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128
@128. 유일한 약점
“그러니까 너는 이 모든 일의 원흉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는 건가.”
이아페는 거의 르디엘을 한 대 칠 기세였다.
“시샤 님이 그런 고통을 겪으신 게 너 때문인데. 그런데도 너를 시샤 님한테서 떼어 놓지 않은 내가 얼마나 우스웠을까.”
그가 경멸 어린 시선으로 르디엘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상하지. 이아페가 너무 화를 내니 오히려 내 화가 누그러들고 있었다.
“시샤 님께 사죄해. 아니지, 용서를 빌 기회를 주는 것도 사치겠군.”
이아페가 차가운 목소리를 뱉으며 내 앞을 막아섰다.
르디엘이 괴롭게 구겨진 얼굴로 답했다.
“…아가씨. 저를 용서하실 필요 없습니다. 니니안은 자의가 아니었지만, 저는 제가 직접 선택한 거였으니까요.”
머리가 복잡했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나는 입을 열었다.
“용서는… 없어요.”
르디엘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나는 괜찮아요. 하지만 용서라는 건 애초에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니에요. 저는 지금까지 검은 로브들이 얼마나 많은 마법사를 박해해 왔을지 알지 못해요. 그리고 르디엘은, 아마도 그들이 마냥 착하기만 한 단체가 아니란 걸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그곳에 있었을 거예요. 르디엘조차도 본인을 용서하지 못할 텐데 제가 가볍게 용서라는 말을 입에 담을 순 없어요.”
솔직한 심정으로는, 모든 걸 잊고 좋았던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일을 모두 덮고 하하 호호 웃을 수만은 없다는 걸.
“아직 모든 일이 끝나지도 않았잖아요.”
신전에서 나오긴 했지만, 그들의 목적을 저지한 것은 아니다. 그분이라는 사람도 아직 건재할 테고.
그래, 지금은 눈앞의 일을 해결하는 게 먼저였다.
“검은 로브를 입은 자들은 왜 그분이라는 사람을 따르는 건가요? 로브들의 목적이 대체 뭐예요?”
내 물음에 르디엘이 답했다. 쓰라린 감정을 애써 감추는 듯 평소보다 더 또렷한 목소리였다.
“그분은 몇천 년 동안이나 삶을 이어 오셨고, 누구도 상대하지 못할 큰 힘을 가지셨습니다. 제게 준 일부의 힘만 해도 대사제가 되기에 충분할 정도죠. 그렇기에 그 집단은 신의 특혜를 받은 것이 분명한 그분을, 신과 가장 가까운 존재라 여겨 따르고 있어요. 그리고… 로브를 입은 자들은 그분처럼 영생을 이루고자 합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해요?”
“모릅니다. 중요한 건 제게 말하지 않거든요. 저는 온전히 그들의 편이 아닌, 중간자로 여겨지니까요. 다만 꽃이 피지 않았던 마을, 그곳에 있었던 일이 그들의 실험 중 하나였다는 건 압니다.”
뭐라고? 지난봄, 원인 모를 일로 고민을 거듭했던 기억이 떠올라 나는 눈을 크게 떴다.
“그렇다면 비슷한 원리겠군.”
팔짱을 끼고 르디엘의 말을 듣고 있던 이아페가 말했다.
“다른 것이 가진 생기를 빼앗아 생명을 연장하려는 거겠지. 가령 사람의 생명이라거나.”
“……!”
데슬로에서 보았던 축 늘어져 시든 꽃들이 떠올라 소름이 돋았다.
이아페의 추측대로라면, 그 꽃들이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거잖아.
어쩌면… 수많은 실험에서 이미 그렇게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고.
“정말 그렇다면… 빨리 막아야 하는 거잖아요. 또 아는 내용이 있어요?”
“전 로디스 공작, 그가 별궁에 있던 무언가를 가져가도록 로브를 입은 자들이 유도했습니다. 지하 통로를 통해 몇 번이고 그의 집으로 들락날락하기도 했고.”
로디스 공작가를 방문했을 때 봤던 피골이 상접한 공작의 모습이 떠올랐다.
물건을 가져간 건 알았지만 로브들이 일부러 가져가게 유도한 거라는 건 몰랐다. 역시 그의 죽음도 이 일과 연관이 있었던 거야.
“그런데… 별궁에도 지하 통로가 있는 거죠?”
“아마도요. 다만 물건이 숙성되는 것에 최대한 영향을 끼치지 않기 위해, 별궁으로 가는 통로는 막아 둔 걸로 압니다.”
다행이었다. 거기서 주구장창 마법 연습을 했는데 누가 보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으으, 나는 몸서리를 치며 르디엘에게 다시 질문했다.
“그런데… 왜 지상이 아니라 지하에서 활동하는 거예요?”
“그분의 약점 때문입니다.”
“약점?”
“그분의 힘은 압도적이에요. 아마… 제게 주셨던 힘까지 회수하신다면, 저를 포함해 아가씨께 우호적인 사람 모두의 힘을 합쳐도 이길 수 있을지 미지수죠. 그런 그분의 유일한 약점이 햇빛입니다. 태양 빛을 쐬면 치명상을 입는다 들었어요.”
뱀파이어인가? 십자가와 마늘을 들이대도 되는 것 아닐까?
“몇천 년이나 광합성을 하지 않고 살아오다니, 성격이 더러울 만도 하겠네요.”
“그분은… 아가씨도 아시는 사람입니다.”
“제가요?”
내가 그 할아버지를 안다고?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르디엘을 바라보았다.
