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133
@133. 4주 후에 뵙겠습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입술이 씰룩대는 걸 들키기 싫어서 괜히 도도한 척하며 물었다.
“특별히 명하신 건데 이렇게 말해 주셔도 돼요?”
“분명 물어보실 테니 말씀해 드리라 하셨습니다. 직접적으로 말씀을 드리지 않으면… 아가씨를 얼마나 특별하게 생각하시는지 모르실 거라고.”
“네?”
…나 눈치 빠르단 말야. 그 정도는 알아.
물론 예전엔 그가 칼린느를 더 특별하게 여긴다고 믿었지만.
나한테 하는 것들은 사회생활로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한 행동들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아페가 내게 차를 타 주는 것도, 멀미약을 챙겨 주는 것도, 식전 빵을 잘라 주는 것도….
“…….”
진짜로 나 눈치가… 괜찮은 게 맞나?
심각한 고민에 빠진 사이, 어느새 식당 근처에 도착했다. 그런데 익숙한 뒷모습이 식당을 기웃대고 있었다.
“일로제 경?”
“쉿.”
반갑게 눈을 떴던 일로제가 제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 댔다. 나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입 모양으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이아페와 아는 사이인 것 같길래 식당으로 데려왔습니다. 그런데….”
일로제가 검지로 식당 안을 쿡쿡 가리켰다.
“내가 마법사라는 정보를 팔아 돈을 벌려 했잖아.”
이아페의 서늘한 목소리가 들렸다. 대체 무슨 일이지? 나는 고개를 살짝 기울여 안을 들여다보았다. 이아페의 맞은편에 서 있는 건 르디엘이었다.
“너야말로 내가 쫓겨나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손 놓고 있었지.”
“내가 아무것도 안 했다고? 난 배신감에 치를 떨면서도….”
이아페가 말끝을 흐렸다. 르디엘의 불만 어린 목소리가 바로 이어졌다.
“그래, 배신감을 느낀 게 네가 한 전부지. 내 말은 듣지도 않고서. 애초에 내가 널 배신했다고 확신하는 이유도 가르쳐 주지 않잖아.”
두 사람은 날 선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말려야겠습니다.”
“잠시만요.”
앞으로 튀어 나가려는 일로제를 황급히 잡았다.
그때 미간을 찌푸리고 있던 이아페가 입을 열고, 홧김에 뱉듯이 진실을 털어놓았다.
“공작저를 찾아온 정보상이 내가 마법사라는 것을 알고 있더군. 그가 말한 정보원이 누구였을 것 같아?”
“설마… 나라고? 겨우 정보상의 말을 믿었단 말야?”
“내가 봤으니까.”
“뭐…?”
“그 전날, 네가 그 정보상을 만나는 걸.”
“……!”
“내가 어디에 다녀왔냐 물었을 때 너는 숲에서 운동하고 왔다 거짓말을 했지. 마음이 불편한지 하루 종일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그건….”
나와 일로제는 침을 꼴깍 삼켰다.
르디엘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한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잠시 뜸을 들이더니 힘이 빠진 투로 말했다.
“그래, 기억나네. 이 집에서 나오기 전날… 정보상을 만나러 간 게 맞아.”
이아페가 헛웃음을 지었다.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도 다른 대답을 기대했던 듯이.
“하지만 정보를 팔러 간 게 아니었어. 사러 간 거였지.”
이아페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가 무슨 말이냐는 듯 르디엘을 바라봤다.
“그자가 먼저 내게 접근했어. 세니엘… 니니안의 세뇌를 푸는 방법을 알려 줄 테니 찾아오라고.”
“그래서, 방법은 샀나?”
“그래. 그분이 잠드셨을 때, 날 감시하지 못하실 때 그자를 찾아가서 정보를 샀지.”
“헛소리군. 정말 정보를 샀다면 그때 모든 게 해결되었을 것 아닌가.”
“방법은… 그분을 죽이는 거였어.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럴 용기도, 힘도 없었지. 오히려 지금 들은 말을 들키진 않을지, 그분이 다 알고서 날 시험하는 것은 아닐지 두려웠어. 그래서 절대 하지 못한다고 하고 나왔고.”
이아페의 눈빛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살짝 저었다.
“…내가 마법사란 걸 아는 자들은 모두 입을 막아 두었어. 조치를 취하지 않은 건 너뿐이었지. 정보상은 네가 정보를 팔았다며 내게 악담까지 퍼붓더군. 내가… 내가 마법으로 형을, 일로제를 죽이고 말 거라고.”
뭐라고?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보상이 그걸 어떻게 알지?
‘이아페가 일로제를 죽이는 건… 원작의 내용이잖아.’
잠깐, 정보상이라면….
문득 시샤가 이아페가 마법사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고 그를 찾아갔는지가 떠올랐다.
‘시샤에게도 왔었어. 정보상이.’
짧고 붉은 머리의 남자는 정말로 마법을 부흥시키고 싶냐고 물었다. 굳건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시샤에게 이아페를 찾아가라고 했고.
〈강력한 마법을 가진 마법사이니, 그를 지켜보세요. 그리고… 전설 속 마법 제국, 코레아리아가 남긴 것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남동부 국경 너머에 위치한 이 산으로 오세요.〉
원작대로라면 나는 그 산에 갔다가 죽는다. 그래서 그 대화는 아예 머릿속에서 지우고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이상했다.
그 사람은 어떻게 그것들을 알고 있었던 거지?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그 정보상은?”
내 물음에 르디엘과 이아페가 이쪽을 돌아보았다. 둘 다 뭐 훔쳐 먹다가 들킨 표정인 게, 나와 일로제가 듣고 있었다는 걸 전혀 몰랐던 모양이다.
