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101
@101. 마법의 역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사실은 우리 집에 이아페가 왔던 날 그의 마음을 물어보려 했지만 잠들어버렸다. 그다음엔 물어볼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
항상 질문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가, 그대로 식도를 타고 다시 내려가 버렸다.
‘먼저 좋아하면 지는 거라더니, 사실이잖아.’
혹시라도 이 마음을 들켰다가 지금의 관계가 깨져 버릴까 봐 불안했다.
나는 이아페와 특별한 추억을 쌓았다고 생각하지만, 이아페에게 있어서는 칼린느와의 추억이 더 특별할지도 모르잖아.
“시샤 님.”
이야기를 끝낸 이아페가 가벼운 표정으로 이곳으로 걸어왔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그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별궁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 나는 조금 멍하니 생각에 빠졌다.
“시샤 님, 어디가 불편하십니까? 갤러리에서부터 표정이 안 좋으시기에.”
이아페가 내게 말했다. 나는 깜짝 놀라서 그에게 물었다.
“저 표정 관리 못 했어요? 폐하도 그렇게 생각하셨을까요?”
“아뇨, 훌륭하게 감정을 숨기셨습니다.”
“이아페는 알아차렸잖아요.”
“그야 저는 항상 당신을 보고 있으니까.”
이아페가 당연하다는 듯 이야기했다.
그의 말에 다시 감정이 일렁였다. 하지만 사적인 감정은 우선 넣어두고 일 얘기를 했다.
“음, 그게. 세상 물정 모른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요. 마법을 전쟁에 쓴다는 게 좀 꺼려져요.”
이아페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조금 이해가 안 간다는 눈치였다.
“좋은 힘이잖아요. 특별하고 소중한 힘이고. 이것이 누군가를 해칠 수 있다는 게… 그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좋은 일에만 쓸 수는 없는 걸까요?”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해 볼 필요도 없었던 고민.
전쟁을 일상적으로 겪고 살아온 이들은 이런 내가 이상해 보일 테다.
그걸 알기에 칼린느 앞에서는 반대의 의사를 보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 거고.
“당신은 가끔 너무나도 이상적입니다.”
“역시 그렇죠?”
역시 이아페도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나는 쓰게 웃었다.
“하지만 당신이 그런 생각들을 가졌기에, 이 힘이 가치 있게 존재할 수 있는 거겠죠.”
걸음을 멈추었다. 고개를 올려 이아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당신의 생각은 잘못되지 않았어요.”
그의 다정한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가 조금 씁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저… 1년 전, 제 형이 남부의 국경 다툼으로 치렀던 전투 중 규모가 다소 큰 것이 있었습니다.”
“…네.”
“며칠간 서로의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하는 전투가 이어졌습니다. 양쪽 모두의 전력이 조금씩 줄어들어 갔죠. 이 정도에서 전투가 마무리 지어질 거란 전망이었습니다.”
“‘이었다’는 건, 설마….”
“상대편의 습격을 받았고, 당시 전쟁에 참가한 아군 중 70%가 죽었습니다.”
“……!”
나는 말없이 숨을 참았다. 누군가의 죽음에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알기 힘들었다.
이아페가 말을 이었다.
“죽은 이 중에는 일로제가 가장 존경하던, 당시의 부기사단장도 있었습니다. 그것으로 한동안 일로제가 실의에 빠졌었습니다.”
“…상대편이 승리를 한 것이군요.”
“아뇨. 키론의 승리였습니다. 상대편은… 90%가 죽었으니.”
“……!”
“시샤 님, 마법으로 모두를 제압하는 것이 당신의 의지에 반한다면 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다만… 싸움은 끊임이 없고, 누군가는 계속해서 죽습니다. 저는 이 압도적인 힘이 평화를 위해서라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잠시간 나는 말없이 이아페를 바라보았다.
‘평화를 위해 압도적인 힘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섣불리 동의할 수 없어. 하지만…’
만약 마법으로 적군의 침입을 막았다면. 방어할 수 있었다면.
