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10
@10. 죽으려고 한 건, 당신이잖아요
호숫가를 따라 질서 없이 자란 풀들이 발목께를 간질였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다급히 걸음을 옮겼다.
이곳에도 없다면 더는 희망이 없었다. 약속된 날짜는 바로 내일이니까.
하지만 이대로 죽으라는 법은 없는 걸까.
“찾았다, 수선화 꽃밭!”
노랗게 펼쳐진 겉 꽃잎 안에 웅크리듯 자리한 또 다른 꽃잎. 분명 수선화였다.
호수를 관리하지 않은 지 오래된 모양인지, 꽃들은 정돈되지 않은 채 어지러이 피어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아름다워.’
허리를 숙이자 은은하게 달콤한 향이 코를 간질였다.
그런데 그때.
부스럭.
풀을 헤치는 듯한 소리에 나는 황급히 그쪽을 바라봤다.
‘누가 있나?’
몇 초간의 정적.
그리고 이내 다람쥐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유 부릴 때가 아니라는 거지?”
나는 물가로 가까이 다가가 수면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모르겠네.”
그저 바람결을 따라 잔잔하게 일렁일 뿐인 것 같은데.
나는 주변에 수북이 널브러진 나뭇잎을 가득 주웠다. 그리고 호숫가를 따라 걸으면서 하나씩 물에 띄웠다.
“…저기구나.”
미약한 움직임. 하지만 분명 잎들이 물의 중심부가 아닌 다른 한 곳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었다.
손을 털어 버리고 겉의 드레스를 벗자, 수영을 위해 입고 온 가벼운 셔츠와 바지 차림이 드러났다.
자, 스트레칭하고.
크게 심호흡도 하고.
“진짜 마지막 준비 끝.”
나는 망설임 없이 호수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시샤!”
이아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인데…?
하지만 잘못 들은 게 분명했다.
오늘 이아페는 황궁에 있을 예정인 데다가, 그가 저런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시샤’라고 부른다고?
에이, 말도 안 되지.
정말 만약 그가 여기에 있다 해도 상황은 다르지 않을 터였다.
이아페는 수영을 하지 못하니 물에 뛰어들지 못한다.
원작에서 그랬던 것처럼 마법으로 물을 가르는 모세의 기적을 보여 주지도 못하겠지.
마법을 제어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기 전까진 절대 마법사라는 걸 밝히지 않을 사람이니까.
신경 쓰지 말고 도서관이나 찾….
풍덩!
가까이서 들려온 마찰음에 나는 반사적으로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 순간 누군가의 팔이 내 어깨와 허리를 감싸 안았다.
나무뿌리처럼 옭아맨 단단한 팔은 그와 나 사이에 어떠한 틈도 허락하지 않았다.
내 눈이 휘둥그레지다 못해 튀어나올 정도로 커졌다.
지금 환각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면, 물속에서 만져지는 이 바위 같은 가슴팍의 주인공은.
‘이, 이아페?’
그가 물속으로 뛰어들어 나를 안은 것이었다.
수영도 못 하면서!
“으우으으읍!”
우리는 빠르게 호수 바닥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그를 끌고 수면 위로 올라가고자 열심히 손발을 움직였지만, 너무도 쉽게 제지당했다.
내가 그에게서 빠져나가기 위해 발버둥 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점점 숨이 한계에 부딪혀 온다.
나는 아가미 만들어 주는 풀도, 산소 주입해 주는 거품 머리도 없는데!
‘망할 놈의 신! 산을 피했더니 물에서 죽이는 게 어딨어?’
그때였다.
별안간 블랙홀이라도 열린 것처럼 물이 소용돌이치며 매서운 속도로 사라졌다.
나는 눈이 똥그래져서 이아페를 바라보았다.
그가 마법을 쓴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이아페라도 이 정도 대규모 마법을 시전하는 것은 제어권을 잃기가 쉬울 텐… 아니네!’
어느새 호수는 발목 정도 깊이의 얕은 물이 되어 있었다.
“와… 진짜… 허억… 죽을 뻔… 허억….”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폐에 공기를 채워 넣자 겨우 진정이 되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본 순간.
나도 모르게 숨을 멈추고 말았다.
마치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그의 표정이 나를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저기….”
