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110
@110. 진퇴양난
궁정 회의가 열리는 홀은 평소보다 조금 더 시끄러웠다.
코레아리아어 연구단의 단장, 시샤 아르비나가 만든 주문집. 그 안에 담긴 마법을 썼더니 아군이 전멸했다는 증언의 사실 여부를 밝히기로 하였기 때문이다.
“폐하는 왜 이리 늦으시는 건가? 설마 이대로 묻으시려는 건 아니겠지!”
“그럼 오히려 그 힘이 악마의 힘이라는 게 증명되는 것이지.”
“흠흠, 단정 짓긴 이르네. 솔직히 그 냉돌을 이제 못 쓴다 생각하면 다음 여름이 걱정되지 않나?”
칼린느의 참석이 늦어지자 관료들의 정제되지 않은 솔직한 의견들이 오갔다.
그때였다. 굳게 닫혀 있던 회의장의 문이 열렸다. 황제를 맞이하기 위해 자리에 있던 모든 이가 일어났다.
안으로 들어선 칼린느가 주변을 둘러보지도 않고 곧바로 안쪽으로 걸어갔다. 털썩, 자리에 앉고서야 관료들에게 시선을 돌린 그녀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필체 감정 결과가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이군.”
일부는 머쓱해하며 칼린느의 눈을 피했다. 그러나 수년간 이 자리를 지켜 온 노련한 관료들은 여전히 똑바로 그녀를 응시했다.
필체 감정의 건은 궁정 회의에 참석한 모두가 알고 있는 주제. 결과를 숨기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칼린느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그 주문은… 시샤 아르비나가 직접 적은 것이 맞다.”
여기저기서 탄성과 탄식이 터져 나왔다. 아르비나 후작, 티오라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아군을 학살하도록 종용하다니, 이 일을 쉬이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조용.”
비난과 걱정이 뒤섞인 웅성거림을 칼린느가 막았다.
“고의로 그런 것이 아니다. 착오에 의해 발생한 사고이지. 그러니 시샤 아르비나의 처벌은….”
똑똑. 불현듯 회의장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칼린느가 말을 멈추었다.
이내 문이 열리고 누군가 안으로 들어서며 물었다.
“설마 자숙 정도로 끝내려는 것은 아니겠지요, 폐하.”
“어… 저분은…?”
발목까지 미끄러지는 흰색 의복. 어깨에 길게 두른 푸른색 스톨. 그리고 손에 든 성스러운 금빛 지팡이.
교황 드하이센이었다.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드하이센이 칼린느의 맞은편 테이블 끝에 섰다.
예상치 못한 이의 등장에 관료들이 동그랗게 눈을 떴다. 하나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묵직한 분위기에 함부로 말을 붙이지는 못했다.
그걸 지켜보는 칼린느의 표정에 그늘이 졌다.
‘교황에게는 궁정 회의의 의결권이 없어.’
그러나 교황은 교황.
의결권이 없다고 해도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다. 그렇기에 아주 가끔, 입맛대로 하고 싶은 중대한 사항이 있을 때 모습을 비치곤 했다.
그리고 이번 참석은 분명… 시샤의 일 때문일 테지.
어쩐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저는 그 전쟁터에서 죽어 간 이들을 생각하면 참담하여 잠이 오지 않는데 말입니다.”
교황이 슬퍼하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관료들 사이에서 교황의 진심 어린 슬픔에 공감하는 탄식이 쏟아졌다.
“만약 그곳에 성기사들을 보냈다면 막을 수 있었을까 후회도 하였습니다. 마법이라는 힘이 가져올 비극을 알았더라면, 여름의 축제에서 가만있지는 않았을 거라….”
“잠깐.”
칼린느가 말을 끊었다.
“지금까지 마법이 이룬 업적을 후려치지는 마시지요. 어찌 이번 한 번으로 그것들을 없던 일로 만들려 하십니까?”
