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98)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98화
황당한 일이었다.
저 오빠는 머리가 잔뜩 헝클어진 채로 크하아암- 하고 크게 하품을 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 여기 계세요?”
“그러는 넌 왜 여기 있는데?”
“그야 제 방이니까요.”
“여기가 네 방이야?”
미하엘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진지하게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왜 여기 있어?”
“……그러게요. 오빠가 왜 여기 있을까요?”
미하엘이 크히히! 하고 크게 웃었다.
“나도 몰라!”
나는 미하엘이 거짓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확신했다. 미하엘은 원래 저런 캐릭터니까.
매사에 아무 생각이 없고, 또 아무 생각이 없으니까.
“근데 저 아줌마는 누구야?”
“…….”
나는 화들짝 놀랐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7왕 중 한 명인 라헬라 성왕의 얼굴을 모른단 말이야?
그리고 말이야 바른 말이지, 저 얼굴이 어떻게 아줌마냐!
아무리 봐도 언니, 아니, 누나지!
“오라버니! 성왕께 그 무슨 실례예요?”
“……응?”
“어서 사과하세요.”
미하엘은 조금 인상을 찡그렸다. 입술이 삐죽 튀어나온 것이 아무래도 억울한 모양이었다.
“아줌마한테 아줌마라고 한 건데 왜, 뭐가 실례인 건데?”
“…….”
“나는 미하엘이라고 불러도 하나도 기분 안 나빠!”
‘미하엘을 미하엘이라고 부른다 = 아줌마를 아줌마라고 부른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도무지 감히 잡히지 않았다.
‘랜서 경. 도대체 언제 복귀해요? 머리가 아파요.’
랜서 경은 출장을 떠난 뒤로 도무지 복귀할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다행히 라헬라 언니는 딱히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예나 지금이나 똑같구나.”
“저를 아세요?”
“5년 전쯤에 봤지. 그때도 날 아줌마라고 불렀고.”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그래.”
“아줌마라고 하면 기분이 나빠요?”
라헬라 언니는 어깨를 으쓱하고서는 고개를 저었다.
“친근하고 좋은데 뭘.”
미하엘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봤지? 아무 문제 없잖아!’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저 자신감 넘치는 눈빛에 할 말을 또 잃고 말았다.
어쨌든 라헬라 언니와의 대화는 별 탈 없이 이어졌다.
“……해서 나와 함께 지르델 왕국으로 가줬으면 해. 황후마마의 허락도 떨어졌고, 네가 원한다면 언제든 출발할 수 있어.”
그 말에 미하엘이 손을 번쩍 들었다.
“정답!”
갑자기 왜 정답을 외치는 건지는 도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아무도 문제를 낸 적이 없지만 미하엘은 정답을 말했다.
“미하엘도 같이 간다!”
“너는 왜?”
“지르델 왕국에 카만 형이 있잖아요.”
어, 그러고 보니!
지르델 왕국의 군사력은 매우 약한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역 왕국의 중추로 왕성히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지르델 왕국 내에 빌로티안 제국 기사단이 상주하는 베이스캠프가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 데일사 시종장님이 지휘했다던 ‘검은 고래’의 예하 부대가 주둔하고 있었고, 그곳에 3황자 카만이 파견 나가 있었다.
‘잘하면 만날 수도 있겠네?’
선택식 때를 제외하면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내 또 다른 혈육이 그곳에 있는 것이다.
라헬라 언니가 빙그레 웃었다.
“형을 무척 좋아하고 따르는 것 같구나.”
“네? 무슨 소리예요?”
“그래서 같이 가고 싶다는 거 아냐?”
“아닌데요?”
미하엘의 진심은 단순했다.
“이제 싸우면 내가 이길 것 같거든요.”
들어보니, 마지막 결투가 6개월 전이라고 했다.
또 언제 가서 싸웠는지 모를 일이지만, 이제는 형을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찬 것 같았다.
미하엘은 늘 활기 넘쳤고 오늘은 유독 활기가 넘쳤다. 최근 봤던 모습 중 가장 생동감 넘치는 모습이었다.
“……자신감 넘치네요, 오라버니.”
“당연하지. 나는 자신감이 없었던 적이 없어.”
“혹시 오라버니가 카만 오라버니를 이긴 적이 있어요?”
“이번에 이기려고. 히히!”
이번에 이길 거라는 말은, 지금까지 한 번도 이긴 적 없단 소리다.
다른 말로 하자면 늘 자신감 넘치게 싸웠으나 늘 패배했다는 말이기도 했다.
“……몇 번 패했어요?”
“몰라? 한 삼십몇 번?”
미하엘이 삼십몇 번이라고 얘기하는 걸 보면 필시 백 번 이상일 것이다.
미하엘은 늘 자기 좋은 대로 기억하니까, 자기 패배 횟수는 축소해서 기억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백 번을 패배했는데도 여전한 자신감 덩어리라는 것이 신비롭네…….’
그래도 응원은 해줬다.
“……오빠의 자신감은 응원할게요.”
“나만 믿어.”
뭘 믿으라는 건지는 모르겠어서 그냥 믿겠다고 말했더니 미하엘은 기분 좋은 듯 크히히히! 하고 크게 웃었다.
* * *
“황녀님. 저는 몇몇 긴급한 일만 처리하고 뒤따르겠습니다.”
나르모르는 급한 일 몇 가지를 처리할 것이 있어서 좀 늦게 합류한다고 했다.
유리가 말했다.
“짐을 미리 챙겨놓았어요.”
유리는 이제 어엿한 시녀의 모습을 갖추었다.
시종장님한테 혹독한 훈련을 자처해서 받는다더니, 행동거지가 제법 시종장님과 비슷한 느낌이 났다.
