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112
@112. 기다리겠습니다
나는 잠시 눈을 감고 내 몸을 빈틈없이 안은 이 사람의 온기를 느꼈다.
이아페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가 없었다면 버티기 힘들었을 거야.
“이아페.”
나는 한 손으로 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이아페는 내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잘게 떨고 있었다. 그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나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언제 왔어요? 이번에도 내가 깨어나길 기다리고 있었어요?”
“안 돼, 시샤.”
“…….”
“가지 마….”
그의 목소리가 안개처럼 흩어졌다. 목소리를 들으니 왈칵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미안해요.”
“떠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말했잖아. 그런데 대체 왜… 선택할 수 있었는데도.”
그의 말대로, 정화 의식을 받겠다고 선택한 것은 나였다. 그래, 어쩌면 버티고 버텼으면 가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내게 놓인 선택지 중 이게 최선이었어요.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나는 정화를 받겠다고 할 거예요.”
이아페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이 애처롭게 떨렸다. 이아페의 시선이 나를 깊게 옥죄었다.
“결국 저를 버리시는 겁니까…?”
버리다니, 내가 어떻게 당신을.
나는 손을 올려 이아페의 볼을 매만졌다. 그가 절박한 손길로 내 손등 위에 제 손을 겹쳐 올렸다.
“들어올래요?”
내 말에 이아페가 내 방으로 온전히 들어왔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소파로 이끌었다.
그동안 이아페의 시선은 내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마치 시선을 떼면 내가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이아페를 소파에 앉힌 후 나는 마주한 다른 소파로 가려 했다. 하지만 한 걸음을 떼기도 전에, 나를 당기는 손길에 끌려 소파 위로 쓰러졌다.
“이아페?”
내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제게 욕심이 없냐고 물은 적이 있었죠, 시샤.”
그의 낮은 목소리가 위에서 들렸다. 소파에 누운 채, 나는 내 양옆에 손을 짚고 엎드린 이아페를 올려다봤다.
“내가 얼마나 당신을 원하는데.”
“…….”
“당신이 나를 버린다 한들 미워하지도 못할 겁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떠나는 건 안 됩니다.”
“…이미 결정된 일인 거 알잖아요.”
“못 보내요.”
단호한 목소리는 내가 어떤 말을 하든 타협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들렸다. 그는 절대 나를 놓칠 수 없다는 듯 내 한쪽 손을 끌어 꼭 쥐었다.
“주문을 더 자유롭게 쓰는 것은 당신이지만, 마력을 소모해 지치게 되면 결국은 내가 더 우세하겠죠. 당신이 그곳에 가야겠다면, 나는 당신을 가둘 겁니다.”
이아페의 시선이 집요하게 나를 감쌌다. 그의 눈 안에서 뜨거운 빛이 일렁였다.
“…….”
나는 그에게 잡히지 않은 손을 들어 위로 뻗었다.
손은 그의 귓가에 닿았다.
이아페가 흠칫, 몸을 떨었다.
그의 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아페는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을 했을 때 귀가 붉어지죠?”
그의 귀가 붉어지는 것은 쑥스러울 때와 위의 경우 두가지.
어쩌면 지금까지 내가 당연히 후자라 생각했던 순간들은 전자였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분명 후자였다.
“그러지 마요.”
이아페의 눈빛이 흔들렸다. 아프게 내 손을 잡고 있던 그의 손에 힘이 풀렸다.
말없이 나를 보는 그의 눈가가 붉어졌다.
이아페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두 팔로 나를 안아 일으켰다.
그와 마주 앉은 채, 나는 담담히 입을 열었다.
“나도… 아무 생각 없이 정화를 받겠다 말한 것은 아니에요.”
필체 감정 결과를 기다리는 지난 며칠간 수없이 생각했다.
정말로 내가 주문서에 그런 주문을 적어 놓은 것이라면, 왜 그런 일을 했을지.
「자멸」과 비슷한 발음을 가진 방어 주문은 없다.
단순히 자음과 모음 한두 개 혹은 글자의 순서를 잘못 적어서 생긴 일도, 뜻을 잘못 알고 벌어진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실수라기엔 너무도 선명한 의도가 담긴 단어.
‘어쩌면 단지 집중력이 흐려져서 생긴 일이 아닐지도 몰라.’
그리고 다른 가능성은 역시 내가 없어졌던 그날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검은 로브.’
어느덧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날 나를 데려간 이들이 검은 로브를 입은 흑마법사들이라는 걸.
그들은 원작에서 이아페를 공격했지만, 이번에는 이아페의 주변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들의 타깃이 나로 바뀐 거야.’
그리고 납치되었던 때에 모종의 방법으로 내가 흑마법에 물들어 버렸다면.
