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116
@116. 약점(1)
칼린느의 집무실. 서류를 내려놓은 그녀가 고개를 들어 앞에 선 이아페를 바라봤다.
“불신의 시선이 꽤나 잠잠해졌더군.”
마법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아페가 연구단의 수장을 맡은 후, 그는 모든 이가 마법을 ‘꼭 필요한 힘’으로 여기도록 착실하게 만들어 나갔다.
마도구를 배포하고, 마법의 유용함을 선전하는 행사를 열었으며, 마법으로 수많은 이를 도왔다.
덕분에 지금 마법은 꽤 높은 신뢰를 회복한 채였다.
“그대가 많이 애썼어.”
“시샤 님이 모든 걸 떠안고 가셨으니까요.”
이아페가 고요한 시선으로 대답했다.
이아페의 말에 칼린느가 대답 없이 펜을 굴렸다. 잠시 생각에 빠졌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신전으로 떠난 지도 벌써 2주인가…. 확실히 시샤 아르비나가 모든 화살을 맞았지.”
마법으로 자국 군사를 전멸시켰다는 것이 밝혀진 후 마법을 지지하는 자들이 가장 걱정한 것은 폭풍처럼 제국을 휩쓸 부정적인 소문이었다.
그러나 소문은 생각보다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이것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신전의 도움이 있었다. 신전에서 연구단 단장을 정화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제국민들에게는 안심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던 것이다.
어차피 마법 자체가 악마의 힘이 아니라, 단장 하나가 악마에 씐 것이라지 않은가. 사람들은 꺼림칙함을 덮은 채 마법이 주는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다만….
“신성력에 대한 경외와 의존은 더욱 커졌다는 게 문제군.”
당연하게도, 사람들에게는 그런 생각이 퍼졌다.
역시 어떤 악이라도 잠재울 수 있는 것은 신성력뿐이다.
고로… 신성력이 마법보다 우월한 힘이다.
“신전에서도 그걸 노리고 정화를 제안한 것이겠죠.”
“그래. 정화라니… 웃기지도 않는 짓을.”
칼린느가 성난 표정으로 욕을 지껄였다. 그리고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
이를 지켜보던 이아페가 단호히 말했다.
“시샤 님이 돌아오시면 저는 이 자리를 다시 그분께 드릴 겁니다.”
이아페의 표정은 굳건했다. 칼린느가 그를 마주 빤히 바라보더니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못 내려오겠다 생떼를 부려도 뺏을 테니 걱정 마. 나도 그대보다는 시샤 아르비나가 훨씬 마음에 들거든.”
“다행이군요.”
칼린느가 눈썹을 으쓱했다.
그러길 잠시, 그녀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옅어졌다. 그리고 그 자리를 결연함이 메웠다.
“…누구나 눈에 보이는 걸 믿지. 생각은 뒤집을 수 있어. 보여 주면 돼. 마법은 악마의 힘이 아니고, 마법사 또한 악마가 되지 않는다는 걸.”
“…….”
“그러니 시샤 아르비나가 돌아올 때까지 마법의 위상을 열심히 끌어올려 봐.”
이아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황제의 말이 맞았다. 뒤집으면 된다. 반드시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니… 어서 돌아와, 시샤.
당신을 위해 다듬어 둔 이 자리에 다시 앉아 줘.
이곳에 없는 그녀를 그리는 보랏빛 눈에 간절함이 스쳤다.
* * *
중앙 신전 내에 위치한 두 번째 대사제, 위드의 방.
평소라면 단정히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기고 있을 위드였으나, 오늘은 다소 지쳐 있었다.
그의 옆에서 엘딕이 투덜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실 거예요?”
“흐음.”
“위드 님, 마법의 위상이 올라가고 있다고요. 뭔가 대책이 있으신 거죠?”
분명 일리가 있는 불평이었다.
마법을 신성력보다 하위의 힘으로 만들되, 너무 추락시키지는 않아야 했다.
귀하신 분을 이용해 마법을 이용하려면 마법이 재기 불가능한 상태여서는 안 되었으니까.
그것까지는 계획한 대로 흘러갔다.
하지만….
“예상보다 너무 빠르게 치고 올라가고 있긴 하군.”
위드는 생각에 잠겼다.
이대로라면 신성력이 마법보다 우위에 있다는 인식 또한 뒤집힐지도 몰랐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주도하는 것은 이아페 카일라인.
신전의 가호를 받는 그 가문의 직계가 마법사의 길을 택했기에 더욱 타격이 컸다.
“슬슬… 거슬리네.”
“역시 그렇죠?”
“마법에 대한 모든 열쇠는 귀하신 분이 쥐고 있어야 하는데….”
그래야만 귀하신 분을 가진 우리가 마법까지 갖는 것인데.
생각할수록 이아페는 앞으로의 대업에 위협적인 인물이었다.
“죽일까요?”
엘딕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위드가 미간을 찌푸린 채 엘딕을 흘겨보았다.
“대책 없이 그냥 죽이는 건 안 돼. 우리 대신 처리할 사람을 찾아. 죄를 덮어씌울 사람이나.”
“이미 찾았죠.”
“정말이냐?”
위드가 관심을 표하자 엘딕이 반색하며 슬쩍 웃었다. 말을 해 보라는 듯 위드가 턱짓하자, 엘딕이 여유롭게 눈썹을 끌어 올리며 말했다.
“일로제 카일라인 말이에요. 카일라인 첫째 공자가 가족들이랑 척을 지고 열여섯에 집을 나갔잖아요. 듣자 하니 형은 동생의 얼굴도 보기 싫어하고, 동생이 형에게 일방적으로 매달리고 있다고 하죠.”