사실 시녀 역할은 유리를 데려오기 위한 명분이었을 뿐이었는데 유리는 시녀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해 냈다.
“유리모르 제과점 때문에 무척 바쁘지 않아?”
“누가 뭐라 해도 제 첫 번째 사명은 황녀님을 보필하는 거니까요. 제과점은 임시 휴업했어요.”
그러고서 은근슬쩍 나르모르 쪽을 쳐다봤다.
“돈이 최고인 누구랑은 사명감 자체가 다르답니다.”
“야……! 나도 황녀님을 위해서……!”
나르모르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할말하않 같은데, 내 앞이라 그런지 유리와 대놓고 싸우지는 않았다.
‘사이가…… 좋은 거 맞겠지?’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하고 누구의 편을 들어주지는 않았다.
아무튼 나는 유리와 함께 방문을 나섰다.
아레나 궁 앞에 사두마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나는 마부 아저씨에게 물었다.
“너무 좁은 길을 가지는 않겠죠?”
마부 아저씨는 인상이 꽤 험상궂고 덩치가 컸다.
“그건 왜 물으십니까?”
“너무 좁은 길에서 이렇게 호화로운 마차를 타면 일반 백성들에게 피해를 입힐 수도 있으니까요.”
“걱정 마십시오. 지르델 왕국은 비교적 가깝고 길도 넓고, 잘 닦여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에요.”
“어느 가문의 영애인지는 모르겠으나 성품이 무척 고우시군요.”
내가 누구인지 모를 리가 없다.
이곳은 아레나 궁이고, 아레나 궁에서 나온 어린 여자 황족은 내가 유일하니까.
‘누구 딸인데 성품이 이렇게 고와! 라는 뜻이네?’
마부 아저씨는 묘하게 감동했다.
‘근데 모양새가 어색하다.’
전체적으로 약간 부자연스러운 느낌이었다.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아빠는 역할극을 참 못해.’
저 마부 아저씨는 아빠였으니까.
오랜만에 또 변장하셨는데, 나는 저 ‘모두가 알고 있지만 모두가 모르기로 한’ 세계관에 잘 녹아들기로 했다.
나는 이걸 그냥 ‘아빠버스(아빠+Universe)’라고 부르기로 했다.
‘여덟 살이 되었는데도 소꿉놀이가 재미있네?’
언제까지 이런 역할극이 재미있을지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언젠가 이런 게 재미없어질 날이 올 테니까, 지금을 착실히 잘 즐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하엘 오빠와 라헬라 언니는 마차 안에 탔다.
나는 아빠, 아니, 마부 아저씨 옆에 앉았다.
이동 관문을 한 번 타고 반나절을 달려 지르델 왕국의 국경 부근에 도착했다.
그곳에 비아톤 선생님이 대기하고 있었다.
“자, 마부 녀석, 내게 고삐를 넘겨라, 마부야.”
평소 마부를 딱히 하대하지 않는 비아톤 선생님은 마부 아저씨(아빠)에게 고삐를 넘기라며 계속 재촉했다.
오늘은 왠지 승리자인 것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비아톤 선생님도 아빠버스에 충실한 것 같았다.
“어허, 어서 넘기지 않고 뭐 하느냐? 그 자리는 내 자리다, 이제 내 차례란 말이다, 마부. 마부는 어서 돌아가서 마부의 일을 해라, 마부! 으하핫!”
“…….”
마부 아저씨의 몸이 움찔 떨리는 게 느껴졌다.
왜인지 약간 으스스한 느낌이 들었지만 이내 사라졌다.
“어서 가라고, 마부! 이제는 나의 시간이다, 마부!”
“…….”
결국 마부 아저씨는 고삐를 넘겨주었고 비아톤 선생님이 내 옆에 앉았다.
‘왜 이렇게 복잡하게들 그러실까?’
왜 굳이 단둘이 온 걸까? 따로 움직이면 비효율적인데.
나는 그나마 논리적인 이유를 하나 찾아냈다.
‘지르델 왕국에는 이 역할극을 비밀로 하고 싶으신 건가 봐.’
황제의 체면이라는 게 있으니까.
그래서 역할극을 하며 딸과 놀아준다는 사실을 비밀로 하려는 것 같았다.
“황녀님, 마차 안에 들어가서 잠깐 주무세요. 2시간 정도면 도착할 테니까요.”
“하나도 안 졸려요.”
나는 마부석에 앉아 바깥 풍경을 즐겼다.
억새 풀밭이 저 멀리 지평선까지 펼쳐져 있었다. 억새 풀과 바람이 만나 사악- 사악하는 기분 좋은 소리가 주변을 가득 채웠다.
공기는 제법 차가웠지만 적당히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보았다.
보드라운 햇살을 향해 손을 뻗어보니 눈이 부셨다.
‘행복하다.’
전생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경험이었다.
겨울 초입에 이렇게 바람을 맞으며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축복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도착했습니다.”
‘……응?’
어느새 나는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나는 비아톤 선생님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었다.
‘언제 잠들었담?’
잘은 모르겠지만 비아톤 선생님이 따뜻한 마력을 이불처럼 만들어서 내 몸을 덮어준 것인지, 하나도 안 추웠다.
“지르델 왕국 입장 절차는 아주 간단합니다. 곧 왕성 내로 진입할 거예요. 숙소를 미리 잡아놓았으니까 거기서 하루 휴식하고 왕성으로 향할 겁니다.”
비아톤 선생님의 진두지휘 아래, 우리는 한 고급 호텔에 들어섰다.
그런데 그곳 로비에서 그리 반갑지 않은 얼굴을 만났다.
“호호호, 이게 누구신가요? 이사벨 황녀님 아니신가요?”
로스일드 공작가의 외동딸 레이나였다.
그런데 레이나의 태도와 모양새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웠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