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125
@125. 괜찮을 리가 없었다
“미헤니아 대사제님이 아시는 분이셨군요. 실례를 범했습니다!”
“그래. 가 보게.”
옥빛 깃털이 그려진 대사제복을 입은 미헤니아의 말에, 사제가 물러났다.
이아페는 정성껏 꾸며 낸 얌전한 표정으로 미헤니아를 바라보았다. 다른 이와 착각한 것인가? 아니면… 곤란해 보이는 저를 보고 단순한 호의를 베푼 것인가?
하지만 미헤니아의 의도는 그중 어느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신성력도 없는 이가 내신전을 활보하는 데다… 정화 신전을 찾는다니.”
얼핏 느끼기에는 신성력을 가진 것처럼 보이기 위해, 단원들은 신성력으로 만들어진 성물 하나씩을 가지고 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것으로 대사제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이것이 사람에게서 나오는 신성력인지, 성물에서 나오는 것인지 정도는 파악할 수 있을 터였다.
뭐라고 둘러대야 할까. 사실대로 시샤를 되찾으러 왔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데 미헤니아는 더 묻지 않고 몸을 돌렸다.
“따라오게, 카일라인 공자.”
“……!”
그녀는 심지어 제 앞에 있는 이가 이아페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죽고 영혼이 되어서까지 왔는데, 정화 신전 구경은 해야지.”
앞서 걷는 미헤니아가 피식 웃었다.
무슨 속셈이지? 이아페는 의심의 눈초리로 미헤니아를 바라보다, 그녀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어쩐지 그녀의 시선에는 침입자를 어찌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리고 설령 이것이 함정이라 할지라도, 이아페는 빠질 수밖에 없었다.
미헤니아는 이아페가 따라오는 것을 확인하지도 않고 성큼성큼 걸었다.
광활한 정원을 돌아 나오는 커다란 건물. 이를 지탱하는 열세 번째 기둥 뒤에 위치한 좁은 통로. 그곳에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자, 조금 떨어진 곳에 푸른빛 건물이 보였다.
“저기야. 난 여기까지만 동행하도록 하지. 어서 가 봐.”
할 일을 완수했다는 듯 돌아가려는 미헤니아에게 이아페가 물음을 던졌다.
“왜 도와주시는 겁니까?”
미헤니아는 픽 웃으며 답했다.
“지금 돌아가는 꼴이 마음에 안 들어서 말야.”
미헤니아가 미련 없이 뒤를 돌리고는 걸음을 옮겨 사라졌다. 이아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정화 신전으로 걸음을 옮겼다.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지만… 저곳에, 시샤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아페는 연락 구슬을 꺼내 들었다. 주문 없이도 쓸 수 있는 마도구였기에, 지금의 상황을 단원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 정화 신전을 찾았어.
당장이라도 정화 신전으로 달려가고 싶었으나, 이아페는 지금 주문을 쓰지 못했다. 현시점에서 그보다 더 도움이 될 사람은 단원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이아페는 가만히, 그저 가만히 단원들을 기다렸다.
주문을 쓸 수 있었다면 소환 마법으로 시샤를 데려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불가능했다. 다른 이가 온다고 바로 부탁할 수도 없었다. 그 마법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시샤와 자신 정도밖에 없었으니까.
눈앞의 신전을 두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나도 무력하게 느껴졌다. 심장 박동이 느껴질 때마다 새로이 조바심을 느꼈다. 속이 타들어 가 미칠 것 같았다.
이아페는 주먹을 꾹 쥔 채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이아페 님!”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단원들이 도착했다. 그들은 빠르게 걸음을 옮겨 정화 신전 앞에 도착했다.
입구를 지키는 두 명의 사제가 그들을 막아섰다. 하지만 신전으로 들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어디서 온….”
「잘 자라, 우리 아가.」
라온의 목소리에 스르륵, 사제들이 쓰러졌다.
“효과 좋네요.”
