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99)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99화
미하엘은 어디론가 사라진 상태였고 라헬라 언니는 애들은 애들끼리 놀라며-내가 보기에는 피곤해 보였다-빠져주었다.
나는 유리가 불편할까 싶어 유리를 먼저 방으로 올려 보냈다.
그래서 나는 본의 아니게 레이나와 독대 아닌 독대를 하게 되었다.
‘음, 모양새가 많이 어색한데. 왜 저러지?’
그 의문점은 오래지 않아 풀리게 되었다.
레이나의 왼 손가락에 무려 세 개나 되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끼워져 있던 것이었다.
‘저걸 열심히 자랑하느라고 손을 오래 들고 있잖아?’
머리를 쓰다듬는데 보통 1초나 2초 정도면 되지 않나?
내가 세봤는데 앞머리 옆으로 넘기는데 정확히 9초 걸렸다.
‘예나 지금이나 참 투명하네.’
내 눈길이 자기 손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눈치챈 레이나가 호호! 웃었다.
“역시 황녀님의 안목은 속일 수 없다니까요?”
“……네?”
“유르미엘 가문의 정통 비법으로 연단한 다이아몬드랍니다. 호호호!”
“연단은 쇠붙이를 불에 달…….”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름답네요.”
아마 쟤는 연단이 무슨 뜻인지 모를 것 같았다. 뭔가 있어 보이는 말이라고 생각해서 갖다 붙인 게 틀림없었다.
“그렇죠? 유르미엘 가문에서 만든 다이아몬드 반지를 구하려면 보통 3년은 걸린다고 해요. 그렇지만 저는 3개월 만에 받았답니다.”
유르미엘 가문이라는 말에 특히 힘을 주는 것이 느껴졌다.
하기야, 유르미엘 가문은 워낙에 유명한 장인 가문이니까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사실 별 감흥 없기는 했다.
나는 보석보다 떡볶이가 좋으니까.
“빨리 받았네요. 축하해요.”
“저희 아버지의 수완이 대단하셔서요.”
“…….”
마치 ‘우리 아빠가 최고거든!’ 하는 것 같았다.
그에, ‘우리 아빠가 더 최고거든?’ 하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이거, 묘하게 자존심이 상하는데…… 8살의 육체를 가져서 그런 거겠지?
“혹시 다이아몬드가 필요하시다면 말씀만 주세요. 저희 로스일드는 유르미엘가와 무척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서 상등급의 다이아몬드를 수월하게 구할 수 있답니다.”
“그것참 멋진 일이네요.”
지루했다.
내가 관심 없는 분야의 이야기를 듣는 건 참으로 고역이었다.
차라리 다이아몬드의 광물적 특성이라든가, 탄소 원자가 정사면체 형태로 결합되어 아주 단단한 성질을 띠고 있다든가, 모스 경도가 10이라든가, 그런 얘기라면 훨씬 즐거웠을 텐데.
“게다가 이 다이아몬드는 은은한 푸른빛이 돈답니다. 이건 다이아몬드가 만들어질 때 푸른 바람의 여신 넬라의 가호가 깃들었기 때문이라고 해요.”
“……그냥 붕소가 함유돼서 그런 건데…….”
레이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붕소가 넬라 여신의 은총을 뜻하는 말인가요? 별로 낭만적이지 않은 이름이네요.”
“…….”
그래, 네 좋을 대로 해석해라. 그냥 그런 걸로 하자.
나는 레이나와 대화하는 것이 피곤해졌다.
원래도 알고 있었지만 더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나와 레이나는 상극이라는 것을.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다.
“황녀님!”
내 생각보다 훨씬 빨리 도착한 나르모르였다.
* * *
하루 전, 나르모르는 조금 억울했다.
‘황녀님을 위하는 마음은 같아.’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래도 패배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왜냐하면 유리는 황녀님의 여정에 처음부터 동행했으니까.
왠지 뒤처지는 느낌이어서 억울했다.
‘후딱 해치우고 가야지.’
