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124
@124. 이아페의 장례식(2)
부탁이라고? 펠트너가 미간을 좁힌 채 지그시 이아페를 바라보았다.
“말해 보거라.”
펠트너의 목소리에 무게감이 실렸다. 이아페가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중앙 신전의 내신전으로 들여보내 주십시오.”
일순 펠트너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이아페의 목적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제 아들이 시샤에게 마음을 품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기에.
‘아마도… 내신전 안에 위치한 정화 신전에 가려는 것이겠지.’
하지만 아무리 그녀가 걱정된다 한들, 치기 어린 생각으로 밀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곳은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나 또한 공작위를 받았을 때 한 번 출입해 본 게 다인 곳이지. 아무 이유 없이 입장할 수는….”
“제 장례식을 치러 주십시오.”
펠트너가 잘못 들었다는 듯 표정을 구겼다. 죽었던 아들이 방금 살아 돌아왔는데 장례를 치르라고?
하지만 그의 표정에 아랑곳 않고 이아페가 말을 이었다.
“압니다. 그곳에서 외부인의 장례를 치른 역사는 없단 거.”
“아는 놈이 그러느냐.”
“그러니 신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저의 혼을 위로하지 않으면 앞으로 신전을 지지하지 않겠다 억지라도 부려 주십시오.”
“…….”
“카일라인이 지금까지 쌓아 온 것을 생각하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이아페의 눈은 너무도 결연하여 설득이 통할 것 같지 않았다. 펠트너는 한숨을 내쉬었다.
“…뒤따를 후폭풍은 어찌 감당하려 하느냐. 평생 신전을 속이고 죽은 채 살아갈 순 없어. 지금만 해도 멀쩡하던 놈이 갑자기 죽었다고 하면 믿겠느냐?”
“많은 사람이, 갑자기 죽습니다.”
펠트너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로엔, 그의 아내를 떠올리며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 이미 신전에서는 제가 죽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신전에서 저를 죽이기 위해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저를 죽이는 데 성공했다 믿고 있습니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
펠트너의 목소리가 음산하게 가라앉았다.
그는 누구 하나라도 당장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신전에서 이아페를 해치려 했다고?
이아페는 마치 남의 일을 이야기하듯 말했지만,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 것 아닌가.
“마법이 활개 치는 것이 못마땅했던 모양입니다. 시샤 단장님이 잘못된 주문을 쓴 것도 신전이 정신을 조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장례식을 구실로 그곳에 갈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조금이라도 빨리.”
“…….”
펠트너가 입을 꾹 다문 채 이아페를 바라보았다.
분노가 치밀어 올라 신전에 쳐들어가고 싶은 마음과는 별개로, 제 아들의 청을 수락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아페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문제를 정식으로 수면 위까지 끌어내는 것이 낫다.
적이 득실거리는 소굴로 죽음을 위장한 채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아페를 죽이려 한 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그렇다면 발각되었을 때의 위험성은 얼마나 크겠는가.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도, 감정적으로 보았을 때도 절대 허락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부탁드립니다… 아버지.”
생전 부탁이라는 것을 할 줄 모르던 아이가 부탁을 하고 있었다.
아마 그때 이후로 처음인가. 르디엘 체르실로프, 이아페가 마법사라는 걸 고발하려 했던 그놈이 이 집을 나갈 때 말이다.
이아페의 눈은 너무도 절박했다.
제 아들의 모습에서, 과거의 자신이 겹쳐 보였다.
아내를 구하지 못한 이래 펠트너는 그 자리에 있지 않았던 자신을 원망했고, 그 순간을 돌이켜 계속해서 후회했다.
하지만 지금 이아페는… 선택할 수 있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이아페의 간절하면서도 두려움 서린 표정이 낯설었다. 이아페가 제 앞에서 투명하게 감정을 내비친 것이 너무도 오랜만이라, 이 아이에게 있어서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순간인지 알 수 있었다.
