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120
@120. 믿음과 배신
화염은 무섭도록 치솟고 있었다. 저 안에서라면 누구라도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방금까지의 상황이 머릿속에 거칠게 욱여넣어졌다.
“왜…?”
온몸이 덜덜 떨렸다.
이아페는 마법을 제대로 컨트롤할 수 없을 뿐, 단순한 형태로 표출하는 건 가능했다.
그는 나를 마주 공격했어야 했다.
나를 붙잡았을 때 즉시 내 입을 막았어야 했다.
내가 아프냐고 물을 것이 아니라. 내가 다칠까 봐 손을 놓는 것이 아니라.
“안 돼….”
입에서 갈라진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나는 다급히 그에게로 달려갔다.
안 돼, 안 돼. 미친 듯이 중얼거리며 불구덩이로 손을 뻗었다. 손이 타들어 가는 고통이 온몸에 번졌다.
「비. 비를 내려 줘, 제발.」
쏴아, 빠르게 몰려온 먹구름과 함께 폭우가 일대를 덮었다.
비로도 한 번에 사라지지 않을 만큼 큰 불길이었기에, 나는 정신없이 불 속을 허우적댔다.
“이아페…!”
나는 미치광이처럼 땅을 기어 다니며 주변을 훑었다.
쓰러져 있을 이아페를 찾기 위해서였다.
‘이미… 치료할 수 없는 단계면 어떡하지?’
두려움이 너무 커서 눈물도 흐르지 않았다.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걸까.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온몸을 짓누르는 괴로움에 죽을 것 같았다.
“시샤 님?”
“……!”
그때 들리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사그라든 불 속에 있는 것은 타 버린 재가 아니었다.
안에 든 것을 지키겠다는 듯, 무언가를 둘러싸고 견고하게 얽힌 나무 덩굴이었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빛조차 들어갈 수 없을 것처럼 빽빽했던 덩굴이 느슨해졌다.
이내 덩굴은 제 할 일을 다했다는 듯 수많은 조각이 되어 흩날렸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이아페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샤 님, 괜찮으십니까?”
그제야 내 눈에서 후두둑, 눈물이 떨어졌다.
그를 지킨 나무 덩굴은 분명, 내가 이아페에게 주었던 브로치였다.
혹시라도 원작처럼 그에게 무슨 일이 있을까 봐… 보호 마법을 걸어 두었던 브로치.
“다행이다… 다행이다….”
나는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두 손이 미친 듯 떨렸다.
이 손으로 이아페를 죽일 뻔했어. 내가, 내가 그를….
“시샤.”
이아페가 내게로 다가왔다.
“괜찮아?”
그가 한 손으로는 내 손을 덮어 쥐고, 한 손으로는 내 뺨을 부드럽게 감쌌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나와 다름없이 내 앞에 앉아서, 더없이 다정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안해. 미안해, 이아페….”
“내가 미안해, 시샤. 혼자서 많이 무서웠지?”
울컥, 차오르는 설움에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시샤, 돌아와 줘서 고마워. 나를 지켜 준 것도.”
이아페가 나를 안고 등을 토닥였다. 그 손길이 너무도 따스해서, 나는 아이처럼 소리 내어 울었다.
그렇게 울고 나니 긴장이 풀린 것일까.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니, 내가 뭘 하면 돼?〉
나는 결연히 라카루스를 바라보며 질문했다. 그가 내 어깨를 잡고 눈을 맞추며 말했다.
〈잠시만 모든 코레아리아인들의 언어를 빼내서 모아 줘, 아이론.〉
〈뭐? 그럼… 모두가 말을 못 하게 되잖아.〉
이해할 수 없는 요구였다. 나는 눈썹을 내리며 그의 말에 반박했다.
그러나 라카루스는 괜찮다는 듯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 잠시면 돼. 미엘 신의 신성력으로 힘의 핵을 합치는 방법이 있어.〉
〈힘의 핵…?〉
〈융합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두 힘을 같은 힘으로 만드는 거야. 두 신이 형제가 되고, 그 힘을 나눈 백성들도 모두 형제가 되는 것이지.〉
〈…정말 그런 방법이 있단 말야?〉
〈그래, 아이론.〉
라카루스는 확고한 눈빛으로 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왜… 지금까지 그 방법을 쓰지 않은 거야?〉
〈신의 힘 자체를 건드리는 방법이잖아. 섣불리 쓰겠다 결정할 수 없었어. 인간의 힘으로도 화해가 가능할 거라 생각했으니까.〉
흔들림 없는 그의 시선에 나는 설득되기 시작했다.
라카루스는 지금 전쟁 중인 적국 카이론의 성기사단장이었다. 카이론의 주 종교, 미엘교에 대한 이해가 깊은 라카루스라면 분명 남들이 잘 알지 못하는 미엘 신의 힘도 알고 있을 터다.
〈아이론, 비타 신의 힘은 네가 다루는 언어로 좌우되잖아. 모두의 언어를 모아 줘. 그럼 내가 그곳에 화합의 연결 고리를 심을게. 그 후에 바로 언어를 돌려주는 거야.〉
〈그래도 그런 일을 하면 혼란이 클 텐데….〉
〈아주 잠시만. 아마 태양이 엄지만큼 이동할 시간 정도면 될 거야. 아니면 아이론, 설마 사람들이 이렇게 싸우며 죽어 가는 게 나아?〉
실망감이 감도는 라카루스의 눈빛에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래. 그 짧은 시간으로 이 전쟁을 멈출 수 있다면.
분명 값진 시간이 될 거야.