나르모르 코퍼레이션의 일들을 빠르게 처리하고서 그는 유르미엘가를 찾았다.
나르모르가 찾아오자 유르미엘 가문의 가주이자 대륙 제일의 감정사 마르코가 헐레벌떡 뛰어나와 맞이했다.
“예예, 그럼요. 최상등급의 다이아몬드들은 따로 빼놨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긴요. 저희가 고맙죠.”
나르모르 코퍼레이션은 이사벨 황녀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연합. 때문에 황녀의 ‘청혼석’에서 퐁퐁 솟는 다이아몬드에 관한 권한도 가지고 있었다.
나르모르와 마르코는 하나의 계약을 체결했다.
[1. 특상품(特上品) 다이아몬드의 소유권은 이사벨-혹은 전권을 위임받은 자-이다.2. 상품(上品) 이하의 다이아몬드는 유르미엘 가문의 것으로 한다.
3. 단, 다이아몬드와 관련된 모든 일에 있어서 유르미엘 가문은 이사벨 및 나르모르 코퍼레이션에 적극 협력한다. 적극 협력이라 함은 제1 우선순위에 둔다는 것을 뜻한다.]
이사벨체인 기술을 완성하고 유지보수하는 데에는 불순물이 전혀 없는 특상품의 다이아몬드와 그를 가공하는 기술이 필요했다.
나르모르 입장에서는 그러한 것들을 제공받을 수 있었고, 유르미엘 가문 입장에서는 상당한 품질의 다이아몬드를 굉장히 많이 공급받을 수 있었다.
서로에게 윈윈이었다.
“굉장히 바빠 보이는군요.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습니까?”
“예. 얼른 지르델 왕국으로 가봐야 하거든요. 고 요망한 녀석이 황녀님 옆에서 무슨 아첨을 하고 있을지 모르거든요.”
“요망한 녀석이요?”
“유리라고, 있어요.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나르모르는 서둘러 지르델 왕국으로 향했다.
숨 가쁘게 이동한 덕에 그다지 늦지 않을 수 있었다.
‘황녀님이다!’
나르모르는 무척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마침 고 요망한 녀석이 보이지 않아서 더욱 흡족스러운 재회였다.
‘응?’
어이쿠!
나르모르는 발이 꼬여 넘어지고 말았다.
‘아악!’
손에 들고 있던 가죽 주머니가 땅에 떨어졌고, 가죽 주머니에서 뭔가가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유르미엘 가문으로부터 제공받은 특상품의 다이아몬드들이었다.
* * *
이사벨이 얼른 뛰어가서 나르모르를 부축해 주었다.
“괜찮아?”
“추, 추태를 보였군요.”
나르모르는 민망한 듯 일어나 다이아몬드들을 주워 담았다.
레이나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다이아몬드?’
그녀는 본래부터 보석에 관심이 무척 많았다.
그렇기에 저자가 흘린 것이 척 봐도 어마어마한 등급의 다이아몬드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럴 리 없어!’
빌로티안 같은 야만인들이 어떻게 저런 보석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저건 틀림없이 가품(假品)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하긴. 가품이니까 저렇게 허술하게 들고 다닐 수 있는 거겠지.’
진짜 다이아몬드라면 절대로 저렇게 들고 다니지 못한다. 그게 레이나의 상식이었다.
‘황실의 지원이 아무리 부족하기로서니, 그렇다고 저런 가품을 들고 다니면 돼? 황실의 체면이 뭐가 되겠어?’
그녀의 발걸음에 자신감이 담겼다.
약간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인조 다이아몬드치고 제법 영롱한 빛을 내는군요.”
나르모르가 고개를 갸웃했다.
“인조 다이아몬드요? 무슨 말씀이신지요?”
순간 나르모르는 화가 날 뻔했다.
유르미엘 가문 놈들이 나를 속였나? 가짜 다이아몬드를 나한테 준 건가?
그렇지만 나르모르는 이내 전후 사정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저 여자애는 로스일드 공작가의 외동딸이잖아? 아, 하마터면 화날 뻔했네.’
