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111
@111. 악마의 힘
‘아가씨….’
역시 정화를 제안했겠지. 교황의 표정으로 보아 받아들여진 것 같고.
시샤는 괜찮을까. 가슴이 답답했다. 어서 그녀의 얼굴을 마주하고 싶었다.
들어가지 못하는 걸 알면서도, 르디엘이 회의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르디엘. 이제 집으로 돌아가요.”
그때 시샤가 밖으로 나왔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건조한 목소리였다. 그녀의 얼굴은 위태로우리만큼 핏기가 없었다.
괜찮냐고 물어볼까. 그래도 되는 걸까. 그런 고민을 하는 동안 시샤는 마차에 올랐다.
결국 르디엘은 아무것도 묻지 못하고, 말에 올라타 그녀의 마차 옆에 붙었다.
“…….”
시샤의 호위를 맡은 후 몇 번이고 그녀의 출퇴근길에 함께 했다. 그녀는 매번 창문을 열어 두고 재잘대거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보라며 강요 아닌 강요를 하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한참이나 말발굽 소리와 마차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만 가득했다.
마차를 바라보는 르디엘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똑똑. 르디엘이 마차 창문을 두드리며 짐짓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가씨, 돌아가는 길에 파르페라도 드시고 갈래요? 제가 살 건데.”
안에서는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괴로울 테지. 울고 있는 건가. 혹은 멍하니 자책감에 잠겨 있을까.
“아가씨! 환기 좀 하세요. 아무 대답 없으시면 창문 엽니다?”
장난스러운 말투와 함께 한 번 더 창문을 두드리며 허리를 숙였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런 답이 없었다.
대신 가쁜 숨소리가 들렸다.
르디엘은 안 좋은 예감에 사로잡혔다. 그가 창문을 벌컥 열었다.
“아가씨!”
마차 안, 시샤가 쓰러진 채 숨을 쌕쌕 내쉬고 있었다. 르디엘은 당장 마차를 멈추게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얼굴에는 열이 펄펄 끓는 반면 손은 너무도 차가웠다. 데우기 위해 그 손을 꼬옥 쥐는데 시샤가 반사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젠장….”
그녀의 손등을 본 르디엘이 나지막이 욕을 내뱉었다. 손톱자국으로 보이는 상처들이 나 있었다. 반대쪽 손톱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그의 눈에 날카로운 안광이 스쳤다.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르디엘이 치료를 위해 시샤의 손과 머리에 신성력을 쏟았다. 상처가 아물고 열이 내렸지만 시샤의 얼굴은 편해지지 않았다.
르디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가 시샤를 품에 끌어안았다.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지. 쓰러진 시샤를 신성력으로 치료해 준 적이.
그때는 이런 기분은 아니었는데. 그냥, 그냥 조금 마음이 일렁일 뿐이었다. 그저 신경을 써야 할 대상이기에, 그래서 그런 기분이 든 것이라 생각했다. 그게 맞았다.
하지만 지금은….
심장을 누군가 잡고 비틀어 버린 듯 괴로웠다. 모든 걸 내려놓고 싶었다.
르디엘이 제 손목의 팔찌를 거칠게 잡아당겼다. 하지만 팔찌는 빠지지 않았다.
“윽….”
손목에서 차오른 통증이 온몸으로 번졌다.
‘오늘도 매를 맞겠네.’
사지가 찢기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그가 시샤를 조금 더 꼬옥 끌어안았다.
“…….”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매한 자신이 한심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허공을 응시하는 그의 눈이 체념으로 어둡게 물들었다.
* * *
“지금 말 다 했어?”
궁정 회의가 끝나고, 소식을 전하러 온 사용인을 향해 카실이 언성을 높였다. 깜짝 놀라는 사용인에게 라온이 대신 사과를 하며 막아섰다.
“놀라셨죠? 죄송해요.”
“그분은 지금 어디에 계시지?”
사용인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이아페가 낮게 물었다. 그의 표정이 너무도 어두워서, 사용인은 우물대며 대답했다.
“댁으로 귀가하셨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이아페가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이내 소식을 전한 사용인도 나가고 연구실의 문이 닫혔다.
“젠장, 잘못된 게 틀림없어!”
카실은 화를 참지 못하고 씩씩대며 연구실 내부를 오갔다.
다른 단원들도 놀라고 침울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정화 의식으로 시샤가 고통받을 것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
자신들도 함께 책임이 있다는 죄책감.
어쩌면 마법의 위상이 다시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공포.
다양한 감정들이 뒤엉켜 그들을 짓눌렀다.
그리고.
“…대체 왜…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이런 일이.”
니니안이 괴로운 듯 심장을 부여잡으며 혼잣말을 했다.
셀라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아르비나 님을 신전에 보내지 말아 달라고, 폐하께 청을 드리러 가요. 저희가 모두 나서서 요청드린다면 폐하께서 막아 주실 지도 몰라요.”
“맞아요, 폐하께도 단장님은 소중한 인재잖아요. 분명 무시하지 못하실 거예요. 되든 안 되든 뭐라도 해 봐요.”
