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121
@121. 가혹한 선택(1)
나는 번뜩 눈을 떴다. 아직도 심장을 찌른 칼의 감각이 선명해서 몸을 떨며 내 모습을 살폈다.
지금의 나는 아이론이 아닌, 시샤였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 눈 앞에 펼쳐진 것은, 끔찍한 현장이었다.
“아… 아… 으….”
수많은 사람들이 뒤엉켜 서로를 때리고, 할퀴고, 죽이고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내 앞에 있는 이들이 모두 언어를 잃은 코레아리아인들이라는 걸.
서로를 잇고 소통하게 하던 약속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 결과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처참했다. 그야말로 카오스, 혼돈의 상태였다.
마법을 제어하지 못하는 이들이 폭주했고, 이에 다친 이들은 다시 공격으로 받아쳤다.
그들은 적국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찢고 할퀴고 있었다.
「그만… 그만 해요!」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하지만 내 목소리는 그들에게 들리지 않는 듯했다.
「죽어도 못 보내!」
움직임을 봉쇄하는 주문을 썼음에도 누구도 멈추지 않았다.
나는 직접 그들을 말리기 위해 달려갔다. 하지만….
“어…?”
내 몸은 내가 붙잡으려던 사람을 그대로 통과했다. 마치 내 몸이 그곳에 없는 형체인 것처럼, 사람들이 나를 지나쳐 갔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는 이미 수천 년 전에 벌어진 일이고, 나는 이것을 돌이킬 수도, 바꿀 수도 없이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없다는 걸.
“…….”
그리고, 어쩌면 이 모습을 내게 보여 준 것은.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옆을 보았다.
조금 전까지 ‘나’라고 생각했던 사람, 아이론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당신의 환생이군요.」
내 말에 그녀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야 모든 것이 이해가 된다.
‘오직 나만이 코레아리아어를 가르칠 수 있었던 건…. 내가 아이론의 환생이었기 때문에.’
세상에 ‘코레아리아어’라는 것이 사라진 그때부터, 개인에게 그 언어를 부여하는 것은 언어술사인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된 거겠지.
불현듯 처음 이곳에서 시샤로 눈을 뜨기 전 들렸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모든 게 당신에게 달렸어요. 부탁해요.〉
나는 분명, 누군가의 의지에 의해 이 세상으로 왔다.
「아이론, 당신이 저를 여기로 데려온 건가요?」
하지만 아이론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한 일들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어요. 하지만 당신을 데려온 건 내가 아닙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으나, 깊이를 알 수 없는 회한이 담겨 있었다.
「그럼 대체 누가….」
「어쩌면, 신의 뜻일지도 모르겠군요.」
「신이라면….」
꿈에서 아이론의 기억을 들여다보며 깨달은 것이 있었다.
아이론이 말하는 신은, 미엘 신이 아니었다.
「네. 당신이 ‘마법’이라 부르는 그것은, 비타교의 신성력입니다. 코레아리아의 주 종교죠. 비타 신의 사랑을 받는 모든 이들은 이 힘을 쓸 수 있었습니다.」
꿈속… 아니, 5천 년 전의 이곳.
미엘교와 비타교는 종교 전쟁 중이었다.
그리고 코레아리아를 멸망시킨, 미엘교를 주교로 삼는 그 비겁한 나라는….
「카이론은 설마….」
「네, 당신이 살고 있는 나라, 키론의 전신입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눈앞에서 마주한 진실을 믿기가 어려웠다.
「미엘교에서는 비타 신의 아이들을 모두 악마로 몰아 죽였습니다. 미엘교를 대륙 유일의 종교로 만들기 위해서였죠. 그리고 시간이 흘러 상황이 정돈된 후에는… 과거를 지우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더군요.」
가슴 속에서 울분인지 화인지 모를 것이 치밀어 올랐다.
역사가 아무리 승자의 기록이라 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
「당신은… 영혼으로 남아 이곳을 지켜본 건가요?」
「아뇨. 나는 그저 회한의 조각입니다. 내 영혼은 닳고 닳아 이 세계의 밖으로 흘러나갔으나, 나는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어 이곳에 고여 있지요.」
아이론의 눈은 공허했다. 그녀의 담담한 목소리는 손이 닿으면 부서질 것만 같았다.
나는 그녀를 향해 물었다.
「…신이 나를 부르고 당신과 만나게 했다면, 그 이유가 뭘까요?」
「글쎄요. 아마도 내가 깨달은 진실을 전하기 위해서겠죠.」
아이론이 눈이 처음으로 슬프게 물들었다.
그녀가 나를 곧게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당신은… 행복해져서는 안 됩니다. 행복해지려는 욕심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났으니까.」
다음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몇 가지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미엘교에서 악마로 몬 사람들을 죽이는 것.
그들의 생명력을 흡수해 영생을 이루리라 말하는 것.
마법사들을 더욱 몰아내기 위해 다양한 사냥법을 제안하는 것.
그것을 보는 것이 괴로워서, 나는 온몸을 감싸고 웅크렸다.
* * *
“……!”
갑작스레 위드가 움직임을 멈췄다. 그가 눈을 감은 채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잡으려는 듯 식은땀을 흘렸다.
그러나 이내, 눈을 뜨고 섬뜩한 시선을 들어 올렸다.
“…귀하신 분과의 연결이 끊겼습니다. 더는 조종할 수 없습니다.”
“뭐라고?”
