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107
@107. 앞으로는, 먼저 와도 돼
작은 틈도 없이 맞추어진 자리에 열기가 잔뜩 올랐다.
이아페의 손가락이 내 머리카락 사이를 파고들어 뒷머리를 단단히 받쳤다. 이내 입 속으로 무언가가 침투했다.
“……!”
심장을 통째로 떼어 내 바닥에 내리꽂은 듯한 강렬한 자극에 나는 몸을 떨었다.
성마른 움직임과는 반대로, 내 손을 지분대는 이아페의 손길은 너무도 다정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 간극에 나는 더 흐물흐물해지는 것 같았다. 냉탕과 온탕을 멋대로 오가는 통에 넋이 쏙 빠졌다.
머릿속이 그야말로 뒤죽박죽이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뜨거워지는 것 같기도, 오싹하리만큼 차가워지는 것 같기도 했다.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이렇게까지 좋은 걸 평생 하지 않고 살아왔다니!
세상에 그와 나 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시간이 가는 게 아까웠다.
모쏠이었던 지난 삶에 회한까지 생길 정도였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이동하며 나는 듯한 찰랑이는 물소리. 그리고.
“이아페랑 시샤는 정말 어디까지 간 거야?”
나는 눈을 번쩍 뜨고 이아페에게서 얼굴을 떼어 냈다.
‘방금 그거 카실 목소리였지?’
꿈을 꾸는 와중에 누가 물을 끼얹어서 깬 기분이었다. 이아페가 다시 내게로 얼굴을 내렸으나, 나는 황급히 손으로 그의 입을 막았다.
이아페의 입을 가로막은 손 위로, 그와 눈이 마주쳤다.
“알아서 잘 놀고 있으시겠죠. 걱정 말라니까요.”
“다들 걱정도 안 되냐? 물에라도 빠졌으면 어쩌려고!”
“걱정 마요. 아까 이아페 발 젓는 거 못 봤어요? 헤엄이 아니라 거의 날 수도 있을 것 같던데.”
소리가 조금씩 가까워졌다. 카실뿐 아니라 다른 단원들도 함께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최대한 숨을 죽이고 눈을 깜빡였다.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을 들킬까 봐 조마조마했다.
뒤편에 길게 우거진 수풀이 있어 이곳이 제대로 보이진 않을 터였다. 하지만 그래도 정말로 아무것도 안 보인다는 보장은 없었다.
‘지금이라도 나갈까?’
애초에 오늘은 이아페랑 데이트를 온 게 아니라 단원들이랑 같이 놀러 온 거였잖아.
누구도 따라잡지 못할 만큼 멀리까지 왔다는 생각에 너무 안심했다.
현장을 발각당한 듯이 들킬 바에는, 우리가 먼저 이제 왔냐며 인사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
하지만 결국 단원들을 부르지 못했다.
들킬까 봐 조마조마한 것과는 별개로, 이아페의 눈을 보면 느껴지는 두근거림이 더 커서….
조금만 더 이렇게 있고 싶었다.
“이아페는 단장님이 물에 빠졌다면 호수의 물 전체를 없애 버릴 위인이에요.”
“이아페가 물에 빠지면요?”
“시샤 님이 물에 멋지게 뛰어들어서 구하시겠죠? 헤엄을 치실 줄 안다고 하셨거든요. 그러고는 양팔에 이아페를 안고 걸어 나오는 거예요.”
“어머, 멋져라.”
다행히도 지척까지 가까워졌던 말소리가 다시 멀어졌다.
물 한 방울 튀기는 소리조차 나지 않을 때까지, 나는 가만히 이아페와 눈만 마주치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로 우리만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겨우 긴장을 풀었다.
“…갔나 봐요.”
손을 내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이아페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웃어?”
지금 나는 심각한 상황인데. 간 떨려서 죽는 줄 알았단 말야.
괜히 입술을 삐죽대자, 이아페가 몹시도 사랑스럽다는 듯한 눈빛을 내게 보냈다.
“당신이랑 이렇게 있는 게 꿈 같아서.”
“…….”
“이렇게 오래 눈을 마주하고 있어 본 적이 없으니까…. 이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서.”
이아페가 내 손을 꼬옥 잡았다. 수줍게 웃는 그의 얼굴을 보는데 나야말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의 시선이 향한 유일한 사람이, 듣기 좋은 그의 목소리가 품은 사람이 나라니.
어느덧 하늘은 마치 불을 질러 놓은 듯 붉은 노을이 지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석양이 이토록 선명하지 않았더라면, 상기된 내 뺨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을 테니.
“시샤.”
나를 다정스레 바라보던 이아페가 조금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난봄부터 내가 얼마나… 겁이 났는지 모르지?”
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터뜨리듯 말을 이었다. 꾹꾹 눌러 놨던 마음이 넘쳐 나온 것처럼. 그것을 차마 막지 못한 것처럼.
“나도 모르게… 너를 사랑한다고 말해 버릴까 봐.”
나는 숨을 훅, 들이켰다.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네게 입 맞춰 버릴까 봐.”
이아페가 시선을 내리깔았다. 시작한 이야기를 더 이상 멈출 수 없다는 듯, 계속 말을 이어 가면서.
“꿈속에서도 그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몰라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널 바라보기만 해.”
이아페의 눈빛이 흔들렸다. 일그러진 표정을 숨기고자 그는 애써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리고 네가 먼저 내게 입을 맞추면, 그제야 꿈이구나, 하고 다가가는 거야.”