“폐하야말로 지지하는 힘이기에 옹호하시는 것은 아니고요?”
교황과 황제 사이에 무겁고도 서늘한 정적이 흘렀다.
그때였다.
“…마법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요.”
드하이센이 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았다. 표정 관리를 해야 하는 것도 잊고 그가 미간을 팍 찌푸렸다.
시선 끝에 있는 이는 카일라인 공작이었다.
신전을 지지하는 첫 번째 가문, 카일라인.
그 위치를 이용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려 온 카일라인.
그런 카일라인이 감히 제 말을 받아친 것이다.
“카일라인 공작님의 말이 맞습니다. 지난여름, 열사병으로 죽던 이들의 수가 마법으로 현저히 줄어든 것을 생각하십시오.”
로디스의 새로운 공작, 릴리 로디스가 말을 거들었다.
교황이 흐음, 하고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본래 목표는 마법 자체에 제재를 가하는 것이었지만.’
황제에 카일라인, 로디스까지 나선 지금. 본래의 주장을 더 밀어붙일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다.
‘아쉽긴 하지만 우선 시샤 아르비나를 확보하는 정도로 만족해야겠군.’
그 정도만 되어도 충분히 앞으로의 일을 원하는 방향대로 전개 시킬 수 있다.
드하이센이 안타깝다는 듯 입을 열었다.
“스스로를 멸망시킬 때 쓰는 주문이라 들었습니다. 그것으로 수십,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 갔는데 악마의 힘이 아니라는 것이군요.”
“실수라 하지 않습니까?”
“힘은 악마의 것이 아니나, 연구단의 단장이 가져온 결과는 악마의 소행과 같다면….”
드하이센이 눈을 가늘게 떴다.
“단장께서 악마에 씐 것이겠지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칼린느가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그녀의 얼굴에 차가운 분노가 스쳤다.
‘이런 상황을 만들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저 일이 잠잠해질 때까지만 시샤를 자리에서 내리려 했다.
실수를 한 데에는 마음의 여유가 없던 탓이 크겠지. 그렇기에 휴식할 시간을 가지는 편이 더 좋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교황이 참견을 해 버렸다.
마법이 잘 나갈 때는 잠잠하더니. 줄곧 이런 건수가 생기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가.
칼린느가 주먹을 꽈악 쥐었다.
“그, 그럼 성하께서는 어찌해야 한다 생각하십니까?”
한 백작이 교황에게 질문했다.
지난번 회의에서도 눈에 불을 켜고 시샤를 공격하려 하던 이였다. 기를 죽여 놓아 오늘은 좀 잠잠하다 싶더니, 교황을 믿고 다시 입을 놀리는구나.
교황이 흐음, 고민하는 시늉을 했다. 그가 칼린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정화를 제안드립니다.”
회의장이 술렁였다.
정화. 그것은 미물로부터 일종의 보호막을 형성하는 축성과는 달랐다.
사악한 기운이 뭉치고 뭉쳐 타락했다 판단되는 대상에게 거행하는 것이었다.
애초에 사람을 대상으로 정화를 행한 역사는 거의 없었다.
정화는 고위 사제 정도의 신성력을 가진 이들만이 수행할 수 있었으며,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몇 번의 정화 의식을 치러야 하며, 인간이 그 의식을 받아 내는 과정은 매우 고통스럽다.
온몸을 찢고 자르는 듯한 고통이라 했던가. 정화의 대상 중 반은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죽었더랬다.
그렇기에 희대의 악행을 저질러 영혼 자체가 타락했다 여겨지는 이에게만, 세기를 거슬러 악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명분으로 시행하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정화를 시샤 아르비나가 받는다고?’
칼린느가 교황을 노려보았다. 교황이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말을 늘어놓았다.
“여기 계신 분들은 모르시겠지만 제게는 느껴지는 것이 있습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악한 기운 말이지요.”
