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132
@132. 더우십니까?
잠든 이아페의 얼굴에 달빛이 어렸다.
나는 침대맡에 걸터앉아 달빛을 가려 주었다. 그의 얼굴로 손을 뻗다가, 혹시 깰까 봐 손은 거둔 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다행히 어둠 속 희미하게 보이는 얼굴엔 평온함뿐이었다.
‘이아페.’
입 모양으로 그를 불렀다.
뭐라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애틋했다. 가슴이 벅찼다.
그렇게 한참 동안 이아페를 바라보다가, 창밖 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오늘 그렇게 큰일이 있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바깥 풍경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너무 긴 하루였어.’
라카루스가 사라지고 나서, 나는 즉시 오늘의 일을 칼린느에게 보고했다.
칼린느는 곧바로 이 일을 공식적인 사건으로서 처리했다. 로디스 공작저에 신성 능력자들을 보내 그곳이 쑥대밭이 된 것에 신성력이 사용되었는가를 검증하는 동시에 이 안건으로 긴급 궁정 회의를 소집했다.
아직 제대로 된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신전을 공개적으로 저격하는 만큼, 만약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는다면 황제의 자리까지 흔들 수 있는 사안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칼린느의 판단은 옳았다.
라카루스의 명을 받아 신전으로 먼저 돌아갔던 검은 로브들은 그가 사라진 걸 느끼고 로디스 공작저로 되돌아왔다.
문제는 때마침 황궁에서 파견을 온 수많은 신성 능력자, 그리고 마법사들과 마주쳤다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현행범이었다.
거기다가 칼린느가 회의에 참석한 관료들에게 못 믿겠다면 직접 확인해 보라고 한 것도 한몫했다. 자리에 있던 관료들은 곧장 로디스 공작저로 사람들을 보냈다.
아까부터 들렸던 소란에 사람들까지 몰려들자, 근방에 살고 있던 주민들도 덩달아 그곳을 기웃대었다.
아무리 신전의 위세가 대단해도 그 모든 눈을 가릴 수는 없었다.
교황은 모든 잘못을 위드에게 돌리고 빠져나가려 했으나, 합의가 되지 않은 것인지 위드가 그를 물고 늘어졌다.
게다가 깨어난 르디엘이 신전에서 겪었던 모든 것을 이야기한 통에 빼도 박도 못하게 되었다.
신전의 지하에서 뻗어 간 지하 공간을 알게 된 많은 이들이 경악했다. 아마 내일이면 제국 곳곳으로 그 이야기가 퍼지겠지.
‘이아페가 깨면 집에 가야겠다.’
궁정 회의장에서 어머니를 만나 안부를 전하긴 했지만… 이아페가 걱정되어서 집에 들르지 않고 공작저에 왔으니까.
부스럭.
이불이 스치는 소리와 함께 내 허리에 팔이 둘렸다.
왼쪽 목덜미에 부드러운 촉감이 와 닿았다.
“시샤.”
이아페의 약간 갈라진 목소리가 심장을 간질였다.
내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이아페가 숨을 들이켰다. 마치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을 확인하려는 듯 깊은 숨이었다.
안 좋은 꿈이라도 꾼 걸까? 라카루스가 사라지고 나서는 표정이 편안해져서 괜찮은 줄 알았는데.
“무슨 꿈 꿨어요?”
“당신이랑… 숲을 거니는 꿈. 마주 보고 노를 젓고, 물가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고, 햇볕 아래에서 잠이 드는 꿈.”
“좋은 꿈이네요.”
이아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부드러운 머리칼이 목을 간질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해할까?”
“…너무 행복한 꿈을 꿔서.”
그의 대답에 멈칫했다. 나는 뒤로 손을 뻗어 이아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제 다 끝났어요. 걱정할 일은 없어요. 그러니까 내일 나랑 산책해요.”
