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115
@115. 검은 로브의 정체(2)
“많이 기대했었는데.”
미헤니아가 옛일을 회상하며 안타깝다는 목소리를 내었다.
“지난 일입니다. 애초에 그럴 역량이 안되었지요.”
르디엘이 가볍게 미소 지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그는 미헤니아를 경계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세니엘… 네 동생의 일은 정말 안되었다.”
세니엘. 르디엘의 동생 이름인가? 몇 번 그에게서 동생이 있다는 걸 들은 적이 있는데, 이름은 처음 들었다.
“세상을 떠나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는데.”
뭐라고…? 나는 뜻밖의 이야기에 놀라서 입을 꾹 다문 채 르디엘을 바라봤다.
그가 짐짓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또한 지난 일인걸요.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우리는 다시 걸음을 옮겨 정화 신전으로 돌아왔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르디엘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래선 안 될 것 같았다.
* * *
시간이 흘러, 첫 번째 정화 의식으로부터 약 일주일이 지났다.
밤이고 낮이고, 극심한 통증이 간헐적으로 찾아왔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다행히도 그 강도와 빈도는 점차 줄어들어, 지금은 가벼운 두통 정도로만 남아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두 번째 정화 의식.’
의식이 있기 전,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종이 위에 펜을 놀렸다.
안녕, 이아페.
부치지 못할 편지였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그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나는 편지를 쓰는 중이었다.
여기는 다 하얗고, 파랗고, 또 깨끗해요. 정화 의식은 그리 고통스럽지 않았어요. 어쩐지 정말로 마음이 좀 정화되는 것 같기도 해요. 먹고 자고…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편안한 한량의 생활을 만끽하고 있어요.
너무 아프다고, 힘들다고 말하면 그가 걱정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편지에서만이라도, 나는 그리 힘들지 않았노라 이야기하기로 했다.
‘거짓말을 하나 했으니까… 솔직한 말도 해야지.’
나는 한 자 한 자를 꾹꾹 눌러 편지를 써 내려갔다.
이아페, 당신이 보고 싶어요. 정말 많이.
쓰고 나자 이아페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크게 마음속을 메웠다. 아무래도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나는 이아페에게 크게 영향을 받고 있었나 보다.
온전히 그를 만날 수 없는 지금에서야 뼈저리게 느꼈다.
그가 곁에 있는 것이 어느새 너무 당연해졌다는 것을. 내가 그를 정말 많이 의지하고, 생각하고, 또 좋아한다는 것을.
매일 당신 생각을 해요. 당신이 내게 주었던 마음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빛나는 것인지를 떠올려요. 조금만 지나면, 당당하게 당신을 찾아갈게요. 그때까지 이아페도 나를 믿고 기다려 줘요.
펜을 움직이는데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는 입술을 꾹 깨물고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울지 마, 시샤. 산타 할아버지한테 선물 안 받고 싶어?」
혼잣말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수련회 와서 캠프파이어 하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괜히 감상에 빠지지 말자, 시샤.
나는 손바닥을 펼쳐 뺨을 챱챱 쳤다.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요.”
문이 열리고, 르디엘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뒤로 몇 명의 사제가 서 있었다.
‘두 번째 정화 의식이 시작되는구나.’
나는 편지를 서랍에 넣어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나서는데 르디엘이 내 서랍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르디엘?”
내 부름에 그가 싱긋 웃으며 문을 닫았다.
그 뒤로 진행된 의식은 지난번과 동일했다.
이번에도 눈을 가린 뒤 의식 장소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무언가를 마셨다.
온몸에 뜨거운 기운이 번졌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왔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잃었다.
* * *
〈라카루스! 괜찮아?〉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온몸에 상처를 입은 남자를 잡고 울고 있었다.
아, 지난번에 꿨던 꿈에서 이어지는 상황이구나.
전쟁이 일어난 와중에 어떤 이들이 나를 깊은 곳에 감춰진 방으로 숨기고, 그곳에서 라카루스의 연락을 받고… 그가 내게 부탁이 있다고 말한 후.
고민은 길지 않았다. 나는 라카루스가 있는 곳, 그러니까 미엘교의 신전으로 순간 이동을 했다.
내가 본래의 방을 빠져나가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이 전쟁에서 우리는 서로 대척점에 서 있는 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슬펐다. 너무도 괴로웠다. 꿈이 아닌 것만 같았다.
꿈이라기보다는… 마치 실제로 내가 겪은 일인 것처럼 생생해.
〈전쟁을 끝낼 방법이 있어, 아이론.〉
라카루스의 말에 나는 한 줄기 희망으로 눈을 빛냈다.
〈정말이야? 우리가 싸우지 않아도 되는 거야?〉
〈그래. 이 전쟁이 벌어진 가장 큰 원인은 미엘교와 비타교가 서로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야. 그렇다면 두 종교가 공존하도록 설득하면 돼.〉
〈그건 그렇지만… 대체 어떻게?〉
〈이대로는 서로 싸우기 급급해서 화해를 이끌 수가 없어. 하지만 네 힘이 있다면 가능해.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아이론.〉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그래. 언어술사인 너만이.〉
라카루스의 눈 속에는 나를 향한 무한한 신뢰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가 말하는 방법이 어떤 것이라도, 이 괴로운 전쟁을 끝내고 그와 함께할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 *
“이제 대부분의 정신을 잠식했습니다. 아마 다음 의식에서는 온전히 조종이 가능할 테지요.”
시샤의 머리에서 손을 뗀 위드가 말했다. 엘딕이 반색하며 말을 얹었다.