“그분은… 라카루스. 아이론의 옛 연인이자, 그녀를 죽인 사람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휘청했다.
라카루스가 아직도 살아있다고?
몇천 년이나 살아있다는 장수왕 할아버지가 라카루스라니. 뒤로 넘어갈 것 같았다.
아이론을 그렇게 꽃다운 나이에 죽여 놓고 본인은 이렇게 오래 살아 있다니. 아이론이 알면 무덤 속에서 튀어나올 일이었다.
아니, 그런데 5천 살이면… 꽤 많이 변했겠지? 젊었을 땐 꽤나 잘생겼었는데.
그의 쭈글쭈글한 모습을 상상하며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시샤 님께서 아이론의 옛 연인을 어떻게 아십니까?”
다행히 이아페가 바로 묻는 통에, 나는 젊었던 시절의 라카루스의 얼굴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나는 이아페에게 내 전생이 아이론이라는 것, 라카루스와 연인이었으며 그를 위해 모두의 언어를 빼앗은 것, 그리고 그에게 죽임을 당한 것을 이야기했다.
듣고 있는 이아페의 얼굴이 너무 험악해서 말을 중단할까 했지만, 그도 알아야 할 내용이었다.
“…….”
이야기가 끝나자 이아페는 잠시 화를 삭이더니, 무섭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죽여야겠습니다.”
“…살 만큼 살긴 했죠.”
이아페는 이를 악문 채 할아버지를 밖으로 모시는 대책을 내놓았다.
“일단 햇볕 아래로 끌어내면 되는 거라면… 소환 마법으로 부르는 건 어떻습니까? 르디엘, 그자와 관련해 바칠 만한 물건을 가진 게 있나?”
“아니. 누구도 그분의 것을 밖으로 가지고 나오는 건 허용되지 않아.”
“그 팔찌는 어때요? 뺄 수 있다고 했잖아요.”
내 말에 르디엘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가 씁쓸하게 말했다.
“아직은 못 합니다. 전에 한번 팔찌가 빠진 적이 있던 후로, 그분은 제 몸의 신성력과 팔찌 사이에 절대 풀 수 없는 매듭을 지어 두셨거든요. 지금 팔찌를 빼는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그게 뭔데요?”
“이 몸에 흐르는 그분의 신성력을 없애는 것. 문제는 그러고 나면 이 팔찌도 더는 그분을 소환할 만한 연결 고리가 될 수 없다는 거죠.”
“!”
“힘은 없앨 겁니다. 그분이 가져가게 둘 순 없으니까요. 그분이 깨어나시면… 힘을 회수하시기 전에 제가 없앨 거예요.”
“힘을 없앤다니, 쉬운 결정은 아니겠지만….”
르디엘의 말대로 그자에게 큰 힘이 돌아가는 최악의 상황은 피해야 했다. 르디엘에게 있어서도 그런 방법으로 그놈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은 길일 것이다.
“꼭 그렇게 해 줘요.”
“네. 그 부분은 걱정 마세요.”
르디엘이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런데 왜 이렇게… 그의 미소가 씁쓸하고 슬퍼 보이는지 모르겠다.
그때였다.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이어서 익숙한 음성이 들렸다.
“라온입니다.”
나는 한달음에 달려가 문을 열었다. 라온과 카실, 셀라임이 밖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는 오묘한 표정의 카일라인 공작도 있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보는 것이 반가워서 인사했는데, 공작은 조금 당황한 것 같았다.
“그, 그래. 반갑네. 둘만의 시간을 방해한 건 아닌지 모르겠군.”
둘만의 시간? 셋이서 있었는데?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르디엘은 어느새 구석에 숨은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네, 방해입니다.”
이아페가 다시 문을 닫으려고 했다. 나는 놀란 눈으로 그를 가로막았다.
“좋은 시간 보내게.”
공작은 그대로 돌아서 가 버렸다. 그가 말하는 좋은 시간이 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멍하니 공작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어… 저희도 가야겠죠?”
라온이 우물쭈물하며 물었다. 나는 이아페가 대답하기 전에 단원들을 방 안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할 얘기가 태산이에요.”
방에 단원들을 들이고 보니 르디엘은 방 안쪽 구석에 있었다.
“르디엘, 왜 여기에 있어요?”
“껄끄러워서요.”
르디엘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뭐가 껄끄러운지는 묻지 못했다. 방 안에 들어온 단원들이 너무 시끄러웠기에.
“저놈은 신전에 있던 놈이잖아. 믿을 만한 거야?”
“니니안! 니니안이 왜 여기에 있는 거예요?”
“아르비나 님, 몸은 괜찮으세요?”
몰아치는 질문들에 정신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몇 주 만에 겪는 이 북적거리는 분위기에 안심이 되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삐져나왔다.
나는 단원들에게도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간략히 들려주었다.
“그러니까 내일이면 그 라카루스라는 사람이 잠에서 깰 테고, 그 전에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거죠?”
“네, 맞아요.”
그때였다. 르디엘이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었다.
“르디엘! 괜찮아요? 왜 그래요?”
르디엘이 괴로운 표정으로 숨을 헐떡였다. 나는 황급히 그를 살폈다.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엄마 손은 약손!」
마법을 써도 소용이 없었다. 일반적인 몸의 이상으로 아픈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불길한 예감이 차올랐다.
그리고 예감은 적중했다.
“…깨어났습니다. 그분이.”
할아버지, 잠 좀 푹 주무시지! 왜 벌써 기상하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