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134
@134. 허무한 낭만
강가에 부는 청량한 바람이 뺨을 스쳤다.
마법으로 만든 특제 담요를 덮은 상태라 춥지는 않았다. 돗자리도 어찌나 뜨끈한지 전기장판이 따로 없었다. 거기에 누워 있자니 저절로 온몸이 노곤해졌다.
팔로 머리를 받치고 옆으로 누워 나를 보던 이아페가 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 주며 말했다.
“운이 좋았습니다. 릴리 로디스 공작이 급한 일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니.”
“네…. 상심이 정말 크겠어요. 많이 괴로울 거예요.”
“식솔들이 모조리 죽은 데다 그 빌미를 제공한 것이 아버지인 전대 공작이었으니까요. 게다가 전대 공작이 신흥 귀족을 이끌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신전에 붙었다는 것에 귀족 세력 내부의 반발도 심할 겁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
“이아페는 가끔 너무 냉정해요.”
내가 눈을 흘기자 이아페가 멈칫했다. 그러더니 눈썹을 아래로 늘이며 말했다.
“…조금 추스를 시간도 필요할 텐데. 마음이 많이 안 좋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감았다. 이아페가 담요를 내 어깨까지 여며 주며 말했다.
“그래도 신전의 일은 잘 마무리되고 있으니 다행이군요.”
교황이 사람들의 생기를 빼앗아 불로장생하고자 했다는 사실이 퍼지자 예상대로 제국에, 아니 대륙 전체에 파란이 일었다.
“황실에서 처벌을 내리는 것과는 별개로, 신전에서도 교황과 대사제의 처분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죠?”
“네. 이제 모두가 나서서 흐름을 이끌어 줄 겁니다. 걱정 말고 쉬어요.”
그의 목소리를 듣자 솔솔 잠이 왔다. 밖에서 자면 입 돌아갈지도 모르는데…. 이 안은 따뜻하니까 괜찮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이아페의 품에 안겨 잠이 들었다.
* * *
〈「왜 그러는 건가? 갑자기 왜 다들….」〉
〈「어, 으어….」〉
눈앞에 펼쳐진 것은 혼란뿐인 세상이었다. 히아스를 빼고 모두가 말을 하지 못했다. 언어를 잃은 이들이 서로를 잡고 늘어졌다. 그 가운데서 히아스는 홀로 충격과 당혹감을 삼켰다.
아이론의 마력을 품은 작은 상자와 쪽지가 도착한 것은 그때였다.
〈「부탁이야. 이것이 부서지지 않도록 지켜 줘.〉」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상자 안에 든 것이 모두의 언어라는 건.
그리고… 방금 들린 메시지가 그녀의 마지막 부탁이라는 것도.
〈「아이론….」〉
히아스는 허망하게 자리에 주저앉았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엉엉 울었다.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언어술사 아이론.
말을 시작한 후로는 줄곧 신전에 틀어박혀 주문을 만들고 다듬어 온 사람.
20여 년 만에 코레아리아를 대륙의 최강국으로 만든 영웅.
그리하여 모두에게 칭송받았으나, 종종 외로움에 공허하고 슬프게 미소 짓곤 하던 여자.
지금 그녀의 죽음을 슬퍼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한순간에 말을 할 수 없게 된 지금, 칭송하던 이가 죽었다 한들 말 못 하는 고통을 압도할 순 없으리라. 무슨 이유에서였든 그 고통을 제공한 이의 죽음이라면 더욱.
그러니 히아스는 지금 뼈저리게 슬퍼해야 했다.
아이론, 아이론, 아이론.
그녀의 이름을 기억해야 했다.
그리고… 그녀가 남긴 이것을 지켜야 했다.
그것이 히아스의 의무였다.
히아스는 언어의 결정이 든 상자를 들고 아이론의 서재로 이동했다. 언제 사람들에게 언어를 돌려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 정도 일이 가능한 것은 그녀뿐이니… 당분간은 불가능하겠지.
그렇다면 그들의 언어가 다시 빛을 발하게 될 때를 대비해야 했다.
그녀가 만든 숱한 주문들이, 우리가 쌓아 온 수많은 마법의 기록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히아스는 아이론의 도서관을 봉인했다. 절대 적들의 눈에 띌 수 없게 단단히 마법을 건 후, 그곳을 둘러싸고 호수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언어의 결정은 그곳에 두지 못했다.
〈「이건… 이 안에 있으면 사라지고 말 거야.」〉
모든 역사가 그렇듯이. 모든 언어가 그렇듯이.
기억하는 자가 없으면 사라진다.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진리였다.
그래서 히아스는 그것을 품은 채 전장에 나섰다.
〈「이것을 맡아 주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다시 찾으러 올 거야. 그때까지 꼭 이걸 보관하고 기억해 줘.」〉
〈- 「걱정 마십시오.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히아스는 수화를 쓰는 마법사들에게 언어의 결정을 맡겼다. 그들 중 일부는 결정을 가지고 깊은 산으로 숨어들었으며, 일부는 히아스와 함께 적군과 싸웠다.
전장에서 비타 신과 미엘 신의 신성력이 맞부딪쳤다. 서로를 찌르고, 할퀴고, 태웠다. 전력 차이는 압도적이었으나, 히아스는 버티고 또 버텼다.
결정을 가지고 떠난 마법사들이 최대한 멀리 갈 수 있도록 해야 했기에.
그러나 끝내 그는 무너졌다.
〈「여기까지인가 봐. 미안해, 아이론.」〉
그 말을 끝으로, 히아스의 의식이 끊겼다.
* * *
‘뭐… 뭔데, 이거?’
눈을 번쩍 뜨고 이아페를 올려다보았다. 내 예상이 맞는다면, 그도 분명 같은 꿈을 꿨을….