사제들은 좋은 꿈을 꾸는 듯 미소까지 띠고 잠이 들었다. 단원들은 그런 사제들을 바른 자세로 세워서 고정하는 것까지 잊지 않았다. 외부에는 이상이 없는 것처럼 보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서서 자는 나무 같은 사제들을 내버려 두고, 단원들이 신전 안으로 들어섰다.
“윽, 왜 이렇게 넓대요?”
“둘로 나눠서 찾아보지.”
이아페와 라온, 카실과 셀라임이 둘로 찢어져서 정화 신전 내부에서 시샤를 찾기 시작했다. 간간이 신전 내부를 오가는 사제들을 피해 문이란 문은 모조리 열어 봤다.
그렇게 어느 복도를 지나던 중, 사제 몇 명과 정면에서 마주쳤다. 이아페와 라온은 자연스럽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숙인 후 지나갔다.
코너를 돌자 멀리 있는 작은 문으로 한 사제가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어, 그쪽 방향은 손님이 와 계시니 들어가지 말라고 명을 받지 않았습니까?”
아까의 사제들이 다시 돌아와 이아페와 라온을 불렀다. 아무래도 낯선 얼굴에 수상함을 느낀 모양이었다.
‘손님이 와 있다고?’
이아페는 직감했다. 저기 보이는 저 방에, 시샤가 있음을.
“들어가면 안 됩니다.”
그들 사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사제들이 성큼성큼 이쪽으로 걸어왔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대체 누구….”
「잘 자라, 우리 아가.」
라온이 잠에 빠지게 하는 주문을 썼다. 그중 한 명은 바로 픽 쓰러졌지만, 나머지 두 명은 신성력을 둘러 방어한 것인지 잠들지 않았다.
상황을 파악한 사제들이 신성력을 쓴 것과, 이아페가 마법을 쓴 것은 동시의 일이었다.
팟, 푸른 빛과 날카로운 전기가 허공에서 부딪쳐 부서졌다. 복도를 울리는 소리에 카실과 셀라임이 달려왔다. 그 뒤를 쫓는 몇 명의 사제들도.
「죽어도 못 보내!」
단원들이 사제들의 움직임을 봉쇄하고 방어하는 동안 이아페는 작은 문을 향해 달려갔다.
아까 다른 사제 한 명이 이리로 들어갔다. 밖에서 일어난 소란을 들키면 그녀가 무슨 일을 당할지 몰랐기에 이아페는 조급해졌다.
얼마나 무서울까. 적들에게 둘러싸여서 홀로 두려움을 견뎌 내고 있을 그녀를 생각하자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다.
벌컥, 문이 열렸다.
그 안에는 그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시샤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아페?”
방 안에 있는 사제 둘을 쓰러뜨리고, 나머지 한 명에게 재갈을 물리고 있었다.
* * *
르디엘에게 포박을 좀 풀어 달라 말한 후에, 나는 덧붙였다.
– 우선은 니니안을 안전한 곳으로 옮긴 후에 방법을 찾아 봐요.
하지만 르디엘이 슬프게 미간을 좁혔다.
– 그럴 수 없습니다. 니니안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거든요.
– 제가 니니안을 데려올 수 있어요. 소환 마법을 쓰면 돼요.
내 말에 르디엘의 눈빛이 흔들렸다. 정말이냐고 묻는 듯 떨리는 눈을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르디엘이 내게 손을 뻗었다. 신성력을 쓰는 듯 잠시 푸른 빛이 일더니, 몸에 전기가 통하듯 찌릿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
드디어 움직일 수 있었다.
조용히 빠져나가야지, 하고 생각하며 뻐근한 몸을 자리에서 일으켰다. 그때 문이 열리더니 산책을 갔던 사제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대로 나와 눈이 마주쳤다.
“뭐, 뭐야…!”
「잘 자라, 우리 아가.」
사제가 그 자리에 스륵, 쓰러져 잠이 들었다. 다행히 입도 잘 풀린 모양이다.
챙그랑, 그때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봤다. 신성력이 서로 부딪친 것인지 허공에서 빛이 떨어지고 있었다.
