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122
@122. 가혹한 선택(2)
“이아페 카일라인은?”
근처에서 들려오는 조용한 말소리에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이아페? 그러고 보니 분명 이아페와 함께 있었는데….
“그자는 르디엘이 죽였습니다.”
뭐? 나는 번쩍 눈을 떴다.
“그래. 혹시 몰라 너희도 뒤를 밟게 했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나. 르디엘은 들어오라 하고, 너희는 어서 일로제 카일라인을 찾아.”
“네.”
“읍!”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입술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몸도 움직일 수 없었다.
“오, 귀하신 분. 깨어나셨습니까.”
내게 한 사제가 반색하며 다가왔다.
이곳은 중앙 신전에서 내가 머물던 방.
그리고 내 앞의 이자는 분명… 두 번째 대사제이자 검은 로브들의 핵심, 위드.
“정화 의식을 치르던 중 쓰러지셨습니다. 안 좋은 꿈이라도 꾸셨습니까?”
꿈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기억나.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이 모두.’
그때 나를 데려간 이들이 저들이라는 것도.
내가 「자멸」이라는 주문을 쓰던 순간, 나도 모르게 그 주문을 쓰며 괴로워했던 일도.
그 페이지를 찢어 버렸지만 다시 홀린 듯 그 주문을 썼던 것도.
나를 조종할 성석을 삼키고, 내 의지라고는 없이 머릿속 목소리에 따라 이아페를 공격한 것도….
모두가 이들의 짓이었어. 모두가.
분노로 전신이 떨렸다. 몸 옆으로 마력이 새어 나와 거센 물보라를 만들었다.
그것은 근처에 선 몇 명의 사제를 쓰러뜨렸으나, 위드에게 영향을 주진 못했다.
이쪽으로 걸어온 위드가 내게로 몸을 기울여 속삭였다.
“귀하신 분. 다시 저희와 힘을 합치시지요. ‘그분’이 많이 기대하고 계십니다.”
“킁!”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에 나는 그에게 콧김을 세게 뱉었다. 귀하신 분이라면서 이렇게 묶어 두냐?
위드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몸을 일으킨 그가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
“몸이 조금 회복되시면, 의식이 다시 진행될 겁니다. 얌전히 계시지 않으면 이렇게 편의를 봐드릴 수가 없습니다.”
아무래도 위드가 말하는 편의를 봐주고 있다는 소리는, 여기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 가둬 두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기라는 뜻 같았다.
“잘 감시해.”
위드가 나가고, 사제들이 문을 닫았다.
나는 내 몸을 포박하고 있는 힘을 떨쳐 내려 노력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흐엉… 흑… 흑….”
나는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서러운 울음소리에 3명의 사제가 안절부절못하고 나를 살폈다.
나는 시선을 내려 내 손을 쿡쿡 가리켰다. 그들이 자기들끼리 쑥덕댔다.
“많이 불편하신가?”
“그렇겠지.”
“손만… 풀어 드려야 하나?”
“안 돼. 아까 콧김 내뿜으시는 것 못 봤어? 손을 풀어 드렸다가 할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다 들리는데 뭘 저리 은밀히 얘기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 눈물 작전도 안 되나.’
이럴 줄 알았으면 콧김 뿜지 말걸. 지금은 뭘 해도 안 될 듯했다.
‘주문만 쓸 수 있으면 이 정도 푸는 건 껌인데.’
우선 얌전히 있다가 경계가 허술해질 때를 노려야겠다.
‘이자들은 내가 수화를 쓸 수 있다는 것을 몰라.’
성석을 뱉고 전생의 기억을 찾으면서 수화로 주문을 쓰는 방법까지 모조리 기억났다.
그러니까 저들이 방심해서 내 손을 풀어 줄 때, 적어도 한 번은 기회가 있다.
나는 울다가 진이 빠진 척 몸을 늘어뜨렸다.
‘…이아페는 무사할 거야, 분명.’
원작에서도 검은 로브들이 공격했지만 무사했잖아.
‘그리고… 르디엘이 그를 죽였을 리 없어.’
이건 추측이라기보다, 확신에 가까웠다.