“…모릅니다. 공작이 처리하라 지시했으나, 이 집을 나선 직후 감쪽같이 사라졌다더군요.”
이아페가 작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순식간에 사라졌다니. 단순히 발이 빠르거나 위장술이 뛰어난 사람일지도 모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보통 정보상은 아닌 것 같다.
“혹시 그 사람, 머리가 빨간 젊은 남자였어요?”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이아페와 르디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역시 동일 인물인 모양이다. 이쯤 되니 확신이 생겼다.
“그 사람, 저한테도 찾아왔었거든요. 마법과 관련해서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정보를 말해 줬어요. 아마… 마법사거나, 최소한 마법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인 것 같아요.”
원작에 대해서도 잘 아는 것 같고.
“대체 정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라카루스를 죽이지 않겠다고 한 르디엘을 엿 먹이려 한 것도 같고요.”
르디엘과 이아페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정황상 분명 그런 것 같았다. 르디엘이 피식 웃음을 지으며 이아페를 바라봤다.
“이제야 억울함이 풀리네!”
장난스럽게 과장된 말투였다. 하지만 분명 본심이 섞여 있었다.
“네가 날 믿지 못할 만한 상황이었단 거 이해해. 그래도 나는… 공작님께서 그렇게 매몰차게 날 내쫓으면 네가 한 번쯤은 나서서 막을 줄 알았어. 애초에 허황된 기대였지. 너는 내가 쫓겨나든 말든 상관이 없었을 텐데.”
르디엘은 미소 짓고 있었지만 그의 미소는 썼다. 그에게 그날의 일이 꽤나 상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지난번에 카일라인 공작을 껄끄럽다고 한 이유가 이것이었다는 것도.
이아페는 조금 마음이 복잡한 듯한 시선이었으나, 이내 긍정한다는 듯 턱을 치켜들었다.
“그래. 그럼 내가 공작에게 무릎이라도 꿇고 빌 줄 알았나?”
‘뭐야, 화해 안 해?’
예상했던 시나리오와 조금 다른데.
이아페도 어쩔 수 없었을 수 있잖아. 그때의 이아페는 공작에게 싫은 소리도, 부탁도 하기 어려웠을 테니까. 더구나 르디엘이 정보상을 만나는 것도 본 상태라면… 배신감이 많이 차올라 있었을 테고. 그럼 더욱 나서기 힘들었을 거야.
그런 상황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대화하면 좋을 텐데….
“왜 손님을 입구에 세워 두는 거지?”
갑자기 뒤에서 근엄하면서도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카일라인 공작이었다. 공작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식당으로 들어섰다.
“너는….”
공작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의 시선 끝에는 르디엘이 있었다.
공작에게서 차가운 오라가 풍겼다. 살기마저 느껴지는 공기에 내가 다 움츠러들 정도였다. 이 선명한 적의가 나를 향했다면 나는 기저귀 없이는 가만히 서 있기조차 힘든 상태였을지도 모르겠다.
“무슨 염치로 다시 이 집에 나타난 거지?”
“손님입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이아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쪽으로 다가왔다. 공작이 대화에 끼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긴, 르디엘을 쫓아냈다는 사람과… 그것도 이렇게나 화가 난 상태로 마주해 봤자 상처를 들쑤시는 것밖에 안 될 테니까.
그러나 이아페가 미처 여기까지 오기 전에, 공작의 노기 어린 음성이 식당에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이아페가 무릎까지 꿇으며, 절대 그럴 놈이 아니니 제발 죽이지 말라고 부탁해서 목숨만은 살려 주었더니!”
“…….”
…응?
잠깐의 정적. 현기증이 나는 듯 이아페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다. 듣고 있던 일로제가 공작의 등을 떠밀었다.
“왜 그러느냐.”
“공, 공작님. 저랑 잠시 이야기하시죠.”
“…그래.”
나가지 않으려 하는 공작을 일로제가 데리고 나갔다. 쾅, 문이 닫히고 나서도 한동안 정적이 이어졌다.
나도 방금 같이 나갔어야 했던 것 같은데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무릎을 꿇었다고…?”
정적을 깨고 르디엘이 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어.”
이아페는 고개를 숙인 채 겸연쩍은 듯이 대답했다.
서먹한 분위기 속, 르디엘은 몇 번을 입을 벌렸다 닫았다 했다.
아마도 르디엘은 그 당시의 이아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일 것이다. 이아페가 공작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기에 공작에게 무릎을 꿇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알겠지.
그래서 지금 르디엘의 표정에서는 다양한 감정이 느껴졌다.
충분히 의심할 만한 상황에서도 공작에게서 자신을 변호해 준 것에 대한 고마움. 그를 탓하며 내뱉은 말에 대한 후회. 그럼에도 사실을 말하지 않으려 한 이아페에 대한 원망.
예전부터 느꼈던 건데, 그들이 싸우는 모습은 흡사 사랑싸움을 하는 연인 같았다.
서로 미워하는 것처럼 굴지만 사실은 서로를 정말 많이 신경 쓰고 있다. 서로에게 기대하는 바가 커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자신을 이해할 거라 생각하기에 진짜 중요한 정보는 숨긴 채 서운했던 점만 이야기하고 있고.
그렇게 생각하니 이상하게 질투심이 불쑥 솟아올랐다.
르디엘에게 이런 감정을 느껴도 되나?
암튼 이런 어색한 현장에 껴 있는 것이 슬슬 부담스러워졌다. 나는 조심스럽게 문으로 손을 뻗으며 말했다.
“그럼 찬찬히 이야기해 보시고… 4주 후에 뵙겠습니다.”
“네? 저와 산책을 가기로 하지 않으셨습니까.”
이아페가 화들짝 놀라며 내 앞을 가로막았다.
4주라니… 중얼거리는 그는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 이거 이혼 소송 아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