웃기는 소리. 절대 허락할 수 없다.
칼린느가 말을 눌러 뱉었다.
“…시샤 아르비나는 이미 단장직을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굳이 정화를 받을 필요는 없지요.”
“흐음. 아군을 몰살시켜 놓고 정화까지 거부한다라…. 이 일이 알려지면 백성들이 얼마나 불안해할지 모르겠군요.”
관료들의 시선이 칼린느에게 박혔다. 그들의 시선이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시샤 아르비나는 정화를 받아야 한다!’
이미 마법으로 나아진 생활에 맛을 들인 이가 많았다.
단장이 악마에 씌었다는 것은 큰 흠이지만, 마법사 전체가 악마인 것보다는 1명만 악마인 것이 낫다.
게다가 신성한 힘으로 정화해 걱정을 없앨 수 있다면 다행인 일 아닌가.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칼린느가 깨문 입술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여기서 더 거부한다면 어떻게 될까.
분명 애써 돌려놓은 마법을 향한 화살이 다시 과녁을 찾아갈 테지.
진퇴양난이었다.
칼린느가 교황을 노려보자, 그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폐하께서 결정을 내리기 어려우시다면 단장의 의견을 들어 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아마 회의장 밖에서 이야기를 들었을 것 같은데.”
칼린느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교황이 문 근처에 있던 사용인에게 눈짓하자, 그가 눈치를 살피며 문을 열었다.
그 자리에, 시샤 아르비나가 있었다.
회의장으로 들어선 시샤에게로 이목이 집중되었다.
“…정화를 받겠습니다.”
칼린느가 팍 인상을 찌푸렸다. 시샤가 다시 한번 담담히 말했다.
“제가 정화를 받겠습니다.”
“시샤!”
아르비나 후작이 낮게 소리쳤다. 하지만 그녀의 부름에도 시샤는 눈을 내리깐 채 자신의 발언을 거두지 않았다.
“본인의 의견이 그렇다고 하시니… 결론이 난 것이라 봐도 무방하겠지요?”
“…….”
“그럼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준비를 마치는 대로 사람을 보내지요.”
교황 드하이센이 돌아서서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회의장에 짙게 깔린 칼린느의 냉기에 흠흠, 관료들의 헛기침 소리만 가득했다.
반면 마차로 걸어가는 드하이센의 한쪽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이틀 후에 단장을 모셔 오거라.”
“예, 성하.”
드하이센은 저를 따라오는 사제에게 지시를 내렸다.
준비가 되면 사람을 보내겠다 하였으나, 사실 준비는 필요 없었다. 이미 그녀를 맞이할 준비는 천천히, 그리고 착실하게 완료된 상태였으니.
“그러게 자신의 뜻대로 흘러간다 생각했던 것도 사실은 신의 뜻이라 경고했거늘.”
물빛 축제의 개막식에서 방자하게 굴던 칼린느의 표정을 떠올리며, 드하이센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성하.”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드하이센이 뒤를 돌았다. 그리고 자신에게 걸어오는 이를 향해 입술을 비릿하게 끌어 올렸다.
“르디엘, 호위가 되었다더니 정말인가 보구나. 똑똑하다고 해야 할까, 멍청하다고 해야 할까.”
“안에서 무슨 얘기를 하신 겁니까.”
“그 전쟁의 이야기지. 너도 알잖아. 마법으로 모두가 죽은 일.”
“그 일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일은 없을 거야, 르디엘. 노선을 확실히 정해라.”
드하이센이 르디엘의 말을 끊었다. 그가 돌아서서 마차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마차에 오르기 전, 미소를 흘리며 르디엘에게 말했다.
“그래도… 고맙다는 말을 해야겠구나. 네가 멍청하게 굴어 준 덕분에 내 지분이 더 커졌거든.”
떠나가는 흰색 마차를 말없이 바라보는 르디엘의 시선에 복잡한 생각들이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