지금껏 아비로서 아들을 이해해 준 순간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결국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일어나라. 지금 중앙 신전으로 가겠다.”
* * *
중앙 신전의 분위기가 평소보다 더 어수선했다. 몇몇 사제들의 분주한 발걸음이 이어졌고, 곳곳에서 수런대는 소리가 들렸다.
“수백 년간 신전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준 카일라인입니다. 그간 카일라인이 해 온 것이 있는데, 딱 잘라 안 된다 하시진 않겠지요.”
교황 드하이센은 거절하면 주먹을 날릴 것 같은 눈빛의 카일라인 공작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시선을 내려 관 안에 고이 잠든 이를 바라보았다.
‘숨을 쉬지 않는군.’
그러니까… 카일라인 둘째 공자, 이아페 카일라인이 죽었다.
들짐승에게 물려 비명횡사를 했다나. 사실은 드하이센의 지시에 따라 시샤가, 그리고 르디엘이 죽인 것이었으나 공작은 그걸 모를 것이다.
그러니 제 아들의 장례는 반드시 내신전에 위치한 기도원에서 해야겠다고 쳐들어온 것이다. 마지막이라도 신의 옆에서 보내 주고 싶다고, 카일라인인데 그 정도도 못 해 주냐며 역정을 내면서.
‘뭐… 좀 안됐군.’
얄궂은 동정심이 일었다. 곧 첫째 공자도 죽일 예정이니…. 드하이센의 입맛대로 카일라인을 주무를 미래를 앞두고, 장례 정도는 원하는 곳에서 치러 줄 수 있지 않나 싶었다.
‘게다가 죽은 마법사의 가는 길을 이끄는 곳이 신전이라.’
마법사라도 죽음 앞에서는 결국 신전에 의탁할 수밖에 없다고 해석할 수 있는 선례가 생긴다. 그건 그거대로 괜찮은 것 같았다.
결국 드하이센은 안타깝다는 듯 눈썹을 내리며 펠트너의 손을 잡았다.
“유례가 없는 일이나… 공작님의 얼굴을 보아 승인하겠습니다. 관을 포함해 소수의 인원만 내신전으로 들이고, 장례식 자체는 외신전에서 진행하는 것으로 하시지요.”
“감사합니다, 성하.”
펠트너가 고개를 숙였다. 그것을 보며 드하이센은 흡족스러움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 * *
내신전 안에 위치한 기도원.
공작의 뒤를 따라 수행원 세 명이 관을 들고 들어왔다.
“이제 혼을 보낼 수 있도록 의식을 거행하겠습니다.”
함께 온 사제들이 관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펠트너가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작별할 시간이 필요하네.”
“아… 예. 지금 하시지요.”
“잠시 혼자 있고 싶어. 다 나가 주게.”
사제들보다 족히 한 뼘은 더 큰 펠트너가 한 발짝 다가오자 사제들이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그건 어렵습니다만….”
“안 된다고?”
쭈뼛대며 말하는 사제에게 펠트너가 눈을 부라리며 한 발 더 다가섰다.
“누구의 방해도 없이 내 아들과 작별 인사를 하겠다는데. 그게 허락이 필요한 일인가?”
“어… 저….”
“내가 눈물이 좀 많아. 그런데 지금까지 내 눈물을 봤다는 이가 아무도 없지. 그 이유가 무엇인 것 같나?”
펠트너의 눈에 섬뜩한 안광이 스쳤다.
사제들은 기세에 눌려 자리에 주저앉을 것 같은 것을 겨우 참았다. 그중 한 명은 딸꾹질을 시작했다. 공작의 말은 협박처럼 들렸으나 질문의 형식을 띠고 있어 뭐라 불만을 말하기도 어려웠다.
“그, 그럼 잠시만입니다…. 3분, 그 정도만요….”
가장 용기 있는 사제가 의연하게 말했지만, 목소리가 떨렸다.
“자, 다들 나오시지요….”