그렇다면 지금의 상황도 설명이 된다.
“이아페. 흑마법에 대해… 알아요?”
이아페의 미간이 좁혀졌다. 무슨 말이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알 수 없는 힘을 쓰는 검은 로브를 입은 사람들이 있어요. 그들이 쓰는 게 정말 흑마법인지, 혹은 제삼의 힘인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가 사라졌을 때 말이에요. 검은 로브들에게 붙잡혀 나쁜 힘에 물들었을지도 몰라요.”
이아페의 시선이 흔들렸다. 나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제가 주문을 잘못 적은 것도 그 영향인 것 같아요.”
그래, 되짚어 보면 그때부터 간혹 주문을 틀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실수인가 했다. 너무 정신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되고 보니… 일종의 전조 증상이었다는 확신이 생긴다.
“당신에게 영향을 준 것이 마법의 일종이라면 도서관에서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내가, 내가 찾을게요, 시샤.”
이아페가 다급하게 나를 설득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없어요.”
도서관에서 흑마법에 대한 책은 아무리 찾아도 발견하지 못했다.
마법으로 지금의 상태를 되돌릴 방법은 없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해.
방법이 있다면 뭐든 해 봐야 해.
‘설령 그게 고통스러운 정화라고 해도.’
나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할 수 있는 것은 해 보고 싶어요. 그래서 정화를 받으려는 거예요.”
“그런 생각으로 감내하기에는 너무 큰 고통입니다. 정화를 받은 이는….”
이아페가 괴로운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듯했다.
사지가 찢기는 고통이라 했던가. 죽을 수도 있다 했지.
“당신은 지금 여기에 있잖아요…. 그게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이아페의 얼굴이 슬픔으로 일그러졌다. 그는 내 대답을 기다리는 것 같기도 했고, 내가 대답하지 않기를 원하는 것 같기도 했다.
이아페에게는 미안했다.
내가 떠나는 것을 싫어할 걸 아는데도, 이런 결정을 내려서.
하지만 결정을 바꿀 수는 없었다.
“어떤 힘에 영향을 받은 건지, 아니면 정말 제 실수인지는 몰라요. 하지만… 그 주문집에 적힌 건 제가 쓴 글자였어요.”
“…….”
“그래서, 저는 이렇게 편하게 있을 수가 없어요.”
그래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그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전에 특별 과외를 받으러 온 날, 제 소원을 들어준다고 했잖아요. 미엘 신께 바칠 심장을 걸고.”
“…….”
“그 소원, 지금 쓸게요.”
“…….”
“보내 줘요, 이아페.”
이아페의 눈빛이 흔들렸다.
나는 그의 손에 빈틈없이 깍지를 껴서 꼬옥 잡았다.
“약속할게요. 무사히 돌아올게요.”
나는 부러 미소를 지어 보였다.
굳게 다물려 있던 이아페의 입술이 열렸다. 그의 표정은 가라앉는 배처럼 위태로웠다.
“나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겁니다.”
“네?”
“당신은 내려놓고 싶다고 했는데. 제가, 제가 절대 안 된다고. 제가 당신을 잡아서, 그래서….”
이아페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이아페. 내 선택이었어요. 내가 좋아서 한 일이에요. 내가 이 연구단을 이끌고 싶었고, 당신이랑 같이 계속 있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모든 게 내가 선택한 거였어요.”
내 말을 듣던 이아페의 눈가에 눈물이 차오르더니 또륵, 흘러내렸다.
“시샤 님….”
“연구단을 잘 부탁해요, 이아페.”
달래 줘야 하는데. 나도 울면 안 되는데.
나는 울음을 참으려 했지만 생각처럼 잘되지 않았다.
사실은 나도 가고 싶지 않아.
나도 정화 같은 거 받고 싶지 않아.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최선인걸.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의 손이 내 눈가에 와 닿았다. 눈물을 닦으며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보내 주겠다는 의미였다.
“기다리겠습니다.”
“이아페….”
“연구단 옆 당신의 숲, 그곳의 붉은 단풍이 다 떨어지기 전에 돌아와요.”
정화에 얼마나 시간이 소요될지는 알 수 없었다. 소문에 의하면 한두 달이면 된다고도 하고, 반년 이상 걸린다고도 했다.
가을이 가기 전에 돌아올 수 있을까.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 웃으면서 맞이해 줘야 해요.”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아페의 눈물 젖은 눈이 예쁘게 휘었다.
그의 얼굴을 계속 보고 싶었다. 목소리를 계속 듣고 싶었다. 이 온기를 느끼고, 이 품에 안기고 싶었다.
나는 고개를 살짝 돌려 내 뺨을 감싼 이아페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다시 그의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심장이 떨려 왔다.
살짝 눈을 내리깐 이아페가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나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