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127
@127. 해묵은 기억
“젠장!”
눈앞에서 시샤를 놓친 위드가 분노로 이를 갈았다. 뒤늦게 도착해 그의 눈치를 보던 엘딕이 말했다.
“공작을 칠까요?”
“모두의 시선이 그들에게 가 있어. 지금 건드렸다간 분명 티가 나겠지.”
“그럼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고 생각하세요, 위드 님. 그분이 깨어나시면 저희 뜻대로 다시 흘러갈 수 있을 거니까요.”
옆에 있던 미르셀도 한마디를 덧붙였다.
“로디스의 무덤은 준비가 끝났습니다. 가서 확인하시겠어요?”
위드가 길게 심호흡했다. 평정을 되찾은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지금 가지.”
그들은 곧장 로디스 공작의 무덤으로 향했다. 풀 하나 심지 않고 덩그러니 놓인 무덤가에 도착한 위드가 땅으로 손을 뻗었다.
그는 그 속에 들어 있는 기운을 느끼는 듯 눈을 감더니, 이내 만족스럽다는 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숙성이 잘되었군.”
“그분이 깨어나시면 바로 일을 거행할까요?”
“그래. 제물은 이 저택에 있는 놈들 전원이다. 바로 거사를 치를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해 놔.”
무덤가에는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불었다.
날릴 나뭇잎조차 없어 그저 휑하니 적막한 기운만 감돌았다.
* * *
여기는… 이아페의 방이잖아?
순간 이동으로 도착한 곳에서 내가 주변을 둘러보는 사이, 르디엘은 니니안을 잠재우고 있었다.
“혼란스러울 테니까요. 잠깐 자고 있는 편이 좋을 겁니다.”
축 늘어진 니니안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놀란 표정을 지었던 모양이다. 르디엘은 변명하듯 말하며 익숙한 몸놀림으로 니니안을 소파에 눕혔다.
그런 르디엘에게 이아페의 날카로운 시선이 가서 꽂혔다.
“깨워. 들어야 할 얘기들이 있으니.”
“내가 설명할게.”
니니안을 눕힌 르디엘이 허리를 펴서 이아페를 마주 보았다. 이아페가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왜 이곳으로 오자고 한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가 제일 안전할 것 같아서. 이 집의 신성능력자들은 철저하게 공작가의 지시를 따르니까.”
“그렇게 충성심이 높으면서 내 뒤통수를 쳤나?”
이아페의 입에서 비꼬는 듯한 목소리가 새어 나갔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이아페와 르디엘은 둘 다 나름 둥근 성격인데… 서로에게만큼은 유난히 날이 서 있는 것 같다. 대체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러는 걸까?
“방관하는 놈에게 충성하고 싶진 않은데.”
“지금 말 다 했나?”
궁금하긴 하지만, 더 이야기하게 뒀다간 싸울 것 같다.
지금은 그것보다 더 급한 일이 있기도 하고.
“저기… 대화 중인데 미안하지만.”
이아페와 르디엘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르디엘. 검은 로브를 입은 자들에 대해 이야기해 줄래요?”
“…….”
그들도 더 이상의 설전은 좋지 않다고 여겼는지 대화를 멈추었다.
르디엘이 잠시 시선을 내리깔아 아래를 내려다보다 입을 열었다.
“그들을 부르는 이름은 없습니다. 신전의 급진파 중 일부가 속한 단체예요. 우등한 신성력을 가진 선택받은 자로서, 평범한 사람들과 똑같은 지위를 갖는 것이 부당하다 여기는 이들이 모인 집단이죠.”
오, 그러니까… 선민의식으로 똘똘 뭉친 대환장 집단이라는 거군.
“하지만 르디엘은… 그렇지 않잖아요.”
내 말에 르디엘은 옅게 웃었다. 자신을 알아 주어 기쁘다는 듯이.
“네. 저는 자의로 그곳에 있었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에게 매여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니니안에게 걸린 세뇌 때문인가요? 아니면… 로브들이 말하는 ‘그분’이라는 사람과 관계가 있어요?”
아까 위드가 힘을 돌려주고 어쩌고 했지. 어쩐지 그것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 그분은… 오랫동안 로브를 입은 자들을 이끌어 온 사람이에요. 그분의 영향력은 신전의 지하를 중심으로 수도 곳곳에 뻗어 있죠. 그리고 저는….”
르디엘은 제 한쪽 손을 펴 바라보았다.
“그분의 힘을 받았습니다. 이 신성력은 그분이 제게 맡겨 두신 거예요. 말하자면 제 역할은 일종의 그릇이랄까요?”
“왜 그 힘을 받은 거지?”
이아페의 질문에 르디엘이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어떻게 신성력을 받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시작했다.
* * *
르디엘이 어린 시절, 그의 가족은 중앙 신전에 살았다. 그의 부모님이 신전의 소일거리로 생계를 유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매일 접하는 신성력의 영향을 받은 건지, 르디엘에게 신성력이 발현됐다.
아주 미약한 힘이었다. 어쩌면 그대로 살았다면 수많은 사제 중의 하나로, 평범하지만 평탄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호기심으로 신전 구석구석을 다니던 어린 르디엘은 발견했다.
발길이 닿지 않는 정화 신전 안, 깊은 곳에 있는 문을.
그 안에서 르디엘은 ‘그분’이라 불리는 남자를 마주쳤다.