그건 다른 이야기가 된다.
전쟁, 그 키워드만 듣고 나는 마법이 누군가를 해치는 힘이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모두를 지키는 힘이 될 수도 있다.
마법을 좋은 일에만 사용하는 것이 너무도 이상적이라면… 희생의 최소화, 그것을 위해 이 힘을 사용하자.
“고마워요, 이아페. 생각이 정리됐어요.”
머릿속이 깔끔해졌다. 나는 이아페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지었다.
“조만간 출발해야 한다면 전시 상황에서 필요한 모든 주문을 완벽히 가르치긴 힘들지 몰라요. 쓸 만한 것들을 적은 자료를 정리해 함께 보내야겠어요. 파견을 가는 길에 익힐 수 있도록.”
“네, 좋습니다.”
어쩐지 발걸음이 가벼웠다.
* * *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동쪽 국경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파견 모집은 생각보다 훨씬 금방 마감이 되었다.
나는 더 빠르게 주문을 정리하기 위해 노력했다.
‘칼린느도 이번 전투에서 마법사를 전면에 내진 않을 거라 한 게 다행이야.’
방어 주문 위주로 구성을 해도 되는 것이었으니.
그리고 오늘. 드디어 파견 마법사 5명이 떠나는 날이 되었다.
“잘 다녀와요, 에스텔라, 조디에, 세렌, 아스트로, 에투알. 조심하고요.”
수업을 하며 얼굴이 익은 이들이기에 마음이 쓰였다. 서포트하는 역할이라고 해도 일단은 전쟁터니까.
“걱정 마세요, 단장님. 열심히 하고 오겠습니다!”
“마법으로 도움이 된다니, 오히려 두근거리는걸요.”
“다만 아직 연습해 보지 못한 주문들이 있는데… 잘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조디에가 머쓱하게 웃음을 지었다.
“쓸 수 있어요. 내가 기운을 나눠 줄게요.”
나는 그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았다.
비록 말뿐이겠지만 그들이 이 언어의 힘을 온전히 누릴 수 있길. 한 번도 써 보지 않은 주문도, 의미가 명확하게 와닿지 않는 주문도 훌륭히 쓸 수 있길. 그런 것들을 진심으로 바랐다.
“감사합니다. 어쩐지 정말 잘될 것 같아요!”
마법사들이 엄지를 치켜들고는 마차에 올랐다. 걱정보다 기대로 가득 찬 그들의 밝은 표정을 보자 조금 안심이 되었다.
어느새 마차가 출발했다.
떠나는 마차를 보며 카실이 감개무량한 듯 말했다.
“악마의 힘이라 불리던 마법이 이제는 국가 수비에까지 쓰이다니. 기분이 이상하네.”
“응. 그만큼 마법에 대한 모두의 호감도가 높아졌다는 거겠지.”
로디스 공작가의 후원 없이도 수많은 마법사들이 모집에 지원하고 있다. 더 이상 롯세 부인의 살롱을 활용하지 않아도 알아서 마법에 대한 이야기가 퍼져 나간다.
“그만큼 일이 많아졌지만, 그래도 보람차네요!”
라온이 헤헤, 하고 웃었다.
그래, 일이 많지. 나는 별궁 방향으로 돌아섰다. 이제 남은 일 처리를….
“와.”
서서히 붉게 물들기 시작한 단풍나무가 보였다. 벌써 떨어진 잎새들도 있었다.
“벌써 가을이네요.”
“네, 벌써 10월이니까.”
셀라임이 단풍잎 하나를 주워 들고 빙글 돌렸다.
나는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밑에서 부스럭대는 낙엽 소리가 듣기 좋았다.
“10월? 그러고 보니 10월엔….”
나는 말을 삼켰다. 갑자기 카실이 딸꾹질을 시작했다. 셀라임이 웃으며 카실의 등을 거의 패듯이 두드렸다.
