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113
@113. 정화 의식
이아페의 잔잔한 숨결이 이마 언저리에서 느껴졌다.
그의 입술이 살며시 내 이마에 와 닿았다. 힘을 주면 깨져 버릴 유리를 다루듯 조심스러운 입맞춤이었다.
이아페의 향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가슴이 저려 왔다.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 붉게 찡해진 코, 살짝 상기된 두 뺨.
그의 입술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서 피어난 따뜻한 온기가 온몸으로 번졌다.
그리고 이내, 부드러운 입술이 내 입술에 맞닿았다.
더없이 다정하고 애틋한 접촉이었다. 하지만 심장은 강한 충격을 받은 듯 철렁했다.
우리는 한동안 부드럽게 서로의 입술을 머금었다.
이아페의 손이 내 뒷머리를 받쳤다. 조심스러운 손길과는 다르게, 그의 혀는 다소 사납게 입술 안으로 들어왔다.
한순간 머리끝까지 덮쳐 온 파도 같은 감각에 나는 속수무책으로 흔들렸다.
상냥하면서도 난폭하고, 보드라우면서도 거친 움직임이 이어졌다. 그는 나를 밀어붙이는 것 같기도 했고, 절박하게 매달리는 것 같기도 했다.
머리가 핑 돌 것 같은 동시에, 지금 이아페가 품은 감정들이 전신에 퍼져서 가슴이 뻐근해졌다.
참을 수 없는 슬픔과 괴로움, 그럼에도 이 순간 함께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행복. 서로 얽힌 다양한 감정이 그와 맞닿은 부분을 통해 전해졌다.
평생 잊을 수 없을 달콤하고도 아픈 얽힘이었다.
내 마음도 그에게 가 닿았을까.
나도 모르게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행복과 죄책감이 뒤섞여 온몸을 헤집는 듯했다.
* * *
미엘교의 세 번째 대사제, 미헤니아는 중앙 신전 안쪽 깊은 곳에 있는 정화 신전으로 향했다.
한동안 쓰지 않았던 공간이기에, 꽤 오랫동안 중앙 신전을 지켜 온 미헤니아에게도 그곳으로 가는 길이 낯설었다.
하얀 기둥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선 복도를 지나 푸른 정원을 가로질러 걷는 그녀의 발걸음이 점차 빨라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오늘 시샤 아르비나가 중앙 신전에 도착했다. 그리고 곧바로 정화 의식을 위해 정화 신전에 들어갔다고 들었다.
보통 정화 의식 정도의 큰일에는 많은 대사제의 인력을 필요로 한다.
하나 미헤니아는 그곳에 참석하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다.
〈모든 대사제가 참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미헤니아는 신성력을 비축하세요.〉
교황 드하이센은 그렇게 말했다. 얼핏 듣기에는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미헤니아는 꺼림칙한 기분을 숨길 수가 없었다. 자신을 일부러 배척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일단 가보자.”
얼마나 걸었을까, 정화 신전이 보였다. 그곳으로 들어가는 몇몇 사제들도.
그러나 입구에 도착한 미헤니아는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곳을 지키는 사제 몇 명에게 앞을 가로막혔기에.
“뭐 하는 짓이냐.”
“허가된 분만 출입시키라는 교황 성하의 명이십니다.”
“세 번째 대사제, 미헤니아다. 내가 가지 못할 곳은 아닐 텐데.”
미헤니아가 낮은 목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사제들은 꼿꼿이 선 채 물러서지 않았다.
그때였다.
“미헤니아.”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미헤니아는 몸을 돌렸다.
교황 드하이센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그곳에 서 있었다. 그가 얕게 한숨을 뱉으며 미헤니아에게로 걸어왔다.
“올 필요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역시 도움을 드리는 것이 맞을 듯하여서요.”
“아뇨. 이미 정화 의식의 대형을 마련하였습니다. 미헤니아가 할 일은 없지요.”
드하이센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지나쳤다.
미헤니아가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
“성하, 어찌 제 출입을 막으시는지요?”
“…누구나 제 역할이 있는 법입니다. 저는 신의 뜻을 가장 가까이에서 받는 자. 미헤니아는 신의 뜻을 거역할 셈입니까?”
자리에 멈춘 드하이센이 가늘게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려 미헤니아를 응시했다.
그녀가 대답하지 않자,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며 그대로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역시 수상해….”
미헤니아가 불안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마법을 대하는 사제들의 반응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신성력과 다른 힘이라 해도 무조건 거부하지 않고 상생하자고 말하는 온건파.
세상에 해를 끼칠 악마의 힘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급진파.
그리고 이들이 나뉜 것은 비단, 최근에 마법이 주목받기 시작한 후의 일은 아니었다.
이전부터 그러한 성향 아래, 신전의 세력 또한 둘로 나뉘어 있었다.
미헤니아는 온건파에 속했고, 이번 교황은 급진파였다. 해서 교황은 미헤니아보다는 제 사람들을 챙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미헤니아는 그런 일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같은 신을 모시는 자들이지 않은가. 사소한 알력 다툼 하나하나에 신경 쓰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화 의식 같은 큰일은 달랐다. 제 세력만을 챙겨서 될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고 방금 들어간 사제들은 모두….
‘급진파의 사제들.’
단순한 세력 다지기가 아니었다.
무언가 그녀가 모르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물빛 축제에서 마법이 공개된 후에도 교황의 반응이 생각보다 너무 잠잠해서 이상했는데….
