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114
@114. 검은 로브의 정체(1)
정화 신전에서 이어진 지하 공간.
중앙의 제단을 둘러싸고 서 있는 검은 로브를 입은 자들이 제단 위 눈을 감고 앉은 시샤를 바라보았다.
위드가 제단 위쪽으로 다가가 시샤에게 손을 뻗었다. 그가 그녀의 머리로 힘을 흘려 넣자, 시샤가 천천히 눈을 떴다.
초점이 없는 채였다.
“귀하신 분, 당신의 힘을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지요?”
“…신전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시샤가 멍하니 대답했다.
위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그가 정면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의식을 지켜보던 드하이센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세뇌가 잘 이뤄지고 있습니다. 지난번 방문에서는 의도와 반대되는 주문을 외도록 세뇌해 드렸다면, 이번엔 좀 더 광범위하게 의식을 잠식하였습니다.”
“그래, 고생했군.”
교황 드하이센이 흡족하다는 웃음을 띠며 말을 이었다.
“그날 스스로 성석을 삼키고 우리에게 복종하겠다 맹세해 준 덕분이지. 그전에는 정신에 간섭하는 신성력이 먹히지 않아서 애를 먹었잖아.”
“예, 그때 심어 둔 핵이 자리를 잘 잡았습니다.”
“그녀의 능력은 개화했는가?”
“부분적으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도록 유도하고 그것을 조종하기 위해서는 몇 번 더 자극을 줘야 할 듯합니다.”
“그래, 그 몇 번을 위해 구태여 이곳으로 데려오지 않았는가.”
드하이센이 비죽 웃음을 지었다.
한 번의 의식으로 그녀의 정신을 온전히 잠식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알고서 이곳에 잡아 두기 위해 많이 고민했더랬다.
때마침 전쟁에 마법사들을 파견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기회였다. 시샤에게 의도와 반대되는 주문을 쓰게 하고, 적국의 군사들이 목숨을 바쳐 기습하도록 조종했다.
본래 신전의 정식 교리에서는 정신을 조종하는 것은 금하고 있지만… 대의를 위해서이지 않은가.
게다가 어차피 대륙 내의 전쟁에는 성기사를 파견하지 않는다. 사제가 참전하는 것도 아니고.
적군에게서 신성력의 흔적이 느껴진다 한들 누구도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본래는 모두가 죽을 거라 예상하여, 연구실을 뒤져 주문집의 사본을 찾아야 한다 발언하려 했다. 그런데 단 1명이 살아남았다.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분노는 의심을 부르고, 의심은 분열을 부른다.
내부에서 시작된 분열은 더 깊은 상처를 남기는 법. 그것은 5천 년 전의 역사를 통해 증명된 사실이었다.
“이토록 쉽게 일이 풀리는 것을 보면 역시 신께서도 우리의 뜻을 지지하시는 것이 분명하군.”
“예. 그토록 오랫동안 신의 곁에서 옆을 지켜 온 ‘그분’이시지 않습니까. 신께서도 사랑하지 않으실 수 없겠지요.”
위드의 맞장구에 드하이센은 한껏 기분이 좋아졌다.
드하이센 자신은 이제 그분의 온전한 오른팔임이 분명했기에.
“드디어… 바벨의 검 아이론이 우리의 것이 되었다.”
몇 달 전 내려온 신탁의 주인공, 언어술사 아이론.
그들이 원하는 바를 얻도록 도울 귀하디귀하신 분.
그녀를 손에 넣은, 검은 로브를 입은 자들의 얼굴이 강한 만족감으로 물들었다.
* * *
“…출근했네.”
연구실에 들어선 카실의 목소리에 라온이 고개를 들었다.
퀭한 눈을 한 라온이 다시 책상에 팔을 괬다.
“그럼 뭐 해요…. 단장님도, 니니안도 없어요. 연구단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거죠?”
라온이 비딱한 목소리로 물음을 내뱉었다. 그의 얼굴은 씁쓸함으로 물들어 있었다.
“…황제도 마법을 버린 걸까?”
