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108
@108. 왜 그러셨습니까?
소파의 팔걸이에 팔을 괸 채 관자놀이를 짚은 칼린느가 눈을 감았다. 긴 머리가 어깨 너머로 흘러내렸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가슴이 답답했다.
“세디안. 물을 좀 가져다줘.”
세디안이 말없이 찻잔에 음료를 따랐다.
그리고 칼린느에게로 걸어가 조심스럽게 그녀의 입으로 잔을 기울였다. 한 손으로는 그녀의 턱 밑을 자연스레 바친 채.
칼린느의 입가로 한 줄기 액체가 흘러내렸다.
“술이잖아.”
칼린느가 천천히 눈을 떴다. 턱 아래로 흐르는 술을 닦기 위해 한 손을 들어 올렸으나, 세디안이 그녀의 손을 막았다.
대신 제 입을 그녀의 입술 아래로 가져다 댔다.
담담한 움직임이었다.
“물보다 더 필요하실 것 같아서.”
무표정하게 얼굴을 떼어 내는 세디안을 향해 칼린느가 눈썹을 기울였다.
“방자하기는.”
“술이 옷에 떨어지지 않도록 닦아 드렸을 뿐입니다.”
“네가 이렇게 구는데도 그냥 두는 이유는, 너만 한 실력을 갖춘 호위가 없기 때문이야.”
“알고 있습니다.”
칼린느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앞에 놓인 의자를 턱짓했다.
“오늘은 고민이 많으니 넘어가지. 잔을 더 가져와서 앉아.”
“저는 마시지 않습니다. 호위 일에 집중해야 하니.”
“명령이야.”
그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잔을 가지러 갔다.
“티리올의 일 때문이십니까.”
자리로 돌아오며 세디안이 물었다. 전쟁을 생각하자 그의 눈빛이 차게 식었지만, 칼린느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
세디안이 칼린느의 앞에 앉았다. 칼린느가 술잔을 내밀며 한숨을 내쉬었다.
“티리올과의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군사가 단 1명뿐이니.”
“조디에라는 이름의 마법사 말씀이시군요.”
궁정 회의에서는 이 일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어떻게 마법사들이 파견돼 갔는데도 패배할 수가 있는지부터, 왜 키론의 잘 훈련된 군사들이 전멸한 것인지.
그리고 살아남은 단 1명이 하필 마법사라는 건 어째서인지에 대해서도.
“그런데 현장을 직접 본 유일한 우리 편이 묵묵부답이니.”
홀로 돌아온 조디에는 말을 잃은 사람처럼 며칠 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그래도 저보다는 함께 시간을 보낸 시샤를 대하는 게 나을 듯해 그녀를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왜 그런 반응이었을까.’
조디에는 시샤를 보자마자 몸을 부르르 떨었다. 화가 난 것 같기도, 두려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연구단의 단장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게 이상하단 말야. 그녀가 미움을 살 성격은 아니니까.”
시샤 또한 조디에의 반응에 당황한 눈치였다.
그래서 우선은 조디에가 홀로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 그저 지켜보는 중이었지만… 시일이 지날수록 외부의 상황은 안 좋아질 뿐이었다.
“궁정 회의에 그 마법사를 데려오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
“참석시킬 생각이십니까?”
“정식으로 심문을 받는 것보다야 이편이 덜 고통스럽지 않겠어?”
칼린느가 술잔을 비웠다.
그녀로서도 마법사를 궁정 회의의 먹잇감으로 던져 줄 생각은 없었다.
다만 관료들은 현장의 유일한 목격자가 입을 열지 못하는 상황을 납득하지 못하는 것 같기에.
‘직접 보여 주면 잠시간은 잠잠하겠지.’
그런 생각이었다.
조디에가 궁정 회의에서 어떤 말을 쏟아 낼지도 모르고.
* * *
“어머, 아르비나 단장님. 여기 계셨군요. 안 그래도 궁정 회의에 모셔오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칼린느의 시녀가 날 보고 깜짝 놀라며 말을 전했다.
얼마 전, 마법사들이 파견됐던 전쟁의 군사들이 전멸한 일과 관련해 궁정 회의에 조디에가 참석한다는 말을 들었다.
어째서인지 조디에는 나를 반기지 않는 것 같았지만… 나도 이렇게나 마음이 착잡한데 전쟁을 직접 겪은 조디에는 얼마나 슬플지 가늠이 안 되었다.
그런 그가 관료들의 관심까지 받는 것이 걱정되어서, 나는 회의가 열리는 홀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나도 참석하라니. 마법과 관련해 물을 것이 있는 건가?
“네, 참석하겠습니다.”
걸음을 옮기려는데 이아페가 나를 잡았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지금 당신이 가면 분명 꼬투리를 잡아 물어뜯을 겁니다.”
“그럼 더 들어가야 해요. 조디에가 혼자 물어뜯기게 할 순 없잖아요.”
단호하게 이아페를 바라보자, 그가 천천히 손을 놓았다.
“조심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빠르게 걸음을 옮겨 회의장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들어선 회의장의 공기는 생각보다 훨씬 날카로웠다.
철컥.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모든 이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뭐지?’
화살처럼 쏟아지는 시선에 담긴 것은 분명한 적대감.
온몸의 털이 쭈뼛 섰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무거운 분위기일 거라는 것은 각오했지만… 이토록 선명한 적의일 줄은 예상 못 했는데.
“…코레아리아어 연구단의 단장, 시샤 아르비나입니다.”
“그래, 시샤 아르비나. 이자가 이상한 말을 해서 말야.”