“그래, 그러자. 지금 당장 가자.”
라온과 카실이 셀라임의 말에 동의하며 문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니니안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선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니니안? 어서 가자.”
“정화를 받는 게… 나을 수도 있잖아.”
“뭐?”
라온이 잘못 들었다는 듯 눈썹을 기울였다.
연구실에 정적이 흘렀다.
니니안이 목소리를 꾹 눌러서 뱉었다.
“지금 이 결과를 봐. 마법으로 사람들이 죽었어.”
“…미심쩍은 게 많잖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한 번 더 면밀히 조사해야 해. 그리고 정화라니, 그건 정말로 단장님이 악마라고 말하는 것 같….”
“역시 악마의 힘이었던 거야.”
라온과 카실, 셀라임의 표정이 굳어졌다.
오랫동안 그들을 괴롭혀 왔던 편견.
힘겹게 맞서서 겨우 깼던 인식.
그들 자신만은 절대로 아니란 걸 알고 있었던 잘못된 기원.
그것이 니니안의 입에서 나왔다.
그것은 그들의 지난 삶을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지금 뭐라고 했어?”
“그래도 아니라고 믿고 싶었어. 잘 지켜보면 될 줄 알고 열심히 했어. 그런데 아니었던 거야….”
“니니안, 그게 무슨 소리야? 악마의 힘이라니 너까지 왜 그런 말을 해?”
니니안에게로 성큼성큼 걸어간 라온이 그녀의 어깨를 잡고 눈을 응시했다.
상처받은 듯 쓰라리게 일그러진 라온의 얼굴을 보며, 니니안이 슬프게 말했다.
“역시 안 돼, 마법을 쓰면. 악마의 힘이라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는 거야.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고 말 거야.”
“뭐…?”
“저주받은 힘이야, 이건.”
니니안의 팔을 잡고 있던 라온의 손에서 힘이 풀렸다. 니니안이 걸음을 옮겨 제 자리의 짐 몇 가지를 챙겼다.
마치 떠날 사람처럼 구는 그녀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모두가 멍하니 니니안을 바라봤다. 하지만 굳은 표정의 니니안은 그대로 연구실을 빠져나갔다.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자리를 떠난 니니안의 뒤로 남겨진 세 사람 사이에는 정적만이 흘렀다.
너무나도 매서운 바람이었다.
* * *
〈「적군이 수도를 침공했습니다. 어서 숨으십시오, 언어술사님!」〉
사람들의 인도에 나는 다급하게 걸음을 옮겼다. 낯선 양식의 신전 복도에 불규칙한 발소리가 울렸다.
〈「누구에게도 절대 열어 주시면 안 됩니다!」〉
상황을 파악할 겨를도 없이 도착한 어느 신전 안, 가장 안쪽에 위치한 방의 문이 닫혔다.
〈「결국 전쟁이 일어났어, 라카루스….」〉
그 안에서 나, 아이론은 황망해하는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그때였다. 품 안에 가지고 있던 구슬이 울렸다.
나는 황급히 그것을 꺼내 들었다.
〈- 아이론.〉
그리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라카루스! 살아 있었구나.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 응, 잠시 숨어 있어. 너는 괜찮아? 어디에 있는 거야?〉
들리는 것은 그의 목소리만이 아니었다. 숱한 비명 소리. 무언가 부서지고 무너지는 소리.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저 현장에 있을 그를 생각하면 마음 아팠고, 아직 따스한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음에 안도를 느꼈다.
동시에… 그가 방금 베었을, 혹은 앞으로 찌를 사람이 어쩌면 내가 아는 누군가일 수 있다는 것에 커다란 슬픔과 죄악감을 느꼈다.
〈- 부탁할 게 있어, 아이론. 이 전쟁을 멈추기 위해 네 힘이 필요해.〉
라카루스가 뭐라 말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대신 다른 소리가 끼어들었다.
「조심하거라. 이제는 너의 꿈을 읽히고 말 거야.」
처음 듣는 음성이었다.
남자의 것인지, 여자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목소리. 마치 연기처럼 흩어지는 목소리.
「삼킨… 것을 뱉…어 내야 한다… 아이야.」
소리가 점점 느리게 멀어지더니 이내 완전히 끊겼다.
대체 뭘 뱉어 내라는 거지?
묻고 싶었지만 아무리 입을 벌려도 말이 나오지 않았다.
* * *
“또 아이론의 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앉았다. 어느덧 창문을 통해 달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
이런 와중에 태평하게 잠이나 자다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했으면서. 그런 참혹한 일을 저질렀으면서.
나 자신이 싫어져서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손에 쥔 이불이 무참히 구겨졌다.
그때였다.
창밖에서 마력이 미세하게 느껴진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가로 다가가는 걸음이 빨라졌다.
두 손으로 창문을 열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먼저, 내가 좋아하는 은은한 나무 향기가 코를 간질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창문 너머의 이아페가 와락 나를 끌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