드하이센이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게 무슨 말이야? 성석을 뱉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는 양 역정을 내는 드하이센에게, 위드가 고개를 숙였다.
“그런 것 같습니다.”
“아직 그분께 보여드리지도 못했는데….”
드하이센이 입을 다물지도 못하고 다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위드가 화를 억누르며 시선을 옮겼다. 그의 눈동자가 르디엘을 향했다.
“르디엘, 네 짓이지.”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네요.”
“갑작스레 의식에 참가하겠다고 한 이유가 이것이었구나.”
“더 완벽한 의식을 위해 힘을 보탰을 뿐인걸요.”
르디엘이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하지만 아무리 발뺌을 한들, 위드는 그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너는 그분의 힘을 받은 아이이니 죽일 수는 없어. 하지만 네 동생은 뭣도 아니지.”
르디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의 차가운 시선이 위드를 향했다.
“르디엘, 동생을 지키고 싶으면 귀하신 분을 찾아서 데려와.”
“…그럴 수는 없습니다.”
세니엘은 르디엘이 직접 결계를 치고 그 안에 숨겨 두었다.
자잘한 성물들이 수없이 거래되는 시장의 근처, 신성력의 추적을 막기에는 더없이 좋은 장소에.
‘세니엘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은… 세니엘에게 세뇌를 거신 ‘그분’ 뿐이야.’
그분이 잠들어 계신 지금, 세니엘을 해칠 수 있는 이는 없다.
하지만 왠지 모를 위기감에, 르디엘의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오빠.”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르디엘이 뒤돌아본 곳에, 그의 동생이 서 있었다.
“왜….”
“분명 숨겨 두었는데 왜 여기에 있냐고?”
위드가 느긋한 미소를 띠고 르디엘의 생각을 추측했다.
“그야, 니니안 켈린이 직접, 본인의 의지로 밖으로 나왔기 때문이지.”
“……!”
“잊었나 보구나. 이 아이는, 마법이라는 악마의 힘을 신성력의 아래에서 바른 길로 이끌어야 할 의무가 있잖니.”
르디엘이 세게 주먹을 쥐었다.
위드가 르디엘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네가 돌아올 때까지 저 아이는 정화 신전에 유폐될 것이다.”
“…시샤 아가씨가 어디에 있는지 저는 모릅니다.”
르디엘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러나 위드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명색이 호위를 가장하고 왔으면서… 당연히 추적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두었겠지.”
그의 말대로였다. 시샤가 어디에 있든 찾을 수 있도록, 그녀의 옷자락에 작은 깃털 하나를 붙여 두었다.
“…….”
“기억해. ‘그분’이 깨어나시기 전에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지 않으면… 오라비를 위해 이곳에 걸어 들어온 네 동생은 괴롭게 죽어 갈 것이라는 걸.”
* * *
이아페는 제 품에서 쓰러진 시샤를 걱정 어린 시선으로 살폈다.
다행히도 긴장이 풀려 정신을 잃은 것에 불과한 것 같았다. 그녀의 팔에 난 상처를 빨리 치유해 주고 싶었지만, 이아페는 아직 주문을 쓸 수 없는 상태였다.
그때 불현듯 느껴지는 인기척에 그는 고개를 들었다.
“아직 안 죽었네, 이아페.”
그들의 앞에 선 르디엘이 시선을 내려 건조하게 이아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날 속였군.”
이아페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르디엘이 씁쓸하게 답했다.
“그래. 거짓말이었어. 신성력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거. 미세하게 남은 기척이었지만… 내게는 느껴졌지.”
“역시 이번에도 네 배신으로 나는….”
이아페의 말에 르디엘이 슬프게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때는 네가 나를 버린 거지. 내가 그 집에서 내쫓기는 걸 보고만 있었잖아.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처음부터 네 편이었던 적이 없었고.”
“르디엘, 너는 시샤 님을 진심으로 걱정하지 않는 건가?”
“걱정해.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어. 내가 가지 않으면, 그 아이가 죽을지도 모르거든.”
르디엘이 이아페를 향해 걸어왔다.
이아페가 시샤를 안은 팔에 힘을 줬다.
그리고 다른 팔을 휘둘러 르디엘의 앞에 불을 쏘았다.
그러나 투명한 빛의 장막이 르디엘을 감쌌다. 어떠한 타격도 받지 않은 르디엘은, 화려한 불길 속에서도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제길….”
이아페가 낮게 욕을 읊조렸다. 너무 지친 상태라 마력을 제대로 컨트롤할 수가 없었다.
‘폭주를 각오하고 쓰는 수밖에 없나.’
이아페가 르디엘에게 강한 번개들을 비처럼 내리꽂으면서, 한편에서는 또 다른 거대한 번개를 만들어 서서히 그 몸집을 불렸다.
그럼에도 동요하지 않고 르디엘은 가까이 다가왔다.
“본래 신전의 교리에서, 신성력을 사람의 정신에 간섭하는 데에 쓰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어.”
그가 저를 노려보는 이아페를 향해 중얼거렸다. 오직 이아페만 들을 수 있는 크기의 말소리였다.
“그러니 나는 구태여 너를 기절시키지 않을 거야.”
“그게 무슨….”
이아페가 인상을 찌푸렸다. 르디엘이 이아페를 향해 손을 뻗으며 크게 말했다.
“너는 지금 죽는 거야. 잘 가, 이아페.”
르디엘이 이아페에게로 뻗은 주먹을 확 쥐었다. 이와 동시에 이아페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허공에서 번쩍이는 번개가 흩어져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