중앙에 앉은 칼린느가 헛웃음을 터뜨리며 조디에를 힐끗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오해를 풀어 줘야겠어. 그대의 이야기를 들어 보지.”
어이가 없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한 말투였다.
회의에 참석한 어느 백작이 반박하듯 소리쳤다.
“오해라뇨, 폐하! 분명 그 주문이라는 것을 잘못…!”
“그러니까!”
칼린느의 성난 음성에 장내가 조용해졌다. 칼린느가 백작을 향해 낮게 읊조리듯 말했다.
“이야기를 들어 본다는 건데. 말귀를 못 알아듣나? 쓸모없는 귀는 잘라도 될 것 같은데.”
백작이 숨을 삼켰다. 그가 심장이 벌렁대는 듯한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르비나 영애가, 아니, 단장께서 그럼 말해 보시지요!”
대체 뭘 말하라는 거지? 내가 죄인이 된 듯한 이 분위기는 뭐고?
혼란스러움이 담긴 시선으로 조디에를 바라보았다.
그때 조디에가 주먹을 꼭 쥐고 이쪽을 노려보았다.
“왜 그러셨습니까, 단장님.”
“네? 조디에, 미안하지만 상황을 설명해 줄래요? 왜 그랬냐니….”
내 말이 끝나기 전에, 조디에가 빠르게 답을 쏟아 냈다.
“단장님이 가르쳐 주신 주문을 외웠더니 저희 군사가 전멸했습니다.”
“…네?”
지금… 이게 무슨 소리지?
* * *
조디에의 머릿 속, 아군이 전멸했던 그날의 전쟁이 그려졌다. 벌써 며칠이 지났으나 선명했다. 아마도 평생 지워지지 않을 기억이었다.
그러니까 그날 밤.
적군의 기습과 함께, 어디선가 날아온 불화살이 피운 불길이 막사에 옮겨붙었다.
하지만 이 정도는 막을 수 있었다. 에스텔라가 물 마법으로 빠르게 불을 껐다.
〈어서 방어 마법을 써!〉
〈「결계!」〉
아스트로가 빠르게 막사들을 향해 결계를 펼쳤다.
〈걱정 마. 적군도 죽을 생각이 아닌 이상, 멀리서 바위를 던지거나 불화살을 쏠 뿐 여기까지 직접 오진 못해. 우리 입장에선 차라리 그런 커다란 범위의 공격이 막기 쉽고.〉
에투알이 모두를 안심시켰다. 그들은 빠르게 결계 마법을 써서 날아오는 공격을 막았다.
문제는 예상이 빗나갔다는 것.
와, 하는 함성이 가까워졌다. 적들이 무섭게 쳐들어오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불화살이 날아왔고, 바위가 쿵, 하고 떨어졌다.
〈…함께 죽을 작정이야.〉
현장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결계는 흔들렸고, 반복된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하나둘 부서졌다.
〈어, 어떡하지?〉
조디에의 목소리가 떨렸다. 뒷걸음질 치는 그에게 에스텔라가 외쳤다.
〈아직 괜찮아. 결계를 계속 만들면 돼.〉
에스텔라의 격려에 조디에도 고개를 끄덕이고 결계를 쳤다.
에투알이 입술을 깨물었다.
하나하나 결계를 쳐서 막으면 결국에는 저들도 방법이 없겠지.
하지만 모두의 마력이 계속되는 공격을 버틸 수 있을까? 저들은 죽을 각오로 이곳을 친 것인데.
〈저기 마법사가 있다!〉
그때 몇 명의 적국 병사가 이쪽을 향해 달려왔다. 그들은 방어의 주축이 마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마법사들을 잡을 생각이었다.
〈「공중 부양!」〉
다행히 마법사들은 하늘로 날아올라 그들의 손을 피했다.
심각한 표정으로 전쟁터를 바라보던 에투알이 무언가 생각나 소리쳤다.
〈그래, 분명 아르비나 단장님이 주셨던 주문집에 대규모 보호막을 치는 주문이 있었어. 뭐였는지 기억나?〉
세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멸」이라고 했어. 우리 군사와 적의 군사를 분리하고 대규모 보호막을 치는 주문.〉
위기 상황에서 찾은 돌파구에 그들의 얼굴이 희망으로 물들었다.
〈연습을 해 본 적이 없는데 쓸 수 있을까? 마력이 꽤 많이 필요할 거라고 해서 아직 시도해 본 적 없잖아.〉
〈괜찮아. 다 같이 하면 쓸 수 있을 거야.〉
〈혹시 모르니 조디에는 계속 「결계」를 맡아. 나머지는 내려가서 함께 「자멸」을 쓰자.〉
조디에가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다행이다. 그런 주문이 있어서. 그렇게 생각하며.
조디에를 제외한 4명의 마법사가 아래로 내려갔다.
적군이 그들에게로 달려왔다.
마법사들은 서로의 손을 부여잡고, 이 일대의 땅 전체에 마법을 발동했다.
〈「자멸.」〉
땅이 울리는 소리가 났다.
칼 부딪치는 소리와 기합 소리, 비명이 난무하던 현장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뭐야…?〉
까만 하늘에 조디에의 멍한 목소리가 퍼졌다.
적군의 함성 소리가 울린 것은 다음 순간이었다.
그렇게 그 밤.
조디에를 제외하고 그 자리에 있던 키론 제국의 군사 모두가 자멸했다.
시샤가 만든 주문집, 그곳에 적힌 방어 주문을 외우자마자 일어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