그걸 가만히 바라보며, 나는 나만 아는 10월의 빅 이벤트를 생각했다.
‘내 생일.’
하지만 시샤 아르비나가 태어난 날이랑은 다르다. 그건 3월 초 언저리였다.
그리고 내일모레 찾아오는 것은… 이전 삶의 내가 지금껏 챙겨 왔던 생일.
그건 더 이상 아무도 챙겨 주지 않겠지. 나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 * *
새벽부터 방 밖이 소란스러웠다.
눈이 빨리 떠진 게 생일이라서인지, 방 밖의 소음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여러 명이 속닥이는 소리와 발소리가 쉬지 않고 울렸다.
결국 나는 방문을 벌컥 열었다.
“무슨 일….”
“히익! 아… 아가씨가…!”
지나가던 사용인 몇몇이 깜짝 놀라며 뛰어갔다.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좋은 아침이네요, 아가씨.”
“르디엘. 제 얼굴이 무서워요?”
“굳이 물으신다면 무….”
나는 방문을 닫았다. 안으로 들어가 거울을 보았으나, 순하고 아름다운 얼굴만 있었다.
똑똑. 문을 두드리고 리나가 들어왔다.
“일찍 일어났다고 하셔서요.”
리나가 내 치장을 도왔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그런지 아주 느긋한 손길이었다.
“리나, 조금만 더 빠르게 해 주면 안 돼?”
“안 돼요, 아직 준비가 덜 되어….”
리나가 흠칫, 말을 멈추었다.
“평소에는 늦게 일어나셔서 지각할 것 같다며 최소한으로만 하고 나가시잖아요. 그러니까 오늘처럼 일찍 일어나신 날 더 완벽하게 준비를 해야죠.”
“그런가? 알았어.”
결국 리나가 달팽이 기어가는 속도로 목걸이를 내 목에 걸어 준 후에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으로 향했다.
아무리 늦게 일어나도 아침은 먹는 나였다. 오늘처럼 일찍 일어난 날은 특히 더 많이 먹어야 했다.
‘점심 전에 배가 더 빨리 고파질 테니까.’
그런데 아까는 그렇게 소란스럽더니 왜 지금은 사람이 1명도 안 보이지?
다들 어디에 간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오늘의 메뉴는 뭘까. 그런 생각을 하며 식당으로 들어선 순간.
팡. 머리 위로 무언가가 터지듯 뿌려졌다.
나는 너무 깜짝 놀라서 그 자리에 굳었다.
“생일 축하한다, 시샤.”
“축하해요, 아가씨!”
“시샤 아가씨, 축하드립니다!”
“축하해!”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화려하게 음식이 세팅된 식당에는 가족들과 사용인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그리고… 연구단원들도.
“뭐, 뭐예요?”
“표정 좀 펴지 그래? 생일이잖아.”
비알로가 내 머리를 헝클리더니 웬 고깔을 씌워 주었다. 열심히 세팅한 머리가 망가지는 모습을 본 리나가 작게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너무 놀라서 나는 비알로의 만행에도 받아치지 못하고 멍하니 물었다.
“생일? 내 생일?”
“응.”
“지금 10월인데? 봄 아니고?”
“그래도 너는 오늘이 생일이니까.”
어떻게 알았지?
나는 말한 적이 없는데.
나는 시샤의 기억을 헤집었다. 그 순간 갑자기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네…. 생일이 오늘이네.”
오늘은 실제로 시샤가 태어난 날이 아니었다.
다만 그녀가 살아오면서 챙겨 온 생일은 오늘이 맞았다.
‘20년 동안 시샤가 생일로 알았던 날은, 시샤를 키워 준 이들이 그녀를 발견한 날이었어.’
시샤가 살아오면서 맞이해 온 스무 번의 생일.
그게 이 날이었다.
무슨 우연의 일치인지, 시샤의 생일과 내 생일이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