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12
@12. 도박판이라도 기꺼이
「열려라 참깨!」
순식간에 무거운 문이 활짝 열렸다.
매서운 빗소리가 크게 귀를 울렸다. 그와 동시에 차가운 비바람이 튀어 들어와 얼굴을 때렸다.
퉤퉤, 방음이 너무 잘되어서 비가 오는 걸 잊고 있었잖아.
「닫혀라 참깨! 닫혀라 참깨!」
쾅! 둔탁한 소리와 함께 굳게 문이 닫혔다.
“아하하….”
나와 이아페의 눈이 마주쳤다.
“정말… 성공했군요.”
그가 꿈을 꾸듯 나를 바라봤다.
“제가 뭐랬어요, 출세시켜 준다고 했죠?”
나는 그를 향해 보란 듯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마법이 ‘악마의 힘’이 아닌 새로운 이름을 가지기 위해 지켜져야 할 필수 조건.
마법을 제어할 수 있는가.
이는 코레아리아어로 된 주문으로 가능했다.
‘그 주문이 한국어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만.’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판타지 소설이나 게임에서 봤던 주문들도 언어만 바꿔서 생각하면 이런 단순한 것이었다.
‘파이어 볼’은 ‘불 공’, ‘힐’은 ‘치료하다’인데 외국어로 적혀 있어서 그럴듯해 보였을 뿐이지.
“이 책들에는 수많은 마도구 제조법도 있을 거고, 해석하면 할수록 대단한 결과가 나올 거예요.”
“확실히. 판도를 뒤집을 수도 있겠군요.”
“네, 그러니까….”
“또 원하는 게 있군요.”
그는 나를 뻔뻔한 ‘상습부탁러’라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지.
“내일 황궁에 함께 가요.”
오늘 그가 본 것들은 권력의 중심이 되고자 하는 그의 야망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칼린느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는 욕망은 좋은 트리거가 되어 줄 것이다.
어차피 내가 코레아리아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건 이아페뿐!
내일 황궁에서 ‘이아페 카일라인이 언어의 귀재입니다.’ 하고 등을 떠밀어 준다면 그도 말없이 언어 해석을 독점하게 될 터였다.
그럼 내 역할은 끝!
그냥 이아페에게 가나다라 정도를 전수해 주며 옆에서 보필하면 되는 것이다.
“도박을 즐기진 않지만….”
이아페가 팔짱을 끼고 고민하는 시늉을 했다.
나는 들고 있던 책을 양손으로 잡고 얼굴 앞에 세웠다. 긴장한 표정을 들키기 싫어서였다.
책 위로 반만 올라온 내 눈이 이아페의 눈과 마주쳤다.
그는 내가 들고 있던 책을 가볍게 내 손에서 채 갔다. 그리고 그것으로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얼굴을 가린 채 말했다.
“당신과 함께 뛰어든다면 도박판이라도 기꺼이.”
넓어진 시야에 그의 얼굴만이 환하게 들어왔다. 책 위로 보이는 그의 웃음기 띤 눈은 정확히 나를 향하고 있었다.
‘도박판이 아니라 성공적인 서브 남주 루트에 뛰어드는 거야.’
나는 긴장이 풀려 할머니처럼 배시시 미소 지었다.
그런데, 잠깐.
정신이 없어서 잠시 잊고 있었는데.
“그런데 사냥 행사는 어쩌고 여기 있어요?”
“아, 사냥 행사라면….”
설마 내가 이아페를 자극해 오늘 여기 오게 만든 것 때문에 그가 행사에 가지 않은 걸까?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심지어 첫 만남 에피소드인데.
이런 중요 이벤트가 사라지면 이아페와 칼린느는 어떻게 되는….
“오후에 있습니다.”
지금은 아직 오전이었다.
나 혼자 심각해진 것이 머쓱했지만, 너무도 다행인 일이다.
내일이면 나는 눈앞에 닥쳤던 생명의 위협에서 벗어날 거고, 소설의 여주와 섭남 투샷을 1열에서 관람하는 건 덤.
자, 이제 성공적인 해피 엔딩의 시작을 여는 일만 남았다.
* * *
그럴 생각이었는데.
“시샤 아르비나 영애가 고대 코레아리아어를 해석할 수 있습니다.”
나는 식겁해서 이아페를 바라보았다.
나는 도서관 발견, 너는 언어 해석. 우리 사이에 암묵적인 합의가 있던 게 아니란 말야?
“그대가 고대 언어를 해석할 수 있단 말인가?”
칼린느의 흥미 반, 의심 반 질문에 감히 거짓을 고할 수는 없었다.
속에서는 연신 ‘어떡해!’를 외치며 뛰어다니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태연하고 경건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칼린느는 내게 읽어 보라며 책 한 권을 내밀었고.
「파나의 에메랄드는 소지자의 열을 낮추는 효과를….」
어쩔 수 없이 나는 코레아리아어를 읽어 버렸다.
나는 긴급하게 이아페의 공적과 스마트함, 언어적 재능과 마법적 재능을 최대한 어필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이아페 카일라인은 시샤 아르비나를 보필하라. 그대들은 이제부터 황실로 출근하도록 해.”
이아페와의 공동 취업이었다.
“연구단을 만들어야겠어. 단장은 시샤 아르비나, 그대가 맡고.”
다리를 꼬고 앉은 칼린느의 낭랑한 음색이 알현실을 울렸다.
‘이아페가 나를 보필하는 역할이라니. 이래도 되나?’
내 목표는 마법이 몰락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 그래서 내가 편하고 당당하게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다.
그런데 원작 흐름이 바뀌어서 이야기가 미쳐 날뛰면 어디에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게 되는 것 아닌가?
