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13
@13. 「낄끼빠빠」
‘세디안이야!’
그는 이 소설의 남주, 세디안이었다.
고동색 머리에 살짝 까무잡잡한 피부.
굳게 다문 입술과 제 신념에 대해서는 타협하지 않는 결의를 띤 눈동자.
자신의 나라를 굴복시킨 칼린느에게 복수하기 위해 신분을 숨기고 그녀의 호위로 들어온 패전국의 왕자.
하지만 결국은 사랑에 빠지고 마는 남자 주인공, 세디안!
아직은 칼린느에 대한 증오가 더 클 터인 지금, 그가 칼린느를 향해 올곧게 걸어가고 있었다.
와, 이 투샷을 직접 보다니.
지금은 그냥 호위와 황제겠지만 나중에는… 이렇고 저렇고 그런 사이가 된다고!
주책맞은 마음이 튀어나올까 봐 애써 입술을 꽉 깨문 채, 나는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그 장면을 지켜봤다.
“후….”
“아는 사람입니까?”
“헙…!”
갑작스러운 물음에 놀라 얼른 옆을 바라보자, 이아페가 가라앉은 눈으로 내 케이프 자락을 당기고 있었다.
“아뇨? 전혀 모르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생기 있는 눈으로 뚫어져라 보시기에.”
“옷이 예뻐서 본 거예요. 요즘 기사복은 참 멋있게 나오네요.”
“…….”
이아페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그의 눈이 기사복과는 거리가 먼 본인의 정장을 살피고 있었다.
“으음, 공자님의 옷도 멋있네요. 특히 이 크라바트가 공자님 눈 색이랑 잘 어울려요. 스타일도 맘에 들고요.”
왜인지 몰라도 이렇게 말해야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말하고 보니 맘에 든다는 표현은… 너무 들이댄 것 같나?
뭐라도 말을 덧붙이려던 순간.
“영애의 옷도요.”
이아페가 생긋, 수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의 뒤로 꽃잎이 흩날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출, 출발할까요?”
아무래도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야겠다.
나는 짐짓 활기찬 목소리와 함께 이아페의 마차가 있는 곳으로 파워워킹을 했다.
여전히 내 케이프 자락을 잡고 날 따라오고 있는 그의 손을 애써 무시하려 노력하며.
‘대체 왜 잡고 있는 거지? 언어를 가르치지도 않고 도망이라도 갈 거라 생각하는 건가?’
온갖 추측이 머릿속을 채울 때쯤. 이아페의 마차 앞에 도착했다.
지난번 우리 집에 올 때 타고 온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때보다 훨씬 때깔이 좋달까.
검은색의 마차 외부에는 카일라인 가문을 상징하는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날개를 쫙 편 독수리는 양쪽 발에 검을 쥐고 있었고, 나무 덩굴이 사지를 감싸고 있었다.
본래 대대로 펜보다는 검으로 자리를 보전해 왔던 카일라인 가문이었으니. 학자의 길을 걷고 있는 이아페가 독특한 케이스였다.
그런데 이 마차. 본래 원작에서는 중요한 장면에서만 탔던 것 같은데. 평소 이아페는 가문을 나타낼 수 있는 모든 상징물은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면 피했으니까.
‘아, 칼린느한테 잘 보이고 싶었나 보다.’
어쩐지, 그래서 오늘 자기 옷은 어떠냐고 물어봤구나.
이제야 그의 낯선 반응들이 이해가 가서, 나는 편한 마음으로 마차에 올랐다.
“어제 「가나다라」는 미리 살펴본다더니. 좀 익혔어요?”
나는 맞은편에 마주 앉은 이아페를 향해 장난스럽게 질문했다.
당연히 기대는 없었다.
이아페는 어제 사냥 행사에 다녀왔으니, 공부할 시간이라고 해 봤자 밤이나 새벽밖에 없었을 테니까.
「아주 조금 익혔습니다. 소리가 결합해 짧은 표기를 만드는 게 재밌더군요.」
“윽, 히끅.”
너무 놀라서 혀를 씹은 직후에 딸꾹질을 시작했다.
키론어로 한 질문에 한국어로 대답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어제 그냥 발음에 따른 입 모양이 그려진 책을 주고 한번 읽어 주었을 뿐인데. 그새 저렇게까지 정확하게 말을 한다고?’
천재였다.
감히 내 머리로는 어떻게 가능한 건지를 추측할 수도 없는 천재.
“히끅.”
“괜찮습니까?”
걱정스럽다는 표정의 이아페가 어디선가 예쁜 물병을 꺼내더니, 내게 내밀었다.
벌컥벌컥, 안에 든 차를 들이켜자 다행히 딸꾹질이 멎었다.
“발음이 너무 정확하잖아요.”
거의 대한민국 사람 수준이다.
이아페가 아, 어, 오 하고 입 모양을 지어 보였다. 그의 붉은 입술이 나긋하게 벌어졌다 오므려졌다 하며 모양을 만들었다.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감상을 내뱉었다.
「오… 쩌네요.」
“「쩌네요?」 무슨 뜻입니까? 아직 익히지 못한 단어라.”
와, 내가 지금 뭐라고 한 거야?
이아페가 익히지 못한 게 당연하다. ‘쩐다’는 표준어가 아니라서 한국에서도 책이나 사전에는 사용되지 않는 단어였으니까.
“아, 이 말은 좀….”
“욕이라도 한 건가요? 「궁예질」처럼….”