하지만 내가 말을 걸자, 그는 이내 표정을 감추었다. 다만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잔상처럼 남아, 그와 맞닿은 내 몸에 스며들듯 퍼졌다.
그 감각을 깨달은 순간.
나는 그의 품에 안겨 있다는 걸 자각했다.
이아페는 한쪽 손으로는 내 왼쪽 손목을 잡고, 다른 쪽으로는 내 어깨를 안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몸을 떼어 냈다.
이아페는 순순히 나를 놔주었지만, 손목을 놓는 손길만은 조금 느렸다.
그의 손가락 끝이 내 손목을 은근히 긁으며 미끄러졌다. 어떤 미련이 남아 있다는 듯이.
살짝 눈을 내리깐 이아페는 물에 젖은 머리를 손으로 쓸어 넘겼다.
그가 눈을 감았다 뜨자, 속눈썹에 매달려 있던 물방울들이 새벽이슬처럼 떨어졌다.
화보가 따로 없네.
홀린 듯 그 모습을 바라보는데, 깊은 보라색 눈이 나를 향했다.
“왜 이런 짓을 하신 겁니까?”
평소와는 달리 그의 시선이 흐트러져 있었다.
헷갈렸다.
지금 이아페의 표정은 단순히 화를 내거나 질책을 하는 거라기엔, 마치 걱정이 섞인 것만 같았으니까.
하지만 지금 화를 내든 걱정을 하든 할 사람이 누군데!
“당신이야말로 무슨 짓이에요?”
호통치듯 말하자 이아페는 입을 다물었다. 이런 반응은 예상치 못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무리 오지랖이 넓어도 그렇지!”
“오지랖이라니….”
“수영을 할 줄 아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러다 죽으면 어쩌려고 그래요?”
“죽으려고 한 건…!”
다다다 쏘아 대는 내 말에 입술을 벙긋대던 이아페가 마지막 말만은 낮게 맞받아쳤다.
나는 발끈한 그의 모습에 놀라 입을 벌린 채 그를 바라봤다.
“당신이잖아요.”
이아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분노보다는 고통에 가까운 시선을 마주하자, 그 의미를 해석할 수 없음에도 괜히 가슴이 철렁했다.
하지만….
“…제가 죽으려고 했다고요?”
물론 내 목숨줄을 찾아 뛰어든 건 맞지만, 여기서 죽을 생각은 전혀 없는데.
“깊은 물에 무작정 뛰어드시는 걸 그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수영할 줄 알아요. 저.”
당연하다는 듯한 내 말에 이아페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 순간 키론의 잘못된 관습이 떠올랐다.
‘맞다, 여기서는 물에 뜨는 법도 안 배우지!’
몇백 년 전, 마법사 사냥이 이어지면서 ‘물에 빠졌을 때 뜨는 이는 마법사다.’라는 마법사 판별법이 등장한 것이 계기였다.
지금은 그 판별법을 사용하진 않지만, 인식은 남아 있어 생존이나 생계가 연관되어 있지 않다면 누구도 수영을 배우려 들지 않았다.
“마법사라서 물에 뜨는 건 아니지만요.”
농담조로 덧붙이자, 이아페는 세워진 양쪽 무릎에 팔을 괴고 제 양손에 얼굴을 묻었다.
“다행이다….”
그의 몸이 허탈한 웃음으로 들썩였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투명한 안도감이었다.
당연히 그도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것을 보고 싶진 않았을 테니, 다행이라고 말한 것일 테지만.
어쩐지 나는 심장을 콕콕 찌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저는 그저 어제… 죽음을 앞두고 있다 하시기에.”
파르르, 동공이 떨렸다.
어제 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
내가 기억하는 것은 수선화에 관련된 몇 가지 대화, 그리고 그의 가면을 벗긴 것뿐이다.
“제가… 정확히 뭐라고 이야기했어요?”
“거대한 운명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고….”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챈 이아페가 고개를 들었다. 그가 충격을 받은 듯 조심스럽게 물었다.
“기억이… 나지 않으십니까?”
“흐음, 그게….”
“어제 제게 건네신… 그 말들 전부?”
“전부라 할 수는 없는데 일부라 할 수도 없는 것이… 죄송해요. 제가 또 무슨 얘기를 했죠?”
“…아뇨. 아무 얘기도.”
그렇게 말하면서 비 맞은 강아지처럼 처량한 표정은 왜 짓는데?