“흐음… 그럼 형이 동생을 죽이게 만들어야겠군. 그러다 동생이 형을 죽이더라도… 그건 그거대로 나쁘지 않고.”
“제가 세뇌를 걸게요.”
“네가?”
“네, 저도 할 수 있어요.”
“그래… 분노에 찬 이를 세뇌하는 것 정도는 너도 쉽게 해낼 테지.”
위드가 느긋하게 차를 한 모금 넘긴 후 엘딕에게 무어라 지시했다. 이야기를 들은 엘딕이 기대감에 부풀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남부, 일로제의 저택 근처에 위치한 어느 강가.
일로제는 그곳을 천천히 거니는 중이었다.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함이었다.
‘시샤 아르비나 단장이 신전으로 들어가고, 이아페가 마법 연구단의 수장이 되었다.’
보통 심각한 상황이 아니었다. 이아페가 마법사라는 것을 밝히다니… 아마 카일라인 가문 내에서 난리가 난 것은 물론이겠지.
마법사에 대한 인식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그 카일라인이다. 마법사라는 이유로 이아페를 죽이려 했던 카일라인.
이아페는 괜찮을까.
이번에도 공작이 그 아이를 외면한 것은 아닐까.
걱정으로 점철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때였다.
“흐윽….”
근처에서 들리는 흐느낌에 일로제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강가에 선 한 여인이 손에 얼굴을 묻은 채 울고 있었다.
일로제는 잠시 고민하다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가 손수건을 건네며 말을 걸자 놀란 여인이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쓰십시오.”
여인은 조심스럽게 손수건을 받아 들었다.
“감사합니다. 추태를 보였네요. 오늘이 어머니의 기일이라….”
여인이 다시 울먹였다. 생각하니 다시 울분이 차오른다는 듯 여인이 입술을 깨물며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았다.
어머니의 죽음을 겪은 사람.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동질감에, 일로제는 위로의 한 마디를 건넸다.
“유감입니다. 어머니도 이렇게 우시는 걸 보면 슬퍼하실 겁니다.”
“하지만… 제가 슬퍼하지 않으면 어머니의 억울함은 누가 풀어 주나요? 그분이 억울하다는 것은 저밖에 모르는데….”
억울한 죽음, 감춰야 했던 진실.
일로제의 표정이 굳었다. 마음이 일렁였다.
“안타까운 이야기로군요….”
일로제는 가여운 여인에게 저도 모르게 마음이 쓰였다. 그런 마음을 알아챈 듯 여인이 질문했다.
“저는 어머니의 억울함을 생각하며 몇 년을 보냈어요. 제 이야기를… 들어 보시겠어요?”
“…그리하겠습니다.”
일로제의 대답에, 여인이 고개를 푹 숙였다. 울고 있는 듯 그녀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땅을 바라보는 여인, 엘딕은 씨익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일로제는 엘딕을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엘딕이 싱긋 웃으며 물었다.
“일로제, 당신 동생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죽이고 싶습니다. 그 아이만 없으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올 것 같아요.”
“저런….”
엘딕이 너무도 안타깝다는 듯 일로제의 뺨을 쓸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에는 점차 기쁨이 차올랐다.
이내 그녀가 만족스러운 듯한 웃음을 터뜨렸다.
“너무나도 바람직하군요. 우리의 로브를 주고 싶을 정도로.”
* * *
이아페는 방에 앉아 시샤가 보낸 편지를 펼쳤다.
어떻게 전한 것인지는 몰라도, 며칠 전 이아페의 방 창문에 끼어 있었다.
필체를, 그리고 그녀만의 따뜻한 문장들을 본 순간 알았다. 이건 시샤가 쓴 게 맞다는 걸.
편지에서 시샤는 의식은 그리 힘들지 않고, 모두가 잘해 준다고 말했다.
사실이 아니라는 것쯤은 편지를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감정을 숨기는 데에는 재능이 없으니까. 분명 자신이 걱정할까 봐 본심을 숨긴 거겠지.
“시샤….”
이아페는 시샤의 이름을 읊조렸다.
그녀가 미칠 듯이 보고 싶다. 시샤가 돌아올 때까지 이 자리를 잘 지키고 있겠다 다짐했건만, 그녀와 함께할 수 없는 지금이 너무도 힘들다.
중앙 신전에 몰래 잠입하는 이는 사형이랬던가.
그래도… 그녀를 만나기 위한 대가라면 죽음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이내 집사가 문 안으로 들어와 소식을 전했다.
“도련님을 뵙고자 하는 손님이 오셨습니다.”
“돌려보내.”
이아페는 여전히 책상 위 편지에 시선을 둔 채 대답했다.
약속을 잡은 기억은 없었다. 불쑥 찾아온 이를 만나 줄 정도로 한가롭거나 성격이 좋지도 않았고.
그러나 집사는 나가지 않고 제자리에 선 채였다.
“안 나가고 뭐 하는….”
“다음번엔 내가 수도로 찾아가겠다 했잖아.”
익숙한 목소리가 말을 끊었다. 이아페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문을 바라보았다.
집사의 뒤에 서 있던 남자가 웃으며 앞으로 한 발짝 나왔다.
“형…?”
“그래, 이아페.”
일로제다.
일로제가 처음으로, 자신을 보기 위해 수도로 왔다.
이아페가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일로제에게로 걸어갔다.
지난 몇 주간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던 몸이 녹는 것 같았다.
시샤가 신전에 들어간 후 처음으로, 이아페의 얼굴에 밝은 빛이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