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104
@104. 운명적이네요
“그럼 혹시 지난번에, 폐하랑 귓속말로 이야기한 건 뭐예요? 둘이서 웃으며 이야기하던데.”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입술을 꼬물대며 물었다. 그 둘이 그렇게 즐겁게 귓속말하는 걸 보니, 역시 둘 사이에 뭐가 있구나 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단 말야.
“제가 언제… 아. 오늘 당신의 생일로 연구단이 쉬는 것. 그것 이외에 이야기할 게 뭐가 있었겠습니까.”
그런 거였단 말야? 나는 입을 크게 벌렸다.
“그럼, 이아페는 정말, 폐하에 대한 아무 감정이 없어요?”
“…….”
이아페의 표정이 다시 안 좋아질 것 같았다.
“그래요. 제가 이아페의 몫까지 폐하의 시선을 묶어 둘게요.”
기왕 스틸한 거 완벽하게 해 볼게요. 중얼거리는 나를 이아페가 의아하다는 눈길로 바라보았다.
“아, 참. 아무래도 지금이 타이밍인 것 같아요.”
나는 작게 웃음을 굴리며 주머니 안을 뒤적거렸다. 이아페는 말똥말똥,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 선물이에요.”
작은 상자를 이아페에게 건넸다.
이아페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의 입이 조금 벌어졌다.
받아야지, 왜 보고만 있는 거람?
나는 능글맞게 미소 지으며 이아페의 손에 상자를 쥐여 주었다.
“에이, 넣어 둬요, 넣어 둬.”
얼떨결에 상자를 받아 든 이아페가 조심스럽게 그것을 열었다.
“브로치….”
이아페와 어울리는 푸른빛이 감도는 보석을 가운데에 두고, 나무 덩굴 모양으로 그것을 둘러싸게 한 브로치였다.
“선물? 저에게?”
이아페가 가만히 그것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직접 만든 거라 조금 부실해 보이긴 할 텐데….”
“이걸 직접 말입니까?”
이아페가 깜짝 놀라서 나를 바라보았다. 저 작은 손으로 한 땀 한 땀. 그가 작게 중얼거렸다.
“물론 브로치 장인이 많이 도와주셨지만요. 조금 이상해도 열심히 만든 거니까….”
“매일 하고 다니겠습니다.”
“정말요? 안 이상해요?”
“아름답습니다. 지금까지 본 어떤 브로치보다 더.”
“다행이다. 헤헤, 사실 거기 보호 마법도 걸어 놨거든요. 혹시 모르잖아요. 위험한 일이 있어도 당신을 지켜 줄 거예요.”
이아페가 좋아해서 다행이다.
일로제와 분명 제대로 화해를 했으니 아마 일로제가 이아페를 공격하지 않겠지만.
아직 찜찜한 것들도 있고. 이아페는 워낙 여기저기서 위협을 많이 받는 사람이니 혹시 모르니까.
“사실은 하나 더 드릴 게 있습니다.”
그때 이아페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하나 더요? 시샤숲으로도 충분한데!”
“드리고 싶습니다.”
그가 상자를 열자, 은빛 목걸이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아페가 목걸이를 꺼내 들자 목걸이가 찰랑이듯 아래로 늘어졌다. 가운데의 작은 하늘빛 펜던트가 흔들리며 분홍빛을 띠었다.
“와.”
각도에 따라 색이 다르게 보이는 보석이었다. 하늘빛, 분홍빛, 어떻게 보면 노란빛을 띠기도 했다.
장담한다. 이렇게 예쁜 보석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해 드리겠습니다.”
이아페가 목걸이를 들고 내 뒤로 걸어왔다.
사륵, 목에 살짝 차가운 촉감이 닿았다가 내 체온에 맞게 온기를 머금었다.
이아페의 손이 목덜미를 스쳤다. 나는 숨을 참았다.
“마법을 담은 목걸이입니다.”
오, 이것도 마법을 넣은 거구나.
“어떤 마법인데요?”
“코레아리아어는 참 신기하죠. 세상의 아름다운 말들을 담아 만들수록 아름다운 빛을 발한다는 마도구입니다.”
“아름다운 말들요?”