응. 그가 작게 웅얼대듯 대답했다. 나는 그의 꿈 이야기를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같이 배도 타고, 샌드위치는…음, 내가 만든 게 대체로 사람들 취향이랑 조금 다르긴 하던데 그래도….”
“제가 만들겠습니다.”
즉각적인 이아페의 대답에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는 돗자리 챙길게요. 두 명이 누울 수 있는 크기로.”
“작은 것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작은 걸 챙기면 한 명밖에 못 누울지도 모르잖아. 꼭 붙어서 눕거나 몸을 겹쳐서 누우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순진한 이아페를 두고 떠오른 엉큼한 발상에 스스로 놀라 입을 벌렸다. 그때 이아페가 픽, 웃음을 터뜨렸다.
왠지 놀려지는 것 같은 기분인데. 나는 괜히 입술을 샐쭉거리며 엄포를 놓았다.
“진짜 작은 거 챙길 거예요. 한 명만 누울 정도의 크기로!”
“바라던 바입니다.”
목에 닿는 웃음기 띤 숨결이 유혹적이었다. 순식간에 몸의 열기가 목까지 팍 치고 올라왔다.
“더우십니까?”
걱정스럽다는 듯한 목소리와 함께 목에 닿아 있던 숨이 멀어졌다. 이아페가 허리를 펴며 날 안은 팔을 풀려고 했다. 나도 모르게 그의 팔을 콱 잡았다.
“…….”
이제 얼굴까지 열기가 차올라서 어질어질했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내 얼굴은 아마 사정없이 붉어져 있겠지.
입술을 꽉 깨물며 고개를 돌렸다.
이아페는 아마 내 반응이 당혹스럽고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을….
“…뭐예요?”
“뭐가 말입니까?”
“…웃고 있잖아요.”
달빛 아래 마주친 이아페의 눈가가 예쁘게 접혀 있었다. 그제야 그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썹을 살짝 올렸다 내렸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나 놀린 거죠?”
“덥진 않으십니까?”
“…안 더워요.”
“그럼.”
이아페가 허리를 숙였다. 입가에 부드러운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졌다.
“온기를 나눠 드려야겠네요.”
덥지 않다고 해서 추운 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으나, 다시 생각해보니 이아페의 말이 백번 맞는 것 같았다.
그래, 덥지 않으면 좀 따뜻해져야지.
고개를 끄덕이자 기다렸다는 듯 그가 다시 얼굴을 내렸다.
이마에, 두 뺨에, 입술에, 그리고 목에 뜨거운 숨결이 와 닿았다가 멀어졌다.
“지금은요?”
이아페가 나긋한 물음을 던졌다.
나는 그의 어깨를 쥔 손에 힘을 주며 답했다.
“아직 추운 것 같아요.”
나는 이아페에게로 얼굴을 가져다 댔다. 따뜻한 호흡이 얽혔다.
너무 추워서 어쩔 수가 없었다.
* * *
짹짹!
어디선가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 눈을 떴다. 이아페가 침대맡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어났어요?”
살짝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와 커튼이 날렸다. 그제야 이미 날이 밝은 걸 알았다.
눈을 끔뻑끔뻑하며 그의 완벽한 형상을 눈에 담았다.
언제 일어난 것인지 몰라도 이아페는 이미 완벽한 차림이었다. 나는 분명 산발에 퀭한 모양새일 텐데!
“물을 받아 두었습니다. 세수를 도와 드릴게요.”
이아페가 이상한 농담을 했다.
남의 손으로 세수를 하는 건 5살 때 뗐다고.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대신 이불을 눈 바로 아래까지 뒤집어쓰고 입술을 꼼지락대며 말했다.
“배고파요.”
어쩐지 아쉬워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던 이아페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내 이마에 입을 맞췄다.
갑자기 온몸이 참을 수 없이 간지러워졌다. 그의 침대에 벼룩이 있을 리는 없으니, 이건 필시 어제의 일이 떠올랐기 때문임이 분명하다.
“누워 있어요. 음식을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가볍고 간단한 거 말고요. 저녁에 먹을 만큼 따뜻하고 맛있는 걸로요.”