르디엘은 종종 남자를 찾아와 자신이 본 바깥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에 남자는 르디엘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내 힘을 맡아 주겠니?〉
〈신성력을요?〉
〈그래. 이건 거래란다. 너는 그 힘을 네가 원하는 대로 쓸 수 있고, 나는 생기 있는 그 몸에서 내 힘이 구르도록 할 수 있지.〉
〈전 거래 같은 거 해 본 적이 없는데….〉
〈하나를 잃는 대신, 하나를 얻는 거야. 잃는 것이 크면 실패한 거래지만, 얻는 것이 크면 성공적인 거래지. 그리고 네게는 그다지 나쁠 것이 없을 거다.〉
어린 르디엘에게 있어 지금보다 큰 신성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은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그는 거래를 받아들였다.
〈때가 올 때까지 몸 간수를 잘하렴. 너는 내 힘의 그릇이잖니. 네가 죽으면 내 힘도 사라져 버리고 말아.〉
르디엘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신성력이 크면 얼마나 더 신날까. 머릿속엔 그런 생각만 가득했다.
하지만 그 거래는 하지 말았어야 했다.
남자에게 받은 힘은 생각보다 너무도 컸다.
당연하게도, 르디엘은 바로 모두에게 주목받고 말았다.
그리고 이것은 불행의 시작이었다.
르디엘의 가족에게까지 시선이 쏠린 탓에, 니니안이 마법사라는 사실이 발각되었다.
〈악마의 힘을 가지고 신전의 일을 하며 살아왔다니!〉
들끓는 사제들의 분노에 르디엘의 가족은 벼랑으로 몰렸다.
이에 책임을 느낀 르디엘이 대사제가 되길 거부하자, 부모님은 절망했다. 르디엘이라도 잘 살아 나가기 위해서는 가족과 그 사이의 관계를 끊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너 때문에 네 오빠는 대사제가 되지 못했어. 넌 이곳에 있어서는 안 돼.〉
어느 날 밤, 부모님은 홀연히 세니엘을 데리고 떠났다. 새벽에 이를 알아챈 르디엘이 그들을 따라나섰지만 이미 늦었다.
광신도들이 마차를 절벽에서 밀었기 때문이었다.
르디엘의 부모님은 그 자리에서 죽었다.
다만, 세니엘은 무사했다. 그 자리를 지나던 위드가 세니엘을 구했기에.
〈더 이상 여기에 못 있겠어요. 세니엘과 함께 신전을 나갈 거예요!〉
르디엘이 울분에 젖어 위드에게 말하자, 위드는 남매를 그분이라 불리는 남자의 앞으로 데려갔다.
〈거래라는 것은 하나를 얻는 대신 하나를 잃는 거라 하지 않았느냐?〉
남자는 눈을 가늘게 뜨고 르디엘을 바라보았다.
묘하게 달라진 뉘앙스였다. 얻는 것이 아니라 잃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말.
이제는 르디엘이 무언가를 잃을 차례였다.
남자는 세니엘에게 세뇌를 걸었다. 그리고 르디엘에게는 절대 뺄 수 없는 팔찌를 채웠다.
팔찌는 르디엘의 몸을 흐르는 신성력과 연결되어 있었다. 남자는 팔찌를 통해 르디엘을 감시했으며, 종종 그에게 벌을 주었다. 어떻게든 빼려고 하면 죽을 것 같은 고통이 찾아왔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재능 있는 신성능력자로서 최선을 다해야 했다.
세니엘은 본래 그녀의 부모님이 바라던 대로 체르실로프의 이름을 버렸다. 그녀는 그날 부모님과 함께 죽은 것으로 처리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니니안 켈린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왔다.
세뇌를 당한 그녀는 마법이 악마에게서 온 힘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시샤의 존재를 알게 된 후로는 그녀가 잠재된 악마의 성질을 깨우는 핵심적인 역할을 할 거라 믿었다.
니니안은 자신이 마법사라는 사실에조차 거부감을 느꼈기에, 르디엘이 어떤 방식으로든 마법에 관여되는 것을 끔찍이 싫어했다.
르디엘이 시샤를 감시하고 신전으로 데려오는 일을 맡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본인이 직접 이 일에 뛰어들겠다 자원했다.
그러나 점점 니니안의 생각은 바뀌었다.
저주받은 힘이지만, 잘 지켜보면 옳은 길로 이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뇌로 인해 느끼는 통증이 날이 갈수록 커졌지만 니니안은 희망을 품었다.
시샤를 속이면서까지 신전에 데려온 것도 그래서였다. 신전에서는 시샤에게서 악마의 기운이 올라오고 있다고, 지금 그 기운을 잠재워야 닥쳐올 비극을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다고 했기에.
니니안은 부디 시샤를 데려온 것이 헛된 일이 아니길 바랐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수많은 군사의 죽음이었다. 더는 합리화할 수가 없었다. 마법이 악마의 힘이라는 생각이 다시 치고 올라왔고, 그녀는 연구단을 나왔다.
한편 전쟁에서 군사들이 죽은 것은 르디엘에게도 큰 사건이었다. 로브를 입은 자들이 그 정도의 일을 저지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제 동생이 시샤를 그들에게로 데려왔다는 사실이 괴로웠고, 방관에서 온 죄책감이 그를 옥죄었다.
그래서 시샤의 세뇌가 풀릴 수 있도록 관여했고, 이아페를 살렸다.
그게 늦게라도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었다.
* * *
“여기까지입니다.”
이야기를 끝낸 르디엘이 마른 침을 삼켰다.
“…….”
이야기를 듣고 난 나는 예상보다 더 복잡한 심경이 되었다. 니니안이 안쓰러우면서도 원망스러웠다. 르디엘을 어디까지 탓해야 하고, 어디까지 이해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이라는 걸 안다.
그래도 날 속인 건 변함없는 사실이니까.
“개 같은 소리를 하는군.”
내가 말했나? 급히 입을 감싸는데, 다행히 이아페가 한 말이었다.
그가 구겨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