「길 잃은 사막에서 마주한 서쪽 샛별.」
이아페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뒤에서 울렸다.
「해가 저물며 번지는 보랏빛 하늘. 갈라진 땅에서 막 움튼 새싹. 그런 것들.」
그것을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마치 음악 같아서, 나는 그저 감탄만 했다.
“와, 와아….”
너무 좋잖아. 그런 말들을 담은 빛이라니.
마법에 있어 코레아리아어가 중심이 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어여쁜 방식으로 쓰일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이아페는 언제 이런 마도구 만드는 법을 배운 걸까. 그리고 코레아리아어로는 또 어떤 것을 만들 수 있을까.
나는 눈을 빛내며 손으로 목걸이의 펜던트를 들어 조심스럽게 내려다보았다.
“너무 예뻐서 못 하고 다니겠어요.”
이아페가 뒤에서 나긋한 웃음을 흘렸다.
“걱정 말아요. 마도구라 하지 않았습니까. 당신이 원할 때 나타날 겁니다.”
그런 기능도 있단 말이야? 나는 계속 입을 벌리고 감탄하고 있었다.
“제가 선물을 준비한 날에 시샤 님께서도 선물을 주시다니. 운명적이네요.”
운명을 믿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
“운명….”
나는 뒤돌아 이아페의 손을 살며시 잡아 보았다. 온기가 느껴지는 손이 내 손을 꼬옥 붙잡았다.
허무하게 끝날 뻔한 이 삶이 지속될 수 있게 문을 열어 준 사람. 그리고 지금까지 줄곧 나를 지지하는 동시에 이끌어 준 사람.
“제 생각에도 그런 것 같아요.”
올려다 본 이아페의 얼굴이 행복으로 상기되어 있었다.
나는 입술을 꼬물대다 그를 포옥 안아 버렸다.
* * *
“전쟁에 파견된 마법사들이 국경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전갈이 왔어요.”
셀라임이 편지를 읽고 싱긋 미소 지었다. 시샤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요! 분명 무사히 돌아올 거예요. 아, 이건 어때요? 돌아오면 마법사 파티를 여는 거죠!”
“마법사들끼리 하는 첫 파티니까 의미 있겠어요. 어떻게 준비할지 미리 구상해 둬야겠네요.”
셀라임이 고민에 빠진 동안, 이아페가 시샤의 곁으로 다가왔다.
“마법으로 파티의 다양한 볼거리를 만들 수도 있겠군요.”
“그렇죠? 예전에 라온이 말했던 패션쇼나….”
시샤는 자신이 생각하는 파티의 형상을 재잘재잘 늘어놓았고, 이아페는 그런 시샤를 보며 시종일관 미소를 지우지 못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이가 있었으니.
“이상해요.”
라온이었다.
“뭐가?”
팔짱을 끼고 이아페를 심각하게 바라보는 라온을 향해 카실이 물었다. 라온이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내더니 고민의 원흉을 털어놓았다.
“어쩐지 요즘 기분이 좋아 보인단 말이죠.”
카실이 라온이 바라보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시샤와 이야기 중인 이아페가 보였다. 카실이 고개를 갸웃했다.
“쟤가 기분이 좋으면 안 돼? 시샤랑 있을 땐 항상 기분이 좋잖아.”
“최근의 표정과 비교했을 때 약 7.7배 정도 좋아 보이는 게 문제예요. 으… 뭐지? 분명 단서가 있었을 텐데 뭘 놓친 거지? 소화가 안 될 지경이에요.”
라온이 으, 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때 시샤가 그런 라온을 향해 다가왔다.
“왜 그래요, 라온? 몸이 안 좋아요?”
“소화가 안 된대.”
카실이 라온의 상태를 대변해 주었다. 라온은 시샤 너머의 이아페를 힐끗 바라보았다.
역시 이상했다. 자신과 이야기하다가 시샤의 관심이 이쪽으로 쏠린 상황인데. 이아페는 보살처럼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으….”
“아이구, 어떡해. 체했나? 등 두드려 줄까요?”
“아뇨. 그런 짓을 하시면 제가 죽을지도 몰라요.”
“그렇게 세게는 안 두드리는데?”