“그 마법사 아이가 제 편을 팔아넘긴 보람이 있겠네요. 그래도 자신의 쓸모는 충실히 해냈….”
눈치 없이 말하는 엘딕을 미르셀이 툭 쳤다. 왜 그래? 엘딕이 불만스럽게 쏘아 대려는 순간 싸늘한 냉기를 느꼈다.
르디엘이 엘딕을 날이 선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팔아넘긴 게 아닙니다.”
“그래, 그래. 알아. 바벨의 검이 나타났다는 신탁을 받고 대의를 위해 파견된 거지. 너처럼.”
엘딕이 두 손을 들고는 한 발 물러섰다. 다행히 르디엘도 괜한 트러블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은지 곧 고개를 돌렸다.
‘곧 원하는 바를 얻을 테니 몸을 사리는 모양이지?’
엘딕이 그의 뒷모습을 향해 맘에 안 든다는 눈초리로 입술을 삐죽였다.
한편 드하이센은 즐거움이 가득 담긴 웃음을 흘렸다.
“우리의 대업을 이룰 날이 얼마 남지 않았군.”
살면서 이토록 흥분되는 때가 있었던가. 곧 결실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감정이 격앙되는 것을 겨우 눌렀다.
“여기에 모인 이들은 미엘 신의 축복을 받은 자 중에서도 믿음이 깊은 사람들이지. 우리가 가진 진짜 가능성을 아는 이들이란 말이야. 생각해 봐, 위드. 신의 힘을 가지고 있는데도 다른 이들과 똑같이 살아가야 한다니, 이 얼마나 불합리하단 말인가.”
“예. 저희는 더 나은 삶과 세상을 위해 연구를 할 필요가 있지요.”
위드의 동의에 드하이센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시샤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당신이 우리의 대업을 이뤄 주실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 언어 그 자체를 다룰 수 있는 것은 귀하신 분, 당신밖에 없었으니까요.”
“대업을….”
시샤가 멍하니 읊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드하이센의 입술이 길게 호선을 그렸다.
“오히려 그때보다 더 많은 일을 이룰 수 있을 겁니다. 그분도 기대하고 계시겠지요. 우리가 만들 새로운 세상을.”
드하이센의 눈에서 새로운 삶에 대한 열망과 곧 현실이 될 꿈에 대한 기대가 반짝였다.
* * *
시샤를 자리에 눕힌 르디엘이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달빛에 비친 시샤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우음, 시샤가 잠꼬대를 했다. 르디엘은 불에 덴 듯 손을 떼어 냈다.
“…….”
그의 눈에 어린 복잡한 감정이 시샤에게 쏟아졌다. 르디엘은 이내 그녀의 이불을 끌어 올려 꼼꼼히 덮어 주곤 방을 나섰다.
갈 곳이 있었다.
르디엘은 포탈을 열어 어딘가로 향했다. 어둠 속 그가 도착한 곳은 촘촘히 늘어선 작은 집 중 하나의 앞이었다.
르디엘이 건조한 표정으로 문을 두드렸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르디엘은 안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끼익, 문이 열렸다.
어둠 속 여자가 무표정하게 위를 올려다보았다.
“세니엘.”
“…….”
세니엘은 대답 없이 돌아섰다. 르디엘이 집 안으로 들어오자 그녀가 뒤를 돌아 질문을 던졌다.
“정화 의식은?”
정화 의식이 아냐. 그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할 수 없는 대답을 하는 대신, 르디엘은 말을 돌렸다.
“불은 켜고 지내지 그래?”
“불안해.”
“네가 왜 불안해?”
“나도 시샤 님처럼 힘을 써 버리면 어떡하지? 시샤 님은 보살핌을 받았는데도 그렇게 되셨잖아.”
“아냐, 그건….”
뭐라 말하려던 르디엘이 말끝을 흐렸다. 역시 이 이야기도 할 수 없었다. 적어도 세니엘에게만큼은.
“넌 더 이상 이 일에 관여하지 마. 내가 알아서 한다고 했잖아.”
“어떻게 그냥 놔두겠어? 알아. 내가 저주받은 거. 오빠가 나 때문에 대사제가 되지 못한 것도, ‘그분’을 따르는 것이 날 지키기 위해서라는 것도. ‘그분’은 내가 타락하지 않도록 봐 주고 계시니까.”
“세니엘.”
“그런데 어떻게 내가 가만히 손을 놓고 있어?”
세니엘이 답답함과 원망을 담아 물었다. 르디엘은 이번에도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없었다.
“세니엘, 앞으로 철저히 너를 숨길 거야. 당분간은 신성력으로도 찾지 못하게 할 수 있어.”
“…세니엘이라고 부르지 마. 그 아이는 죽었어.”
“그러지 마, 세니엘.”
“어릴 때, 신전에서 사는 주제에 마법사라는 것이 들켜서 돌팔매질을 당했을 때. 동생이 악마의 힘을 가지는 바람에 사제가 되는 것을 포기한 오빠를 보았을 때. 그리고… 그런 오빠의 앞에 방해가 될까 봐 부모에게서도 버려졌을 때 말야.”
세니엘이 빠르게 말을 늘어놓았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세니엘 체르실로프라는 사람은 없다.
“죽으라고 해서, 정말 죽어 버렸어.”
“…….”
“지금 남은 건 세니엘 체르실로프가 아니라….”
달빛이 창문으로 들어와 그들을 비추었다. 밝은 빛에 세니엘의 금발이 반짝였다.
“니니안 켈린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