“르디엘 님? 왜 막으시는 겁니까!”
책을 읽던 사제가 일어나 있었다. 그가 나를 구속하기 위해 한 번 더 신성력을 쓰려 했지만 내가 더 빨랐다.
「죽어도 못 보내.」
내게 신성력을 쏘지 못하게 된 사제가 그대로 굳어 눈만 굴렸다. 이제 남은 사제는….
나는 졸고 있던 사제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막 잠에서 깬 그는 악몽이라도 꾼 듯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잘 자라, 우리 아가.」
원래 자던 사람이니 다시 잠들 수 있게 해 주었다.
“아가씨, 어서 나가야 합니다.”
“잠깐만요.”
그러고 보니 아까 이 사제가 내가 할퀼지 모르니 손도 풀어 주면 안 된다고 강하게 주장했단 말이야.
나는 책을 읽던 사제의 앞으로 다가가 천으로 입을 막아 주었다.
“얼마나 답답한지 한번 느껴 봐요.”
마치 악마를 본다는 듯한 사제의 표정을 바라보며, 나는 씨익 웃음을 지어 주었다.
그런데 방금 전부터 밖도 왜 이렇게 소란스럽지?
이 안의 상황이 정리되고 나니, 문득 밖의 소리가 신경 쓰였다. 쿠당탕 뭔가 부딪치고 깨지는 소리. 탁탁, 빠르게 이쪽으로 다가오는 조급한 발소리.
‘설마 내가 마법을 쓴 걸 알고 다른 사제들이 온 건가?’
순간 이동이든 뭐든 하기 위해 입을 열려고 하는 순간, 거세게 문이 열렸다.
그리고 문밖에 있는 것은….
“이아페…?”
멍한 목소리가 바람이 빠지는 것처럼 픽 새어 나갔다.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이아페가 여기에 왜 있는 거지?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그저 눈을 끔뻑대는데, 이아페가 성큼성큼 내게로 다가왔다.
“…….”
그리고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내가 좋아하는 그의 향기가 온몸으로 물씬 퍼졌다. 꿈이 아닌 모양이었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갑자기 눈물이 차오르더니, 뺨을 타고 또륵 흘러내렸다.
“괜찮습니까?”
나직한 물음이 귓가를 간질였다.
방금까지만 해도 괜찮은 줄 알았다. 그런데 이아페를 본 순간,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나를 이용해 뭔가 하려는 속셈이 가득한 이들에게 잡혀 있는데 괜찮을 리가 없었다. 무섭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하는 사람은 나니까. 괜찮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애써 입꼬리를 끌어 올린 거였다.
“안 괜찮았어요….”
이렇게 말하면 이아페가 걱정할 것을 알았다. 하지만 더 이상 그에게는 내 마음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솔직하게 울고, 투정 부리고, 위로받고 싶었다. 힘든 것을 묻어 두는 게 아니라, 그렇게 마주하면서 떨쳐 내고 싶었다.
“이제 같이 나가요, 시샤.”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 전에, 이아페에게 아직 돌려주지 못한 것이 떠올랐다.
“자, 당신의 언어예요.”
나는 주머니에서 붉은 빛을 꺼내 들었다. 한 손은 이아페의 손을 마주 잡은 채, 한 손 위에 올린 빛을 이아페에게로 후, 불었다.
빛이 이아페의 목으로 가서 그에게 스며들었다. 이아페가 일순 미간을 찌푸렸다.
그때였다. 어떤 기억 한 조각이 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한 상자를 든 남자가 그 위에 쪽지처럼 새겨진 글자를 읽고 있었다.
익숙한 말이었다.
저 말은 분명….
아이론이 죽기 전에 히아스에게 남긴 부탁이었으니까.
그런데 대체 왜 내가 이아페에게 언어를 돌려주는 순간에 이런 장면이 보인 거지?
나는 고개를 들어 이아페를 바라보았다. 그도 같은 기억을 읽은 듯,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날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