그럼… 그럼 어떡하지?
‘어떡하긴, 일단은 이대로 있다가 적당한 시기를 봐서 이아페한테 자리를 넘기는 수밖에.’
어차피 이미 벌어진 일. 나는 주어진 상황을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뭐, 칼린느를 알현하는 일에는 무조건 이아페를 데려가면 되지 않을까.
오늘 황궁에 오는 게 도박이니 어쩌니 하더니, 당연스럽게 여기에 나타난 걸 보면, 이미 어제부로 이아페는 칼린느에게 반한 상황이고. 그가 두각을 드러내면 자연히 칼린느의 눈에도 들어오겠지.
게다가 이 소설은 로맨스 소설이다.
애초에 고대 언어를 해석하는 것은 이아페와 칼린느 사이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주는 역할이었을 뿐.
이것과는 관계없는 로맨스 에피소드들이 둘 사이에 마구 전개되겠지. 이런, 저런, 그런 일들도…!
그럼 자연스레 흐름은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다.
그저 그들의 서사를 1열에서 보는 줄 알았는데 무대에 특별석이 마련되어 있었던 것뿐.
“주신 기회를 감사히 받들겠습니다, 폐하.”
“아. 다른 마법사들도 함께하는 게 좋겠군. 네다섯 정도만 더.”
단순히 번역 업무만 하라는 것이 아니라, 한국어… 아니, 코레아리아어 구사자를 양성하라는 것이었다.
‘부담이 되긴 하지만… 확실히 합리적인 결정이야.’
당장 해독할 수 있는 고서의 양이 줄어들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코레아리아어를 유창하게 다루는 이들이 더 많이 필요할 테니까.
‘네다섯 명이면 딱 지금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법한 범위이기도 하고.’
역시 내 최애 칼린느. 무심하게 던진 듯해 보이지만 이미 내 능력에 대한 스캔을 끝내고 내린 결정이 분명하다.
“알겠….”
“불가합니다.”
뒤에서 이아페의 냉정한 목소리가 플레이되었다.
나는 동그래진 눈으로 그를 바라봤고, 칼린느는 더 말해 보라는 듯 이아페에게 고개를 까딱했다.
“코레아리아어는 대대로 1명한테만 가르치는 게 원칙입니다.”
아, 내가 그런 말을 했었지. 대충 둘러대기 위해 했던 아무 말이었는데.
칼린느가 의외라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대가 그렇게 전통을 중시하는지 몰랐는데.”
“중요한 일이니 신중해야지요.”
“신중이 아니라 벽을 세우는 것 같아서 말야.”
“가벼이 누군가를 들일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숨 막히는 긴장이 공간을 메웠다. 보이지 않는 기가 맞부딪혀 사방으로 튀고 있다.
얘들아, 대체 왜 그래.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지?”
칼린느와 이아페의 시선이 동시에 나를 향했다. 그리고 내 결정은 당연히….
“제 대에서 원칙을 깨겠습니다.”
칼린느가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까도 말했지만, 이것은 합리적인 선택이다. 차마 내 최애의 명령을 무시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알고 있는 마법사가 있나?”
칼린느의 물음에 나는 자신 있게 대답을 준비했다. 이 소설의 독자였던 나라면 마법사 몇 명쯤은….
음, 모르네?
로맨스에 방점이 찍힌 소설인 데다가, 애초에 메인 남주는 마법사인 이아페가 아니라 호위 기사인 세디안이었기에.
‘내가 아는 마법사라곤 이아페, 그리고 또 1명뿐.’
나는 이아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갸웃하자 이것도 알고 있었냐는 듯 실토했다.
“…제 보좌관, 라온 제누아르가 마법사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라온도 마법사였기에 이아페의 감정과 고충을 이해하고 보필할 수 있었다.
마법을 얼마나 잘 썼나 하는 건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이아페의 보좌관 정도면 머리는 꽤 좋겠지.
“다른 이도 있나? 입은 꽤 무거웠으면 좋겠는데.”
칼린느의 말에 나는 다시 한번 생각을 더듬었다.
애초에 정체를 꽁꽁 숨기는 마법사들이니, 찾기가 쉽진 않을….
〈부르쌍 마을에 마법사가 나타났다더라.〉
그러고 보니 비알로가 그렇게 말했었지?
그 뒤에 리나에게 들은 얘기로는, 그 마법사를 일주일 동안 가둬 두었는데 왜 마법을 썼는지는 끝내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살다 보니 비알로 놈이 도움이 다 되네.
“1명 더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아. 더 구하기 힘들다면 이쪽에서 알아서 해 줄 거야.”
칼린느가 자신의 보좌관을 턱짓했다. 그는 다소 망연한 표정으로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그대들이 이 언어를 연구한다는 것은 비밀이야. 공식적으로 이 힘을 인정한다고 발표할 때까지.”
소설에선 마법이 어떤 과정으로 공식화되었는지는 정확히 나오지 않았다. 그냥 어느새 이아페가 마법을 요리조리 쓰고 있었달까.
그래서 주문으로 제어할 수 있다는 것만 알면 바로 마법을 공식적으로 인정할 줄 알았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하긴, 오랫동안 금기시되어 온 마법이니. 황제의 가장 강력한 패가 되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겠지.
그리고 그것이 꽃을 피울 때, 비로소 이 힘이 공표될 것이다.
“그럼, 다시 부르도록 하지.”
예의를 갖추어 인사한 우리는 돌아서서 문을 향해 걸었다.
그런데 알현실 문이 열렸을 때.
굳은 표정의 한 남자가 우리를 지나쳐 들어섰다.
‘와, 뉘 집 아들내미인지 참 훤칠하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번뜩이는 깨달음에 나는 고개를 뒤로 팍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