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118
@118. 달밤의 재회
위드가 제단에 선 시샤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에 흡족한 미소를 지은 위드가 모두를 향해 이야기했다.
“오늘은 귀하신 분께서 정말 우리의 사람이 되셨는지 시험할 것이다.”
로브를 입은 자들 사이에서 작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바벨의 검을 확보하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을 공들였던가.
과연 어떤 방법으로 시험을 할지, 모두가 위드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내 그가 입을 열었다.
“귀하신 분께서… 카일라인 형제를 죽일 것이다. 먼저 이아페 카일라인부터.”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술렁였다.
르디엘의 비취색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가 저도 모르게 시샤의 표정을 살폈다. 그러나 그녀는 어떤 동요도 하지 않았다.
가만히 있어야 할까? 아니, 그럴 수 없었다.
이아페는 재수 없고 저밖에 모르는 놈이지만. 그렇지만… 죽는다니. 그런 건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안 됩니다.”
결국 터져 나온 반대에, 위드가 차가운 시선을 그에게로 옮겼다.
“그걸 결정하는 건 네가 아니야. 성하께서도 허락하신 일이다.”
그가 조용히 르디엘의 말을 막았다. 그러자 르디엘의 시선이 드하이센을 향했다.
“…그분께서도 허락하셨습니까?”
이곳에서 이뤄지는 최종적인 결정은 ‘그분’이 하시는 것 아닌가.
그리고 지금 그분은 며칠간 회복을 위한 잠에 들어 계신다.
‘그분이 깨어나실 때까지 시간을 벌면….’
하지만 드하이센이 코웃음을 쳤다. 그가 르디엘을 타이르듯 말했다.
“쯧… 르디엘. 제대로 된 결과물을 보여 드리기 전에 시험을 해 봐야 하는 것 아니겠니.”
“시험이 목적이라면 다른 방법도 많습니다.”
“이아페 카일라인은 우리의 대업을 달성하는 데에 가장 방해가 되는 인물이야. 카일라인의 피를 받았으면서 마법사에게 붙은 것만 봐도 뿌리가 썩은 놈임이 틀림없지. 지금 잘라 버려야 해.”
“그도 저희의 편으로 끌어들이면 되지 않습니까.”
“계속해서 세뇌를 유지하는 게 쉬운 일인 줄 알아? 게다가 그 집에 상주하고 있는 신성능력자만 몇십이야. 그놈의 정신을 건드린 걸 그들이 모를 리 없다.”
“…….”
드하이센의 말은 충분한 설득력이 있었다. 이아페가 위협이 된다는 것도, 그의 정신을 조종하는 것은 위험성이 크다는 것도.
로브를 입은 이들이 르디엘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씩 날카로워졌다. 그런 분위기 속, 드하이센이 르디엘에게 말했다.
“르디엘, 네가 이런 상황도 파악하지 못했을 리 없을 텐데…. 왜 그러는 거지? 설마… 그분을 배신할 참인가?”
르디엘이 멈칫했다.
드하이센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가 눈썹을 기울이고 의심이 담긴 눈초리로 르디엘을 주시했다.
“…그럴 리가요.”
지금은 더 고집을 부릴 때가 아니었다. 르디엘이 애써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흐음, 작게 탄식을 흘린 드하이센이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르디엘, 너에게 제일 소중한 사람이 누구지?”
“…….”
선택을 하라는 이야기였다. 모든 것을 잡을 수는 없다고.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고.
“그분을 실망시키지 마라. 그분이 너를 아끼시는 건 네가 그분을 저버리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야.”
드하이센이 돌아섰다. 로브를 입은 자 몇몇이 시샤를 데리고 걸음을 옮겼다.
그때 시샤가 잠시 걸음을 멈춰 르디엘을 돌아보았다.
그녀가 뭐라 말을 할 것만 같아서, 르디엘은 시샤를 절박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시샤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의 마음을 한 번 더 할퀴었다.
“실망시키지 마, 르디엘.”
시샤는 앵무새처럼 드하이센의 말을 따라 하고는 미련 없이 고개를 돌렸다.
쾅, 문이 닫혔다.
혼자 남겨진 르디엘은 굳게 닫힌 문을 보며 아프게 입술을 깨물었다.
* * *
고요한 밤이었다.
이아페는 일로제를 손님 방에 데려다준 후 제 방으로 돌아왔다.
일로제는 공작과 마주치기 싫다며 돌아가려 했지만, 이아페가 필사적으로 그를 잡았다. 그리고 공작에게는 비밀로 한 채 형을 손님 방으로 보냈다.
검은 로브를 마주쳤다 하지 않았는가.
또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적어도 이 집안의 신성능력자들은 신전의 사람이 아닌, 카일라인의 사람들이었다. 검은 로브의 집단이 정말 신성력을 쓴다면 이곳만큼 안전한 곳은 없었다.
이아페는 저택의 모든 신성능력자에게 오늘 밤 낯선 신성의 기운이 느껴지거든 바로 보고하라 일러두었다. 아마 오늘은 평소보다 훨씬 예민하게 감각을 세우겠지.
그리고 이아페 또한,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고민 탓에 잠들지 못할 것 같았다.
어두운 방, 홀로 앉은 그의 얼굴에 달빛이 그림자를 드리웠다.
‘시샤를 납치한 자들이 신성력을 썼다니….’
교황까지 알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저 몇몇 종교에 심취한 자들의 소행인가.
시샤 님은 지금… 신전에 있어도 되는 걸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이아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재킷을 걸쳤다.
어쩌면 신전과 상관없는 일부 극단주의자들의 소행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신전에서 관여했다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렇게 태평하게 앉아 있어서는 안 되었다.
‘신전으로 가야 해.’