〈할게. 카이론의 언어도 가져오면 되겠지?〉
〈아니. 카이론은 언어로 힘을 제어하는 것이 아니니까. 모두에게 힘의 핵을 다시 나눠 주는 다른 방법이 있어.〉
〈응, 그렇구나.〉
나는 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라카루스였기에.
나의 사랑. 나를 살게 하는, 나의 라카루스.
〈고마워, 아이론. 이제 우리가 마음 놓고 함께할 수 있는 세상이 올 거야.〉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눈을 감고 심호흡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코레아리아어를 이곳에 끌어오기 위해서.
〈「아이야, 뭘 하려는 것이냐!」〉
그때 비타 신의 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자를 믿어선 안 돼. 나를 배신하지 마라!」〉
하지만 그만둘 수 없었다.
신이 원하는 길과 인간이 원하는 길은 다를 수 있다. 신은 다른 것과 구분되는 독보적 존재가 되고자 하지만, 인간의 입장에서는… 두 신을 형제로 만들어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선택지는 없다.
〈「신이시여, 죄송합니다.」〉
신을 향해 마음을 담아 인사를 읊조린 나는 이내 모두의 언어를 뺏는 주문을 외웠다.
〈「기억과 소망을 그리는 가장 어여쁜 약속들아, 모두 내게 오렴. 부드럽고 유연한 너희의 모습을 보여 주렴.」〉
세상에서 몰려온 수많은 붉은 빛들이 내 주변을 가득 채웠다.
그것은 내 손 위에서 한데 모여, 주먹만 한 빛이 되었다.
나는 작고 투명한 상자를 만들어 그 안에 언어의 결정을 담았다.
〈자, 모든 이의 언어를 모았어. 이제 힘의 핵을 합치면 돼.〉
라카루스가 상기된 표정으로 상자에 손을 뻗었다.
그도 곧 다가올 화합의 날에 대한 기대로 흥분이 차오르는 모양이었다.
그가 상자를 제단 위의 높은 탁자에 조심스레 올렸다.
〈고마워, 아이론.〉
갑자기 라카루스가 손을 뻗어 내 몸을 돌렸다.
〈라카루스?〉
뭐지? 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런데 그 순간.
커다란 손이 뒤에서 내 입을 막았다.
그리고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읍!〉
날카로운 칼이 심장을 찔렀다.
참을 수 없는 아픔과 함께 숨이 턱 막혔다.
나는 몸을 버둥거리며 경악과 고통에 찬 시선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왜? 대체 왜?
왜 나를 찌르는 거야?
〈미안해, 미안해, 아이론….〉
라카루스는 내가 칼을 뽑지 못하도록 한 손으로 내 양손을 움켜쥐었다.
배신감에 눈물이 흘렀다.
그럴 리 없어. 라카루스가 나를 배신할 리 없어.
내 손으로… 내가 사랑하는 코레아리아를 망가뜨렸을 리 없어.
더 이상 몸부림을 칠 수도 없는 몸이 축 늘어졌다.
라카루스는 그제야 손을 놓고 내 어깨를 끌어안았다.
그러면서도 내 입은 끝까지 막은 채였다.
〈힘의 핵을 합치는 방법은 없어, 아이론. 전쟁을 승리로 이끌려면 어쩔 수 없었어. 날 용서하지 마.〉
귓가에 라카루스의 고백이 들렸다.
〈…….〉
하지만 나도 그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모두의 언어를 뺏었다고 했지만… 사실 나를 제외하고 단 한 명의 언어를 빼앗지 않았던 것.
어째서인지 그렇게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신의 뜻을 거스르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이었을까.
‘그리고… 언어는 입으로만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저물어 가는 의식을 부여잡고, 나는 손을 움직여 수화로 주문을 썼다.
모두에게 언어를 돌려주고 싶었지만 그럴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 영영 깨지지 않도록 지키는 것뿐.
〈「히아스, 부탁이야. 이것이 부서지지 않도록 지켜 줘.」〉
나는 마지막 힘을 짜내 언어의 결정을 히아스에게로 보냈다.
그는 내가 언어를 빼앗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고, 어쩌면 라카루스보다도 더 믿을 수 있는 친구였으니까.
〈아이론! 뭐 하는 거야, 지금… 언어를 돌려준 거야?〉
언어의 결정이 사라진 제단을 일그러진 얼굴로 바라본 라카루스가 나를 다그쳤다.
〈입을 막는 것만으로는 안 되는 건가….〉
그가 내 심장에 꽂힌 칼을 뽑아 들었다.
〈흡…!〉
죽어가는 와중에도 칼날이 몸속을 헤집고 나오는 감각이 선연했다.
라카루스는 칼로 내 혀를 잘라 냈다.
우스운 일이었다. 구태여 그것을 자르지 않아도 나는 더 이상 말할 힘이 없는데.
쾅쾅,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섰다.
미엘교의 성기사들이었다.
〈코레아리아인들은?〉
〈모두 말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계획대로입니다.〉
계획대로라니. 실소가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던 거구나.
〈하긴, 돌려줄 만한 힘은 남아 있지 않겠지. 아이론, 내게 언어를 빼앗길 바에야 없애 버린 거야…?〉
라카루스가 안도를 머금은 목소리로 내게 속삭이듯 물었다.
의식이 점차 흐려졌다.
이제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멈춰 가는 심장을 부여잡고 나는 몇 번이고 다짐했다.
‘다시 태어난다면 절대 너의 말을 믿지 않을 거야. 절대, 미엘 신의 힘을 가진 누구도 나를 맘대로 할 수 없어. 내 모든 걸 바쳐서 맹세해.’
수천 년이 지나도 변치 않을, 저주에 가까운 맹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