 귀여웠다.
하얀색 레이스 커튼도 그렇고,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곰 인형도 그렇고.
저런 걸 보면 그냥 평범한 소녀 같아서 신기한 기분이었다.
라헬라는 이사벨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본론을 꺼냈다.
“지르델 왕국에서도 테이사벨 이동 관문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싶대.”
“정말요?”
“맞아. 알페아의 영향력이 커지는 걸 감지한 것 같아.”
“잘됐네요!”
이사벨은 진심으로 기쁜 듯 손뼉을 쳤다.
“뭐가 그렇게 기쁜 거지?”
“지르델 왕국의 노동자들은 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말을 들었거든요. 테이사벨 이동 관문이 생기면 그분들의 노동강도도 낮아질 거고, 주말이 생길 거예요. 그러면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겠죠?”
“과연……!”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건 찬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살이다.
지르델 왕국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노동자들부터 차근차근 집어삼켜 제국의 영향력을 극대화하겠다는 것 같았다.
최강의 무력만을 지향해 온 빌로티안 제국의 통치가 새로운 패러다임에 접어들었다는 뜻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라헬라가 진지하게 감탄했다.
“몹시 훌륭한 계책, 아니, 생각이군.”
그런데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침대 위에 누군가 있었다.
이불을 확 젖히며 괴생명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라헬라는 물론이고 이사벨도 깜짝 놀랐다.
“너, 넌…… 미하엘 황자?”
“오, 오라버니?”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