시샤가 어떻게 지내는지 내 눈으로 봐야 한다. 그녀를… 데리고 나와야 한다.
이아페가 순간 이동을 하기 위해 중앙 신전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내 절망감에 빠져들었다.
지금 그녀가 있는 곳까지 들어갈 방법이 없었기에.
중앙 신전은 외신전과 내신전으로 나뉘고, 그 사이에는 신성력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벽이 있다. 내신전은 매 순간 출입하는 이를 엄격히 통제해,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순간 이동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것은 가 봤던 장소뿐. 하지만 시샤가 있을 내신전에, 이아페는 가 본 적이 없었다.
이아페가 두 손으로 책상을 짚고 고개를 푸욱 숙였다.
“시샤 님… 어떻게 해야….”
툭. 그때 창문에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다음 순간 어떤 기운이 물결처럼 흘러 이아페를 스쳤다.
“…….”
이아페가 고개를 들었다.
금방 날아 가버릴 미세한 마법의 자취였으나, 이아페는 결코 모를 수가 없었다.
이아페는 소리가 들린 창문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가 서둘러 커튼을 걷고 창문을 벌컥 열었다.
“…시샤 님?”
창문 너머, 시샤가 나무 위에 앉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환상인가. 그녀를 너무 그리워한 나머지 환각을 보고 있는 걸까.
이아페는 홀린 것처럼 그녀를 바라봤다.
“나 왔어요, 이아페.”
시샤가 배시시 웃었다.
어여쁘게 접히는 눈. 살짝 상기된 뺨. 기분 좋게 올라가는 입꼬리.
천사가 그를 찾아온 것은 아닐까. 이아페는 멍하니 시샤를 바라봤다.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이아페 도련님!”
“무슨 일이지?”
이아페가 시선은 시샤에게 둔 채 크게 물었다.
“혹시 무슨 일 있으십니까? 미약하지만 낯선 신성력이 느껴져서 왔습니다.”
시샤에게 사용되었을 신성력을 감지한 것인가. 하지만 지금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을 방해받고 싶진 않았다.
“괜찮다. 오늘 내 방은 신경 쓰지 말고 다른 방을 주시해.”
“하지만….”
밖의 목소리는 불안한지 문 앞을 떠나지 않고 말끝을 흐렸다.
왜 명을 해도 듣지 않는 건지.
분노가 치밀어 올라 그의 미간이 좁혀졌다.
지금 시샤가 이곳에 왔는데.
몸을 돌리면 그녀가 사라져버릴 것 같은데.
“화내지 마요.”
그때 시샤가 부드러운 목소리와 함께 손을 내밀었다.
그 목소리에 이아페의 표정이 단번에 풀어졌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떠올려 나무에 앉은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다.
시샤의 얼굴에 시선을 둔 채 손을 뻗자, 그녀의 보드라운 손이 제 손을 마주 잡았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지는 온기였다.
이아페는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이아페, 지금 나랑 같이 가요.”
미묘한 위화감이 들었지만 애써 무시했다. 눈앞에 있는 이는 분명 시샤였기에.
그녀가 원한다면 어디든 함께 갈 수 있었다.
그것이 설령 지옥이라 해도.
「순간 이동.」
시샤의 나지막한 주문과 함께 그들은 어디론가 이동했다.
어지러움이 느껴졌지만, 이아페는 눈을 감지 않았다. 혹시라도 이동하는 그 짧은 순간에 그녀가 사라져 버릴까 봐.
그리고 도착한 곳은 이아페에게도 낯익은 곳이었다.
“…시샤숲이군요.”
“보고 싶었어요, 이아페.”
시샤의 작은 몸이 와락 이아페를 끌어안았다. 이아페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가 시샤를 조심스럽게 마주 안았다.
그녀의 몸이 으스러질까 봐 꽈악 안지도 못하고, 해소되지 못한 불안과 터질 것 같은 안도는 제 몫으로 둔 채 그저 이 자리에 있는 그녀의 온기를 느꼈다.
“시샤 님, 정화 의식이 끝난 겁니까?”
“네.”
“몸은 괜찮으십니까? 의식이 고통스럽지는 않으셨습니까?”
시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아페가 몸을 떼어내 시샤의 얼굴을 살폈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빙긋, 미소 짓더니 까치발을 들어 이아페에게 입을 맞췄다.
그 순간 이아페는 세상이 뒤집히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애써 접어 둔 채 꺼내지 않으려 했던 감정과 욕망들이 해일처럼 넘쳤다. 간신히 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한 손으로는 그녀의 목을 받치고, 한 손으로는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녀의 입을 갈구하듯 탐했다.
갈증이 일어 미칠 것 같았다.
그는 연하고 따뜻한 그녀의 입 안을 느꼈다. 그들 사이에 더운 숨이 오갔다.
그 뜨거운 숨을 느낀 후에야 비로소 실감이 났다.
여기에 시샤가 있구나.
드디어, 정말로 시샤가 돌아왔구나.
입술을 떼어 내고 사랑스러운 그녀를 바라보며 거센 숨을 몰아쉬었다.
시샤가 질문을 던졌다.
“내가 왜 당신을 데리고 여기에 온 줄 알아요?”
“우리의 공간이니까.”
우리의 추억이 담긴 공간. 처음으로 서로의 마음을 오해하지도, 외면하지도 않고 온전히 마주한 공간.
그만큼 우리에게 특별한 공간이니까.
이아페의 답이 맞았는지, 시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이아페. 여긴 우리밖에 없으니까.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 내가 마법을 써도 마력이 느껴지지도 않는 조용한 곳이 필요했거든요.”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마력을 사용할 일이 있으십니까?”
“네.”
“언제….”
“지금. 「단도.」”
푸욱.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시샤가 이아페의 배를 작은 칼로 찔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