카실도 함께 어두운 표정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오늘 시샤가 신전에 들어갔다. 하지만 남은 연구단원들은 아직 황제를 알현하지 못했다. 황제의 뜻이 무엇인지 그들은 알 수 없었다.
그때 책으로 문을 탁탁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라온과 카실이 고개를 들어 문가에 선 셀라임을 바라보았다.
“한숨을 내쉰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에요. 우리끼리 방법을 찾아요. 이아페는 아직 출근 전인가요?”
셀라임이 두 사람에게 회의실로 오라고 손짓하며 걸음을 옮겼다. 감정이 담기지 않은 것만 같은 목소리였지만, 셀라임의 눈도 부어 있었다.
카실이 걸어가는 셀라임을 붙잡았다.
기대감을 버리고 현실을 직시하라는 듯, 그가 슬픔 어린 얼굴로 눈을 내리깔았다.
“내가 이아페라도 안 와. 걔는 대외적으로 이름을 밝히지도 않았잖아. 차라리 잘됐지. 어차피 돌을 맞아야 한다면 1명이라도 덜 맞는 게 나으니까.”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지금 마법이라는 주제를 둘러싼 상황은 좋지 않았다.
신전의 가호를 받는 카일라인의 이름을 가졌으면서 굳이 추를 매달고 함께 바다에 뛰어들 필요는 없다.
“…….”
그들 사이에 정적이 감돌았다.
아마 이아페가 있다면 그들이 마주해야 할 결말이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을 강요할 수 있을까. 그들은 불과 몇 달 전까지 겪어 온 ‘마법사’의 삶이 어떤 것인지 알았다.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가 그들을 다시 심연으로 끌어 내렸다.
그때였다.
“이야기 좀 하죠.”
“이아페? 여기에 왜….”
“내가 못 올 곳에 왔습니까.”
연구단원들이 어안이 벙벙해서 이아페를 바라보았다. 늘 하는 출근인데도, 오늘은 달랐다.
이아페가 미간을 찌푸리고 회의실로 걸어갔다. 라온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를 따라갔다.
“이, 이아페 님. 어쩌시려고요?”
“변하는 건 없어. 아니, 평소의 배로 열심히 일해야 할 테니 변하는 건가.”
“단장님이 없는데….”
“새로운 단장이 정해졌다.”
“설마… 너….”
카실이 말끝을 흐리자 이아페가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래, 단장직은 내가 맡을 거야. 폐하께 허가를 받고 오는 길이다.”
“네가 누군데? 이안…?”
“아니, 이아페 카일라인.”
카실이 숨을 힉, 들이켰다.
“임시직이야. 시샤 님이 부재하신 동안 마법을 지키기 위한. 그분이 돌아오셨을 때 제대로 맞이해야 하니까.”
그러니 이 자리는 티끌만 한 흠도 없이 완벽하게 유지될 것이다. 그녀가 돌아오면 찬란하게 빛나는 관을 다시 씌워 드릴 것이다.
“그때까지, 연구단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
어느새 이아페의 앞에서 라온이 연구실 문을 활짝 열었다.
이아페가 그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어서 들어와. 해야 할 일이 많으니.”
* * *
“으….”
나는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정화 의식, 역시 만만치가 않네.’
기억이 흐릿하지만, 정신을 잃기 전에 온몸이 아팠던 건 확실히 기억나. 지금도 전신에 채찍질을 당한 것처럼 아프고.
“아가씨, 일어나셨어요?”
르디엘이 빠르게 걸음을 옮겨 침대맡으로 다가왔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툭, 내 이마에서 무언가 떨어졌다. 물수건이었다. 르디엘의 손에도 물수건이 들려 있었고.
‘간호해 준 모양이네.’
나는 물수건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거 고마워요, 르디엘.”
“제가 좋아서 한 일이에요. 몸은 좀 어때요, 아가씨?”
“음… 이곳저곳이 쑤시네요. 바람을 쐬고 싶은데 창문은 열어도 되는 걸까요?”