이아페가 상처받은 듯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궁예질. 내가 비알로에게 했던 안 좋은 말이었다. 하지만 쩌는 건 정말 좋은 의미인걸.
나는 당황으로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욕 아니에요! 정말 굉장하고 대단하고 놀랍다는 뜻이에요. 「쩐다!」, 「쩌네!」 이렇게도 써요. 그러니까, 당신의 코레아리아어 실력이 놀랍다는 얘기죠.”
나는 오해를 풀어 주기 위해 친절히 설명했다.
그의 코레아리아어 실력 말고도 쩌는 것이 있었지만 그건 논외로 하고.
내 말에 이아페가 작게 「쩐다….」 하고 중얼거렸다.
그 순간 내 안에서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이거 너무… 뽀짝하고 재밌잖아!’
다른 것들도 마구 가르쳐 주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그래, 기왕 한국어를 가르쳐 주는 거 이런 재미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
“코레아리아어는 연령대나 지역에 따른 변형, 신조어, 줄임말이 많아요.”
“예를 들어서요?”
“음, 「낄끼빠빠」라는 말이 있어요. 이건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의 줄임말이에요. 분위기 파악하고 눈치 있게 낄 때와 빠질 때를 구분하라는 뜻이죠.”
“유용하게 쓰이겠군요.”
“이 말이요? 하하, 다른 것도 틈틈이 알려 줄게요.”
“하나하나 새겨 놓겠습니다.”
이아페의 학구열에 내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나도 모르게 훙훙, 하고 웃을 뻔했다.
‘물론 나도 최신 인싸 용어는 알지 못하지만… 여기선 나한테 할머니라고 할 사람도 없으니 내 맘대로 알려 줘야지.’
“그럼 이런 말은….”
다른 것도 말하려던 때, 몸이 미세하게 기우뚱했다. 마차가 목적지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이내 마차의 문이 열리고, 갈색 머리를 한 순하고 밝은 인상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 뵙겠습니다. 라온 제누아르입니다.”
우리가 오는 동안 방문에 대한 연락을 받은 라온이 깍듯하게 인사했다.
“시샤 아르비나예요.”
반가움으로 들뜬 목소리가 나왔다.
그리고 마차에서 내리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
「낄끼빠빠.」
이아페의 입에서는 내가 방금 설명해 준 말이 튀어나왔다.
“아니! 공자님?”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런 때에 사용하는 용어가 아닌데! 그가 뭔가 오해한 모양이었다.
라온이 불만으로 입술을 살짝 부루퉁하게 내밀었다. 그도 본능적으로 저게 좋은 말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하지만 라온의 앞에서 구구절절 낄끼빠빠의 뜻을 설명할 순 없었다.
나는 나중에 이아페에게 단어의 사용법을 다시 설명해 줘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를 이끌었다.
“어서 내려요!”
“그러죠.”
이아페가 나를 향해 싱그럽게 미소 지었다.
* * *
“찾았습니다, 바벨의 검.”
어두운 실내,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이가 카펫을 따라 걸어와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그 끝에는 화려한 무늬가 세공된 기다란 의자가 있었다. 뾰족한 지붕을 그리는 등받이는 마치 왕관을 연상케 했다.
화려한 의자에 옆으로 누운 남자가 대답 없이 선명한 붉은 와인을 들이켰다.
한참 동안 침묵이 이어졌지만, 누구도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대답을 기다렸다.
“드디어.”
음산한 신음을 내뱉은 그가 잔을 뱅글뱅글 돌렸다.
이에 가까이에 서 있던 또 다른 로브의 이가 한 발을 앞으로 내디디며 질문했다.
“어찌할까요?”
“흐음.”
붉게 물든 입술이 비릿한 웃음을 머금었다.
“일단은 지켜볼까.”
결론을 내뱉은 그는 기분이 좋아 보이기도, 나빠 보이기도 했다.
의미심장한 공기에 자리의 모두가 경외와 두려움을 억누른 채 깊게 고개를 숙였다.
* * *
“그래, 결심했어.”
수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인 테시오 광장의 분수대 앞에 앉아 여유를 즐기던 라온이 인생극장의 두 갈래 길에서 선택을 마쳤다.
라온 제누아르.
이아페 카일라인의 보좌관으로 일한 지 1년. 알고 지낸 지는 더 오래되었지만 그건 차치하고.
공식적인 직함은 보좌관이었으나, 그 스스로는 보좌관이자 시종, 뒤처리 담당자, 편지 전달자, 정보 캐러 다니는 사람 등등 다양한 직업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은.
‘라온 제누아르 님이 직업 ‘코레아리아어 연구단원’을(를) 획득하였습니다!’
어디선가 그런 메아리가 들리는 것 같다.
‘어제 보니 고용주 놈은 내 새로운 직업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지만.’
〈「낄끼빠빠.」〉
뭐, 우끼끼?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뜻이 아니란 것만은 분명했고.
〈라온,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평소에 제발 해 줬으면 좋겠다고 십만 번쯤 상상했으나 절대 하지 않았던 말을 소름 돋게 다정한 말투로 늘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라온은 이 일을 하고자 결심했다.
당연히 가장 큰 이유는 그 또한 마법을 자유로이 사용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른 이유가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헐, 죄송해요.〉
그 후작 영애가 차를 살짝 흘리자마자 벌떡 일어나 손수건을 가지러 간 제 고용주의 모습이란.
분명 근 1달간 본 모든 것 중 가장 코믹한 사건이었다.
그의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이 영애와 함께 일한다면 앞으로 더 재미난 광경을 많이 볼 수 있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