“걔들은 내 그림자야.”
사제가 수행원들에게 손짓하자 펠트너가 얼굴을 확 구겼다.
혼자 있고 싶다고 했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 공작은 아들을 잃은 상태고, 성격이 매우 나쁘고, 아무나 죽일 수 있을 것 같다.
더 이상 심기를 거스르면 안 될 것 같았기에, 결국 사제들은 도망치듯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사제들이 나가자마자 수행원들이 주변을 살피곤 주문을 외었다.
「하루 종일 우뚝 서 있는 성난 허수아비 아저씨.」
그러자 그들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나타났다.
수행원 1, 그러니까 라온이 자신의 꼭두각시를 보고 흠칫 놀라며 말했다.
“이런 모습이었군요. 제가 봐도 못 알아보겠어요.”
수행원으로 위장하기 위해 수염을 붙인 데다, 주름과 기미까지 그려 넣고 왔더니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꾸물거릴 시간 없어.”
관 안에서 이아페가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공작저에 갔을 때처럼 보호 마법으로 몸의 온기와 숨결, 심장 박동이 외부에 느껴지지 않게 해 둔 상태였다.
“자, 어서 이거 입어요.”
셀라임이 황급히 관 안에 놓여 있던 사제복들을 꺼냈다. 내신전에 들어올 때는 감시가 삼엄했으나, 오히려 들어온 지금은 등불 아래가 어두운 것처럼 경계가 풀릴 터였다.
이아페와 단원들은 급히 사제복으로 갈아입고, 관 안에 이아페의 꼭두각시를 만들어 두었다.
그리고 순간 이동을 위해 한데 모였다. 순간 이동은 그나마 성공 빈도가 높은 셀라임이 맡기로 했다. 가까이에 이미 봐 둔 인적이 드문 곳이 있어 그곳으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괜, 괜찮겠지?”
“카실의 머리 하나 정도는 잘릴지도 모르겠어요.”
“왜 그래….”
카실이 불안해하는 목소리로 단원들을 꼬옥 안았다.
그리고 순간 이동을 하기 전.
“조심하거라.”
단원들을 지켜보던 펠트너가 조용히 말했다. 이아페가 아버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서 뵙겠습니다.”
펠트너와 이아페의 시선이 올곧게 마주했다.
짧은 순간이었으나, 서로의 마음을 전하기에는 충분했다.
「순간 이동.」
약간의 어지러움 후에 이아페는 눈을 떴다. 다행히 네 명 모두 사지 멀쩡한 상태로 이동에 성공했다.
“다, 다행이다….”
카실이 몸 구석구석을 살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시샤 님을 찾으면 연락 구슬로 전해.”
“다들 들키지 않게 조심해요.”
단원들이 각자가 맡은 쪽으로 흩어졌다.
이아페는 다급히 걸음을 옮겼다.
내신전의 구조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기에, 정화 신전의 위치 또한 알 수 없었다. 게다가 막상 들어와 보니 예상보다 훨씬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어 건물을 하나하나 뒤져서는 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때마침 이아페의 앞으로 한 사제가 걸어오고 있었다. 이아페가 사근사근한 미소를 머금은 채 그에게 물었다.
“정화 신전에 심부름을 가는 길입니다. 길을 잃어서 그러는데… 어디인지 아십니까?”
하지만 이아페의 물음에 사제가 이상하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정화 신전…? 그곳은 일반적으로 사제들에게 공개하지 않습니다. 정말 심부름을 가시는 것이 맞습니까?”
사제가 이아페를 위아래로 훑었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 어디 소속이십니까?”
아무래도 좋게 말이 통할 것 같지는 않았다. 주문 없이 투박하게 마법을 썼다간 시선이 집중될 텐데.
이아페는 어떻게 하면 상대를 한 번에 기절시킬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리고 행동을 취하려던 찰나.
“그래, 내가 아는 아이야.”
누군가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그 사람을 보며 사제가 황급히 머리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