며칠 전에도 급진파의 사제 여러 명이 하루 종일 자리를 비웠다. 그 일과 오늘의 일이 영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의 소리가 차단되어 정적만이 흐르는 정화 신전의 입구에서, 미헤니아는 말없이 닫힌 문을 응시했다.
* * *
나는 떨리는 마음을 애써 숨기며 걸음을 옮겼다. 유난히 맑은 하늘 아래, 하얗고 푸른 사제복을 입은 이들과 걷고 있는 게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중앙 신전은… 예전에 르디엘과 함께 와 본 이래 처음이지.’
그때는 몰래 왔었는데, 이렇게 다시 중앙 신전의 안쪽까지 들어오게 될 줄은.
‘그것도 이번에도 르디엘과 함께.’
나는 옆을 힐끗 살폈다. 르디엘이 심란해 보이는 표정으로 내 옆에서 걷고 있었다. 그는 신전에서도 내 호위를 맡기 위해 함께 이곳으로 온 것이었다.
“왜 이렇게 표정이 안 좋아요?”
나는 작은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르디엘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내 쪽으로 몸을 조금 기울였다.
“아가씨는 왜 이렇게 표정이 편하신데요?”
“그거야…. 이미 오겠다고 했는데 죽을상을 짓고 있는다고 달라질 게 없잖아요. 죽으러 온 것도 아니고, 잘되자고 온 건데.”
“…….”
르디엘은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지, 여전히 심각한 표정이었다.
저걸 보니까 괜히 무섭잖아. 정화 의식이라는 게 르디엘마저도 저런 반응일 정도로 힘든 일인 것 같아서.
‘뭐… 죽을 만큼 괴로운 의식이라는 건 각오하고 온 거니까.’
아직 겪어 보지 않은 일에 지레 겁먹지 않기로 했다. 애써 좋은 생각만 하며 나는 걸음을 옮겼다.
정화 신전은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는 내신전 안에서도 매우 깊숙한 곳에 있어서, 한참 걸은 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화 신전이라는 이름답게, 신전은 다른 건물들과 달리 벽화 하나조차 없었다. 오로지 깨끗하게 늘어선 기둥과 하얀 벽만이 눈앞에 펼쳐졌다. 시야를 꽉 채우는 일관된 색에 나도 모르게 압도될 정도였다.
멍하니 벽을 바라보는데, 한 사제가 내게로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아르비나 님. 저는 두 번째 대사제, 위드라 합니다.”
어디서 들은 목소리인가? 왠지 모르게 익숙했다.
“여기부터는 눈을 가리셔야 합니다. 시각이 아닌, 신성력에 집중하기 위함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위드가 지시하자 다른 사제들이 내게 안대를 씌웠다.
“아가씨, 제 팔을 잡으세요.”
나는 르디엘의 팔을 잡은 채 걸음을 옮겼다. 고요한 신전에 발을 내딛는 소리만 울렸다. 어디로 가는 건지 예측이 되지 않았다.
“여기서부터는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르디엘이 나를 안아 들었다. 놀라서 숨을 훅 들이켰다.
계단을 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나 걸었을까. 르디엘이 나를 어딘가에 내려놓았다.
이내 위드의 목소리가 가까이서 들려왔다.
“의식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얼마나 마음을 열어 정화를 받아들이시는지에 따라 의식의 횟수가 달라집니다. 두 번으로 끝날 수도, 열 번 이상을 해야 할 수도 있지요.”
“네.”
“명심하십시오. 모든 정화 의식이 끝날 때까지는 함부로 마법을 쓰셔서는 안 됩니다. 외부와 접촉을 해서도 안 되지요. 특히 마법을 쓰는 이와는 더욱.”
“…알겠습니다.”
이아페와는 만날 수 없겠네.
어차피 이 안에 있는 한 만나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제약이 있다고 생각하니 다시 한번 씁쓸함이 올라왔다.
“그럼 이제 정화 의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저도 정화에 힘을 보탤게요.”
그때 르디엘이 끼어들었다. 아무리 성기사라도, 사제들이 하는 의식인데 이렇게 해도 되나?
아니나 다를까, 몇몇 사제가 불만스러워하는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르디엘은 뻔뻔한 목소리로 맞받아쳤다.
“왜요? 정화 의식 참가에 필요한 신성력은 충족하고도 남을 텐데요. 여기 있는 몇몇 분들보다 제가 훨씬 자격이 있는 것 아닙니까?”
피식, 르디엘의 말에 누군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더니 흥미롭다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그래. 너도 함께하도록 해. 반성하고 자리를 어떻게든 다시 찾으려는 모양이지.”
이 목소리는 분명… 교황 드하이센의 목소리다.
반성한다니, 르디엘이 무슨 잘못이라도 한 걸까?
그런데 아까부터 왜 이렇게 어지럽지? 머릿속에 안개가 낀 듯 몽롱해.
“자, 아르비나 님. 이것을 드시지요. 안에 든 것까지 함께요.”
나는 위드가 건네는 것을 두 손으로 받아 들었다. 액체가 담긴 그릇이었다.
성수 같은 건가? 나는 그것을 벌컥벌컥 마셨다. 웬 작은 구슬이 함께 삼켜졌다. 동그란 것이 목을 타고 내려가는 감각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뭐지, 이 익숙한 기분은?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 것 같아.
“윽….”
전신이 가시덩굴로 감싸인 듯 얼얼하고 아려 왔다. 몸을 찢는 듯한 고통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자, 의식을 치러 볼까요.”
위드의 말이 점차 멀어졌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그렇게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