하지만 아마 자세한 내막을 얘기한 것 같진 않았다.
그랬다면 내가 물에 뛰어든 걸 보고 죽으려고 그런 거냐 어쩌고 했을 리는 없으니.
그래, 중요한 얘기를 한 게 아니라면, 굳이 내 흑역사를 내 손으로 파내지는 말자.
“그래요. 뭐가 그렇게 중요하겠어요. 어쨌든 공자님이 이렇게 절 구해 주셨는데.”
덕분에 산에 가서 안 죽어도 되게 생겼는걸. 그렇게 생각하니 저절로 광대가 올라갔다.
나를 바라보던 이아페의 눈빛이 알 수 없는 감정으로 일렁였다.
너무 음흉하게 웃었나?
광대야, 진정하자.
대신 행복 회로는 가동 시작하고.
자, 방금의 블랙홀로 그는 자신이 마법사라는 것을 밝혔다. 그렇다면 ‘마법’이라는 것에 걸어 보겠다는 결정을 한 거겠지.
‘내일 칼린느를 알현할 때 이아페와 함께 가야겠어.’
그럼 부드럽게 이아페에게 코레아리아어를 해석하는 역할을 연결해 줄 수도 있다.
결심했던 대로, 나는 이아페를 열심히 보필해서 그의 운명을 스륵 바꿔 주고.
그렇게 마법의 위상을 유지한다면,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다 같이 마법사의 특혜를 누리며 잘 먹고 잘 사는 해피 엔딩.
“저기 내일… 으으.”
눈치 없는 바람은 왜 이 아름다운 순간에 나를 스쳐 내 몸을 부르르 떨게 하는 건지.
“추우십니까?”
“조금 쌀쌀….”
나는 대답을 끝마치지 못한 채 말을 멈추었다. 이아페가 망설임 없이 겉옷을 벗어 내게 걸쳐 주었기 때문이다.
물을 머금지 않는 소재라 무겁지 않으면서도 한결 나았다.
“공자님도 추우시잖아요.”
내가 옷을 다시 벗으려 하자, 그가 옷을 잡은 내 손을 부드럽게 눌렀다.
“드릴 수 있게 해 주세요.”
“……?”
왜 이러지? 내가 뭔가 잘못했나? 나를 불편하게 만들어 말려 죽이려는 작전인 걸까?
심각한 표정으로 행동의 의미를 분석하며 그를 살폈다.
셔츠가 물에 젖어 그의 팔과 어깨선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었다. 조끼가 몸 자체를 감추고 있다는 것이 조금 아쉽….
음란 마귀야, 저리 썩 꺼지거라!
“이제 어떡하실 건가요?”
“저는 아무 생각도… 뭘요?”
“마법, 제 약점을 쥐셨으니까요.”
이아페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어딘가 씁쓸한 그 미소는, 마치 어찌할 수 없는 벽을 마주했다는 듯 무력해 보이기까지 했다.
어제 내가 무슨 협박이라도 한 걸까? 기억이 나지 않는 건 불안했지만, 그의 유해진 태도는 나쁘지 않았다.
“약점이라뇨. 듣는 마법사 섭섭하게.”
나는 능글맞게 웃음 지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잠시만 기다려요. 내가 출세시켜 줄 테니까.”
어디 보자, 도서관은 이쯤에 있던 것 같은데.
나는 수맥 탐지기를 든 사람처럼 손에 마력을 품은 채 신중하게 뺑뺑이를 돌았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도서관은 나타나지 않았다.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했다.
‘설마 도서관도 물이랑 같이 빨려 들어간 거 아냐?’
발걸음이 빨라졌다. 계획했던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초조함으로 손이 떨렸다.
그때였다.
“이걸 찾고 계십니까?”
이아페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나는 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나를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이아페가 손을 뻗었다.
그의 손끝이 천천히 허공에 가 닿았다. 마치 피아노를 치듯 우아한 손길이었다.
그 순간 그의 손을 시작으로 허공을 감싼 얇은 껍질이 벗겨졌다.
반짝이는 빛 가루가 사방으로 날렸다. 빛이 눈처럼 쏟아지는 그 광경은 넋을 잃을 만큼 황홀했다.
그리고 막이 사라진 그 자리.
거대한 도서관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