괜찮아, 시샤. 괜찮아, 다 괜찮을 거야.
나는 입술 안쪽을 깨물며 눈을 감았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나는 잠자코 잠이 든 척을 했다.
그러자 예상대로 사제들의 경계가 허술해졌다.
누군가는 소설책에 푹 빠져 낄낄대고 있었고, 누군가는 바람을 쐬러 나갔다. 남은 1명의 사제는 졸고 있기까지 했다.
“으으….”
나는 졸고 있는 사제를 향해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냈다.
그런데 그때, 머리맡에서 쉿, 하는 소리가 들렸다.
‘젠장, 1명 더 있었어? 어디에 숨어있었던 거야?’
표정이 구겨지려는 것을 애써 참으며 나는 눈을 돌렸다.
그리고 그를 본 순간, 숨을 멈추고 눈만 크게 깜빡였다.
‘르디엘.’
르디엘은 나와 눈을 맞추지 않은 채 침대맡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작은 빛 구슬을 만들어 띄우며 작게 속삭였다.
“이것을 잡고 있는 동안은, 서로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아가씨가 제 신성력을 받아들인다면요.”
“…….”
잠시 고민하던 나는 빛 구슬을 잡았다.
알고 있었으니까.
어둠 속에서 나를 성석이 있는 곳으로 인도한 하얀 실.
내가 세뇌에서 깨어날 수 있게 한 그 실은 르디엘이 만든 것이라는 걸. 그리고….
– 이아페는… 죽은 게 아니죠?
– …….
르디엘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말을 덧붙였다.
– 르디엘이 나를 불렀잖아요, 여길 보라고. 그런 사람이… 이아페를 해쳤을 리 없어요.
그때 들려온 목소리는 분명, 르디엘의 것이었다.
그제야 르디엘이 나와 눈을 맞췄다. 그는 내가 자신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것에 놀란 눈치였다.
– 목소리 구분하는 게 제 특기예요.
내 말에 르디엘이 옅게 웃음을 흘렸다.
– 네. 살아 있습니다.
역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당연히 죽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 다른 사제들에게 이르시면 안 돼요.
울음을 꾹 참고 있는데, 르디엘이 내게 농담을 건넸다. 그의 심각한 표정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르디엘이 고개를 푹 숙이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 …아가씨께는 변명의 여지가 없어요. 저는 의도적으로 아가씨께 접근했으니까요. 아르비나 기사단에 들어간 것도, 아가씨의 취향에 맞는 음악극을 보고 음식을 찾기 시작한 것도… 계획적이었어요.
라카루스에게 배신당한 아이론의 기억을 보고, 그다음은 르디엘이라니.
기분이 씁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누군가에 대한 신뢰를 온전히 버릴 수가 없었다.
르디엘이 내게 보여 줬던 그 모든 게 거짓이었을까.
아니, 그렇지 않다. 분명 진심이 있었을 터다.
– 음악극, 나보다 많이 봤잖아요. 취향에 안 맞는 걸 그렇게 봤다고요?
– …취향에 안 맞는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 민트초코는요? 사실은 싫어해요?
– 없어서 못 먹죠…. 1일 1민트초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사랑해요.
– 저를 걱정했다고 말한 것도 거짓말이에요?
– 아뇨, 그럴 리가 없…!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황급히 즉답하던 르디엘이 말끝을 흐렸다.
나는 르디엘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 말해 줘요, 르디엘. 무엇이 당신을 움직이게 하는 거예요?
– 그건….
– 니니안과 당신, 관계가 있는 거죠?
르디엘의 비취색 눈동자가 흔들렸다.
동생이 있다고 했던 르디엘의 말. 왠지 닮은 듯한 두 사람의 외모.
‘그리고… 두 사람 모두 검은 로브들과 연관되어 있어.’
내 추측이 비약인 것 같진 않았다.
이내 르디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 니니안, 아니… 세니엘 체르실로프. 제 친동생입니다.
나는 눈을 크게 뜬 채 르디엘을 바라봤다. 설마 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들으니 놀라운 게 사실이네.
