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109
@109. 확신과 의심
뭔가 잘못 들은 것 같아서 나는 가만히 눈을 끔뻑댔다. 조디에의 말이 무슨 뜻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조디에가 울컥한 듯 심호흡을 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저희에게 주셨던 주문집. 거기에 자국 군사들을 죽이는 주문을 넣지 않으셨습니까.”
“…내가 왜 그런 짓을 하겠어요, 조디에. 뭔가 착오가….”
“착오가 있을지 모른다. 설마 단장님이 그런 주문을 넣었을까. 수없이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당신의 짓이 맞아요.”
“…주문은 방어 마법 위주로 구성했어요. 공격 마법을 몇 개 적긴 했지만, 자국 군사들을 죽…이다니… 그게 무슨….”
나를 노려보는 조디에의 두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었다.
그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게로 달려왔다.
회의실 내에 주둔하던 병사들이 그를 붙잡았다.
쿵, 조디에가 넘어졌다.
“조디에! 괜찮아요?”
“괜찮냐고요? 아뇨! 왜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십니까? 저요, 주문집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단장님의 필체로 다 쓰여 있다고요! 「자멸」이라고!”
악에 받친 목소리. 병사에게 깔린 채 조디에가 몸부림을 쳤다.
“주문집이라니, 증거가 있단 말인가! 어서 내놓아 보게!”
“역시 악마의 힘이야. 결국은 이렇게 될 줄 알았지.”
“어허, 자네 지금 마법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인가?”
주변에서 수많은 이들의 말소리가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회의실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게… 이게 다 무슨 상황이지?
‘「자멸」. 내가 주문집에 그렇게 적었다고?’
사람들이 싸우는 소리가 높아졌다. 마치 귀에 막이라도 둘러싼 듯, 그것들이 귀에 앵앵거리듯 울렸다.
속이 미친 듯이 울렁거린다. 머리가 어지럽고 쓰러질 것만 같다.
“시샤.”
그때 누군가 나를 뒤로 잡아당겼다.
멍하니 뒤를 돌아보자, 어머니가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니?”
“어머니…?”
“증거는 분석해 보면 결과가 나오겠지요. 다들 이성을 잃으신 와중에 할 말은 없을 듯합니다.”
어머니가 칼린느를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칼린느가 귀족들을 향해 선언했다.
“시샤 아르비나가 국가에 충성하고 있다는 것은 내가 보증하지. 그녀에 대해 근거 없는 유언비어를 퍼뜨린다면 혀를 자르겠다.”
“…….”
“그럼 오늘의 회의는 이만 마치도록 하지.”
칼린느의 파장 선언을 끝으로 어머니가 내 손을 이끌고 회의장을 빠져나왔다.
복도를 성큼성큼 걷는 동안 뒤에서 다양한 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이렇게 끝내는 게 어디 있냐는 둥, 딸이라고 감싸는 거냐는 둥 불만 섞인 대화.
그리고 그 안에 섞인 조디에의 울음소리도.
“어머니, 저는….”
“편할 대로 지껄여 대는 소리들은 들을 필요 없다. 중요한 건 진실이야.”
어머니가 잡은 내 손을 더 꼭 쥐었다. 그러다 잠시 걸음을 멈춘 그녀는 미간을 찌푸린 채 양손으로 내 두 손을 감싸 들었다.
그제야 내 손이 덜덜 떨리고 있단 걸 알았다.
“시샤. 마음 단단히 먹어라. 나는 너를 믿는다.”
어머니의 눈동자에는 한 치의 의심도, 흔들림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나는 나를 의심하고 있다.
‘최근에… 주문을 계속 헷갈렸잖아.’
게다가 내가 가르쳐 주지 않았다면 알 리 없는 「자멸」이라는 단어. 그것이 조디에의 입에서 나왔다.
설마 정말… 정말로 나 때문인가? 내가 잘못 써서, 그래서 모두가 죽은 거야?
“시샤 님?”
이아페의 목소리가 들렸다. 복도를 지나 위치한 응접실.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모양이었다.
나를 본 그의 표정이 서릿발처럼 싸늘해졌다.
“안에서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자네가 여기 있어 다행이군. 시샤의 귀갓길에 함께해 주겠나.”
이아페가 뭔가 물으려다가 그만두었다. 대신 날 향해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가실까요, 시샤 님.”
아무것도 걱정할 것 없다는 듯, 안심하라는 듯한 미소. 무슨 상황인지 모를 것임에도 무조건적으로 나를 생각하는 듯한 표정.
이아페가 나를 부축하듯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집에서 보자꾸나.”
어머니는 귀족들이 아직 남아 있는 회의장으로 다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 뒷모습을 보는데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눈물조차 흘리면 안 될 것 같아서,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날이 제법 서늘해졌습니다. 댁에 도착하면 따뜻한 차를 준비하라 해야겠군요.”
“네….”
“참, 남부에서 형이 보내 준 차가 있습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달콤한 체리 향입니다. 내일 별궁에 가져오겠습니다.”
“아, 네…. 고마워요.”
집에 가는 내내, 이아페가 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함이겠지.