나르모르는 요즘 수많은 귀족과 미팅을 갖고 있다.
덕분에 귀족들의 세상에도 익숙해진 상태.
척 보고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앞머리 쓸어 넘기는 데 9초.’
반지를 자랑하고 싶은 것이 틀림없었다.
‘마치 너와 나의 클라스가 이렇게 다르다’라고 주장하는 것 같았다.
‘저 째그만 것이 황녀님 앞에서 유세를 떨고 있던 게 틀림없군!’
노련한 수완가 나르모르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이사벨에게 말했다.
“일단 보고부터 올리겠습니다.”
……갑자기?
이사벨은 조금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그냥 잠자코 있었다.
“이곳에 오기 직전 유르미엘가의 가주와 미팅이 있었습니다. 일전에 말씀드렸던 대로, 정교한 세공기술이 가미된 특상품의 다이아몬드들을 진상받았습니다.”
……일전에 말했다고?
정교한 세공기술이 가미된 특상품의 다이아몬드를 진상 받기로 했었어?
……언제?
“아참, 황녀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특상품 이외 하급품들은 유르미엘 가문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를 내줬습니다.”
……내가 그런 명령을 내렸어?
“덕분에 제법 괜찮은 품질의 다이아몬드를 여러 가문에 공급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하더군요. 본래는 한 3년쯤 걸렸는데 그게 한 3개월 정도로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이게 다 황녀님의 은총입니다, 하하!”
나르모르의 시선이 레이나 쪽으로 향했다.
“어떤 얼간이들은 자기 가문의 위세가 대단해서 그렇다고 허세를 떤다는 소문이 있기는 하지만요. 참 우스운 일이죠?”
레이나의 얼굴이 잔뜩 붉어졌다.
“흥!”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몸을 돌리곤 이사벨에게서 멀어졌다.
* * *
방으로 돌아온 라헬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 마부…… 아무래도 수상한데.’
잘은 모르겠지만 마부의 마력 양이 엄청난 것 같았다.
그의 기세는 마치 날카로운 명검 같았는데, 결코 일반 마부가 풍길 수 있을 만한 기세가 아니었다.
이사벨은 한눈에 알아보았지만 라헬라는 마부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거물급 황궁 인사겠지?’
역시 이사벨은 황궁의 정치적 전략자산이 틀림없었다. 그러니까 그런 범상치 않은 마부를 붙여주었겠지.
‘이사벨은 뭔가 아는 눈치던데…….’
* * *
몇 시간 뒤.
이사벨과 저녁을 함께하게 된 라헬라는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있잖아 이사벨. 그 마부 말인데.”
“네?”
“그 마부의 정체가 뭐야?”
이사벨은 화사하게 웃었다.
‘아직 역할극이 안 끝났나 봐.’
이사벨은 이 아빠버스에 충실하기로 마음먹은 상태.
사실 라헬라는 정말로 마부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지만 이사벨은 그렇게까지 생각 못 했다.
자기가 이렇게 쉽게 파악했으니 라헬라도 쉽게 파악했으리라 생각한 것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우리 모두가 아빠의 정체를 다 알고 있지만 모른 체하기로 합의한 세계관(아빠버스)’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시치미를 떼자!’
“마부의 정체요?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미소가 수상한데.”
“수, 수상하다고요? 한 개도 안 수상한데, 으으응, 이상하다아아아.”
안 돼! 내 연기가 어색했나 봐…….
이 역할극을 끝내고 싶지 않아! 세계관 붕괴를 막아야 해!
이사벨의 간절함이 표정에 담겼고, 라헬라는 그 간절함을 읽어냈다.
‘그래도 어린애라 티가 날 수밖에 없는 건가. 일단은 모른 척해 줘야겠군.’
라헬라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정체불명의 마부는, 어떤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황궁에서 파견된 비밀인사가 틀림없다는 것을 말이다.
이사벨이 황실의 정치적 전략자산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된 셈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