침대를 퍽퍽 치고 싶은 충동을 애써 감추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러죠.”
옅게 웃음을 터뜨린 이아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철컥, 문이 닫히는 소리에 나는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와….”
아직도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이 몽글몽글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어서 결국 침대를 퍽퍽 치고 말았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빠르게 세수를 하고 거울 앞에 섰다. 역시 로판 세계의 인물답게, 세수만 했을 뿐인데도 얼굴에서 빛이 났다.
‘옷은 집에서 순간 이동으로 가져와야겠지?’
지금 옷이라고는 신전에서 입던 밋밋한 흰옷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근데 이제 싸움에서 뒤집어쓴 흙과 먼지를 곁들인.
이아페에게 퀄리티 높은 음식을 요구한 것은 이런 식으로 몸단장에 소요되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이아페는 나를 먹보 정도로 생각하겠지만 별수 없지.’
사실이었으니까.
「순간… 어?」
주문을 읊던 중 거울에 비친 뭔가를 발견하고 걸음을 옮겼다.
침대 근처에 웬 행거가 있었다. 그곳에는 활동하기에 편해 보이는 원피스들이 걸려 있었다. 모든 원피스가 온몸으로 ‘이건 피크닉용이야!’ 하고 외치고 있었다.
“내 건가.”
유교 걸은 원래 남의 물건을 만질 땐 양해를 구하는 법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날 위한 옷임이 분명했다.
이아페의 방에 여자 원피스가 이렇게나 많다니.
다른 여자의 옷이라는 건 말이 안 되고. 굳이 다른 가능성이라면 이아페가 입기 위해서겠지만 그럴 리가….
‘괜찮은데?’
이아페가 이 원피스를 입은 모습을 상상하며 나는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장담하는데, 분명 무도회에 가면 웬만한 귀족 영애들을 제치고 쉴 새 없이 춤 신청을 받을 거야.
신청을 한 남자들보다 이아페의 덩치가 클 테니 동선이 좀 꼬일 수도 있겠지만….
‘그럼 나랑만 추면 되지, 뭐.’
깔끔하게 생각을 끝낸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옷을 골랐다.
외출 준비에 필요한 모든 것이 눈앞에 마련되어 있던 탓에, 생각보다 단장은 빨리 끝났다.
“그냥 식당에서 밥을 같이 먹을까?”
역시 음식을 전부 방에 가져와서 먹는 것보다는 그편이 여러모로 편할 것 같았다. 어제는 순간 이동으로 이아페의 방에 왔으니, 내가 손님 명단에 있을 것 같진 않은데….
‘지금 방문한 척해야겠다.’
결국 순간 이동으로 공작저의 정원으로 이동한 후, 조금 걸어가 저택 정문을 두드렸다.
여러 번 보았던 집사가 인사했다. 그가 내 뒤를 바라보며 의아하다는 눈길을 보냈다.
“마차는… 타고 오지 않으셨습니까?”
“걸어왔어요.”
싱긋 웃자 집사가 문을 열어 나를 안으로 안내했다.
“둘째 공자님께 제가 왔다고 말씀을 전해 주세요.”
“식당에 계십니다. 함께 가시지요.”
집사가 걸음을 옮겼다. 오, 바로 같이 밥 먹을 수 있겠다. 그런데 싱글벙글 웃음을 지으며 집사를 따라가다 보니 문득 의문이 생겼다.
“…왜 저를 안 막으세요?”
공작쯤 되는 집안에서는 분명 미리 정해진 손님만 받을 텐데 말이다. 지난번에 정원에 한참 있다가 허탕 치고 돌아간 적도 있고.
“특별히 명하셨습니다. 아가씨는 예외이니 모두가 잠든 한밤중이라도, 설령 황제 폐하를 알현 중이라 해도 모셔 오시라더군요.”
“!”
황제 폐하를 알현 중일 때는 기다리라고 해야지, 이 사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