이아페는 평생 빠져나오지 못할 굴레에 갇혀 있는 듯, 괴로워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의 말을 들은 순간 내 몸이 움직인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손을 뻗어 이아페의 목을 감싸 안았다. 꼬옥, 그를 한 번 안아 주고는 몸을 떼어 내며 말했다.
“꿈 아니야. 그래도… 이리 와.”
“…….”
“앞으로는 먼저 와도 돼.”
속삭임과 함께 사르르 미소를 지었다.
멍하니 날 바라보던 이아페가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내게 입을 맞췄다. 그의 부드러운 머리칼이 기분 좋게 팔을 간질여서, 나도 웃음을 터뜨렸다.
이토록 서로의 감정을 올곧게 마주하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내 마음조차 들여다보지 못하고, 상대의 마음을 오해하고, 단정 짓고, 오지 않을 상황을 두려워하고.
피하고, 피하고, 또 피했다.
그럼에도 돌고 돌아 결국은 우리가 가장 원하는 사람이 서로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날 이아페가 내게 마음을 전하지 않았다면, 결국은 내가 먼저 말하고 말았을 것이다.
더 이상 가둬 둘 수 없는, 넘쳐흐를 수밖에 없는 마음이었으니까.
그의 코와 내 코가 쉴 새 없이 부딪쳤다. 뜨거운 숨을 불어 넣고 삼키는 동안 어떤 위기감이 온몸을 덮쳐 왔다.
“이아페.”
짧게 숨을 삼키고, 저물어 가는 노을빛을 받은 그를 바라보았다.
“어떡해?”
나도 모르게 울상이 지어졌다. 이아페가 왜 그러냐는 듯 걱정스럽다는 눈길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 이아페 좋아하는 거, 사람들 앞에서 못 숨길 것 같아.”
이아페의 눈이 커졌다. 그의 눈동자가 잠시 내 말을 곱씹는 듯 깜빡이더니, 이내 충만한 기쁨으로 빛났다.
“숨기지 마.”
이아페가 나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그의 손이 내 허리에 와 닿았다. 그가 나를 당겼다.
시샤. 그가 내 이름을 숨과 함께 밀어 넣었다. 너무도 달콤했다. 밤새도록 입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이아페가 몸을 떼어 냈다. 그의 살짝 내리깐 시선을 바라보며 나는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어쩐지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아페가 단단히 몸을 고정한 채 나를 들어 제 다리 위에 앉혔다. 백조 배가 출렁였다.
‘이, 이래도 되나?’
살짝 벌어져 더운 숨을 뱉어 내던 입술이 다시 나를 삼켰다. 솜털까지 쭈뼛 서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아까보다 훨씬 편한 자세인데다 그가 쉴 틈을 주지 않은 덕분에, 어느새 머릿속에 있던 생각들이 날아가 버렸다.
그렇게 저 멀리서 다시 우리를 찾는 부름이 들려올 때까지, 해 질 녘의 백조 배에서는 입술이 부딪히는 소리와 간헐적으로 들리는 거친 숨소리만 가득했다.
* * *
그날 밤, 나는 침대에서 한참을 뒤척였다.
집에 왔는데도 아직도 백조 배에 타고 있는 기분이었다.
오늘 있었던 일이 믿기지 않아서 입술을 만지고, 만지고, 또 만져 보았다.
다시 생각하니 머리에 열이 올라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침대를 퍽퍽 쳤다.
“휴….”
이불을 다시 팍 내리고, 나는 한숨을 쉬었다.
너무 행복해서 그런가, 이상하게 불안했다. 어쩐지… 이 행복이 언제든 깨져 버릴 것만 같은 예감에 휩싸였다.
괜히 술렁거리는 기분에 쉽게 잠들 수가 없었다.
“아냐. 행복은 행복으로만 받아들여야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안 좋은 예감은 그저 걱정의 집약일 뿐이다. 나쁜 예감이 든 날 대부분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그렇게 오래도록 스스로를 토닥이다가, 새벽이 깊어서야 겨우 잠들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만은 그 예감이 맞았다.
다음 날, 연구실에 들어선 순간 느껴지는 가라앉은 공기에 나는 숨을 훅 들이켰다.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다.
“단장님.”
라온이 내게 다가오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단원들의 표정에는 슬픔과 착잡함이 뒤섞여 있었다.
“왜 그래요…?”
여전히 문가에 선 채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라온이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마법사들이 파견된 전쟁에서… 조디에 한 명을 제외하고 아군이 전멸했다고 합니다.”
뭐라고…?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파견을 떠나는 날 하나하나 손을 잡고 조심해서 다녀오라 인사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했다. 그런데 이제는 볼 수 없다고…?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방어 마법을 철저히 익히고 갔을 텐데, 왜 모두가 그렇게 되었단 말인가.
행복도 역시 총량이 정해져 있는 걸까. 어제 너무 행복한 하루를 보내서, 오늘 이렇게 가슴이 아파야 하는 걸까.
“괜찮으십니까?”
문을 꽉 잡고 선 나를 이아페가 부축했다. 나는 멍하니 내 자리를 향해 걸음을 옮기다가 멈춰 섰다.
“조디에가 많이… 힘들 거예요. 조디에를 만나야겠어요.”
어쩌면 크나큰 불행을 떠안고 있을 조디에를 만나 꼭 안아 주어야 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온전히 알지는 못했다.
어제까지의 행복이, 그야말로 폭풍 전야였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