– …세니엘이 붙잡혀 있습니다. 당신을 데려오지 않으면 그 아이를 죽인다고 했어요.
– 함께 구하면 되잖아요. 제가 니니안을 지킬게요.
내 말에 르디엘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 악마의 힘인 마법, 그것을 이끄는 축이자 핵인 시샤 아르비나를 감시하고, 마법이 악한 일을 하지 못하도록 교화하라. 그것이 연구단에 보내지며 받은 세니엘의 사명입니다.
– 악마의 힘이라니… 아니에요. 마법은….
– 네,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요. 세니엘만 봐도 분명해요. 수천 년간 알려져 온 것과 달리 마법이 함부로 해악을 가하는 힘은 아니죠. 하지만 세니엘은 그렇다고 굳게 믿고 살아왔어요.
– 그럼 진실을 알려 줘야죠. 지금이라도 이야기하면 돼요.
르디엘의 표정이 괴로운 것을 떠올리는 듯 구겨졌다. 그가 말을 이었다.
– 세니엘에게는 강력한 세뇌가 걸려 있습니다.
– 세뇌요?
– 사명을 거부하고 마법에 죄가 없다 믿게 된다면, 그렇게 당신의 편으로 돌아선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는 세뇌가요.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세뇌라고?
문득 니니안이 종종 심장을 부여잡고 아파하던 모습들이 떠올랐다.
이제서야 알 수 있었다.
마법이 악마의 힘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었을 때. 이 힘이 신성력과 동등한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연구단원들이 정말로 마법에 대한 세상의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을 때.
니니안은 그때마다 아파했던 것이다.
자신이 받은 세뇌와, 연구단 활동을 하며 얻는 기쁨과 감격이 충돌되어서.
– 당신을 무사히 우리의 사람으로 만들면 세뇌를 풀어 주겠다 하셨어요. 그래서… 당신에게 접근했던 겁니다.
르디엘에게는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대체 검은 로브는 뭐 하는 집단인지, 목적이 무엇인지, 르디엘은 언제부터 그들에게 가담한 것인지….
하지만 그 전에, 우선 이것부터.
– 르디엘, 그 ‘악마의 힘’이라는 것… 신전에서 만든 말이라는 걸 알고 있나요?
르디엘은 금시초문이라는 눈치였다.
– 당신이 알아야 할 진실이 있어요. 내 꿈을 봐요, 르디엘.
내 예상이 맞는다면, 지금의 내게는 정신을 조종하는 신성력이 통하지 않는 게 분명했다.
그 이유는 분명, 라카루스에게 배신당한 아이론이 죽어 가며 했던 처절한 다짐 때문이겠지.
‘다만… 내가 허락한다면 가능해.’
그러니까 내게 성석을 억지로 먹인 게 아니라, 스스로 먹어야 한다느니 한 거야.
– 제가 아가씨의 정신에 침투했다가, 조종이라도 하면 어쩌시려고요.
– 안 그럴 거잖아요.
르디엘이 복잡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어떻게 자신을 믿을 수 있냐는 듯, 눈동자가 처연하게 떨렸다.
‘하지만 이건 플래그야.’
소설 속 인물이 ‘…하면 어쩌시려고요.’라고 자조하듯 말하면….
그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진짜로 그렇게 할 사람들은 옳다구나 하고 시행부터 하지, 저렇게 지적을 해 주지 않잖아.
– 빨리 봐요. 다 보면 또 할 말 있으니까.
르디엘이 머뭇거리며 내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머릿속을 읽히는 사람은 어떻게 하고 있어야 하는지를 몰라, 나는 슬며시 눈을 감았다.
– 눈은 안 감으셔도 돼요.
– 아, 예….
다시 눈을 떴는데, 르디엘은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그의 얼굴을 지켜보았다.
담담히 집중하던 그의 얼굴이 한순간 일그러졌다.
그의 숨이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눈을 뜬 르디엘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 어… 어떻게 이런 일이….
– 과거를 되풀이해서는 안 돼요, 르디엘. 그리고….
지금 무엇보다 먼저 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
– 나 담 걸릴 것 같아요. 포박 좀 풀어 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