“이아페?”
그가 물기 어린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이건 이아페가 가진 전생의 기억이구나.
“히아스가… 이아페였군요.”
그래서 이렇게 슬퍼하는 거야.
아이론을 잃은 기억이 차올라서.
‘나도 아이론의 기억을 봤을 땐 마치 내 일처럼 괴로웠으니까.’
그리고 히아스의 입장에서 보니 알 것 같았다. 그가 아이론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그녀가 죽었을 때 얼마나 괴로웠을지.
‘그래도… 아이론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는 게 다행이네.’
아이론은 바보였다. 바로 옆에 이렇게 성공적인 주식이 있는데 라카루스 같은 사람을 선택하다니. 나라면 분명 히아스를 선택했을 텐데.
“…….”
나는 손을 뻗어 이아페의 붉어진 눈가를 매만졌다. 나 역시 눈물이 맺힌 것인지, 이아페도 내 눈물을 닦아 주었다.
전생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졌다는 게 신기한 한편으로, 묘한 허전함이 나를 뒤덮었다.
전생의 히아스가 아이론을 좋아했듯, 지금의 이아페가 나를 좋아한다.
그야말로 운명적인 일이었다.
이아페와 내가 운명적인 관계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습게도, 막상 정말로 운명이었다고 하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운명이라는 말이 가슴을 쿡쿡 찌른다.
결국 도서관을 발견한 건 내가 아닌 이아페였지. 그건 아마 그 도서관을 봉인한 사람이 히아스였기 때문일 것이다.
유일하게 원작의 이아페만이 날 통하지 않고 코레아리아어를 쓸 수 있었던 것도… 히아스의 환생이라서.
‘아이론이 유일하게 언어를 빼앗지 않은 사람이 히아스니까.’
그럼 어쩌면….
‘이아페가 날 좋아하게 된 것도 내가 아이론의 환생이기 때문인 걸까?’
시간을 거슬러 새로 태어났는데도 같은 사람을 좋아한다니.
너무나도 낭만적이고, 그것보다 조금 더 허무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마음을 내색하지 않았다.
‘지금 이아페는 나를 좋아하잖아. 그럼 된 거지, 뭐.’
텅 빈 것 같은 마음속 주머니를 애써 여몄다. 끈을 꽉 조여서 나조차도 그 속이 비어 있는 것을 볼 수 없게 했다.
“해야 할 일이 있어요.”
대신 이아페를 향해 단호한 눈빛을 빛냈다.
* * *
집에 돌아온 나는 곧장 서랍을 뒤졌다.
“분명 여기에 숨겨 뒀었는데… 아, 찾았다.”
안쪽까지 손을 넣어 한참 뒤적이다가, 드디어 깊은 곳에서 돌돌 말린 종이를 찾았다.
스륵, 말아 감싼 끈을 풀어낸 후 책상 위에 펼쳤다.
커다란 지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혹시나 해서 가지고 있었지만… 솔직히 다시는 펼쳐 보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 지도의 출처는 시샤를 찾아왔던 붉은 머리의 정보상이었다. 그리고 지도에 찍혀 있는 목적지는 키론 제국 동북부에 위치한 어느 산의 한 지점.
그러니까 원작의 시샤가 죽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분명….’
아이론이 모은 언어의 결정이 있을 것이다.
히아스에게 언어의 결정을 받은 코레아리아인들은 동북부의 어느 산으로 갔지. 그게 분명 이곳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괜찮아. 이 지도를 받았을 때부터 벌써 1년이 다 되어 가는걸! 죽으려면 벌써 죽었어.’
암, 그렇고말고. 입술을 굳게 다물고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지도를 다시 살폈다.
‘그런데 여기… 키론 제국의 국경을 넘어야 하잖아.’
그리고 국경 너머에 위치한 나라는….
“이젠마 왕국이네.”
“깜짝이야!”
“이거 먹으라고. 문 두드렸는데 못 들었어?”
비알로가 웬 과일 접시를 들고 내 방에 와있었다.
아니, 공부 잘하라고 격려하는 학부모도 아니고 뭘 자기가 직접 과일을 들고 와?
“과일 생각 없어.”
“자.”
“음, 맛있네.”
시식은 이래서 하는 건가. 사과를 한 조각 먹었더니 기분이 좋아져서 접시를 받아 들었다.
‘아 참, 그러고 보니 이젠마 왕국이라면.’
어머니가 사절을 다녀온 곳이잖아. 비알로도 언어를 공부하겠다고 한 곳이고.
나는 사과를 한입에 넣어 볼을 가득 부풀린 채 물었다.
“비왈러, 이젱마워눈 다 익켝….”
“휴… 씹고 말하렴.”
비알로가 한심하다는 듯 눈을 내리깔아 날 보며 팔짱을 꼈다. 나는 열심히 입을 우물거렸다.
그리고 다 삼키고 입을 열었을 때.
“그래, 기본적인 이젠마어는 다 익혔어.”
뭐야, 알아들었으면서! 나는 비알로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그런데 이젠마의 공용어를 말하는 거야? 아니면 왕족들을 비롯해 일부가 쓴다는 소수 계층 언어를 말하는 거야?”
“엥, 이젠마어가 두 종류야?”
“그래. 물론 후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나는 자료를 열심히 발굴해 외웠지. 어머니의 사절에 함께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
“보여 줘!”
슬슬 시동을 거는 비알로의 거들먹거림을 적절한 타이밍에 끊어 냈다. 여전히 우쭐해하는 표정의 비알로가 이젠마의 소수 계층 언어를 사용했다.
– 「그래. 멍청한 동생아.」
뭐…?
비알로의 손을 바라보는 내 눈이 한계를 모르고 커졌다.