내가 묵고 있는 곳은 정화 신전 안에 마련된 방이었다. 의식을 치르는 기간에는 외부와의 접촉을 최소화해야 했기에, 생활 반경 또한 이곳으로 제한되었다.
“갑갑하시면 같이 산책하실래요, 아가씨?”
“그래도 돼요? 나가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근처를 잠시 돌아다니는 건 괜찮아요. 여기까지 오는 사람은 거의 없거든요.”
그런가? 뭐, 의식의 거행에도 참여한 사람의 말이니까 맞겠지.
우리는 정화 신전 밖으로 나왔다. 입구를 지키던 사제가 멈칫했으나, 르디엘이 ‘잠깐만 다녀올게요.’ 하고 말하자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나가도 되는 거 맞아요?”
“그렇다니까요. 맞죠?”
르디엘이 사제에게 빙긋 미소 지으며 묻자 그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신전 근처에 자리한 정원을 함께 걸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는 너무 긴장해서 파악하지 못했는데… 여기, 전에 르디엘이 연 포탈로 왔던 딱 그 장소네.
“르디엘은 정화 신전에 와 봤어요? 포탈을 열었던 게 여기잖아요. 익숙한 장소니까 딱 생각이 난 거 아녜요?”
“딱히 의미 두지 마세요. 저는 안 가 본 데가 없거든요. 바다 건너의….”
“아, 알겠어요, 알겠어.”
“왜요, 제 무용담이 듣기 싫으세요?”
“그보다, 여기 아무도 안 지나다닌다고 해서 나온 건데 르디엘처럼 마구 쏘다니는 사람이 있으면 어떡해요? 생각해 보니까 지난번에도 사람들을 마주쳤고….”
“에이, 없어요, 없어요.”
부스럭.
르디엘의 말이 끝나자마자 근처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니 한 여인이 이곳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저분이 여기에 왜….”
“이제 르디엘 안 믿어요.”
내가 심각한 표정으로 르디엘을 흘겨보자, 그가 작은 목소리로 다급히 변명했다.
“괜찮아요. 저분은 대사제님이시거든요. 정화에 영향을 끼칠 외부인이 아니라는 거죠.”
르디엘의 말대로, 그녀는 대사제의 상징인 옥빛 깃털이 그려진 옷을 입고 있었다.
대사제가 어느새 우리의 근처까지 당도했다.
“미헤니아 대사제님을 뵙습니다. 성기사 르디엘 체르실로프입니다.”
“르디엘? 어디서 들은 이름인데… 그래, 반갑네.”
생각을 더듬는 듯하던 미헤니아의 눈길이 내 쪽으로 미끄러졌다.
“아, 안녕하세요. 시샤 아르비나입니다.”
나는 그녀에게 인사했다. 미헤니아의 눈이 조금 커졌다.
“정화 의식을 치르셨다고 들었습니다. 몸은 괜찮으신지요?”
미헤니아가 내 안부를 물었다. 그런데 이상하지. 몸이 괜찮은지를 질문하는데도 정말 나를 걱정하는 것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무언가를 떠보는 것만 같았기에.
“네, 괜찮아요. 참을 만해요.”
“그건 다행이네요. 어떤 의식을 치렀는지는 기억하십니까?”
의미심장한 질문이었다. 사실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원래는 제대로 기억해야 하는 건가?
“그게….”
“의식을 치르는 동안 감정이 동요할 일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당사자께서 곤란해하시는 듯하니, 죄송하지만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르디엘이 끼어들어 내뱉은 말에 미헤니아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러나 그녀는 별다른 반박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 보거라. 아르비나 님은 편안히 마음을 비우고 쉬시길.”
르디엘이 나를 이끌고 미헤니아를 지나쳐 걸어갔다.
그런데 몇 걸음을 옮겼을 때.
“르디엘 체르실로프… 어릴 적에 신전에 살던 꼬마지? 어느 날 폭발적인 신성력이 발현했는데도 사제가 되진 않은 아이.”
뒤에서 미헤니아가 불현듯 기억났다는 것처럼 입을 열었다.
“대사제가 될 정도의 능력이 충분히 있었는데도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