내가 네, 아… 따위의 대답밖에 하지 못하는데도 그는 말을 끊지 않았다.
그 마음이 너무 따뜻해서, 내 속은 더욱 문드러져만 갔다.
* * *
궁에서는 조디에가 내민 주문집의 필체와 내 필체를 비교 감정한다고 했다.
그렇게 나온 결론으로 후속 조치를 결정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동안 연구단에, 아니, 어디에도 가지 못한 채 집에서 얌전히 결과를 기다릴 뿐이었다.
“필체 감정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너 자신에 대한 판단도, 자책도 유보해라.”
어머니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평화를 가장한 시간이 흘러갔다. 다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거라는 듯 굴었다.
하지만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그들이 표정을 굳히는 것을 알았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어머니가 새벽같이 궁으로 간다는 것도.
불안과 자책은 착실히 나를 조여 왔다.
그리고 사흘 후, 궁에서 전갈이 도착했다.
나는 서둘러 궁으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칼린느의 알현실도, 회의가 열리는 홀도 아닌 그녀의 개인 정원이었다.
은빛 머리를 틀어 올린 칼린느가 여유로운 미소로 날 맞이했다.
“꽃을 좋아한다기에 이쪽으로 불렀지. 좀 걸을까.”
나는 그녀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가을의 하늘은 너무도 푸르렀고, 칼린느의 정원에는 그녀와 어울리는 화려한 꽃들이 수놓아져 있었다.
이토록 동화 같은 배경이라니. 어쩐지 꿈만 같은 낮이었다.
“시샤 아르비나.”
평소보다 조금 더 나지막하게 칼린느가 내 이름을 불렀다.
“네, 폐하.”
심장이 빠르게 뛴다.
필체 감정의 결과를 말하려는 걸까.
지난 사흘. 차라리 내 눈으로 주문집을 보고 결론을 얻고 싶었지만, 증거를 조작할 우려가 있어 공개하지 못한다 했다.
그렇게 의심이 더욱 커져만 가는 며칠을 보내는 동안 나는 이제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칼린느가 담담히 입을 열었다.
“나는 꿈을 꾸는 법을 몰랐다.”
“…….”
“눈앞의 것들을 쳐 내기에 버거운 나날을 보냈어. 베고, 베고, 또 베었더니 황제라는 자리에 올라 있었지. 그래서… 그대가 마법이라는 힘을 활용해 보라 했을 때, 솔직히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내 시선이 흔들렸다.
마법에 기대를 하지 않았다는 건… 이 힘을 더 이상 지원하지 않겠다는 건가?
악마의 힘이라 불리던 힘이니까. 역시나 싶은 걸까?
‘아냐, 이건 내 잘못이야. 마법과는 상관없어.’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아페와 나눴던 대화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이 힘의 옳고 그름은 그 존재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는 건데.
마법은 분명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힘이다. 잘못이 있다면 제대로 다루지 못한 나한테 있을 뿐.
“폐하, 마법은…!”
“하나 그대가 내게 마법의 가능성을 보여 줄수록 나도 모르게 생기더군. 기대라는 게.”
“…….”
“더 강한 나라, 그리고 더 평안한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어.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듯한 미래가 욕심이 났지. 동시에 재밌기도 했고.”
칼린느가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추억을 회상하는 듯한 그 눈에는 이렇게 되어 버린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무엇을 끼얹는다 해도 사라지지 않을 믿음이 가득했다.
그녀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옆으로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앞으로 이런 위기가 몇 번 더 찾아온다 해도. 분명 이 힘의 진가는 빛을 발할 거라는 확신이 있어.”
칼린느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대가 가르쳐 준 거야, 시샤 아르비나.”
그 순간 알았다.
원작처럼 이아페가 칼린느의 바로 가까이에서 마법의 강점을 계속해서 보여 주고 확인시키지 않아도.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던 내가 사라진다 해도.
칼린느는 마법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이미 칼린느는 마법에 대해 누구보다 확신하고 있다. 이 힘을 사랑하고 있다.
“폐하.”
하지만 그렇기에.
“필체 감정의 결과가 나온 거죠?”
칼린느는 마법을 지키기 위한 선택을 할 것이다.
그녀는 이 키론 제국의 황제이고,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나라를 만들기 위해 나아가야만 하니까.
“…그래. 시샤 아르비나. 그대의 필체와 같다더군. 조작의 가능성은… 없어.”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심장이 철렁했다. 그 자리에 주저앉지 않기 위해 발끝에 힘을 꽈악 주어야만 했다.
왼손을 포개듯 잡고 있던 오른손의 손톱이 왼쪽 손등을 파고들었다. 아픈 것보다 덜덜 떨리는 몸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죄송합니다. 정말, 정말로… 일부러 그러려던 게 아니….”
“당연해. 그대가 일부러 그런 짓을 했다고는 믿지 않아. 하지만.”
어쩐지 칼린느가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말을 그녀가 얼마나 어렵게 꺼내는지도.
칼린느의 눈에,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슬픔이 담겨 있었기에.
“잠시만 내려놓아 줄 수 있겠나? 단장의 자리를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