시샤가 고개를 갸웃했다. 라온은 시샤 너머의 이아페를 힐끗 바라보았다.
“내가 두드려 줄까?”
아니나 다를까. 귀를 이곳에 세우고 있던 이아페가 무서운 제안을 했다.
“아니, 괜찮아요.”
“아, 그럼 소화를 해결하는 주문이 있어요.”
시샤가 아이디어가 생각났다는 듯 밝게 외쳤다.
「사이다 말고 고구마!」
“우읍… 더 더부룩한 것 같은데요, 단장님. 우욱.”
라온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그가 헛구역질까지 하자, 시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잘못 말했다! 「고구마 말고 사이다!」”
라온이 헛구역질을 멈추었다. 그의 표정이 한결 편해졌다.
“놀리지 마세요, 단장님.”
“에이, 미안해요. 요즘 정신이 없어서 말을 잘못하곤 해요. 이제 괜찮죠?”
라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이아페에게서 무엇을 발견하곤 아, 하고 짧게 탄성을 뱉었다.
“이제 정말 괜찮아요, 단장님! 해결이 되었어요.”
시샤가 다행이라 말하며 다시 이아페에게로 걸어갔다.
정말로 묵은 체증이 내려간 듯 행복하게 가슴을 쓸어내리는 라온에게 카실이 한 발짝 다가갔다.
“왜? 뭔데?”
“아무래도 이아페에게 달린 저 브로치. 단장님에게 받은 것 같아요.”
“뭐? 나도 달라고 할래!”
“가만 좀 있어요.”
튀어 나가는 카실을 라온이 붙잡았다.
“저건… 맹수의 재갈 같은 거예요. 기억 안 나요? 단장님께서 휴가를 쓰실 때 이아페 분위기가 어땠는지?”
“으음… 까칠한 성질머리가 대단했지.”
“그에 비하면 지금, 저 온순한 표정을 보라고요.”
“쟤도 참… 평소에는 눈깔을 이렇게 뜨고 당당하게 다니면서 시샤 앞에서는 묘하게 흐리멍덩한 구석이 있어.”
카실이 제 눈가를 잡고 위로 끌어 올려 성난 눈을 만들었다. 라온이 카실의 말에 적극적으로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키론 제국의 동쪽 경계는 몇 개의 소국과 맞닿아 있었다. 본래 더욱 많은 나라와 마주하고 있었으나, 그중 상당수가 칼린느에 의해 키론에 복속되었다.
하지만 지금 전쟁 중인 나라, 티리올은 꽤나 난감한 상대였다.
티리올과의 사이에는 험한 산맥을 두고 있었다. 그 지역에서만 나는 풀은 귀중한 약재로, 광물은 소중한 자원으로 쓰였다. 키론에서도, 티리올에서도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곳이었다.
문제는 티리올이 나라 자체의 지형이 고산지대를 기반으로 형성이 된 곳이라, 험한 지형에서의 전투에 더 밝았다는 것.
“그래도 우리에게는 이제 마법이 있잖아!”
“맞아. 오늘 전투에서도 덕분에 희생자가 1명도 없었어. 고맙네.”
전투를 마치고 돌아온 지휘관과 병사들이 마법사들에게 악수를 청했다.
“저희의 힘이 도움이 될 수 있어서 오히려 영광입니다.”
에투알이 손을 맞잡으며 환하게 웃었다.
마법으로 지형을 미리 살피고, 방어에 힘을 쓴 덕분에 승기가 이쪽으로 넘어오고 있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온전한 승리를 손에 쥘 것 같았다.
그녀는 다른 마법사들과 함께 막사로 되돌아갔다.
“곧 집에 돌아갈 수 있겠는걸.”
“그러게. 완전 금의환향이겠는데? 파티라도 해 주는 것 아냐?”
“와하하, 이참에 좋은 옷 한 벌 마련해야 하나.”
“잠깐만.”
그때 세렌이 손을 들어 조디에의 말을 끊었다. 자리에 있던 이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세렌을 바라봤다.
“…발소리가 들려.”
쿵! 세렌의 말이 끝나자마자, 어디선가 커다란 굉음이 들렸다.
기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